등반의 목적이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고, 정상을 향한 속도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관점은‘등반의 본질적인 경험의 상실’과 ‘지속가능한 등반’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왜냐하면, 정상을 목표로만 하는 등반은 등반 그 자체에 담긴 복잡성과 심리적·상황적 가치를 단순화시키고, 이와 더불어 속도 경쟁은 많은 물적·인적 자원을 필요로 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등반의 실존적인 가치와 윤리를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산이라는 장소 그 자체에 내재된 본질적 가치는 변함이 없겠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해정도나 필요에 따라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1985년 보이텍 쿠르티카(Voytek Kurtyka)와 로버트 샤우어(Robert Schauer)가 가셔브룸 4봉(Gasherbrum IV) 정상을 불과 100m 앞에 두고 음식과 물도 없이 이틀을 기다리다가 하산하여 등반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등반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가, 2023년 크리스틴 하릴라 (Kristin Harila) 3개월 1일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시간에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음에도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이 결승선을 향해 달려야 할 이유가 없듯이, 등반이 반드시 정상 도달이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은 등반에 대한 본질적이고 깊은 생태학적 접근의 궁극적인 결과일 수 있다. 산이 무엇인지, 우리가 산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전체적인 사고방식이 정복해야 할 정상에서 자연 속에 있는 장소로 바뀌게 된다.
첫댓글
“정복해야 할 정상에서 자연 속에 있는 장소로” 등반시 되새겨야할만한 좋은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