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은 그녀
최중호
그녀는 결승전에서 강진의 노래 <붓>을 불렀다. 결승전까지 함께 노력해서 올라온 동료들의 어려웠던 과정을 이 노래로 대신하고 싶어서였다.
힘겨운 세월을 버티고 보니 / 오늘 같은 날도있구나
그 설움 어찌 다 말할까 / 이리 오게 고생 많았네(후략)
입천장을 혀로 굴리며 콧소리와 함께 나오는 소리. 그 소리는 넓고 깊은 동굴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다. 걸쭉하면서도 구성진 목소리. 그녀만이 낼 수 있는 성량(聲量)에 깊이가 있다. 특징 있는 그 목소리가 전국에 있는 많은 시청자의 귓전을 울렸다.
그녀는 이 노래를 부른 후, <미스트롯 2>에서 진으로 선발되었다. 어찌 생각하면 그녀는 운이 좋은 여자였다. 준결승에서 탈락했으나, 준결승에 진출한 ㅈ 양이 학창 시절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사람들의 비난을 받자,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 차점자였던 그녀가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녀는 준결승에서 탈락하자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때 서울에서 준결승에 참여하라는 전화가 왔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그녀는 당황했고, 준비를 못해 참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이 생겼다. 우선 남편과 상의해 보았다. 남편은 이번기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라며 참여해보라고 하였다. 그녀는 연습도 하지 못하고 준결승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동안 다른 참가자들은 연습을 많이 했을 텐데, 준비도 없이 준결승에 참여한 그녀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경연을 진행할수록 좋은 성적을 얻었다. 그렇게 해서 7명이 뽑히는 결승까지 올라오게 된 것이다. 준결승에서 탈락했던 그녀가 결승에까지 오를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본인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이제 결승전이다. 그녀는 결승 1차, 작곡가의 신곡을 부르는 경연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결승 2차 인생곡을 부르기에선 2위를 차지하였다. 그 순위는 전국의 시청자 투표를 합산하지 않은 점수였다. 최종 결승에서의 진은 시청자 투표까지 합산한 결과로 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실시했던 <미스터 트롯>에서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결승 중간결과에서 2위를 차지했던 임영웅이 1위를 차지했던 이찬원을 누르고 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전국의 시청자 투표가 최종 결승의 결과를 좌우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결과가 발표되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2위를 차지했던 그녀가 최종 결선에서 진을 차지하게 되었다. 준결승에서 탈락했던 그녀가 진을 차지한 것이다.
그녀는 참 운이 좋은 여자라 생각하였다. 최종결과를 발표하기 전, 사회자가 "만약 진을 차지한다면 우승 상금을 어디에 쓰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위해 지금 사는 연립주택 5층에서 1층으로 집을 옮겨드리고 싶다."고 하였다. 아버지가 발가락이 없는 불편한 발로 연립주택의 5층까지 오르내리는 것이 그녀에겐 너무 가슴 아팠던 것이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 갸륵했다.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국악 명창을 꿈꾸며 제주도에서 목포까지 배를 타고 다니며 판소리를 배웠다. 그 결과 각종 국악 경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랬던 그녀가 21살 때였다. 아버지가 암과 당뇨의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3개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았다. 그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선 우선 신장이 필요했다. 신장재단에 신장 이식 신청을 했으나 이식을 하려면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생명이 위급하다는 것을 알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장을 아버지께 드리고자 결심하였다.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가 인당수에 몸을 던졌듯, 그녀는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장을 드렸던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께 신장을 드린 후, 후회도 하였다. 수술 후유증으로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국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간드러진 여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구성진 목소리다. 처음 들을 때는 별 특징이 없는 목소리였지만, 들을수록 그 목소리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조금은 걸쭉하면서도 울림 있는 친근감 있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게 된다. 효심이 깃든 구성진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면서 전국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뺏어가 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신장으로 아버지의 생명을 구한 효녀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신장을 준 후, 국악을 그만둔 딸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래 자신이 죽기 전에 딸이 TV에 출연해서 노래하는 모습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다. 그녀는 그런 아버지의 소원까지 풀어주었다.
생각해보면 그녀가 <미스트롯 2>의 진이 된 것은 운이 좋았다기보다는 효심이 지극해서였나 보다.
양지은, 그녀는 근래에 보기 드문 효녀였으니 말이다.
최중호 1991년 수필문학> 등단
수필집 <장경각에 핀 연꽃>, <한국인의 두 얼굴>, <보일 듯 말 듯,
첫댓글 『에세이문학』 2022 여름
술술 넘어가서 단숨에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