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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1. 여기에 있는 모든 캐릭터는 가상의 인물이다.
2. 대부분의 이야기는 부도지(符都誌)에 바탕을 두었지만 정사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
3. 경상도 전라도 등 각도 사투리는 천축(天竺) 왕족 언어 "끄샤트리아" 와 일치 한다.
4. 인물이 주는 캐릭터는 독자의 상상력이 더 중요하므로 일체 제작하지 않는다.
5. 이 이야기는 '환단원류사'에서 발췌하여 소설로 독립시킨 작품이다.
6. 본서는 아동문학이므로 상상력이 풍부한 학동들이 많이 읽고 꿈을 키워 한민족 상고사 정립에 밑거름이 되주기를 바란다.
神於 아이들
2
육약비는 풍백(風伯) 석제라(釋提羅)를 불러 운석을 녹여 도구를 만들려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역시 두 사람은 동문이라 말을 터 놓고 지내는 사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각자 지위에 맞는 언어를 사용했다.
"풍백! 자네는 바람을 잘 다스릴 수 있지 않은가 수 삼일 내에 소로와 풀무를 만들어 주게." 그러나 그 말은 황당한 것이었다.
"자네 지금 정신 있는 소리인가? 이런 운석은 녹지 않아 이걸 잘게 부수어야 하는데 무슨 수로 잘게 부순단 말이야 아무리 봐도 이건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텰덩어리야 이런 건 아무리 두들겨도 깨지지 않아. 그러면 통째로 녹여야 하는데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하지."
"그럼 장풍을 쓰면 어떻겠나? 사실은 우리가 이거 가지고 올 때 집채만 한 덩어리를 장풍으로 깨트려서 가져왔거든."
"누가 깼는데?"
"환웅과 나 천웅 지소 모두 합심해서 천음을 울리며 충격 파동을 일으켜 깼지."
"그때와 지금은 달라 그때는 운석이 뜨겁고 여러 사람이 氣를 모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 텰의 고유한 파장까지 기파동으로 내려가 공명을 일으켜 깨트린 것이야. 지금은 텰이 더 단단해졌어 이젠 네 사람이 다시 해도 어려울 것이다."
"그럼 이게 다 쓸모없는 것이란 말이야?"
"그렇지는 않아, 내가 보니까 이 운석은 굉장히 단단해 이것으로 '구리텰'을 긁어봤더니 줄이 '좍좍' 그어졌어 그리구 잘 가공하면 옥에도 금을 낼 수 있을 것이야. 그런데 녹아야지 뭔 일을 하지."
"해봤냐?"
"아무렴 내가 누고, 대장간에 갖고 가 오랫동안 화로에 넣고 달구어 봤지만 녹지 않았어."
"그럼 어떻해야 돼."
"글쎄..."
운석을 녹일 수 없다는 말에 육약비는 다른 대책을 물었다.
"그럼 어떻하면 좋겠어."
"그야 구리돌을 캐어서 도구를 만들면 되지. 뭣 땀시 어렵게 텰을 녹이려 하냔 말이야."
"이런! 구리가 어디있냐? 그 귀한 구리를 어디서 가져오느냐 말이야. 저기를 봐라 구리만 빼 쓰고 남은 돌들을 보란 말이야 저 돌들을 녹이면 이 운석처럼 될 것이란 말이야. 그럴려면 이 운석이 녹아야만 가능하다구."
마당 한 켠에 폐광석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비록 한번 소로에 들어갔다 나왔지만 낮은 온도에서 녹는 구리만 녹고 나머지 철 성분은 녹지 않은 폐광석 이었다.
"내 말은 우리가 새로운 소로를 만들어 보자는 말이야! 운석을 녹일 수 있는 높은 열을 내는 최신 소로 말이야. 그러기 위해선 바람을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하니 너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지."
"글쎄! 나도 몇 번 이나 시도해 봤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이야.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이라면 한번 더 시도해 봐야겠지."
석제라는 지금까지 텰돌을 녹이는 방법을 탈피하여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높은 열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운석을 녹여 도구를 만드는 일은 소로를 먼저 만들어야 하므로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서운관에 큰 회의가 열렸다.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은 앞으로 마고산에서 쏟아질지도 모르는 홍수를 전망하는 보고를 하고 있다.
"지금 마고산 정상에는 빙해가 있고 그 빙해는 더 이상 녹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큰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천해가 넘칠 염려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천해의 물이 여러 곳으로 흘러 마고산 중턱 곳곳에 크고 작은 호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호수는 예전에 물이 고였던 적이 없었으므로 지반이 갑자기 불어난 물을 수용할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새롭게 생긴 물길이 산을 깎아 내리고 있어 점점 산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마고산에는 숲이 없습니다. 모두 황무지뿐인지라 산사태를 막을 방법도 없습니다. 물이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흘러내리면 마고산에는 큰 계곡이 생길 것이며 계곡의 물이 결국은 마고산을 둘로 갈라놓을 것입니다."
"그럼 대책은 무엇인가?" 육약비는 서운관의 총수답게 근엄하게 물었다.
"물론 운하를 파는 것이 제일 급한 일입니다. 이 일은 천해의 하류인 바닥산에서 서쪽으로 강과 호수의 물길을 이으면서 운하를 파는 것과 마고산 중턱에서 태극마칸으로 운하 파는 일을 동시에 시작해야 합니다. 서쪽으로 파는 운하는 경사가 완만해서 새로운 뱃길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만 리 길을 왕래하는 무역상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인즉 장차 교역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사막으로 내는 물길은 경사가 심하고 파낸 흙이 아래에 가서 쌓이면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므로 낙타와 말을 이용하여 신속히 흙을 옮겨야 합니다. 이렇게 운하를 파서 물을 흘려보내면 천해의 수위가 내려가게 됩니다. 수위가 내려가면 일차적 치수 사업은 성공일 것입니다."
"그럼 이차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왕금영이 말한다.
"천보산이 장차 위험해 질 수도 있는 바이니 땅을 파는 도구와 농기구를 많이 만들어 파낸 흙과 돌로 성벽과 둔덕을 쌓고 주위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해자도 파야 합니다. 그리고 천제울국 전 지역에 나무를 심고 사막에도 나무를 심어 농지를 넓히고 개척하면 화가 복이 되어 돌아와 천국은 영원히 부강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특히 촌락이 몰려 있는 인근에 큰 숲을 조성해 두면 숲이 강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주므로 바람의 피해를 줄이며 장차 천국의 백성들이 숲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그곳에 조상의 묘를 조성하고 성덕을 기리는 사당을 짓는다면 그 교육적 가치도 매우 클 것입니다."
"누가 이 일을 해낼 것인가?"하고서 한 노인이 물었다. 이어서 서운관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럼, 이 일을 시킨 사람이 누구여?"하고 할머니 한 분이 또 물었다. 육약비는 주위가 시끄러워지자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곳을 다스리는 사람은 나 육약비 올 시다. 여러분의 안녕과 재산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홍수가 덮쳐 큰 재난이 발생할 것이 염려되므로 그 대책을 논의 하고저 이곳에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천국의 존망이 눈앞에 와 있는데 어찌 누구를 탓하려 하십니까? 이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하는 일이니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환인 천제 폐하'께서는 스스로 낮은 곳에 거처하시면서 여러분의 삶을 보살펴 왔습니다. 이제 천국이 물에 잠기면 우리는 아버지를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 가정과 나의 조상을 내 스스로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누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 하나의 비책이 나온다면 열 사람의 마음에서 열 가지 비책이 나올 것이니 우리 모두 힘을 합치고 머리를 모아 이 난국을 극복해야 합니다."
"나 육약비는 천보산의 총수로서 비상대책을 선포한다. 모든 벼슬을 가진 자는 들어라. 지금부터 천보산을 제외 한 마고산에 혼자서 오르는 것을 금지하며 양 떼도 천보산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농사를 가는 사람은 귀가할 때 서운관에 꼭 들러 환벌에 물이 차오르는지 보는 그대로 알리라. 그리고 서운관 서솔장 '고분기'는 특수 대원을 모집하여 천산과 곤륜산으로 사냥을 나가고 정기적으로 사슴과 야생 양육을 서운관에 바쳐야 한다. 농산물은 각자 집에서 보관하되 서로 나누어 먹어야 하며 감추지 말 것이다. 이를 잘 지키면 금번 추수 때 거출 된 곡식을 골고루 나누어 주겠노라. 겨울이 오기 전에 공사를 실시하고 내년 봄까지 끝내야 하니 남여노소는 각자 힘에 부치는 만큼 열심히 일해주기 바란다. 장비와 양식만 잘 뒷 바침 한다면 무난히 끝날 것이다. 이 공사는 꼭 봄이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봄부터는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지반붕괴가 시작되니 일단 일이 터지면 공사는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각자 열심히 일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풍백과 우사는 곤륜과 천산의 '감성관'으로 가서 천보산의 일을 알리고 그곳에서 무리 각 1천 명과 밀, 보리 등 양식이 될 만한 것을 지원 요청하라.
"신 서솔장 '고분기'이뢰오!"
"말해보라."
"겨울이 되면 사슴과 야생 영양을 구하기 어렵사온데 신 '고분기'는 내일 날이 밝는대로 천산과 곤륜으로 각 세 무리씩 보내어 두 무리는 사냥을 하고 한 무리는 운송을 하게하여 내년 봄까지 임무를 다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고분기! 그대의 충성심은 만인이 본 받을 것이다. 부디 무사히 다녀오기 바란다."
"여보게 우사! 내일 아침에 서솔장과 서솔들의 환송식을 준비 해주게."
"예! 분부대로 하겠나이다."밤 늦도록 회의는 이어졌다. 관리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성의를 보였지만 이를 구경하는 청중들은 마냥 두려워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한편 이전원에서는,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각, 지소와 천웅은 천경 앞에서 환인천제를 기다리고 있다. 천웅은 환웅을 혼자서 보내놓고 천제를 기다리는 것이 몹시 마음 아팠다. 지소는 자기가 다녀올 때까지 육약비가 슬기롭게 잘 해내 줄 것이라 믿으며 마음 졸였다. 소를 구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수 많은 인력을 겨울 동안 동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편하게만 살아왔던 사람들이 반발을 일으킬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서운관의 관리들은 모두 수계를 거쳤으므로 믿을 수 있지만 그들이 거느린 식구들과 일반 백성들은 그저 밥만 먹으면 살 수 있는데 당장 눈앞에 재난이 닥치지 않으면 누가 자발적으로 일어서려 하겠는가? 홍수가 터지면 천보산은 끄떡 없지만 코앞에 있는 천제궁은 제일 먼저 물에 잠길 것이다. 누가 이 궁을 지킬 것이며 누가 환인천제를 구할 것인가! 더군다나 양떼를 방목하려면 마고산까지 가야 하는 데 이제 홍수 때문에 마고산에도 못 들어가게 생겼으니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일이 태산 같게만 느껴졌다.
자정이 되었다. 달빛이 천경에 내려오며 천제께서 나타났다. 두 사람은 엎드려 절하고 다시 일어나 절하려고 할 때 환인천제께서 말씀하신다.
"절하다가 시간 다 간다. 그만 해라."
"폐하..."
"그래 갔던 일은 우예됐노?"
"'상계 천제 폐하' 신 천웅, 지소는 허달에 다녀온 일로 아뢰오."
"음"
"며칠 전에 천수에 떨어진 똥별로 인해 소인과 지소, 환웅은 모두 죽었다가 깨어났습니다. 이로써 삼웅은 하늘에서 내리는 새 생명과 함께 '광명이세'하라는 천명을 받았습니다. 더불어 허달에서 치수법을 깨우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잘 다녀왔느니라. 내가 조금만 더 젊었으면 천수의 물을 서방으로 흘러가게 했을 것이다. 나는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천제울국의 지세가 기울었다. 이제 인간의 세상이 밝았으니 천제울국의 지세를 살리는 것도, 지게하는 것도 모두 너희에게 달렸느니라. 천웅은 잘 알겠느냐?
"예이! 분부 받자 와 가슴 깊이 새기겠나이다."
"그러므로 이곳의 일은 모두 너희에게 맡기겠다. 나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너희들이 치수에 성공하고 서자행이 이루어지면, 상계 4,455년 정월 대보름 천제궁에 나타날 것이며 그렇치 못하여 천제궁이 물에 잠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너희가 아비를 보필하는 마음으로 성심 성의를 다하여 치수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기도 하다."
천웅과 지소는 크게 놀랐다.
"상계 천제 폐하! 소인들은 아직 세상을 물려받을 자격도 없고 더군다나 지금 환웅도 없는데 어찌 영원히 뵈올 수 없다 하시오니까? 추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환웅이 갈석에 다녀오면 그때 다시 뵈옵도록 허하여 주시옵소서."
"환웅 그놈은 갈석에 뭐하러 갔는데?"
"예, 홍수를 다스리기 위한 도구를 만들려면 텰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확보하고 있는 광석이 턱없이 부족하여 텰을 구하러 갔습니다. 소인들도 이 길로 말과 낙타를 구하러 떠나려 합니다."
"에~잉, 못난 놈 같으니... 그러면 너희들도 곧장 마소를 구하러 갔으면 다음에 모두 함께 볼 수 있었을 것 아니냐! 내 말은 곧 하늘의 말이니 두 번 말하지 않느니라."하고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폐하! 폐하!"하면서 천웅은 눈물을 흘리고 어쩌면 영원히 아부지를 뵈올 수 없다는 생각에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지소는 천웅의 어께에 손을 얻고,
"천웅! 환웅이 대견스럽지 않은가! 자네가 우는 모습을 보면 실망할 지도 몰라. 어버이와 자식간의 정을 떠나 이제는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가 되었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네. 용기를 내 봐 우리가 어디 남이가?"
모두가 잠든 밤에 천웅은 금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지소는 밤이 너무 늦어 집에 갈 수 없었다. 환웅이 쉬지 않고 길을 떠난 마당에 집을 돌아볼 마음도 사라졌다. 날이 새면 천웅과 함께 바닥산으로 갈 것으로 정하고 같이 잠을 청했다.
석제라가 천산에 다녀오는 동안 육약비는 땔감을 모으고 있었다. 텰을 녹일 만한 고온을 얻으려면 참숯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약간 경사진 곳에 땅을 둥글게 파 고랑을 길게 내고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둥글게 소로를 쌓은 후 한자 높이에 토관을 심어 풀무를 연결하면 소로가 된다. 이것은 지금까지 쓰여오던 전통 방식인데 육약비는 풀무를 사방에 연결하는 좀 더 크고 텰광석과 참숯을 많이 넣는 소로를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구리나 아연 비소 같은 연질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까운 폐광석이 가득 쌓여 있다. 그러다 환웅을 생각했다. 환웅이 텰을 구하러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환웅은 텰을 녹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려! 환웅님금만 믿어야지, 난 숯이나 많이 만들어야겠다."
3
온 천지가 하얀 눈으로 뒤 덮인 천산은 환웅에게는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어언 30년을 도자기와 숯을 굽고 천문을 살피며 수계하고 지냈으니 반평생을 천산에 살았으면 제2의 고향인 셈이다. 천산은 흑수(黑水)와 황하(黃河)가 시작되는 곳이다. 흑수와 황하는 생명물이다. 천산은 하늘의 산이고 곤륜은 땅의 산이다. 천산과 곤륜이 만들어 내는 지형은 태극을 그리고 있다. 북쪽은 태극마칸이 있고 남쪽은 토번이 있다. 그 형상이 태극을 닮은 것은 이곳이 인류의 고향이기 때문 일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청춘은 꿈도 있고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도 있겠지만 환웅에게는 늘 초인이 되기 위한 절박함만 있었다. 한평생 그를 절박하게 만들었던 모든 것들이 천산에 있다. 환웅은 천산의 봉우리를 타고 동쪽을 향하여 끝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해가 지려고 하자 연기가 나는 곳이 있어 오늘 밤엔 그곳에서 쉬었다 가기로 하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몸이 솜털처럼 가벼워 깍아 지른 절벽도 발을 딛고 걸어서 내려간다.
해가지는 천산의 숲은 벌써 어둠이 내려 캄캄해지고 있었다. 환웅은 반평생을 동서 만 리나 되는 천산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근처엔 집도 절도 움막도 한 칸 없는데 누군가 불을 피워 고기를 올려 놓았다. 이렇게 험난하고 깊은 첩첩산중에 사람이 살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가 불을 피워 놓았을까?"
하기사 환웅에게는 잘 된 일이다. 어차피 눈 좀 붙이려면 불을 피워야 하니 좋은 것이고 주인장이라도 만나면 굽던 고기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을 피워 놓은 곳은 숲 속에서 흔치 않은 꽤 넓은 마당이었다.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행여나 인기척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뚫린 동굴이 의심스러웠다.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려면 불을 피워 놓았으니 꼭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불이나 쬐면서 혹시 토끼라도 한 마리 나타나면 잡아볼까 생각했다. 불 옆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잠시 후 주위에 뭔가 모여드는 소리가 들려 환웅은 눈을 살포시 뜨고 고개 숙인 채 귀를 기울였다. 모닥불 이외엔 사방이 캄캄한 어둠 속이라 눈뜨나 감으나 마찬가지였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시퍼런 칼날이 목과 등 그리고 양쪽 옆구리로 들어왔다. 환웅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상대방은 여러 명인 듯했다. 긴 대나무에 번쩍번쩍 빛나는 칼날을 붙이고 마치 창끝으로 환웅을 겨눈 듯하였다. 환웅은 움직이지 못하고 꼼짝없이 봉변을 당할 처지가 되었다. 상대방이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면 그냥 허무하게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므로 말을 건네 보기로 했다.
"나... 나는 환웅이라 하오이다. 천제의 아들이니 당신들은 나를 죽이지 못하오. 죽인다 해도 나는 살아날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시오."
그래도 환웅을 겨눈 칼은 묵묵히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을 건냈다.
"여기 높으신 분을 만나게 해주시오. 나는 여러분을 좋은 곳에서 잘 살게 해줄 수 있소이다. 저, 내가 입은 옷을 보시오.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도 아니고 여러분의 적도 아니니 그만 칼을 거두어 주시오. 그저 지나가다가 따뜻한 불이 있어 주인장을 한번 뵙고 싶어 왔으니 찾아온 손님을 너무 홀대하지는 마시오. 천국에는 이런 법이 없소이다."
환웅은 갑작스레 당한 일이라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상대의 공격이 시작되면 하늘로 솟아오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손놀림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인간의 머리로 판단하는 이상 환웅의 생각을 앞지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찰나의 순간도 환웅이 먼저 움직이면 그들은 환웅을 벨 수 없다. 그런 환웅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오늘 밤은 사슴 대신 이놈을 구워먹자. 그놈 참 맛있겠다. 여봐라! 칼을 내려놓아라."
사방에서 환웅을 겨누었던 칼이 서르르 내려갔다. 이마에서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미 쓰러져 죽은 듯 고요하던 용육장에도 땀이 나고 있었다. 지금 하늘로 날아 도망칠 수도 있지만 이미 칼을 거둔 이상 자기를 손님으로 맞을 준비를 하는 듯하여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닥불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그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사람 구경을 처음 하는 듯 그들은 환웅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냄새를 맡기 위해 코를 '킁킁' 거리고 있었다. 생긴 몰골이 너무나 이상했다. 마치 새의 형상 같기도 하고 뱀 대가리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었다. 얼굴은 반쪽 난 것처럼 작았다. 키도 아주 작고 다리가 굽어 있었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있다. 주로 난장이나 꼽추 또는 외눈박이 정도였지 이렇게 동물처럼 생긴 모습은 처음이었다. 큰 유행병이 돌고나면 멀쩡하던 사람이 흉칙하게 변한 적은 있었다. 이들도 그런 류의 병을 앓고 있다면 천기(天氣)를 넣어 치료해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환웅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침착했다. 오히려 그들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통했는지.
"뱀대골아! 너는 손님을 뫼시고 나머지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 말하는 사람의 모습은 조금 흉칙하기는 했지만 파룡사부 보다는 나은 듯했다. 키도 크고 건장하며 머리카락이 반은 검고 반은 하얀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곳을 다스리는 대사부 같았다. 나이가 제법 많아 보였으므로 일단 존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뱀대골'은 환웅의 옷자락을 이끌며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대사부는 어느덧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간 동굴에는 작은 호롱불이 켜져 있었다. 자작나무를 잘라 심지를 박은 것이다. 이곳은 대사부가 거처하는 곳 같았다. 그리고 밖에 있는 여러 개의 동굴은 이곳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인 것 같다. 대사부가 먼저 앉고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뱀대골!"
"어이!"
아마도 '뱀대골'이란 사람은 말이 어둔했다. 생긴 모습이 뱀 대가리처럼 납작하고 뾰죽하게 튀어나왔다.
"손님께서 마실 차를 올려라."
"어이."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소. 나는 '여운기'라 하오."
"예! 저는 환웅입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이곳에 오기를 잘한 것 깉습니다. 한 며칠 머무르면서 병이 있는 자들을 치료하고 가겠으니 길을 열어주십시오."
"허허! 천제의 아드님께서 기껏 병 치료를 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닐 것인데 어인 일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까? 이곳은 지상에서는 찾을 수 없고 오로지 하늘에서 봐야만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길을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왔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그 후자가 되겠군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연기가 나기에 사람이 있나 보다 싶어서 내려왔습니다. 만 리 천산은 나의 고향이라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는데 이런 곳은 처음인지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요. 그것도 하늘의 뜻인가 보구려. 그럼 공술을 하시오?"
"조금..."
"천제의 아드님은 두 분이라 들었는데 그럼 어느 분이신가요?"
"예, 제가 둘째입니다." 뱀대골이 따뜻한 차를 가지고 왔다. 씁씁한 향기가 나는 것이 예전에 파룡사부께서 마시던 차와 같은 종류 인 것 같다.
'자! 편안하게 한잔하시지요."
"저의 아버님을 아시는지요."
"나도 거짓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 바른대로 말하리다." 여운기는 잠시 눈을 감았다. 환웅은 차를 마셔 보았다. 무지무지하게 쓴맛이 난다. 어쩐지 멀리서 가져올 때부터 씁쓰름한 냄새가 나더니 이건 보통 차가 아닌 것 같았다. 난생처음 맛을 보는 이상한 차지만 표정을 잃지 않았다. 자칫 분위기가 흩어질까 봐 정신을 차리고 여운기를 보며 조심했다.
"그, 지팡이 말이외다." 여운기는 용육장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예, 이건 용육장입니다. 저의 사부이신 파룡선생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 물건을 지니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소."
"예! 벌써 한번 죽었다가 깨어났습니다."
"그래요!" 여운기는 조금 생각하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오. 두 번 깨어났소."
"예"
"아까 보니까 그 지팡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오. 비록 땅에 떨어져 누워 있긴 했지만, 주인을 구해야겠다는 생동감을 느꼈소이다."
"그건 파룡장의 것인데, 환웅선생이 가졌기에 난 처음에 도둑질해서 여기까지 도망쳐온 줄 알았소."
생각보다 여운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환인천제도 알고 있고 파룡사부를 파룡장이라 부르고 용육장의 주인까지 아는 것으로 봐서 어떻게든 자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 제가 어떤 존칭으로 부르면 좋겠는지 하명해주십시오."
"하하하! 난 그저 '여운기'라하오. 그냥 편하게 부르시오. 오히려 천제의 아드님께 예를 올리지 못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그러면 제가 어르신을 알 수 있도록 과거사를 좀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난 용육장을 보는 순간 당신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허세와 영욕을 가진 자가 이것을 지니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용케도 무사하신 걸 보니 참! 다행입니다. 그 용육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이지요. 내가 그것을 만들었으니까요."
"예!"하며 크게 놀랐다. 환웅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엎드리고 여운기를 향해 절했다.
"저에게는 두 분의 사부가 계시온 데 한 분은 환인천제이시고 다른 한 분은 파룡선생이십니다. 어르신은 용육장을 만드시고 소인에게 그 기운이 전해졌으니 오늘부터 어르신은 저의 사부이십니다."
"원천만의 말씀이시오. 나는 그저 '옥장'에 불과하니 환대인의 사부가 될 수 없는 몸입니다. 그러나 내 나이가 200세에 이르렀으니 환대인 보다는 조금 오래 산 듯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낮추어주십시오."
"괜찮아요. 그나저나 곧 식사가 시작될 텐데 내가 조금만 더 얘기하리다."하던 중에 식사 준비가 다 됐다고 뱀대골이 알린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환대인은 멀리서 오신 귀한 손님인데 같이 저녁이라도 합시다."하며 두 사람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한 가족처럼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이고 노인 한 명 아낙네 한 명 등 모두 스무 명 정도가 모닥불 주위에 모두 모여 앉았다. 어디서 익혔는지 통째로 구운 양고기 한 마리가 돌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씻지 않은 손으로 고기를 만진다. 칼로 고기를 나누는 사람은 제일 연장자처럼 보였다. 아주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칼로 베고 손으로 찟어 나누었다. 여운기와 환웅에게로 가져온 음식은 양고기 그리고 칡뿌리를 갈아 만든 음료였다. 아까 차를 마실 때 그 향기도 나는 것 같아 물어보았다. 그것은 칡뿌리와 약초를 섞어 만든 것인데 고기를 먹지 않고 이것만으로도 며칠을 지낼 수 있다고 하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맛있게 먹는데 모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생긴 몰골 하며 말을 못하는 사연이 있는 듯하여 기회가 있으면 물어보기로 했다.
"저, 어르신 고기가 참 맛있습니다. 제가 오늘 밤 정말 잠자리 하나는 제대로 찾은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환대인, 내일 떠나실 것이라면 오늘 밤에 저들에게 천기(天氣)를 불어 넣어 주세요. 고작 스무 명 정도이니 하룻밤이면 모두 하늘 기운을 받아 몸이 좋아질 것이라 믿소이다."
환웅은 안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정말로 기(氣) 치료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하더라도 무조건 된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예! 물론입니다. 제가 천기를 불어 넣어 여러분의 병을 모두 낳게 하겠습니다. 아직 병의 상태를 살펴보진 않았지만, 하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니 병이 나을 때까지 며칠 머무르도록 하겠습니다."
"여봐라! 모두 들어라. 오늘 밤에 환대인께서 우리 모두에게 병을 낳게 해주신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모두 맛있게 밤묵고 내일은 너희들의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며 기다려라."
"와우! 와우, 어어 이..." 모두들 기뻐하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은 너무나 천진난만 하였다.
"제가 정말 잠자리 하나는 잘 잡았는데 오늘 밤엔 잠을 잘 수가 없겠군요."
"하하하!" 두 사람은 웃었다. 여운기는 20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기력이 좋고 체격이 장대했다. 턱 아래엔 하얗게 센 긴 수염까지 나 있었다. 그러므로 저 아이들과는 태생부터 다른 집안이었을 것이다.
"저어, 어르신은 이분들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까?"
"허어, 그것은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고 밤 묵고 저들의 소원이나 먼저 들어 줍시다."
"예! 그러지요."
환웅은 뜻하지 않게 난쟁이들의 병을 치료하느라 며칠을 여기서 보내야 할 판이니 바쁜 몸인데 처지가 난처해졌다. 그러나 평생을 아픈 몸으로 살면서 세속을 떠나 산속에 숨어들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아팠다. 저들의 병을 치료하려면 며칠을 여기서 묶어도 될까 말까 하지만 일단 오랫동안 천수계를 닦았으니 한번 실험도 해 볼 겸 이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여운기가 먼저 일어났다. 환웅도 일찍 식사를 마친 터라 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돌아와 마주 앉았다. 찻잔이 다 비워졌으므로 뱀대골은 또 차를 따라 주었다. 저들이 잠시 쉬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동안 뭔가 얘기를 하려는 듯했다.
"저어! 이 차는 매우 씁쓸한데 재료는 무엇입니까?"
"그건 칡과 사향고양이의 똥가루를 섞어 만든 차입니다. 먹을수록 정신이 맑아지지만 보통 사람은 입에 대지도 못합니다. 그 이유는 냄새와 향이 말해주겠지요." 정말 그랬다.
"그나저나 아까 저들과의 인연에 대해 물었지요."
"예, 그리고 묻고 싶은 게 또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저 번쩍번쩍 빛나는 칼은 어떻게 만든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손수 용육장을 만드셨다는데 그것도 궁금합니다."
"환대인은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었습니까?"
"예, 천국에 장차 홍수가 날 조짐이 보여 운하를 파야 하는데 삽과 깽이를 만들기 위해 텰을 구하러 갈석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으음! 그러면 길을 잘 찾아오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나는 동취산에 살던 사람이었소. 거기에 대대로 옥장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갈석이 동취산에서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곳의 지리는 내가 손바닥 보듯 한데 갈석에 가기 전에 나를 만났으니 큰 도움이 될 것이오."
"그렇게만 돼 준다면 큰 영광이겠습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환대인은 저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나는 환대인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돕겠소이다. 아주 괜찮은 거래가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뱀대골"
"어이"
"이리 오너라." 뱀대골이 옆으로 왔다.
"우선 이 아이의 병세를 살펴보시면 모두의 증상이 똑같으니 나머지는 내일 날이 밝으면 보기로 합시다. 마침 환대인께서 며칠 동안 머무르시겠다고 하니 나로서는 더 느긋하고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닙니다. 여자아이를 한 사람 더 불러주세요. 병세는 음양의 조화를 살펴야 하는데 남자만 봐서는 전체를 살피기 어렵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뱀대골아! 너는 밖에 나가 '쇠골녀'를 데려오너라."
"그런데 여기는 왜 모두 대골이란 이름을 붙입니까?"
"그야 '대골'이 '대골통'을 말하는 것이니 그렇지요. 생긴 게 모두 대가리가 짐승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기사 옛날에는 개똥이, 쇠돌이, 똘망치, 돌대가리 같은 이름은 흔한 것이었다. 천민들은 성을 받지 못해서 생긴 모습이나 특이한 행동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
환웅이 뱀대골과 쇠골녀를 살펴본다. 두 사람을 마주 보게 앉혀 놓고 백회에 양손을 나누어 올리고 氣를 불어넣어 점검을 한다. 장심에서 불이 나와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깜짝 놀랐지만, 눈을 감고 환대인은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고 지금까지 자기들이 보아 왔던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뜨거운 것도 잠시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잠이 들었다.
그들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또 산 너머 마을로 떠돌아다니며 옥장인 노릇을 하던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가는 곳마다 천대하기 일쑤였고 밥을 먹게 해준다고 꼬드겨 노예처럼 옥 공방에 쳐박아 넣고 일만 실컷 부려 먹다가 쫓아내기도 했다. 그들의 옛 조상은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천재지변으로 도시 전체가 망하여 모두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떠돌다가 그들은 다시 뭉쳤다. 조상들이 살았던 옛 땅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리고 최초의 철창과 철칼을 만들어 전쟁 준비를 했다. 다시는 사악한 인간 세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였다. 뜻을 한곳에 모으고 쇠창과 쇠칼로 무장하여 적을 막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 일은 곧 발각되어 동취산에서 몇 배나 많은 무리가 쳐들어와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때 무리 속에 있던 '여운기'가 이들을 빼돌리고 말에 태워 황하의 물길을 거스러 올라 천산까지 데려온 것이다.
"아아아앙!"
뱀대골과 쇠골녀가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며 사람 키 높이 위로 떠올랐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잠자는 듯 보였지만 마치 꿈을 꾸는 듯 가위에 눌린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사람의 몸이 공중에 떠있는 것이다.
"너는 누구냐? 무엇이 길래 이토록 비참하게 사람을 괴롭히느냐?" 환웅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운기가 보니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데 환웅이 혼자서 중얼 거리고 있다. 아마도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리라.
"역시 제대로 된 '메다(巫人)'여! 바로 잡아내는군" 감탄사를 쏟아낸다. 이른바 빙의 된 영혼을 끄집어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신기한 듯 환웅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비록 영혼의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환웅이 혼자서 중얼거리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잠자는 쇠골녀의 입에서도 영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누구인지 넌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집안일이니 너는 너의 집이나 잘 다스려라."
"나는 천제의 아들인데 어찌 내 집이 따로 있겠느냐. 너의 집도 내 집이고 여기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다. 오로지 너만 나를 모르는구나. 괘씸하도다."
"하하하! 오천 년도 넘은 한이 너에게 와서 풀리겠구나. 어쨌던 기쁜일이다. 천제의 아들이면 황궁씨 계족이더냐?" 환웅은 이놈이 황궁씨를 들먹이고 오천 년도 넘은 한을 품고 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너는 귀신이고 나는 사람이니 계급으로 논할 수는 없다. 나는 신계(神界)에서 명을 받은 사자이니라. 내 평생 신계(神界)에서 너 같은 놈은 본적이 없으니 너는 필시 떠돌이 귀신이 분명하구나. 재주도 좋다 어찌 오천 년 동안 한을 품었으며 후손에게 머물 수 있느냐?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이겠거니 너는 필시 도통(道通)한 것이 분명한데 어찌 천상에 들어가지 못했느냐? 내 너를 천상으로 보내 줄 것이니 지금 하복하라."
그러자 귀신은 그제야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한다. 귀신이 아이의 몸에서 빠져나오자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여전히 잠자는 모습이다.
"거룩하시고 성덕 높으신 천제의 아들이시여! 이놈의 한을 풀어 주시옵소서."
뜻밖에 쉽게 귀신이 하복 하는 걸 보아 보통 귀신은 아니고 안목이 넓고 도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천제의 아들을 쉽게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귀신도 통찰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었거나 아기 때 죽으면 저급령이 된다. 저급령은 무식해서 '메다(巫人)를 몰라 본다. 그런 저급령은' 메다(巫人)에게 끝까지 달려들며 저항하기도 한다.
"그래, 너의 한을 말하라. 내가 듣고 나서 풀어주겠노라."
"소인은 마고성에서 쫓겨난 옛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支巢)라 하옵니다."
"무엇이! 니가 정녕 지소였다는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어허! 그러면 그때의 한이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더란 말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나는 열심히 밭에서 일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유천(乳泉)에 갔지만, 일을 게을리하던 사람들이 먼저 유천(乳泉)에 와서 줄 서는 바람에 몇 번이고 밤을 먹지 못해 소(巢)의 난간에 열린 포도를 따 먹었습니다. 그 후로 밤을 먹지 않아도 힘이 생기는 것을 알았고, 또 기르던 가축을 잡아먹었으며 배고픔을 이기는 방법이 밤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크게 알렸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지혜의 눈을 뜨게 한 것인데 어찌 죄가 됩니까? 죄가 있다면 내가 아니라 자재율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잘못이 더 큽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가축을 잡아먹고 그 맛에 취하다 보니 어린 새끼까지 잡아먹어 그 씨가 말라 버렸습니다. 스스로 지켜야 할 자재율을 어긴 대가는 너무나 비참해졌습니다. 먹을 양식이 떨어져 굶어 죽는 일이 점점 많아지더니 기어코 멸망이라는 큰 벌을 받고 모두가 마고성에서 쫓겨나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환웅과 옛 지소(支巢)의 대화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지소(支巢)는 마고성 해체의 가장 큰 죄를 덮어쓰고 이전원에 와서 병을 얻어 죽었다. 그러나 지소가 죽은 뒤에 사람들은 모든 잘못을 지소 탓으로 돌리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그 후손들도 지소(支巢)에게 제사 지내지 않았다. 천상에서도 쫓겨난 지소(支巢)는 너무도 외롭고 갈 곳이 없어 한이 쌓이기 시작했다.
백소씨족(白巢氏族)은 서방으로 떠나면서 지소(支巢)의 일족을 떼어 버렸다. 지소(支巢)가 병을 얻어 죽은 후 일족은 지소(支巢)의 직계 씨족만 이전원에 남기고 나머지 후손들은 이전원을 떠나 천산으로 들어갔다. 만 리 길 천산을 넘고 황하의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무려 천 년에 가까운 세월만큼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런 후에 지금의 내몽고 '우란찰포'에 정착했다. 그곳은 황하가 흐르고 물이 풍부했고 기름진 옥토가 있었다. 먹을 것과 잠잘 것이 해결되니 생활은 옛 마고성처럼 풍요로워졌다. 이제 그들은 아름다움과 욕망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들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는 식량을 배급제로 바꾸고 백성들에게 흑피옥을 만들라고 하였다. 주변에 널부러진 돌이 모두 옥돌이었다. 그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주워 가장 단단한 운석을 날카롭게 잘라 옥을 가공하는 데 사용했다. 참으로 놀라운 기술의 발전이 시작 되었다.
죽은 지소는 천상에도 못가고 후손에게 제사도 못받았다. 화가 치밀었다. 어느 날 '소희'를 찾아갔다. 그러나 천상의 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자신의 말을 인간에게 전해줄 무사(巫師)가 필요했다. 그때는 개벽이전 시대여서 무사(巫師)가 없었다. 또 몇 천 년이 흐른 후 곤륜산에서 은거하는 '파룡신인'을 우연히 만났다. 죽은 지소는 '파룡신인'에게 자기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깨우치게 했을 뿐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며 천상에 들어가게 도와 달라며 애원했다. '파룡신인'은 지소에게 후손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후손들이 소도(蘇塗)를 세우고 그 뜻이 하늘에 닿을 때까지 조상의 명줄을 빌어주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했다. 그 후로 '파룡신인'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다.
지소(支巢)는 후손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 후손과의 소통을 시도했지만,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가 잘나서 잘 사는 줄만 알았지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은 없었다. 수차례 꿈에 나타나 후손을 꾸짖어도 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는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 있을 때 실컷 마시고 즐길 뿐이었다. 지소(支巢)는 지닌 도력을 집중하여 후손에게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새롭게 태어나는 아기들은 다리가 굽고 얼굴의 모양이 짐승처럼 변하는 이상한 병에 걸렸다. 사람들의 몰골이 추해지자 차츰 외부에서 오는 사람을 멀리했다. 행여나 추한 모습이 소문날까 봐 다른 무리가 이곳을 지나가다 길을 잃어 우연히 들렀어도 모두 잡아서 죽였다. 세상과의 단절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천벌이 아니었다. 죽은 지소가 내린 저주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과 화산까지 터졌다. 하늘이 캄캄해졌다. 그러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수십 일씩 내리는 바람에 모든 것이 떠내려갔다. 백 년이 지나도 태양을 볼 수 있는 날이 며칠 되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파묻혀 버렸다. 또 백 년이 지났다. 그래도 살아남은 백성들은 곧이어 찾아온 '젊은 빙하기'에 얼어 죽었다. 천 년 동안 '젊은 빙하기'의 재앙을 겪고 난 뒤에 겨우 몇명이 살아 남았다. 그들은 추한 모습으로 동취산까지 와서 구걸하며 살게 되었다.
동굴에서 온몸에 돼지기름을 바르고 겨울나기를 하던 '새대골'은 시장에 옥을 팔러 나갔다. 그들은 여름 내내 옥돌을 주워다 동굴에서 가공하여 겨울이 되면 그걸 내다 팔아 양식을 구했다. '새대골'이 가지고 나온 옥은 잘 팔렸다. 그리고 값도 후하게 쳐주었다. 그러다 '새대골'의 옥장 기술을 알아본 한 대인이 가족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오면 호의호식 시켜주겠다고 했다. '새대골'은 대인의 집에서 옥장인이 되어 가족들과 함께 평생 동안 잘 살면서 많은 후손을 낳았다. 그 후로도 후손들은 대를 물려가며 옥장이 되어 동취산, 갈석산, 태행산 등지로 흩어져 나가 번성했다. 그러나 여전히 난쟁이에다 추한 모습은 고쳐지지 않았으므로 가장 밑바닥 신세를 면치는 못하였다. 배움의 기회가 전혀 없었던 그들은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루하루 죽을 고비를 피해 가며 목숨을 부지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많이 흘러갔다. 옥가공 기술을 발전시킨 '새대골'의 후손은 드디어 철기까지 만들어 냈다. 그것은 청동기를 만들던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특유의 눈썰미와 옥장 기술이 바탕이 되어 발명한 것이다. 그들의 시퍼런 칼날이 완성되던 어느 날, 칼과 창으로 무장하면 적들을 제압하고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뭉쳤다. 조상들이 묻혀 있는 '우란찰포'로 쏙쏙 모여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지소의 저주 때문인지 배신자가 생겼다. 배신자의 말을 들은 동취산의 모대인은 군사를 이끌고 가 '우란찰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한 사람의 배신자로 인하여 새대골 동족 전체가 몰살된 가운데 그때 '여운기'가 노인과 아이들을 살려내어 천산으로 왔다.
환웅과 지소의 대화가 끝났다. 환웅은 지소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후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옛날에 '파룡신인'했던 말과 같았기 때문에 죽은 지소는 펄쩍 뛰었다.
"거룩하고 성덕 높으신 천제의 아들이시여! 수천 년간 같은 방법으로 후손의 힘을 빌리려고 했지만 이룰 수 없었습니다. 어찌해야 하옵니까?"
"지금 여기 있는 노인과 아이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조상을 잘 못 만난 것이 어찌 죄가 되겠는가 다만 배움의 기회가 없었으니 사람은 나면 반드시 오상(五常)을 가르쳐야 한다.
" 오상(五常)은 유교에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의 다섯 가지 기본적 덕목이다. 인(仁)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이란 불쌍한 것을 보면 가엾게 여겨 정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고, 의(義)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은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악한 것은 미워하는 마음이다. 예(禮)의 사양지심((辭讓之心)이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하며 남을 위해 사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고, 지(智)의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을 의미한다. 신(信)의 광명지심(光名之心)은 중심을 잡고 항상 가운데에 바르게 위치해 밝은 빛을 냄으로써 믿음을 주는 마음이다."
사람이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천도(天道)를 닦아야 한다. 그 첫째는 부부가 화합하여 음양을 조화롭게 이루는 것이고, 둘째는 부모님을 잘 모셔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한을 거두는 것이다. 셋째는 형제끼리 우애하여 가정을 화목하게 잘 지키는 것이다. 무릇 이 세 가지는 하늘이 사람에게 내려 준 천도(天道)이다. 그런 연후에 오상(五常)이 이루어지므로 비로소 령계(靈界)와 선계(仙界)의 일을 볼 수 있으며 선계(仙界)를 깨우치면 신계(神界)를 볼 수 있다. 그대의 후손은 선(仙)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수신제가(修身齊家)도 못 했느니라 무릇 기회가 없으면 이룰 수 없고 보지 못하면 말할 수 없으니 배움이란 크고도 큰 도(道)이니라."
"이제 그대가 오천 년 동안 구천 세계의 귀객으로 살았으니 죄업은 다 끝났다. 여기 남은 후손들에게 천도(天道)를 가르치고 소(巢)를 짓게 할 것이다. 그대는 소주인(巢主人) 되고 어린 후손들이 제사를 올릴 것이니 그 정성이 하늘에 닿을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지소의 혼령은 눈물을 흘리며 거듭 감사하는 마음으로 허리를 숙였다.
"거룩하고 성덕 높으신 천제의 아들이시여 후손들을 믿지 못하겠나이다. 직접 천상에 들게 해주십시오."
"그건 불가하다. 하늘은 태양을 품고 있으니 양(陽)이 되고 땅은 물을 품고 있으니 음(陰)이다. 태양은 땅을 비추어 양지를 만들고, 땅은 태양을 머금고 밝게 빛나지만 항상 그 뒤에서 그늘이 함께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사람이 있으니 그 모든 수고는 사람이 감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어서 음(陰)으로 돌아간 혼령은 스스로 양(陽)이 될 수 없다. 반드시 사람이 정성으로 양기(陽氣)를 바칠 때 하늘이 그 빛을 보고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대는 괜한 강샘 하지 마라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깨우치지 못한 후손을 괴롭히는 일이 때로는 채찍이 되므로 神은 귀객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거룩하고 성덕 높으신 천제의 아들이시여! 그러면 제가 후손의 몸에 씌어서 계속 양기(陽氣)를 흩트려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물론이다. 후손을 잘 인도하는 것은 모두 그대의 소임이고 나는 천도(天道)를 전할 것이니 천도(天道)에는 거짓이 없다."
"좋습니다. 거룩하고 성덕 높으신 천제의 아들이시여! 천도(天道)를 잘 전해주어 후손들이 부디 깨우침을 얻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부터 소주인(巢主人)이 되었으니 후손의 일이 번창 하도록 소인도 돕겠습니다. 그럼 소주인(巢主人)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죽은 지소의 혼령이 물러가자 아이들이 깨어났다. 그리고 주위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났다. 지금까지 말을 못하던 사람들이 모두 말문이 터진 것이다. 비록 생긴 모습은 짐승을 닮았지만 심성은 착한 아이들이었다. 환웅은 아이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 주고 어깨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장은 들어라." 기쁨과 두려움에 싸인 노인은 엎드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인고의 세월을 참으며 살아왔으니 노인은 시대의 거울이다. 이제 지나간 과거는 모두 잊고 내 그대에게 천도를 일러 줄 것이니 이를 다시 아이들에게 가르치도록 하라. 돌을 쌓고 나뭇가지를 엮어 소(巢)를 짓고 주인(主人)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지니라. 옥(玉)은 '욕망'이지 영생이 아니니 그 재주를 가려서 사용하라. 또 창과 칼을 만들지 말 것이며 늙어도 배움에는 끝이 없으니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공부하는 데는 항상 모범을 보여야 한다. 노인은 늙고 죽음에 가까워도 지혜는 밝은 법이다. 부디 밝은 지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선대의 유업을 광명세계로 인도하기 바란다.
날이 새면 뱀대골과 쇠골녀를 혼인시키고 그들에게 음양의 조화를 깨우치게 하고 부부는 화합하여 음기와 양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가르치라. 그리고 그대들은 쓸만한 재주가 있으니 하루빨리 소(巢)를 짓고 소주인(巢主人)의 공덕을 높이 받들어 부디 천상에 들어가도록 빌어주라. 그리하여 부모를 공경하고 조상을 잘 받들면 화가 복이 되는 이치를 배우게 하라. 이것은 천도(天道)이니라 모두가 한가족이니 형제끼리 다투면 복이 흩어지고 형제끼리 우애를 잘 지키며 서로 돕고 산다면 어떤 고난과 시련도 이겨 낼 것이다. 노인장은 알겠는가?"
"하늘과 같은 지엄하신 가르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반드시 천도를 받들어 소(巢)를 짓고 조상을 모시며 음양의 이치를 배우겠습니다."
또박또박 노인의 입에서는 말소리가 퍼져 나왔다. 어찌 된 일인지 모두들 서로를 쳐다보며 한마디씩 해보고는 기뻐했다. 노인장은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야들아! 환웅님금께 큰절 올려라. 너희들의 병을 낫게 해주셨다. 이제 너희들은 버림받은 백성이 아이다. 하늘에서 도(道)를 내려 주었으니 그것을 배우면 우리는 천국에도 갈 수 있고 보통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살 수도 있다. 환웅님금께서 그렇게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으니 감사드려라."
모두 환웅에게 절하고 몸을 일으키니 환웅은 다시 뱀대골과 쇠골녀를 불러 바닥에 눕게 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조준하여 좌우로 왔다갔다하며 계속 기를 불어 넣었다.
"너희들은 내일 혼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밤에 다리를 고쳐 줄 것이다. 마음속에 나의 굽은 다리가 쪽 바로 펴진다고 생각하며, 기를 받는 동안 숨을 멈추지 말고 편안히 잠 자듯이 누워 있으라."
환웅이 기(氣)를 불어 넣는 동안 그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다시 말문이 막힌 듯하였다. 조용한 시간이 한참 흘러갔다. 아이들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환웅은 일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옷을 벗어 덮어주자 이내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담요를 가져왔다. 환웅은 살생한 물건은 안된다면서 다시 돌려보냈다. 가을밤 오동잎이 하나 떨어졌다. 밤도 깊어져 모두 동굴집으로 들어갔다. 모닥불은 혼자서 밤새도록 두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