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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慕齌(감모재)
감모재 전북 남원시 보절면 진기리 420-1
感慕齌 上樑文
(진주 죽봉문중)
15세기말 부패 타락한 훈구 대신들의 비행과 그 들의 秕政을 고발하고 사림파의
이상적인 개혁정치를 제시하는 한편 세조의 왕위 찬탈과정에서 조작 은폐된 역사의 진실을
널리 수집, 史草로 남기고 實錄에 싣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다가 결국 戊午士禍로 인해 殉節하신 稀世의 節義之士이신 우리 先祖 文愍公 濯纓(諱馹孫) 先生이 가신지 올해로 507年이 됩니다.
濯纓先生의 伯氏이신 東窓公(諱駿孫)께서
長子이신 三足堂(諱大有)과 次子이신 昌寧公(諱大壯-濯纓先生의 系子-)을 데리고
流配되어 오신 곳이 바로 舊 南原 月谷(지금은 행정구역상 長水郡)입니다.
東窓公께서는 이 곳 月谷에서 流配生活을 하시면서
燕山君의 暴政으로 社稷이 날로 위태롭고 특히 甲子士禍때 무고한 선비들의
陵遲處斬과 剖棺斬屍의 慘變소식을 접하시고는 燕山主를 폐하고 晋城大君을 추대하자는
檄文을 작성 발송하신 곳도 이 곳 月谷입니다.
이 곳 月谷에서는 東窓公을 비롯 三足堂(대유), 昌寧公(대장), 司果公(장鏘), 道淵亭(치삼致三)
四代가 生居하셨으며, 月谷에서 6㎞ 西南쪽에는 濯纓先生의 系子이신 昌寧公과 孫子이신
司果公의 二代(父子분) 墓所가 있는 先山이 있습니다.
(묘소위치: 남원시 보절면 진기리. 내동)
위와 같이 月谷은 東窓公, 三足堂, 昌寧公의 流配地이고,
東窓公의 燕山主 廢位 檄文作成발송지이며, 東窓公, 三足堂, 昌寧公, 司果公, 道淵亭公의
生居地이자 昌寧公, 司果公의 墓所가 있는 곳으로 濯纓先生의 後孫들로서는
슬픈歷史의 現場이고先祖들의 節義와 忠孝精神이 살아 숨쉬는 聖域地이며
濯纓先生의 血統을 잇게한 繼承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濯纓先生의 曾孫이신 道淵亭(諱 致三)께서는 祖父와 父親의 墓所守護를
外孫에 잠정적으로 맡기고 濯纓先生의 墓所 守護와 제사를 위하여 경북 淸道로 가실 수밖에 없었고 그 후 道淵亭公의 넷째 孫子이신 敬濟公(諱 瀹)이 祖父의 遺訓을 받들어 다시 月谷으로 歸還하여 위 昌寧公, 司果公의 墓所를 守護하게 되었고 그 때가 약 360여년 전이며,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위 敬濟公의 後孫이 代代로 月谷에 살면서 위 墓所를 주로 守護해 왔습니다.
그러나 昌寧公이 돌아가신 1549년부터 감모재 재실이 완공된 1919년까지
370년 간을 齋宿이 없이 守護해오다가 1919년에 경북 淸道栢谷 崇善殿郞 諱容禧께서
月谷의 雲城 諱奕斗의 協助를 얻어 재실을 新築하셨고 재실명칭을 感慕齋라 명명하고 墓祭때
후손들을 재숙하게 하고 雨天時에는 그 곳에서 제사를 모시게 하였으니 370年의 恨이 풀린 셈입니다. 그 후 1957년과 1975년 두 번에 걸쳐 여러 문중들의 협찬을 얻어 重修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나
재실면적이 겨우 30.02㎡(약9평 정도)로 墓祭日에 눈이나 비가 내리면 당장 너무 협소하여 제를 지낼 수가 없고 宗中總會도 거행할 수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感慕齋 墓祀에 參祀하신 모든 宗員들과 省墓차 來訪하신 宗員들은 異口同聲으로
感慕齋의 重建이 宿願事業이라하여 오던 中 마침 淸道에서 永慕齋와 唯賢齋의 重建이
完工되었으니 이제는 感慕齋 차례라는 宗論이 무르익어 왔습니다.
2003년 感慕齋 墓祀때 不肖가 感慕齋 重建을 發議한 바 있었고
2004년 春季 永慕會(종군의 부조묘와 종댁의 관리을 도우는 친목단체)에서
擧族的 事業으로 重建을 이룩하자는 決議가 있었습니다.
이에 不肖가 建築規模로 齋室(5칸=약23坪 정도)과 이에 따른 솟을대문, 管理舍, 담장 및
造景까지 합하여 건축비가 약 3億5千만원정도 든다는 것을 알았고,
이 建築費 3억 5천만원의 調達은 濯纓先生의 後孫들의 獻誠金으로 밖에 의존할 길이 없음을 간파하고 2004. 7. 2. 11:00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紫溪書院에서 전국의 문중대표들 60여명이 모이신 紫溪書院 保存會 定期總會에서 중건취지와 실천방안을 설명, 提議를 하여 만장일치의 決議를 얻었고 즉석에서 感慕齋重建 推進委員會을 별지와 같이 構成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천방안으로 위 감모재 중건취지와 실천방안을
각 市道別 共同推進委員會長과 推進委員들 그리고 각 門中代表들에게 送達하여
宗中員들로 하여금 위 취지와 방안을 충분히 理解케하여 濯纓先生 後孫들 모두가 宗員錄에
登錄하고 감모재 중건에 적극 참가하도록 독려하기로 하여 바로 공사비의 모금을 시작하였고
공사준비를 하였습니다.
우선 헌성금의 모금통장을 개설하여 모금을 하면서 문화재 등
고건축을 축조하는 건축업자 목은전통건축 김영성을 선정하여
2004. 11. 4. 공사계약을 체결하였고
2005. 1. 8에는 풍수지리학을 전공한 尹甲源 교수를 초빙하여
座向을 설정한 바 現存 감모재는 그대로 存置하고 위 兩代분의
墓座와 同一한 方向으로 齋室의 座向을 定하면 左靑龍, 右白虎의 形象을 갖출뿐만 아니라
전면의 案對가 좋아서 人材를 많이 배출할 수 있는 집터라는 極贊을 받아 齌室의 터를 확정하였고,
또한 2005. 2. 20.에는 木材를 구입하여 治木건조하고 있는
전남 함평동원제재소에 산림생산기술 연구소장 金鍾閏 농학박사와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鄭成鎬교수 겸 공학박사를 초빙하여 목재감정을 하여
정품임을 확인받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05. 4. 3.에
金鶴坤고문, 金海坤, 金祥連 공동추진위원장,
金商鎔, 金漢坤, 金重坤, 金鍾閠, 金時坤, 金永坤, 金京容, 金鍾玉,
金容玉, 金鍾大, 金鍾宇, 金成坤, 金海坤등
추진위원들과 여러 宗親들이 참석한 가운데 起工式을 가진 바 있었습니다.
그 간의 모금 과정을 잠깐 말씀드리면 不肖가 단순히 중건취지와
실천방안 만을 발송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신 先親의 爲先精神을 추모하여
先親명의로 巨額의 성금을 출연하신 종친이 있는가하면 날품을 팔아 생활하는
종친도 한푼 두푼 모아 성금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병석에 누워 신음하면서
성금을 보내주신 宗親도 있어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은 종친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위중건공사가 예상보다 빨리
진척되어 장마철이 다가오기 전 기와이는 공사까지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우리 宗親들은 370年間 재숙할 곳이 없어 고생고생 하다가 感慕齌가
신축 되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는데,
이제 순수한 宗親들의 성금만으로 종전 재실보다 배가 훨씬 넘은 5칸(약 23평)의
넓은 재실이 마련되어 종친들의 재숙은 물론,
비나 눈이 올 때도 뜰이나 마당에서 참배하지 않고 넓은 재실에 들어서서 참배할 수 있고
飮福도 뜰이나 마당 아닌 재실의 방이나 마루에서 할 수 있으며 宗中總會도 室內에서
정중하게 할 수 있고 濯纓先生을 비롯한 三賢先祖들의 忠孝․節義思想을 欽仰하고,
특히 濯纓先生의 높고 깊으신 政治,經濟,社會,外交,文學思想과 史官으로서의
대쪽같은 直筆精神의 얼을 景仰하고 硏究하는 後孫들의 넓은 廣場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어찌 아니기쁠 수 가 있겠습니까.
어기영차 대들보! 이 기쁜 일에 感慕齋 중건 추진위원회 金鶴坤고문께서
다음과 같은 祝頌詩를 지으셨으니 이를 대독하여 興을 돋우겠고 원컨대
이 대들보를 올린 후에는 子孫萬代에 발전하고 번영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별첨: 1. 감모제 중건 추진위원회 구성표
2. 감모제 중건 상량축송
2005. 5. 1.
출처 http://cafe.daum.net/kimthre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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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모재 축문
感慕齋重刱上樑祝頌
兒郞偉抛樑東 어영차 대들보 동쪽에는
桑梓道州渺望中 고향 땅 청도가 저 멀리 아득하네.
緖業千年貽厥尙 천년의 가업 남기신 계책 고상하고
三賢芳躅示高風 삼현의 향기로운 자취 높은 지조 알리네.
兒郞偉抛樑西 어영차 대들보 서쪽에는
萬行山秀紫霞迷 만행산이 빼어나 보라빛 안개 희미한 데
蒼蒼松柏衛塋域 창창한 송백은 선영을 호위하고
望望雲仍欽慕齊 후손들 우러러 모두 함께 흠모하네.
兒郞偉抛樑南 어영차 대들보 남쪽에는
萬丈頭流聳帶嵐 만길 높은 두류산이 이내 띠고 솟았네.
濯蠹故蹤何處在 탁영 일두 양 선생 옛 자취 어디인고?
宛然猿鶴樂高談 돌아가신 임들이 고담준론 즐기는 듯...
兒郞偉抛樑北 어영차 대들보 북쪽에는
月谷山川回月色 월곡 산천에 달빛 광명 다시 돌아왔네.
冤謫八年留恨地 원통한 팔년 유배 恨 맺힌 이 곳에서
檄文義擧匡社稷 격문으로 의거하여 사직을 바로 잡았네.
兒郞偉抛樑上 어영차 대들보 위에서는
追思兩代不禁悢 양대를 추원하니 슬픈 마음 그지없네.
風霜苛酷幼年經 가혹한 난리 풍상 어릴 적에 겪고 나서
終老鄕心誰可量 타향에서 終老하니 아픈 향수 뉘라서 헤아리랴!
兒郞偉抛樑下 어영차 대들보 아래에는
衣冠濟濟祭於社 선비들 위엄 있게 地神에게 제사하고
昆孫款款話爲先 후손들은 오손도손 爲先事 얘기하네.
節義遺謨長不舍 절의의 유훈 길이길이 계승하리라.
伏願上樑之後 업드려 비옵건대 상량한 이 후에는
券臺永鞏 丘木益茂 제단이영구히튼튼하고구목이더욱무성 하며
遺澤不斬 襲慶無疆 끼친 은택 다하지 말고 대대로 경사가 무 궁하게 하소서.
山高水長先賢之風不沫千古 산이높고물이길듯선현의기풍천고 쇠하지 말고
雲蒸霞蔚後裔之盛勿替永劫 구름이일듯노을이울창하듯영원히후손들 쇠퇴하지 말고 번성하개 하소서!
乙酉 季春 後孫 鶴坤 謹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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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慕齋 重建 推進委員會 構成
고 문 : 金 相 仁 (탁영선생 종손, 공학박사, 대학교수)
金 壽 鶴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장, 국세청장 경북지사 역임)
金 容 健 (자계서원 보존회장, 경북고등학교교장역임)
金 鶴 坤 (전재경삼현회 회장)
金 鍾 麒 (현 감모재를 신축하신 諱容禧의 孫子)
공동추진위원장 :
金 鐘 快 (紫栢문중 대표) ------- 자계,백곡문중
金 海 坤 (永慕會회장) ---------- 전북대표
金 駿 坤 (삼현파 대종회 수석부회장) -- 서울대표
金 桂 潤 (김해김씨 전남종친회장) ---- 광주전남대표
金 祥 連 (경남모현회장, 경남종친회장)-- 경남대표
金 雨 洪 (가락종친회 대구회장) ----- 대구,경북대표
金 彦 錫 (태안군 개발위원장, 동원장학회 이사장)--충남대표
金 仁 德 (가락부산종친회 고문, 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 부산대표
추진위원 (무순) :
金鍾世(변호사, 순창 국사공문중회장)
金相洙(영모회총무)
金容一(대학교수)
金鍾五(영모회전총무)
金琪坤(모현회회장, 청도한의원원장)
金鍾漢(가락구락부부회장)
金德坤(임계서원보존회재무부회장, 송암문중대표)
金商鎔(삼현파하동군 총회장)
金熙澈(학화재보존회장, 의학박사)
金漢坤(통영뉴월드마트 회장, 옥계문중대표)
金孝泳(경목회 명예회장, 영모회감사)
金鍾稷(전고교교장, 서예,미술학원 원장)
金世坤(광주그랜드호텔사장)
金萬燮(경목회회장, 가락종친회대구부회장)
金重坤(가락광주종친회장,광주문화원장역임,월산문중대표)
金德烈(가락종친회 대구부회장, 제일환경엔지니어링사장)
金江坤(가락중앙종친회- 종무위원, 삼성인쇄사장)
金連洙(대구모현회총무)
金大中(서진무늬목재상사사장)
金容煥(김해김씨 삼현순천종친회장)
金相賢(순천법우회장)
金鍾閏(농학박사,산림생산기술연구소장)
金學俊(가락대구중구 종친회회장)
金周坤(문학박사:대구한의대학교 대학원장)
金鎬儉(돈암공문중-노대문중-대표)
金鎰大(후곡문중-승주,송광-대표)
金相來(함평손불문중 대표)
金采坤(순천대대문중대표)
金命錫(함양서상금당 추하문중대표)
金鍾守(전남구례종친회 회장)
金日坤(전북 장수용계문중 대표)
金容權(나주 대도문중대표)
金㥁洙(충남 서천문중대표)
金宅坤(남원 하송문중대표)
金時坤(남원 아영문중대표)
金京容(남원 아영송리문중공동대표)
金鍾玉(남원 인월문중대표)
金永坤(남원 아영송리문중대표)
金鍾漢(남원 구암준중대표)
金基善(곡성 문중대표)
金容石(가락종친회 대구동구회장)
金鍾海(가락종친회 대구동구부회장, 함양호성문중대표)
金小坤(가락종친회 대구시부회장, 자계서원보존회 부회장)
金萬植(가락종친회 대구동구부회장)
金鍾和(밀양문중대표)
金聖奎(가락의성군종친회 고문)
金行坤(삼현파순천종친회총무, 순천당한약방)
金永洙(자계서원보존회 총무, 칠곡문중대표)
金鍾律(영모제집례)
金武坤(백곡문중)
金鍾漢(자계서원 유사)
金鍾基(자계문중 종손)
金容玉(남원월곡 문중대표)
金鍾大(감모재 종중유사)
金鍾宇(사동서원 유사)
金東宇(서천문중대표)
金明坤(월곡문중 만회당종손)
金鍾杰(월곡문중, 대영합성주식회사 대표이사)
金忠坤(월곡문중, 한일화학공업 대표자)
金鎭洙(금산군 제원면문중)
金二奉(광주 광산구 용곡동 문중)
金成坤(월곡문중, 충무가설자재주식회사 대표이사)
金海坤(월곡문중, 한일화학 대표자)
金乃皓(승유문중대표)
金太坤(전초등학교 교장, 성리문중대표)
집 행 위 원
金 鍾 快 , 金 海 坤 , 金 孝 泳
金 鶴 坤 , 金 重 坤 , 金 順 坤
출처 진주죽봉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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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모재중건 및 실적방안
感慕齋 重建 趣旨 및 實踐方案
추상같은 춘추필법으로 역사의 정도를 바로 잡고 열일(烈日)같은 충정으로 권간(權奸)의 방자(放恣)를 응징(膺懲)하려다 도리어 간신배의 음해로 억울하게 순절하신 희세의 절의지사(節義志士)이신 우리 선조 文愍公 濯纓(諱 馹孫)선생이 가신지 올해로 506년이 됩니다.
濯纓先生의 伯氏이신 東窓公(諱 駿孫)께서 長子이신 三足堂(諱 大有)과 次子이신 昌寧公(諱 大壯-탁영선생의 계자)를 데리고 유배되어 오신 곳이 舊南原 月谷입니다.
동창공께서는 이곳 월곡에서 유배생활을 하시■서 연산군의 폭정으로 사직이 날로 위태롭고 특히 갑자사화때 무고한 선비들의 능지처참(陵遲處斬)과 부관참시(剖棺斬屍)의 참변소식을 접하시고는 연산주를 폐하고 진성대군을 추대하자는 격문(檄文)을 작성 발송하신 바 있었는데 이 일로 인하여 중종 2년에 연천군에 봉하여 졌습니다.
또한 이곳 월곡에서는 東窓公을 비롯 三足堂 昌寧公 司果公 道淵亭公 4대가 생거하셨으며
月谷에서 6km 서남쪽에는 濯纓先生의 系子이신 昌寧公과 孫子이신 司果公의 2대(父子)분의 墓所가 있고 그 墓所 아래 齋室이 있으니 이 齋室이 곧 感慕齋(南原市 宝節面 眞基里 內洞소재)이고 昌寧公과 司果公의 墓齋를 지내는 齋閣입니다.
위와 같이 월곡과 감모재는 동창공 삼족당 창녕공의 유배지이고 동창공의 연산주 폐위 격문작성 발송지이며 동창공 삼족당 창녕공 사과공 도연정공의 생거지(生居地)이자 창녕공 사과공의 묘소로써 탁영선생의 후손들로서는 슬픈 역사의 현장이고 先祖들의 절의와 충효정신이 살아 숨쉬는 성역지이며 탁영선생의 혈통을 있게한 계승지이기도 합니다.
탁영선생의 후손이면 모두 창녕공의 후손 아닌 사람이 없고 오직 창녕공의 후손만이 탁영선생의 후손일 뿐입니다.
감모재는 1918년에 경북 청도백곡(淸道栢谷) 숭선전랑 휘 용희(諱 容禧)께서 월곡의 운성 휘 혁두(奕斗)의 협조를 얻어 신축하셨고 1957년과 1975년 두 번에 걸쳐 여러 문중들의 협찬을 얻어 重修한바 있었으나 재실면적이 겨우 30.02㎡(약 9평 정도)로 墓祭日에 눈이나 비가 내리면 당장 너무 협소하여 祭를 지낼 수가 없고 종중총회도 거행할 수 없는 실정이옵니다.
感慕齋 墓祀에 參祀하신 모든 宗員들과 省墓次 來訪하신 宗員들은 異口同聲으로 感慕齋의 중건이 宿願事業이라하여 오던 중 마침 청도에서 영모재(永慕齋)와 유현재(唯賢齋)의 중건이 완공되었으니 이제는 감모재 차례라는 宗論이 무르익어 왔습니다.
작년 감모재 墓祀 때 不肖가 감모재 중건을 發議한 바 있었고 금년 춘계 永慕會에서 擧族的 사업으로 중건을 이루하자는 결의가 있었습니다.
이에 불초가 건축규모로 재실(5칸= 약23평정도)과 에에 따른 솟을大門. 管理舍. 담장 및 造景까지 합하여 건축비의 견적을 몇 군데 받아보니까 약 3억5천만원정도 든다는 것이 공통된 結論입니다.
건축비 3억5천만원의 조달은 탁영선생의 후손들의 獻誠金으로 밖에 의존할 길이 없습니다. 즉 濯纓先生의 후손(昌寧公의 후손) 모두가 感慕齋 중건에 참여하고 감모재 宗中 宗員錄에 등록한다는 취지로 1인당 (미성년자인 자녀도) 1만원 이상의 獻誠金을 내도록 하고 獻誠金 出演者는 감모재 종중 종원록에 등재하여 책으로 製本을 하여 영구히 보존하게 하며 또한 100만원이상을 出捐한 宗親들은 출연한 금액과 이름을 기재한 獻誠碑를 세워 자손만대에 紀念되게 하는 방법으로 調達하려합니다.
위 중건취지와 實踐方案을 2004. 7. 2. 11:00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자계서원에서 全國의 門中代表들 60여명이 모이신 紫溪書院 保存會 定期總會에서 提議를 하여 滿場一致의 결의를 얻었고 卽席에서 감모재 중건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推進委員會는 우선 顧問으로 탁영선생의 종손과 종중원로들 약간명을 추대하고 추진위원장은 각 시도별 대표자들이 공동위원장을 맞도록 하였으며 추진위원은 각 문중대표자들을 선임하여 당일회의에 참석하신 고문, 위원장, 위원들은 즉석에서 승낙하셨고 불참하신 분들도 혼쾌히 승낙하실 것이라 믿고 별표와 같이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當日 실천방안으로 위 感慕齋 중건 취지와 실천방안을 각 시도별 공동추진위원회장과 추진위원들 그리고 각 문중대표들에게 送達하여 宗中員들로 하여금 위 취지와 방안을 충분히 이해하여 탁영선생 후손들 모두가 宗員錄에 등록하고 感慕齋 重建에 적극 참가하도록 독려하기로 하고 宗員登錄名單은 다음 양식에 내용을 기재하여 -중략- 입금하여 주시면 具體的인 重建事業을 着手하겠습니다.
-중략- 죽장님들의 존체 청안하심과 宅內 제절의 均安하심을 빌고 아울러 感慕齋 重建事業의 早速成就를
다같이 祈願합시다.
感慕齋 宗中 入金計座番號 : 농협중앙회 352-01-072772 김순곤
첨부: 1. 感慕齋重建推進委員會 構成表 2. 感慕齋宗員名導載 樣式
感慕齋 宗中 都有司 金順坤
서울서초구 서초동 1699-9 남계빌딩 604 02- 532-8801 e-mail
各 門中 族丈님 尊下
(이 취지문을 진주문중에서 다시 사본하여 문중에 알리는 바이오니 문중대표 소석님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진주시 정촌면 소곡리 삼구 김종찬 055-754-8893 016-9717-8893)
출처 진주죽봉문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