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에서 중청까진 길이 멀지 않았다. 중청에는 대피소가 있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대청봉에서 인증도 하지 못한채 덜덜 떨며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엔 많은 사람들이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대피소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했지만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어쩔수없이 화장실을 찾아가 잠시 쉬었다. 벽이 있는곳에 들어가 잠시라도 쉬니 정신이 드는것 같았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여러번 신호가 울렸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스름하게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조금 쉬고나서 희운각대피소를 향했다. 날이 밝아오고 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그래도 바람도 덜 불고, 덜 추웠다. 희운각으로 내려오는데 하늘이 점점 벌겋게 물들고 있었다.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에서 일출을 보기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산의 기후가 갑자기 바뀌어 맑다가도 흐려지고 안개가 자욱히 끼는 경우도 많아, 일출을 일부러 보러 갔어도 못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출을 보았다. 커다란 햇님이 내 앞을 밝혀주고 있었다. 중청부터 희운각으로 내려오는 내내 태양은 나를 반기듯이 붉게붉게 떠오르고 있었다. 나도 일출 산행을 몇번 해본적이 있었다. 새해 첫날 일출을 보기 위해 북한산 족두리봉을 올라 간적도 있었다. 겨울 해뜨는 시간이 7시 10분이어서 그 시간까지 족두리봉에 올라야 일출을 볼 수 있었다. 독바위역에서 하차해서 족두리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아직 어둑한 산길을 혼자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겨울이라 드문드문 눈도 쌓였고, 길이 얼어붙허 있었다. 산 초입을 지나자 사람들이 조금 보였다. 사람들이 보이자 안심이 되며 걸어가기도 조금 편해진것 같았다. 족두리봉 아래 평평한 바위에 오르자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7시 정도 올라갔음에도 해는 떠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맑지 않았다. 추운길을 힘들게 올라갔지만 날씨가 흐려 일출을 보기가 어려울것 같았다. 구름에 가려 주변은 벌건 빛을 띄었으나 해가 올라오지는 않았다. 10분 20분이 경과하자 점점 추워졌다. 옷을 여미고 발을 동동 굴럿다. 그때 저멀리 구름사이로 햇님이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흐린날이었기에 해가 반쯤 올라온 상태에서 구름위로 삐줏하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결혼한지 얼마안된 새색시처럼 완전하게 얼굴을 보이지 않고 수줍은듯 떠오르고 있었다. 흐린날씨에도 구름속을 비집고 올라온 햇님이 너무 반가웠다. 새해 첫날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가족의 건강과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이 될 수 있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불게 타오르는 태양을 따라 희운각에 도달할 때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너 어디야, 대청봉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지금 중청에 왔는데" "대청봉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추워서 중청에서 잠시 쉬고 희운각에 다와가" 친구의 연락이 너무 반가웠다. 친구는 날듯이 뛰어내려왔다. 우리는 희운각대피소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먹었다. 희운각에선 공룡으로 갈 수도 있고, 천불동계곡으로 내려 갈 수도 있었다. 힘이 들었지만 처음 목표가 공룡능선을 타는 것이어서 우리는 공룡능선으로 들어섰다. 최근 우연히 월간 "산"에 올라온 겨울 공룡능선 구조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2002년 1월 7일 저녁 7시경 공룡능선에서 조난신고가 들어왔다. 강풍이 무척 심하게 불고 설악산은 체감 영하 50도였다. 구조대원 2명이 공룡능선을 타고 올랐다. 평소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6시간 걸려 올랐다 그때 시간이 새벽 1시였다. 조난자들을 찾아 산을 내려올 때 구조대원 1명이 체력이 떨어져 구조대장은 3명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가장 가까운 오세암까지 눈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러나 조난자 1명은 점점 몸이 굳어갔고 구조자까지도 탈진 되어 갔다. 조난자 1명을 버려두고 올 수 밖에 없었고, 구조자들도 자칫하단 같이 조난 당할 상황이었다. 오세암에 겨우 도착했을 때 구조자의 얼굴과 손발에 동상이 걸릴정도였다. 오세암에 대기중인 다른 구조자가 조난자 1명을 데려왔을 때 그 사람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간 상태였다. 사고자 2명은 희운각대피소에서 관리자가 공룡능선은 매우 위험하니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라는 말을 따르지 않고 오후 1시경 공룡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기상상황은 한파경보와 강풍경보가 함께 발령되어 있었다. 구조자인 A 반장은 지옥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 구조작업 후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월간 "산" 10월호 기사 참조)
위와같은 기사를 보더라도 공용능선은 설악산 중에서도 등산하기 어려운 코스임에는 분명했다. 공룡능선은 1200m를 오르내리는 봉우리가 7개나 되었다. 내가 자주오르는 북한산 비봉이 560m인데 그 두배나 되는 높이의 봉우리를 7개나 넘어야 하는 힘든 코스였다. 하나의 봉우리를 오르면 내리막으로 200미터 이상을 내려오는것 같았다. 친구는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고 다른 등산객들과 섞여 능선을 탓다. 한 중간쯤 갔을 때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넌 같이 왔으면 같이 가야지 나만 두고 먼저 가버리면 어떡하냐"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얌마, 니가 가자고 해서 왔지 내가 가자고 해서 왔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등산버스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오색에서 출발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11시간내에 완주를 해야 했다. 다른 산객들과 함께 같은 버스를 타고 가기 때문에 시간을 엄수해야 했고 시간이 지나면 버스는 떠나가고 만다. 마침내 나는 마등령에 도착했다. 마등령에서 비선대까지의 거리는 약 3㎞미터였다. 그런데 모두 돌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산을 오르는것은 물론 힘이든다, 호흡도 무척이나 가빠진다. 그러나 하산길은 위험이 더 도사리고 있다. 나는 무릎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하산시 무릎통증이 점점 가중되어 걸어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마등령에서 비선대까지 오는 길은 지금까지 등산하면서 느껴던 가장 힘들길이었다. 발을 절뚝거리면서 정말 눈물겹게 비선대에 도착했다. 비선대에서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까지도 약 1시간정도는 더 걸어가야 했다. 그래도 평지여서 다리가 덜 아팠고 나는 버스시간에 맞추도록 속도를 올렸다. 그날 시간을 맞추지 못한 산객이 2명이 있었다. 버스는 전혀 기다리지 않고 정시애 출발했다. 설악산 공룡능선을 다녀온 뒤 난 약 한달정도 산에 갈 수 없었다. 무릎이 너무 아파 병원을 다녔다. 그렇지만 죽기전에 공룡능선을 타본것이 내 등산여정에선 큰 추억이 되었다. 다른 친구가 자기는 공룡능선에 가보지 못했으니 다시 한번 가보자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