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 GC05100248 |
한자명 : 平泉里 |
별 칭 : 들새미 |
분 야 : 지리/인문 지리 |
유 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 역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평천리] |
시 대 : 현대/현대 |
집 필 자 : 최재우 |
[상세정보]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평천리(平泉里)는 들 가운데 샘이 있으므로 ‘들새미’ 또는 한자로 ‘평천(平泉)’으로 불리어 왔다.
또 임진왜란 이후 거듭되는 가뭄으로 온 마을의 식수가 고갈 상태에 이르렀을 때도 들판 아무 곳에나
우물을 파면 물이 잘 나왔다 하여 평천(平泉)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평천리의 덤밑·다칭·다산(茶山) 마을에는 벽진 이씨와 성산 이씨가 주로 살아 왔고, 부연리(浮蓮里)에는
벽진 이씨 등이 살고 있다.
또 평천리 북서쪽에 있는 임천(林泉)마을은 동래 정씨가 많이 살고 있다.
평천리는 신라 경덕왕 때부터 임고군(臨臯郡)에 속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임고현(臨臯縣)에 속하였으며,
공양왕 때 영천부(永川府)에 소속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15년(태종 15) 영천군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임고면(臨臯面)에
속하였다.
1995년 1월 1일자로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평천리는 양평리와 더불어 운주산(雲柱山)의 산맥이 서쪽으로 뻗어 나와서 생긴 마지막 마을로, 동고서저
형태의 산세를 보이며 서쪽에는 들판이 잘 형성되어 있다.
평천리는 자호천(紫湖川)의 많은 물이 퇴적하여 형성한 비옥한 평야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임진왜란 이후
거듭되는 가뭄으로 온 마을의 식수가 고갈 상태에 이르렀지만 동쪽 운주산에서 흘러오는 풍부한 수량 덕분에
들판 아무 곳에나 우물을 파면 샘물이 잘 나왔다고 한다.
[현황]
평천리는 평천1리와 평천2리, 평천3리로 구분되며, 자연 마을로는 평천·새마[신촌]·행화촌·임천·덤밑 등이 있다.
평천리 면적은 6.64㎢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215가구, 449명으로, 남자가 224명, 여자가 225명이고, 비옥한
토지이기에 일찍부터 사과 재배가 성했다.
평천리에는 이미 1920년대에 일본인들이 들어와 사과 생산을 했으며, 또 벼 후기작으로 도내에서도 가장 일찍이
딸기 재배를 하였다.
1960년에 일본과 계약 재배하여 딸기를 일본으로 수출한 사실이 있을 정도로 농업 분야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앞선 마을이다.
또한, 2009년 준공된 임고 강변 공원에는 여름철 많은 피서객들이 찾고 있다.
출처 : 디지털영천문화대전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