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영원한 짝사랑이라고 하더니. 그 말은 참말로 진리다.
한국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아들이 지난 10월에 아빠 생일 잔치 참석차 다녀갔는데도 또 들어온다는 연락이 왔다. 2월 초에 갑자기 올라온 카톡 메세지.
- 미국으로 2월 말 갈 예정
이 한마디에 우리 부부는 온 세상이 다 밝아졌다.
- 와우, 무슨 일? 언제?
나는 춤을 덩실덩실 추는 이모티콘과 함께 얼른 답장을 썼다.
- Saturday, Feb. 25, 6pm
이틑날 온 답장이다. 너무 간단해서 또 다음 말이 뜨려나 한참 기다려도 감감하다.
그렇지만 그 말에 흥분한 나는 세 명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 친구 결혼식이니? 비지니스?
한나절이 지난 후에 간단한 답이 왔다.
- 그냥 ㅎ
방문 목적이 뭘까 엄청 답답했지만 잔소리로 비칠까봐 갑갑한 마음을 달래며 두 주를 보냈다.
아들이 또 카톡을 보냈다.
- 토요일에 도착하고 노나집에서 밥 먹고 내려가자.
엘에이에 사는 누나집에 먼저 들리자고 한다. 한글 철자가 이리 틀려도 하나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 그러자. 공항에서 바로 헹콕팍에 가서 밥 먹고 내려가자.
- 아, 너무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도착하고 global entry 인터뷰도 해야되서 7시까지 나올 것 같은데.
Global Entry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질문은 금물이다.
-그렇구나. 그러면 그냥 집에 가자. ㅎㅎ 누나집은 다음날로.
그로부터 2주 후.
카톡이 왔다.
- 엄마 아빠 나 토요일 늦게 도착하고 월요일이 바로 또 콜로라도로 가야되서 그냥 토/일은 누나 집에서 자고
월요일에 바로 LAX로 갈 것 같아. 우리 일요일 밤에 누나 집에서 저녁 먹을까?
이게 무슨 섭섭한 말인가. 순간 실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쿨 한 척
- 그러자. 그런데 콜로다도에는 왜 가는 거니?
내 말에 답이 오기도 전에 남편이 불쑥 끼어들었다.
- 콜로라도에 가는 것은 알겠는데 LA에는 얼마나 있을 예정이니?
- 2틀 ㅎ
너무나 간단하고 냉정한 아들의 대답에 우리 두 부부는 시무룩 ~~ 했다.
드디어 아들이 오기 이틀 전. 남편이 카톡을 보냈다.
- Robin, It's raining & cold here. Wear warm clothes.
- O.K.
드디어 아들이 오는 날이다. 오자마자 누나집에 갈 것이니 우리 부부는 아무런 일도 준비도 할 필요가 없다.
섭섭한 마음 반, 오히려 잘 되었다는 맘 반이다.
다른 때 같으면 침대 커버랑 모두 걷어내어 새 것으로 바꿔 깔겠지만
이번에는 침대는 손도 안보고 대략 청소만 했다.
엄마 아빠보다 누나가 더 좋다 그거지? 흥!
그러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 Hi, Just landed.
I have to do some stuff to try to get global entry, maybe make it to your place by 730 or later.
누나한테 보내는 메세지다.
- Great! My home address. xxxxxxx
둘이 이미 통화가 되었는지. 우버를 타고 누나집에 갈 모양이다.
- 와. 잘 도착했구나. Welcome back home !!!! 누나랑 매형이랑 두 꼬맹이랑 좋은 시간 보내라. 내일 보자.
- Robin, 왔구나. 우리 아들 보고싶네. 내일 보자.
우리 부부는 섭섭한 마음을 숨기고 반가운 척 했다.
- Yahhhh, See you soon!
금방 딸이 또 카톡을 올렸다.
- Hey, I think Uber will be hard to get in this weather. I will come get you. Leaving now. Should be there by 645 or earlier.
누나의 배려가 고맙다.
- 우리 딸 너무 스마트 하네. 참 좋은 누나다. 석준이는 이런 누나가 있어서 좋겠다. ㅎㅎ
- 그러게. Thank you, Michelle.
나의 아양(?)에 이어 남편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렇게 아들 귀국 첫 날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
큰 손녀가 감기에 걸렸다며 집에서 밥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한테 집 밥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음식을 내가 해서 가겠다고 하니 두 녀석이 모두 노~~ 노~~ 한다.
엄마 음식 뭐 먹고 싶은 것 없느냐고 하니까 오, 노우~~~ 단숨에 거절이다.
다른 집 아이들은 엄마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던데 너희들은 그런 것도 없니? 했더니 또 오, 노우~~~~ 다.
잘 되었다고 해야하나. 반성을 해야하나. 괘씸하다 해야하나.
아들은 타이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한다. 배달을 시켜 먹을 예정이란다.
우리 부부는 저녁 시간에 맞추어서 올라갔다.
아들은 어제 도착하자 누나 집에 짐을 던져놓고 나가서 비니지스 차 누구를 만나 저녁 먹고 들어왔다가
오늘 오전에 또 나가서 사람을 만나 점심을 먹고 이제 들어왔다며 소파에 엎어져 있다.
오늘 함께 저녁을 먹고 우리랑 함께 집에 가서 하룻밤 자겠단다.
내일 새벽에 콜로라도로 갔다가 한국으로 바로 날아간다고 한다.
콜로라도에 친구 결혼식이 있냐고 물으니
"아니, AI International Conference" 라고 한다.
자기 회사 홍보도 하고 투자자도 찾을 계획이란다. 그러면서 덧 붙인다.
" 엄마 아빠한테 감사해요. 이런 세계적인 이벤트에 한국의 아저씨 사장들이 와서 어떻게 비지니스를 하겠어요?
나를 미국에서 낳아서 공부 시켜 주신 것 너무 감사해요."
전에도 이 비슷한 말을 하더니 또 고맙다고 한다. 우리는 언어도 문화도 안 통하는 곳에서 힘들게 살아왔지만 우리의 2세들이 이렇게 세계를 한 눈에 내려다보며 비지니스를 해 나갈 수 있으니 얼마나 큰 보람인가 싶다.
그동안의 섭섭함이 모두 사라졌다.
밤 11시에 집에 도착하여 다음날 새벽 6시 30분. 겨우 잠만 자고 아들은 공항으로 떠났다.
집에 내려오지 않고 엘에이에서 바로 떠나도 되지만 아빠 엄마 집에서 하룻밤도 안 자고 가면 너무 섭섭할 것 같아서 우리 집으로 왔다고 한다. 이것도 배려인가? 우리는 그 말에 고맙다. 했다.
남편의 차에 짐을 다 실은 아들이 나를 껴안으며 말한다.
"엄마 건강 잘 챙겨요. I love you. "
I LOVE YOU? 내 마음이 깜짝 놀랐다. 얘가 이런 말을 할 줄도 아네?
나는 떠나가는 남편의 차에 손을 흔들며 벙벙 뛰는 마음을 주체하느라 한참을 서 있었다.
*** 남기고 싶은 순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잊어버리기에 아까운 시간이 있으면
이렇게 일기처럼 주절주절 씁니다.
나는 가끔 노트를 들여다보며 수필 작품보다 이렇게 남긴 글 읽는 걸 더 즐깁니다.
첫댓글 선생님 아드님은 비지네스도 유능하지만 인정이 있네요. 잘 키우셨어요.
우리 아들은 생일 축하한다. 어쩌구저쩌구 그러면 Okey thank you. 끝
딸이 없었으면 아마 삭막 했을거예요.ㅎㅎ
그러게요.아들 그만하면 굉장히 잘 키우신거에요. 하룻만 잠 자고 갔다는 것 또 한국에 가서 일 하면 걱정 하나도 없어요. 자기도 모르게 한국사람 조금씩 되어 갈테니깐요. 우리 아들 보다 백배 나은데요. 부럽습니다.
자식들의 한마디에 어떨때는 마음속으로 울고 또 다른한마디에는 세상을 다 얻은듯 뛸듯이 기쁘고 … 이러면서 우리는 늙어 가지요. 아드님의 배려심, 누나와의 우애, 모두 부럽습니다. 선생님은 따님 그리고 아드님때문에 A+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부럽습니다. 💕
아들과 누나와의 관계가 무척 다정하고 사랑스럽네요. 누나가 마치 동생이 아니라 아들처럼 대하는 마음을 읽었어요.
성선생님의 아들에 대한 사랑도 지극하시고요. 두 남매를 훌륭히 키우셔서 부럽네요. 늘 행복이 남치는 가정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