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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9:18~27 예수는 그리스도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경우, 예수님을 다양하게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네모가 미국에서도 네모인 것처럼, 교회가 예수님을 공통으로 고백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모양은 조금씩 다르고, 개성도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공통적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기 전에 공동으로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는 이유는, 그 고백이 나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전체 교회의 신앙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자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는 메시야 이십니다. 성경에서 메시야가 여러 군데에서 예언되었는데, 창세기부터 예언되었습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구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왜 여자의 후손인가요. 예수님은 죄인인 남자 아담의 후손의 씨로 잉태된 분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 그래도 여자가 죄인이니까 예수님은 죄인의 피가 섞인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보는데, 성경에서 죄를 대표적으로 나병으로 묘사하는데, 나병환자가 정상인하고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정상인이 나온다고 합니다. 또한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소멸시키시는 분이므로,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죄를 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구약을 보면, 제사장으로는 모세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예언하였습니다.
신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또한 왕으로는 다윗왕이 그리스도 예수를 자주 예언하였습니다.
시40:7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다윗은 예수님의 수난도 말하였고, 부활도 말하였습니다.
시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니이까
시16:10~11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선지자 중에는 많지만, 대표적으로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시편과 이사야서를 많이 인용하였습니다. 특별히 이사야는 고난받는 종으로 예수님의 대속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이것을 누가 믿었느냐고 되묻습니다.
사53:1~6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런데 고난 받는 종은 왕이었습니다. 보통 높은 보좌에 앉아야 할 왕이 나무에 달려 고난 받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사야가 이것을 믿느냐 묻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나무에 달리는 자는 저주받은 자라고 말하는데,
신21:2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그런데 설마 대대로 예언된 메시야가 나무에 달려 저주 받을 메시야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이사야가 그것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신데, 메시야로서 기름부음을 받으신 다윗 왕처럼, 선지자 엘리야처럼, 제사장 모세처럼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신 가장 큰 일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십자가를 지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 가지를 감사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감사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병자를 살리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것도, 놀라운 일이며 칭송을 받아야 할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메시야의 영광 곧 그리스도의 영광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일입니다.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도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신 일이지만,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고자 짊어지신 십자가야 말로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어 증거하신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이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오병이어 사건 후에, 사람들이 많이 놀랐을 것입니다. 저분이 도대체 누구인가? 나도 몰라. 선지자가 부활하였나.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나. 저분이 누구지? 말이 되는가.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람들이 수군수군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 사람들은 예수께서 기적와 표적을 행하심에도, 그저 선지자 중에 하나, 또는 성경의 선지자 중의 대표인 엘리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야도 사렙다 여인에게 먹을 것을 주고, 죽은 아들을 살리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등 신기한 기적을 많이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니이다 하니
-> 이스라엘에는 그리스도 대망사상 곧 메시야 대망사상이 있는데, 이는 일찍이 아담으로부터, 그리고 모세와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입니다. 그것은 제사장 왕 선지자 직분에서 기름 부음을 받을 때, 메시야는 히브리어,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기름부음이라는 뜻인데, 이미 다윗왕이나 선지자 제사장들이 장립될 때 기름을 부었는데,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는 예수께서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구약에 예언된 딱 한 분이신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 그리스도 곧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먼저 곧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고자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말한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신 유일한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께서 누구신가? 곧 바로 대망의 주님 하나님의 메시야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공교회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을 보면, 이 고백은 하늘이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알 수 없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는 이유는 교회가 공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마같이 개인적인 고백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볼 때, ‘예수가 그리스도입니다’라는 고백이 곧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익수스’라는 헬라어 물고기란 말의 뜻은 풀어보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말의 첫글자를 따면 물고기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그러므로 예수께서 어부인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를 부르신 이유가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성도들도 베드로 같은 정체성을 갖는 것입니다.
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 그러나 예수께서 자신이 누구인가 밝히셨을 때, 예수께서 구약이 말하는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성전에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대제사장들이 물어볼 때, 공개적으로 말씀하심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자신이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것을 시인하셨을 때, 유대인들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사형 판결을 받으셨습니다.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 그러므로 예수님은 비로소 신앙고백을 하는 베드로에게 곧 공교회에게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지만,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무시무시한 고난 곧 대속의 십자가 형벌을 받으신 인자 곧 그리스도 메시야였습니다. 인자란 개념은 ‘사람의 아들’이란 뜻인데, 구약에서 선지자 자신을 가리키기도 하거니와, 다니엘이 본 사람의 아들 같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예수께서 자신이 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단7:13~14 그러나 신약에서 무엇보다도 인자는 마리아의 태를 빌려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나신 성육신 곧 사람이 되신 고난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뜻합니다.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자기 십자가라는 것은 먼저 복음으로 인한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복음 자체로 십자가 고난뿐만 아니라, 박해와 압제를 다 견디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복음으로 인한 적대와 모욕 박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십자가는 갈2:20, 옛사람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거듭나면, 옛사람은 시체같이 붙어있어요. 그러나 매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옛사람은 나를 넘어지게 하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옛사람은 죄인의 정체성입니다. 음란과 살인과 도둑질과 방탕함과 술취함과 쾌락 돈, 이기심 한마디로 죄악의 자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루터도 거듭났지만 육체여 그대는 강한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쳐서 복종시키라고 말합니다. 회개를 말합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베드로도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합니다.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누가복음에만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하고 있는데, 바울도 날마다 죽는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훈련입니다. 회개의 훈련입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 예수를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믿음을 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천하를 얻어도 예수를 잃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아버지가 주신 구원의 기회를 구원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천하를 만든 분이기 때문입니다. 새창조를 하십니다.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 예수와 말씀을 부끄러워하면, 재림하실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신다는 것입니다.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을 본 사람이 확실히 있습니다. 곧 요한사도는 계시록으로 미리 천국을 상세하게 보았습니다. 물론 사도들 중에 혹은 무리 중에서 하나님 나라를 본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자기를 드러내시고, 베드로를 통하여 성도의 정체성을 미리 깨닫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곧 다가올 세상의 왕 곧 로마황제를 두고 미리 언질하신 것입니다. 너의 주는 누구인가 가이사 로마황제인가. 아니요 예수가 주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예수가 나의 왕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자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초대교회 폴리캅도 가이사를 주라고 부르면 살려주겠다고 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였고, 화형 시키겠다고 위협하자, “당신이 사르는 불은 잠시 타다가 사라질 것이지만 다가오는 심판의 불은 영원할 것이요”라고 응수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와 공산주의자들로 인하여 그런 박해와 협박을 받을 때가 있었고, 적지 않은 분들이 순교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복음이 들어와 예수 안에 있는 자유로 이승만 대통령 때 대한민국 나라를 시작하였고, 신앙의 자유가 생겼습니다. 세상을 보면, 복음이 들어가 은혜가 임한 나라들은 대부분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아직도 박해와 탄압이 극심합니다. 공산주의 국가나 이슬람 국가를 보면, 끌려가 죽기도 하고, 노예처럼 일하기도 합니다. 신기한 것은 예수 안에만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가 있는 나라들은 대체로 그렇습니다. 이슬람은 기독교인을 죽이는 것을 거룩한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지 않으면 죽여버립니다. 공산주의도 북한의 경우 죽이거나 수용소에서 노예같이 삽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으로 시작한 것이 너무 감사하고 천만다행입니다.
벧전5:10~11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