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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6:11~18 바울이 강조한 것
태국에서 어떤 조련사가 코끼리 쑈를 하는데,
이 코끼리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사람에게 내가 천 불을 주겠소 라고 하였는데, 갑자기 한국에서 온 목사님이 손을 들더니, 나가서 코끼리 귀에 대고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코끼리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련사가 아니 도대체 뭐라고 말했기에 코끼리가 눈물을 흘리는 거요 물었더니, 목사님은 자기가 개척교회 하면서 겪었던 일을 얘기해주었다고 하였다. 그러자 조련사는 그러면 이 코끼리 앞발을 들게 할 수 있겠소 물었더니, 그러자 목사님은 다시 코끼리 귀에 대고 뭐라고 뭐라고 말하니까, 코끼리가 갑자기 앞발을 번쩍 들고 고개를 절래절래 돌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련사가 도대체 뭐라고 말했길래 코끼리가 앞발을 들었소 물어보니까, 목사님이 하는 말이 ‘코끼리야 너 나하고 한국 가서 개척교회 하자’
바울은 1차 선교여행이 끝나고,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이 다른 복음에 속고 있음을 들었는데, 그것은 곧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 또는 예수를 믿어도 율법주의로 살아야 한다는 잘못된 복음을 갈라디아 교회가 듣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를 썼는데,
할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할례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의 할례를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여기서 할례는 율법주의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받는 것이다. 그러나 할례는 의식일 뿐이다. 그리고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함인데, 율법은 지키면 좋다. 많이 지킬수록 좋다. 예를 들어 십계명. 그러나 그것으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율법의 본의는 사람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몰라도 마음까지 그것도 일생 평생을 완전히 지킬 사람이 있는가. 그것은 마치 장거리 기차와 마라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격의 항구성이 바로 율법이다. 율법은 일점일획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다. 아무도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바울도 이렇게 말하였다.
갈2:15~16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율법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원래 율법주의자였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율법주의의 갑옷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의 증언을 깨달은 것이다.
롬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음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신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되는 것임을 알았다. 하나님의 율법을 만족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 곧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성경을 보니,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다 똑같이 죄인이다. 세리장 부자 삭개오도 돈이 많고, 나름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뭔가 허전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를 만나려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 쳐다보다가 예수님께서 네 집에 오시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모시고, 그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눈에는 가난한 자나 부자나 다 똑같은 죄인이다.
막7:20~23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거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마음이 악한 것은 똑같다. 하여간 구약의 모형들을 보면, 나병은 불치병인데, 인간의 죄를 묘사한 것이다. 이사야는 죄인을 중증환자라고 하였고, 예레미야는 죄인을 점박이 표범이라고 하였고, 에스겔은 음녀라고 하였는데, 심지어 거듭나도, 죄가 있어 바울도 자신의 몸을 사망의 몸이라고 표현하였다.
롬7:22~24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토마스 보스턴 목사님은 사람 속이 동물농장이라고 하였다. 곧 사자보다 더 잔인하고, 뱀보다 더 교활하고, 너구리보다 더 더러운 것이 사람 마음에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이원영 목사님이란 분은, 인간의 마음은 하수구 찌꺼기 같아서, 겉보기에는 깨끗해보여도, 작대기로 한 번 탁 치면, 하수구같이 온갖 오물이 올라온다고 하였다. 성경을 읽고 거듭났더라도, 두 본성이 있어서 마치 새가 머리에 날라 다니듯이, 또는 파도치듯이 죄가 범람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망의 몸을 보면서 탄식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감사한다.
롬7:25~8: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 다 갚았다 곧 샬롬. 죄값을 다 갚으셨다는 것이다. 이는 새창조의 역사인데, 아담 안에서 죄로 사망으로 가는 인간이, 예수 안에서 죄사함과 부활로 영생으로 가는 인간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롬5:17~19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그러므로 바울도 그것을 오늘 말한다.
갈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죄를 회개하는 것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볼 때, 엑스레이같은 하나님의 눈으로볼 때,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오십보 백보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수박씨같은 죄가 누구나에게 있다. 그리고 수박통 같은 죄를 막기 위하여 율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곧 죄인을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이를 믿고 구원받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마지막으로 구원의 십자가를 강조하기 위하여 글자를 크게 쓴다.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 다른 복음 곧 율법주의가 가미된 복음에 미혹되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바울은 마지막으로 강조할 것을 글자로 크게 쓰는 것이다. 바울이 편지 말미에 큰 글자로 쓰는 내용은 무엇인가.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 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으로, 자다가도 죄만 생각하면, 벌떡 일어나게 하는 것이 율법인데, 아이고 내가 하나님께 사람에게 이런 죄를 지었구나. 그런데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 짐승이 된다. 지존파가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에, 어머니를 면회요청을 하였는데, 어머니 이리 오시오. 가까이 갔더니, 귀를 콱 깨물어버리고는, 왜 그 때 나한테 도둑질하는 것을 말리지 않고 오히려 부추겼느냐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하여간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창세기에서부터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때가 차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났을지라도 죄를 다스려야 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통제하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엄청난 죄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성난 파도와 같은 죄의 힘을 누가 이길 수 있는가. 그런데 이길 수 있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그들이 정말 율법을 잘 지키라고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받을 복음의 고난을 피하기 위하여 아첨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에게라는 모습과 다른 것이다. 이들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 할례당이었다. 물론 전도의 방법이 다양하다. 하여간 그런데 뿐만 아니라 이들이 성도들에게 할례를 강조하는 것은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할례로 육체를 자랑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할례도 그들이 스스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서도 할례를 율법주의로서 받으라는 것이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줄기차게 강조한 것은 십자가이다. 사실 갈라디아서는 모든 서신서의 간판의 역할을 한다. 십자가만이 죄인의 소망이다. 왜냐하면 죄는 히드라같이 잘라도 자라며, 또는 넘실거리는 파도같이, 또는 날아다니는 새같이 죄인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예수께서 대속의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나도 같이 못 박혔음을 믿는 것이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혹한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 너가 죄를 지었으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너를 버리셨으며,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단의 기만이다. 하나님은 끝까지 사랑하신다. 복음을 믿고 살다가 율법을 어기면 하나님이 그를 버리시는가. 그러면 바울이 뭐라고 말하는가.(김송수)
갈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만약 그렇다면 예수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죄는 계속 회개하는 것이다. 빨래하듯이, 회개하는 것이다. 아무도 세수 안하고 목욕 안하고 사는 사람이 없듯이, 새 옷을 입어도 계속 빨아 입어야 한다. 그러므로 감사한 것은 이것이다.
요일1:9~2:2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아멘.
그러므로 복음으로 완전하다. 십자가와 부활로 완전하다. 물론 회개의 습관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완전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교회는 복음을 전하지 말고, 회개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렇게 말한다.
15~16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 할례를 받는 것은 남자에게 위생상 좋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좋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볼 때, 그것으로는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완벽하게 마음으로부터 평생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율법은 복음의 다리, 곧 초등교사이기 때문이다. 모세에게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이 예수를 찾는다. 메시야는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죄사함과 영생을 주신다.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인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예수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믿음이 아니면 어떻게 들어오나. 자신이 죄인이라고 깨닫는 사람은 예수를 믿음으로, 곧 예수께서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고 예수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 형벌을 받으신 것을 진심으로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 바울이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는 것은, 십자가 복음을 전하다가 받은 상처들을 가리킨다. 고전4:9, 11~13, 고후6:4~5, 11:23~26 들을 볼 때, 복음 때문에 바울이 맞아서 상처 난 몸을 가리키는 것 같다. 또한 바울이 이것을 자랑하는 이유는, 고난을 통해서 예수께서 받으신 흔적을 조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적 고난도 그렇거니와, 정신적 고난을 받을 때, 비로소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 알 수 있다. 발을 다친 사람은 예수께서 발에 못 박히신 고통을 그나마 조금 알 수 있다. 또한 복음으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을 받은 사람도, 아 예수님이 어떤 고통을 받으셨는지를 조금 알 수 있다. 또한 몸이라는 말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생각해볼 때, 그분의 지체인 몸인 교회가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예수님의 고난을 알게 되고, 또한 내가 고난 받을 때, 예수님의 고난이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을 체험한다. 예를 들어 스펄전도 사람들이 다 자신을 떠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비로소 예수님의 고난을 깨달은 것이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서,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시는 고난을 받으셨구나. 하여간 고난은 실제로 받아보지 않고는 체험하지 않고는 잘 모른다. 바울은 허약체질이므로 복음으로 인하여 몸에 받은 고난이 엄청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위로가 그에게 더욱 크게 임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감히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무나 이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그 근원은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갈2:20 이는 할례당의 할례와 반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곧 예수의 흔적이란, 바울이 받은 고난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근원을 살펴볼 때, 예수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 너희의 영에 예수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노라. 원래 바울의 편지 결어인데, 갈라디아서에서는 더 의미가 크다. 곧 육체의 할례의 표식이 아니라, 너희 영에 너희 중심에 너희 심령에 예수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죄는 십자가 외에는 답이 없다. 나머지는 보조일 뿐이다. 죄인에게 의지할 것은 십자가뿐이다. 왜냐하면 죄는 아무리 잘라도 잘라도 자라는 잡초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안 자르면, 또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안에서 죄사함과 부활영생을 누리게 되었다. 언약이었던 할례는 원시 언약의 형태였고, 이제는 구약의 예언대로 새 언약으로 오신 예수로 말미암아 언약은 곧 십자가로 건너뛰었다. 그것은 영으로 받는 것이다. 복음이 믿어지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거듭남은 성령의 역사로 믿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깨닫는 것 같아도,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새언약을 받았는데, 만일 할례로 옛 언약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우선순위가 잘못되는 것이다.
죄인에게는 보혈을 의지하는 것밖에는 소망이 없다. 아무도 나 마음으로부터 죄 하나도 없어요 라고 말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신이 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만약 내가 신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고역일 것이다. 그리고 큰일 나는 것이다. 갑자기 누가 죽고, 갑자기 미인들이 사라지고, 백두산이 한라산으로 가고, 한라산이 백두산으로 가고, 천사들이 우왕좌왕 하고, 세상이 난리가 날 것이다. 하여간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이 피조물에게는 죄악의 경계와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피조물에게는 그것이 안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십자가만 내 자랑이다.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근원이다. 회개도 그 때문에 한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자랑하며 믿음으로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