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하나님’ 호칭을 둘러싼 신학적 논쟁으로 장로교와 감리교의 공식 찬송가로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117곡이 수록된 ‘찬양가’는 초기 한국교회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예배 때 당장 찬송가가 필요했던 선교사들과 성도들은 ‘찬양가’를 백분 활용했고 1898년까지 4판이 제작됐으며 1908년 ‘찬숑가’(262곡)로 증보되기 이전까지 10년간 서울과 전라도를 중심으로 북미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애용됐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0528075
언더우드 목사의 사역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어 좋습니다. 고종을 지키기 위해 선교사들이 순번제로 권총도 차고, 봉인된 식사도 배달하고...조선 왕가를 사랑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자신의 집에서 고아들을 모아 학당을 시작한 게 연세대 효시가 됐고, 사랑방에서 사경회를 하고 성경을 가르쳤던 것이 평양신학교 효시가 됐고...참으로 감동적이네요. 찬송가가 당시 나라 잃고 어려운 백성들에게 큰 위로와 교육적 효과까지 주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소중한 찬송가입니다. 현대 찬송가가 너무 세속적이고 감동이 없어져서 걱정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첫댓글 좋은 포스팅입니다. 최초의 찬송가를 찬양가라고 불렀었군요.
언더우드 목사의 사역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어 좋습니다. 고종을 지키기 위해 선교사들이 순번제로 권총도 차고, 봉인된 식사도 배달하고...조선 왕가를 사랑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자신의 집에서 고아들을 모아 학당을 시작한 게 연세대 효시가 됐고, 사랑방에서 사경회를 하고 성경을 가르쳤던 것이 평양신학교 효시가 됐고...참으로 감동적이네요.
찬송가가 당시 나라 잃고 어려운 백성들에게 큰 위로와 교육적 효과까지 주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소중한 찬송가입니다. 현대 찬송가가 너무 세속적이고 감동이 없어져서 걱정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짚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찬송가의 역사를 알게 되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