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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선불교의 정립-보조국사 지눌
이덕진 (창원전문대 교수)
▒ 목 차 ▒
1. 고려불교 문제점 진단·해결에 바친 일생1 2. 고려불교 문제점의 진단과 해결에 바친 일생2 3. 지눌 선사상, 자성의 공적영지와 성기 4. 돈오점수(上), 북종선=수정견성, 남종선=돈오견성 5. 돈오점수(下), 해오=주어적 인격으로서의 각성 6. 정혜쌍수, 실현 가능한 사상의 체계 7. 간화경절문은 돈오점수의 수행방편 8. 지눌의 사상사적 함의 고려불교의 자기화 |
1. 고려불교 문제점 진단·해결에 바친 일생1
지눌(知訥, 1158∼1210)은 고려 의종 12년 황해도 서흥군에서 출생했다. 지눌의 부친 정광우는 당시의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국학(國學)의 학정(學正)이었다. 그는 법명은 지눌이었지만 평소 스스로를 ‘소를 치는 사람(牧牛子)’이라 부르기를 즐겼으며, 입적 후 희종으로부터 ‘부처님의 해처럼 널리 비추는 나라의 스승(佛日普照國師)’라는 시호를 받았다.
지눌은 의종 12년에서부터 희종 6년까지 4대에 걸쳐 53년의 길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가 생존했던 기간은 전 고려사를 통하여도 가장 혼란한 시기였다. 예종까지의 안정기를 지나 고려를 변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기 시작한 인종 때의 이자겸의 난은 지눌이 태어나기 32년 전의 일이었으며, 묘청의 난은 그가 태어나기 23년 전의 일이었다. 1170년 지눌이 13세 되던 해에, 문벌귀족체제에 대한 무신들의 불만이 원인이 되어, 정중부의 무인난이 발발하였고, 그 후 계속되는 무신들 간의 권력다툼이라는 정변의 와중에서 지눌은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명종 26년(1196년)부터 4대 62년간에 걸친 최씨 장기집권이 시작되는데, 이때 지눌의 나이는 38세였다.
자신이 살던 시기가 말법시대로 인식
지눌과 동시대의 승려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던 시대를 말법시대로 인식하고 미타(彌陀)를 부지런하게 생각하여 정토의 업을 닦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지눌에게 권한다. 그렇지만 지눌은 당대를 말법시대로 보는 것을 거부하면서, 밖으로는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아 정법을 구현하고, 안으로는 선교간의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는 일이 자기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했다.
고려불교 외적문제 승풍 문란
그렇다면 지눌이 보고 있는 고려불교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우선 불교계 외부적인 문제로서 승풍(僧風)의 문란이다. 왕실불교였던 당시의 고려불교는 계속되는 정변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채, 불교 본연의 실천을 저버린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절 집은 수행 도량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을 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승려들은 이익의 길에 골몰하여 자기들이 불법의 본분을 상실하였다는 자각마저 하지 못하는 문란함을 보이고 있었다.
내부적 문제는 선·교 대립
다음으로는 불교계 내부적인 문제로서 선(禪)과 교(敎)가 대립하는 문제이다. 신라 말에 들어온 선불교가 고려 초까지 구산선문(九山禪門)을 중심으로 발달하면서 전통적인 교불교와 대립․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러한 선교간의 대립과 갈등은 지눌 당시까지도 해소되지 못하고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교가의 폐해, 문자에 집착, 밖의 상 추구
우선 교가(敎家)의 폐해부터 살펴보자. 지눌에 의하면 교학자들의 병은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마음을 등지고 밖의 상(相)을 향해 치닫는 것(背心取相)’이고, 다른 하나는 ‘문자에 집착하여 선법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즉 교학사문들은 신명(身命)을 버리고 도를 구하면서 모두 밖의 상(相)에 집착하여 서방을 향해 소리를 높여 부처님을 부르는 것으로 도의 실천으로 삼는다. 이러한 수행은 두 가지 면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정토를 대상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을 등진 수행이다. 불조(佛祖)의 법은 마음자리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공부를 이름과 이익을 위한 학이라 하거나, 또한 분수에 맞지 않은 경계라고 하면서 수심의 비결을 버리고, 마음을 등지고 상을 취하면서 성인의 가르침인 양하니 지혜있는 사람으로서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학자들이 권교(權敎)의 말에 걸리어 제 마음이 깨달아 들어가는 비밀한 법이 있음을 믿지 않는다. 지눌은 이들을 ‘광혜(狂慧)와 건혜(乾慧)에 떨어진 세간문자법사들’이라고 힐난한다.
선의 폐해, 문자교설 무시, 교만
다음으로 선가(禪家)의 폐해를 살펴보자. 지눌에 의하면 선사들은 치선(癡禪)과 광선(狂禪)만을 추구하는 병에 걸려있다. 우선 치선하는 무리들은 문자의 뜻에 의거하지 않고 바로 밀의를 서로 전한 것만을 도라 하여 헛되게 수고하며 앉아 조는 선사들이다. 즉 문자나 교설을 무조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무리들이다. 다음으로 광선하는 무리들은, 단지 조금 뛰어난 근기만 알아서, 층계를 밟지 않고 바로 부처의 지위에 오르려는 무리를 말한다. 이들은 조금 공부가 되기만 하면 교만한 마음이 가득해서 하는 말마다 분수에 넘치고 도에 지나친다.
2. 고려불교 문제점의 진단과 해결에 바친 일생2
실천적 결사운동 장소 필요
지눌은 당대에 대한 각성을 바탕으로 하여, 위와 같이 고려 불교계의 상황을 진단하고, 그 대책을 강구한다. 그 첫 번째의 방안은 공부하는 이들의 청정한 자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눌이 보기에는 불교가 제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 혼란이 끝이 없으며 승려들로 하여금 현실적 이양의 길에 허덕이게 하고 풍진의 길에서 살게 하는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장소를 구하여야만 한다. 즉 실천적으로 결사운동과 결사를 할 장소가 필요하다. 지눌은 결사하기 위해서는 속세의 번뇌를 끊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지눌은 세속을 대상으로 해서 개혁운동을 시도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지눌에 의하면 만일 대 사회적 행동에 천착한다면, 이것은 위로는 큰 도를 어기고, 아래로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사명을 못하는 것이며, 가운데로는 부모·국왕·중생·삼보의 네 가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당시의 승가의 대 사회적 참여가 모두 불교적 모습을 띠고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수행 도량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절 집을, 불법의 본분을 다하는 수행도량으로 거듭 나게 하기 위해서는, 개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은둔의 장소를 구하여, 그곳에 하나의 청정하고 모범적인 불교적 도덕세계를 구축하고, 거기에서 법의 향기가 펴져 나오게 하는 것이, 오히려 세속사회와 불조의 은혜를 되갚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눌은 생각하고 있다.
정혜결사, ‘깨침 이후의 닦음(悟後修)’ 통해 대사회 실천철학 구현
결국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 운동은, 불교 이론의 측면으로 보면 선정과 지혜를 균습하는 ‘깨침 이후의 닦음(悟後修)’이라는 내용적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불교 실천의 측면으로 보면 문란한 승풍의 회복과 본분을 이탈한 출가자를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리고자하는 결사이며, 이 일을 통해서 시대가 자기에게 부여한 역할을 다 할 수 있다고 본, 지눌의 대 사회적 실천철학이 구현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눌의 정혜결사는 표면적으로는 세속으로부터의 초월이라는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면적 함의는 오히려 다르다. 왜냐하면 지눌은 불교계를 도덕적으로 개혁함에 있어서 현상적인 개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지눌은 당대의 반도덕적 상황을 도덕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 먼저 지눌 그 자신만이라도 작은 규모의 불교적 도덕공동체(定慧結社)의 건설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사운동의 철학적 토대 구축
당대 고려 불교계를 개혁하기 위한 지눌의 두 번째 방안은, 그가 주축이 되어서 실행하는 결사운동의 철학적인 토대를 세우는 것이다. 즉 고려불교의 문제점에 대한 이론적인 해결방안이다. 지눌은 ‘자심(自心)’을 우리에게 제시함으로서 그 해결을 도모한다. 지눌에 의하면 삼계(三界)의 불타는 고뇌는 마치 불타는 집과 같다. 그 고통을 면하려 하면 부처되기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부처되기를 구하려고 한다면, 그 공부는 다름이 아니라 자심을 구함에 있다. 왜냐하면 부처는 바로 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자심 밖에 부처가 있다하고 자성(自性) 밖에 법이 있다고 하여 굳게 고집하면서 불도를 구하려 한다면, 모든 만행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자심만 알면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구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얻어지게 된다.
선교간 갈등·대립 해결
당대 불교계를 개혁하기 위한 지눌의 세 번째 방안은 선교간의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는 것이다. 지눌은 이러한 선교의 문제에 대하여 깊은 고뇌를 한다. 선과 교가 서로 계합되는 증거를 찾기 위해 3년 동안이나 대장경을 열람한 사실은 지눌의 고뇌를 잘 보여준다. 그는 《화엄경》과 이통현(李通玄, 646∼740, 635∼730)의 《화엄론》을 통하여 선과 교가 둘이 아님을 확신하고 ‘부처가 입으로 말한 것은 교요, 조사가 마음으로 전한 것은 선’으로 결코 ‘서로 어긋나지 않음’을 토로하였다. 이렇게 선과 교를 아우르는 지눌의 회통적(會通的) 전통은 정혜결사의 바탕이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한국불교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눌의 선교일치는 선종과 교종의 원교(화엄종)가 일치”
그러나 이때 선교일치에 대한 지눌의 입장은 선종과 교종 전체의 무조건적인 일치가 아니다. 이 문제는 좀 자세히 논구할 필요가 있다.
지눌에 의하면 마음의 성품에는 전간문(全揀門)과 전수문(全收門)이 있다. 따라서 마음을 닦는 사람은 이 마음의 두 문을 절실하게 반드시 살펴야만 한다. 지눌이 말하는 바의 전간문, 즉 완전히 가려내는 문이란, 다만 마음의 본체를 밝힘이야말로 신령스러운 앎이며 곧 이것이 마음의 성품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임을 가려내는 문이다.
또 전수문, 즉 완전히 거두는 문이란, 더럽고 깨끗한 모든 법이 이 마음 아닌 것이 없는 문이다. 따라서 똑바로 참마음의 본체를 나타내어야만 비로소 능히 그 가운데서 일체를 가려내고 일체를 거둘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두고 가려내는 일에 자재하고 성품과 모습에 걸림이 없음으로써 비로소 능히 일체 법에 모두 머무르는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지눌이 보기에는 선종에는 전간문의 장점이 있고 전수문이 결여되어 있으며, 교종에서는 전수문의 장점이 있고 전간문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전간문과 전수문을 이용하여 선교를 통합하는 원리로 삼고 있다.
하지만 지눌의 선교일치는 선종과 교종 전체의 일치가 아니다. 선종과 교종의 원교(화엄종)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돈교에서는 연기가 그대로 성기임을 밝히지 못해서 전수문의 의미가 완전하지 못하고 그래서 전간문의 의미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지눌은 원교의 예로서 의상(義湘, 625∼702)의 《법성게(法性偈)》를 든다. 지눌에 의하면 《법성게》의 내용은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진실한 성품은 이름 붙일 수 없고 형상화할 수도 없음을 말하는 것(전간문)이고, 그 다음으로는 진실한 성품은 연기함에 장애가 없음을 밝히는 것(전수문)이다. 이 점에서 전간문과 전수문은 원교에서 완전히 발휘된다. 그리고 원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는 성기(性起)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여기에서 지눌의 선교일치가 다름이 아니라, 선종 일반과 교종 중의 화엄종을 일치시키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3. 지눌 선사상, 자성의 공적영지와 성기
공적영지, 모든 마음에 본래 있는 성품
지눌 선사상의 기저에는 ‘자성(自性)의 공적영지(空寂靈知)’라는 독특한 견해가 자리잡고 있다. 공적영지는 하택종(荷澤宗)의 근본 사상으로 마음의 본질을 공적한 영지의 뜻으로 파악한 것이다. 공(空)이란 제상을 제거하는 것이니 차견(遮遣, 부정적 방법으로 뜻을 드러냄)의 말이다. 적(寂)이란 실상의 본성이 변동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전혀 없다’는 뜻과 다르다. 영지(靈知)란 마음의 당체를 표현(表顯, 긍정적 방법으로 뜻을 드러냄)하는 뜻으로 분별과 같지 않다. 그러므로 처음 공부할 때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적(寂)’과 ‘지(知)’만이 있을 뿐이니 변하지 않고, 끊어지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서 ‘공적영지’는 ‘그 무엇’에 대하여 안다는 지적 파악능력이 아니라 깨달았건 미혹되어 있건 모든 마음에 본래 있는 성품이다. 대상의 유무에 관계없이 공적지는 항상 내재하는 인식의 근원적 빛인 셈이다.
자심, 망심으로 자성 존재 깨닫지 못해
지눌에 의하면 우리 인간의 자심(自心)에는 본각적(本覺的)인 입장에서의 불성(佛性)인 자성(自性)이 있다. 이때 자심은 자성의 심성(心城)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자심은 망심(妄心)때문에 자성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즉 무명에 의하여 자성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이때 인간의 자심은 자기 자신 내부에 있는 불성으로서의 자성의 존재를 알아차려야만 한다. 이것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적영지에 의한 직관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회광반조(廻光返照)할 수 있다. 이때 불성으로서의 자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중생의 보편적이며 본래적인 특징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성의 근원에 대해서 물을 수는 없다. 그것은 그냥 있는 것이고, 우리는 단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지눌은 여러 사상가들에게서 ‘지(知)’의 사상을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수용한다. 이통현(李通玄, 646∼740, 635∼730)이 그러하고, 하택신회(荷澤神會, 684∼758)와 규봉종밀(圭峯宗密, 780∼841)이 그러하다. 하지만 지눌에게서는 어떤 원칙이 보인다. 그것은 공적영지를 원래부터 있는 것으로 인정하지만, 그러나 그 현상계의 원인으로서의 본체계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눌의 자심은 ‘그냥 있는 것’
다시 말해서 지눌에게 있어서 자심은 ‘그냥 있는 것’이다. 그 ‘그냥 있는 자심’은 우리 모두에게 그 근원은 모르지만 ‘우리를 넘어서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지눌의 자심에 대한 견해에는 두 가지 특성이 공존한다. 그 하나는 자심의 본래적 특징으로서 공적영지를 주장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심의 공적영지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든 존재자에게 현존하는 공통의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심의 시원을 묻지 않는다.
법장의 사사무애관을 배척
지눌은 선사이다. 그리고 선은 성종(性宗)이다. 선은 중생의 자성(自心, 眞心, 眞性)과 그리고 그 자성에 의한 연기, 즉 성기(性起)를 바탕으로 하는 사유형태이다. 지눌도 물론 이러한 사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선사이다. 그러나 그는 선사로서 만족하지 못하고 화엄교학을 공부하며, 더 나아가서 교학과 선종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선적 수행을 하려는 자들에게 선수행을 위한 지적 토대를 마련해주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학자들에게 선적 수행으로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수법장(賢首法藏, 643∼712)의 화엄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법장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정통 화엄가들이 지눌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눌은 법장 화엄의 ‘사사무애관(事事無碍觀)’이 선문의 ‘즉심시불(卽心是佛)’의 선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사무애나 이사무애는 중생의 자성을 대 우주적 자아 안에 존재하는 소우주적 자아로 보게도 하기 때문이다.
지눌은 자심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닌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공적영지한 자성을 벗어나서 초월적 존재자를 겨냥하는 사유를 수용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지눌은 화엄종의 실질적인 대성자인 법장의 사사무애관을 배척한다. 지눌은 법장의 사사무애관에 입각한 연기설은 우리를 대우주적 자아에 연루시킬 수 있다고 본다.
선, 법에 대한 애착 일으키지 않는 것
지눌의 자성은 그냥 자기로부터 유래하는 성(性)이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를 넘어서 있는 성(性)이기도 하다. 지눌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선 지눌의 자성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눌의 성은 존재 자체에 대한 명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눌에 의하면 자성은 인간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자성이 어떤 절대적인 존재자에 의해서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그냥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눌은 성기설(性起說)을 통하여 실체론적인 개념들을 해체(解體)하고, 동시에 존재에 대한 연루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더 나아가서 경험적으로 의미 있는 세계와 개념들을 구축(構築)하려고 한다.
지눌이 보기에는 선이란 법에 대한 애착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교학이 언어나 문자에 연연하여 법에 대한 애착을 일으키는 폐단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이러한 지눌의 기본적인 입장은, 그가 한편으로는 사사무애를 관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며 다겁에 걸친 공부를 통해서 성불이 가능하다고 하여 지해나 이론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기존의 화엄교학과 일정한 선을 그을 수밖에 없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겁의 성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찰나의 성불을 설파하며 모든 것을 자심의 공적영지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보다 선법에 가까우면서도 교문에 배반하지 않는 이통현 화엄의 근본보광명지에 문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는 관계구조를 설정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 이통현 화엄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데까지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입장이 그의 생래적 학자적 성향과 연계되어 그의 사상이 전체적으로 지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주요한 요인이 되게 된다. 또한 더불어 지눌의 선법이 기왕의 선법과 일정한 거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4. 돈오점수(上), 북종선=수정견성, 남종선=돈오견성
주지하다시피 보리달마(菩提達磨, ?∼528)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선종은 오조홍인(五祖弘忍, 601∼678)의 제자인 신수(神秀, 606∼706)와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의 때에 이르면 신수는 점오(漸悟)를 주장하고 혜능은 돈오(頓悟)를 제창함에 의해서 그 색깔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우리는 보통 혜능을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개창자라고 한다, 그것은 혜능이 ‘선에 대한 본질적 이해의 전환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수의 북종선과 혜능의 남종선이 가지고 있는 바의 선에 대한 대전제가 다른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모두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바의 본래적 불성은 번뇌에 의해 가리어져 있고, 이것은 반드시 수행을 통하여만 번뇌를 제거하고 불성을 발현하여 성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종선=규범화형식화, 남종선=돈오에 귀결
그러나 어떻게 번뇌를 제거하고 수행할 것인가를 가리는 문제에 들어가면 대답이 달라진다. 신수로 대표되는 북종선은 사람들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밖이 먼지에 의해 가리어져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불식시키고 부단히 수습(修習)을 해야 성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시 말해 북종선의 선법은 망념을 없애고 마음을 닦는 점진적인 방법을 선호하기 때문에 비교적 규범화·형식화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혜능으로 대표되는 남종선은 심성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에 반드시 번잡한 형식의 수습을 통하여 부처의 경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남종선은 전체 수행과정을 모두 ‘돈오(頓悟)’에 귀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종선도 일반적인 돈오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종선은 돈오를 ‘전체 수행 중의 하나의 고리’이며 이러한 고리는 반드시 ‘장기간의 축적’을 조건으로 삼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남종선은 돈오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극력 주장하였고 그것을 ‘수행의 유일한 고리’로 파악하였다. 그래서 남종선은 불교 수행을 활발하고 생동적이며 정신에 구애되지 않는 길로 인도하여 일상생활과 결부시켰다.
북종선=수정견성, 남종선=돈오견성
한마디로 북종선이 ‘수정견성(修定見性)’을 특징으로 한다면, 남종선은 ‘돈오견성(頓悟見性)’을 특징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종선이라는 새로운 선사상의 출현을 북종선과의 단절이라는 시각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남종선은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선법을 북종선이라는 언명(言明)에 함의(含意)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 선의 흐름이라는 시각에서 그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본체를 작용보다 중시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며, 더 나아가서는 ‘본체’가 잠식한 ‘작용’의 영토를 회복하려는 새로운 문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혜능의 중국 불교에 대한 기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점은 중국 전통 불교의 ‘추상적인 본체’로서의 성격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의 마음’으로 재해석한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중국 전통 불교가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외재적·타력적인 종교로서의 특징을 내재적·자력적인 종교로 변성시킴과 아울러 부처에 대한 숭배를 인간 각자의 ‘자심(自心)’에 대한 숭배로 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체로서의 우주실상을 탐구하는데 집착하지 않고, 실천적 의미를 지닌 인간 해석을 통하여 인간을 본체로부터 해방시킨 것이다. 혜능의 경우에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만이 유일하게 무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혜능, 즉심시불 자성이 곧 부처
결국 혜능에 의하면 미망번뇌와 해탈은 동일한 주체의 다른 활동이며 결코 이 번뇌의 주인공인 인간을 떠나 따로 ‘보리(菩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즉 혜능이 말하는 바의 깨달음은 ‘인간의 마음’을 유일한 근거로 하여, 불성(佛性)인 자성(自性)을 몰록 발견(頓悟)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혜능의 중심 되는 사상은 ‘즉심시불(卽心是佛)’로서 ‘자성(自性)’이 바로 ‘부처’이다. 미혹됨과 깨달음은 한 생각의 차이이며 중생 스스로가 본심을 몰록 깨닫기만(頓悟)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 돈오점수(下), 해오=주어적 인격으로서의 각성
지눌의 ‘돈오점수’ 사상은, 혜능의 ‘돈오’사상을, 지눌 자신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선택하여서, 한편으로는 수용하고 한편으로는 비판하면서 구축되어진다. 물론 종밀의 ‘돈오점수’사상도 이 점에서는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자성 보려면 회광반조하라
지눌에 의하면 범부란 미혹했을 때에 사대(四大)로 몸을 삼고 망상으로 마음을 삼아 자성(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며 자기의 공적영지가 참 부처인줄 모른다. 왜냐하면 자심의 불성으로서의 자성은 가장 신비하고 묘하여 알기가 어려우며 말로 나타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즉 자성은 본질적으로 공적하고 어떤 존재자(物)도 거기에 끼어 들 수 없다. 또한 공적한 자성은 중생인 우리의 본질로서, 마음으로써 본 세상인 법계(法界) 내에서 온갖 사물에 대하여 관여하고 또 온갖 사물을 지배하고 있지만, 은폐된 지가 너무나 오래되고 아득하여 자성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밖의 부처를 찾아 이리 저리 무의미하게 달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홀연히 선지식의 가르침을 만나 일념회광(一念廻光)에 이 자성을 보면, 이 성품의 바탕에는 본래부터 번뇌가 없고 무루지성(無漏智性)이 저절로 갖추어져 있어서 모든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심(自心)이 자오(自悟)되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심은 무시이래 자기에게 본래적으로 깃들여 있는 불성으로서의 자성에 대하여, 한 생각에(一念) 빛을 돌이켜서(廻光) 자심(自心)을 비추는(返照) 회심이 필요하다.
지눌 사유체계의 힘은 불격에의 지향
지눌은 우리에게 비록 본성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다하더라도, 거기에 그치지 말고 깨달음을 의지해 닦아서 점차로 익히어 성인을 이루라고 말한다. 그 것은 어린아이가 처음 났을 때 모든 기관이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름이 없지만, 그러나 그 힘이 아직 충실치 못하기 때문에 상당한 세월을 지내고서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지눌 사유체계의 중심 되는 힘은 바로 이러한 불격(佛格)에 대한 그의 강한 지향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점이 어떤 면에서는 지눌이 돈오(頓悟)보다는 차라리 ‘오후(悟後)의 수(修)’, 즉 우리의 자각적 노력인 점수에 더 큰 무게 중심을 두고 그의 사유체계를 전개해 나가는 원인이기도 하다.
지눌이 보기에는 돈오점수는 모든 근기를 다 포용할 수 있는 천성(千聖)의 궤철(軌轍)이다. 다시 말해서 도에 들어가는데 문이 많지만 단적으로 말하면 돈오점수만이 깨달음에 들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비록 돈오돈수라 할지라도 사실은 돈오점수의 변형된 모습이다. 왜냐하면 다생 전에 먼저 깨닫고 그 깨달음을 의지해 다생을 닦아서 점차 훈습해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자마자 즉시 깨달아 한 번에 몰록 마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돈오돈수도 또한 돈오 이후에 점수하는 것에 속한다. 또한 이 오후(悟後)의 점수(漸修)는 다만 오염되지 않는 것인 뿐만이 아니라, 다시 만행을 겸해 닦아서 자타를 아울러 구제하자는 문이다. 그러나 지금 참선하는 이들은 모두 말하기를 다만 불성만 밝게 보기만 하면, 그 이후의 이타(利他)의 행원(行願)은 자연히 원만히 이루어진다고 한다.
불성 밝게 봄은 중=부처, 나=남 아는 것
그러나 지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불성을 밝게 본다는 것은 다만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고 나와 남의 차별이 없음을 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다시 자비의 서원을 내지 않으면 한갓 적정함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 즉 돈오돈수는 ‘내가 곧 부처이다’라는 증득(證得)을 통해서 중생의 자기를 비하(卑下)하는 병은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눌이 그토록 피하고자 하는 아만(我慢)의 증장(增長) 그리고 도덕적 해이의 위험에 드러나게 된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에 네가 부처라고 해도 그 부처는 지금 묻혀있고 갇혀 있는 것이다. 무명의 거칠고 두꺼운 때를 벗지 않고서는 우리는 부처일 수가 없다. 또 때를 벗었다 해도 새롭게 계속 부딪혀오는 세상에서 우리는 불성으로서의 자성을 가지고 그 세상을 끌어안고 살기 위해 신명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방편이 등장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자력에의 과신이 심어준 병을 고쳐주는 약으로서의 점수가 바로 그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상(我相)이 숨을 죽인 그때 단번에 한 순간에 일어난다는 돈오(頓悟)의 돈(頓)이란, 깨달음에 이르는 기간의 장단(長短)이라기보다는, 원래 시간이 없는 즉 영원의 초시간적 사건(性起)으로서의 실제이다. 지눌에 있어서 깨달음이란 자성을 가지고 보는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아(我)가 숨을 죽인 바로 그 자리에 불성으로서의 자성이 현현한다. 따라서 돈오도 방편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점수는 깨달음 이후의 보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돈오와 더불어 동시적(同時的) 상즉구조(相卽構造)를 갖고 있는 방편의 두 날개이다. 즉 이론적으로나 수행상으로는 돈오 이후에 점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돈오 이후에 점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돈오는 점수와 더불어 상즉되는 것이다.
종밀=해체, 지눌=구축, 돈오는 해오(解悟)
주지하다시피 종밀의 사상체계는 지눌에게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지눌은 종밀의 사상체계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과감하게 그 의미를 축소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지눌은 종밀의 돈오점수를 답습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종밀은 절대적(絶對的) 본체(本體)의 성격을 가진 일체의 본원으로서의 진성(眞性)인 인간의 자심에 대해서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밀에게 있어서 부처가 된다는 것은 진성(眞性, 自心, 本來成佛, 禪源)을 돈오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밀의 돈오점수는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다. 점수는 진성을 둘러싸고 있는 번뇌망상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종밀의 돈오점수는 돈오하고 나서 점수하는 것이 아니라 진성의 돈오가 대전제가 되며 그 위에 점수라는 수행을 통해서 본체에 대한 자각을 깊게 해나가는 것이다. 종밀이 본체인 진성에 대한 자각인 돈오에 보다 충실하다면, 그에 반해 지눌의 특징은 돈오보다는 점수의 강조에 있다. 그리고 점수란 닦아서 익히는 구축(構築)의 작업이지 버리고 또 버려 버릴 것이 없는 데에까지 이르는 해체(解體)의 작업이 아니다. 즉 종밀이 해체를 이야기한다면 지눌은 구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연한 결과로 지눌의 경우에 돈오는 해오(解悟)이다.
하지만 지눌의 해오(돈오)는 지해(知解)가 아니다. 그의 경우 해오는 단순한 지각이나 이성의 차원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성에 대한 깨달음이기 때문에 심신불이의 차원에서 얻어진 전인적(全人的) 전회(轉回)이며, 술어적(述語的) 인격(人格)이 아니라 주어적(主語的) 인격(人格)으로서의 각성이다. 동시에 지눌의 돈오점수는 돈오에서 점수라는 시간의 흐름과 연결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당연히 발심이 중요해지고, 그 발심은 시간을 두고 하는 노력이 가해져야 빛을 발한다.
6. 정혜쌍수, 실현 가능한 사상의 체계
지눌에 의하면 우리의 자심(自心)은 본래 변하지 않는 체(體)와 인연(因緣)을 따르는 용(用)의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때 본체(本體)의 입장에서 보면 자심(自心)은 자성정혜(自性定慧)이고, 작용(作用)의 입장에서 보면 자심(自心)은 수상정혜(隨相定慧)가 된다. 즉 지눌은 자심(自心) 곧 자성(自性)을 자성정혜(自性定慧)의 성질을 가진 체(體)와, 수상정혜(隨相定慧)의 성질을 가진 용(用)이라는 측면으로 나누어서 이해하고자 한다. 결국 자심은 체(體)로서의 불변(不變)과 용(用)으로서의 수연(隨緣)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때 마음의 불변(不變)하는 체(體)는 다시 자성(自性)의 체(體)로서 공적(空寂)을, 자성(自性)의 용(用)으로서 영지(靈知)를 가진다. 이때 자성체(自性體, 空寂)와 자성용(自性用, 靈知)은 합쳐서 자성정혜(自性定慧)를 이루게 되며, 이것은 자심(自心)의 불변(不變)하는 체(體)이다. 그리고 이 체(體)는 돈오(頓悟)함에 의해서만 체득(體得)이 가능하다. 다른 한편으로 마음은 수연(隨緣)하는 용(用)으로서 수연용(隨緣用, 隨相定慧)과 수연상(隨緣相, 離垢定慧)을 가진다. 수상정혜(隨相定慧)는 깨침 이후에 계속되는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 오후수(悟後修, 頓悟漸修)의 수행을 말한다. 이에 비해서 이구정혜(離垢定慧)는 깨달음의 문안에 들어가지 못한 점종(漸宗)인 북종(北宗)의 수행이다.
지눌의 바람직한 수행법, 자성정혜
정혜(定慧)에 대한 지눌의 시각은 다음과 같다. 우선 지눌은 자성정혜(自性定慧)를 가장 바람직한 수행법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남종선(南宗禪)의 영향이 감지된다’ 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그렇다 하더라도 돈오 이후의 수상정혜(隨相定慧)의 수행법도 자성정혜(自性定慧)의 수행법과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그렇지만 닦음을 먼저 하는 자성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점종(漸宗)의 방법은 옳지 않다고 한다. 즉 같은 선종(禪宗)이라 하더라도 점종인 북종선(北宗禪)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를 회피하고 있다.
지눌은 논리적으로는 수상정혜문(隨相定慧門)이 자성정혜문(自性定慧門)보다도 낮은 근기가 닦는 것이라고 하면서, 또 다른 한쪽에서는 오후수로서의 점수의 내용으로서의 수상정혜(隨相定慧)로서의 정혜쌍수(定慧雙修)에 애정을 보이고,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모든 성인이 마땅히 밟아야 하는 길이라고 천착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이유는 지눌이 근본적으로 중생을 지향하는 인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눌의 경향은 선사(禪師)와 교사(敎師)의 양면을 가지게 만든다.
돈오점수, 모든 성인이 밟아야 할 길
지눌은 자기의 선적체계를 논리나 관념의 체계가 아니라 실제로 실현 가능한 사상의 체계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선사로서의 지눌은 자성정혜문(自性定慧門)을 수상정혜문(隨相定慧門)보다 수승한 근기가 닦는 무공(無功)의 공(功)이라고 당위적(當爲的)이고 선언적(宣言的)으로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선언적 언사이다. 실제 상황에서 교사로서의 지눌은 끊임없이 오후수로서의 수상정혜(隨相定慧)인 정혜쌍수(定慧雙修)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모든 성인이 마땅히 밟아야 하는 길이라고 한다.
7. 간화경절문은 돈오점수의 수행방편
돈오점수는 큰 담론, 간화경절문은 작은 담론
지눌에 의하면 선문에는 정과 혜를 닦는 것 이외에 다시 하나의 문이 더 있다. 그것은 ‘무심합도문(無心合道門)’이다. 그리고 그 무심합도문은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에 의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지눌이 별도의 방법으로 제시한 간화경절문은 중국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인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의 간화선(看話禪) 사상의 영향아래 형성되어진 것이다.
간화선 기준으로 일반 선법 비판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발생한 사상이 우리나라에서 그 사상에 걸 맞는 의미를 가지게 되기 위해서는 통상 짧게는 약 2, 300여 년, 길게는 4, 500여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지눌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신회와 종밀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러나 대혜를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이른 사상적인 토양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지눌은 신회와 종밀로부터는 약 4∼500여 년, 그리고 대혜로 부터는 약 6∼7여 년 이후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중국에서도 간화선이 일반화된 것은 원나라 이후의 일인 것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지눌의 간화선 수용은 대혜나 그 제자들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지눌 스스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체득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혜의 간화선을 수용하는 지눌의 입장은, 이러한 점들이 꼭 원인인 것은 아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지눌은 《절요(節要)》에서는 돈오점수의 수행법을 주로 채택하고 간화선의 수행법을 별도로 채택한다. 그러나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에서는 한편으로는 간화선의 수행법을 주로하고, 화엄교학과 간화선이 아닌 선법을 종으로 하여 간화선 사상을 수용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간화선의 수행법을 기준으로 하여 화엄교학과 간화선이 아닌 일반 선법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특기할만한 사실은 《간화결의론》에서는 화엄의 원돈수행문과 단계적 수행법으로서의 선법을 거의 구분하고 있지 않고 거의 같은 맥락에서 논의하며, 오히려 논의의 주 초점은 일반적인 선법과 간화선 선법사이의 우열에 대해서가 아니라, 간화선(看話徑截門)과 화엄교학이 성기설이라는 입장에서는 같은 심성론적 토대를 가지고 있지만, 단지 방법론적인 면에서 간화경절문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화엄의 성불론 주장, 구체적 수행은 선법
지눌은 교학 중에서 화엄을 제일로 친다. 동시에 지눌이 보기에는 자성의 연기[성기(性起)]를 주장하는 점에서 화엄교학과 선종인 선법은 다를 바 없다. 단지 화엄은 이론에 천착할 가능성이 많고, 또 실제로도 이론에 번잡하게 몰두해서, 실천의 면이 부족하다. 다시 말해서 화엄이나 선법이나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우리에게 근기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화엄교학에서 우리는 좀 더 글이나 말에 걸릴 가능성이 많은 것뿐이다. 즉 지눌은 화엄의 성불론을 주장하면서도, 그 화엄교학의 성불론이 구체적인 수행법의 제시라는 점에서 많은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수행법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선법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같은 선법이라 하더라도 간화선을 특별히 강조한 것은 당시 선 수행자들의 수행풍토에 대한 비판이라는 성격이 가미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눌이 돈오점수를 천성의 궤철이라고 한 점과 간화선 강조는 서로 배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범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돈오점수는 지눌 이론의 큰 담론이고, 간화경절문은 그 큰 담론의 구체적인 수행방편으로서의 작은 담론으로, 어떤 때는 돈오를 제대로 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자각으로, 어떤 때는 돈오 이후에 오후수를 제대로 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자각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지눌은 대혜가 간화선을 주장하면서 얻고자 했던 것을 모두 수용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방법론적인 자각이라는 점에서만은 대혜의 의도를 정확하게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8. 지눌의 사상사적 함의 고려불교의 자기화
지눌에 의하면 자성(自性)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지눌이 설파하는 바의 자성은 현존(現存)하는 실존(實存)으로서의 개체적 존재인 인간의 존재근거(存在根據)로써 존재(存在)나 실체(實體)에 대한 명칭이 아니다. 지눌은 교학자나 선사들에 의해서 우주적 본성의 현현(顯現)으로 흔히 간주되는 우주자연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중심으로 우주자연을 해석하려 하고, 인간의 자성이 감당하는 한도 내에서 우주자연을 본다. 지눌에 의하면 사사무애(事事無碍)의 근원은 인간의 자성이다. 자성은 불성으로서 공적영지(空寂靈知)를 그 본래적 특징으로 한다. 동시에 인간의 자심(自心)은 자성(自性)의 집이다. 자성으로써의 자심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시원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근원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지양된다. 즉 인간의 공적영지한 자심[자성(自性)]의 근원에 대해서는 무기(無記)의 입장을 견지하는 지눌의 태도는 초기불교에서의 붓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인격의 개방성’ 주장 초기불교 견해와 비슷
하지만 지눌에 의하면 자성의 시원은 알 수가 없지만 공적영지의 모습으로 우리 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성의 실재를 굳게 믿고, 자성에 의한 연기[성기(性起)]를 주장하는 점은 붓다의 연기설과 다르다. 동시에 법장 화엄의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과도 다르다. 즉 지눌의 자성에 대한 견해는 중국의 화엄과 선적 사유의 영향아래에 있기는 하지만 초기불교의 사유경향과 상당 부분 맥락을 같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진여본성(眞如本性)을 주장하기도 하는 중국적 사유의 경향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만큼 초기불교의 사유경향과 어긋난다고 말 할 수 있다.
지눌의 자성의 공적영지에 대한 이론과 마찬가지로 지눌의 돈오점수의 철학도 초기불교와 일정 부분 맥락을 같이 한다. 왜냐하면 지눌이 불인격(佛人格)의 상정에 있어서 돈오점수라는 방법을 통하여 절대론적인 견해를 피하고, 상대론적인 시각에서 ‘불인격의 개방성’을 주장하는 점은 초기불교의 견해와 결코 상충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눌이 추구하는 결사는 수행자들의 내면적 마음자리의 빛에서부터 시작되며, 지눌이 말하는 ‘부처되기’는 불성으로서의 자성을 자신의 마음자리에서 찾아서 다시 닦아 나가는 선적 수행으로부터 나온다. 지눌은 화택과 같은 세속을 믿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눌의 ‘자성(自性) 철학(哲學)’은 세속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유체계를 가지는 동시에 은둔자의 냄새가 배여 있다. 그 결과 지눌의 결사(結社)는 ‘대 사회적 운동’이 아니다 라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눌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오히려 지눌의 이러한 면이 오히려 그의 세속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보살행을 보여준다는 견해가 더 타당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눌은 ‘근본적인 개혁’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고의로 하나의 모범이 되는 불교적 도덕 세계의 구축을 위하여 개경에서 일정한 거리를 격(隔)한다.
‘보조선(普照禪)’, 독자적 선사상 체계
지눌 사유 체계 전체를 일관하는 정신은 ‘자성(自性)의 공적영지(空寂靈知)’이다. 즉 불성(佛性)으로서의 자성(自性)과, 그 자성(自性)을 둘러싼 심성(心城)인 자심(自心)에 대한 탐구가 지눌 선사상의 특징이자 일관됨이다. 그가 평생을 통하여 설파한 것은, 공적영지(空寂靈知)한 자성을 회광반조(廻光返照)함으로서 세간의 모든 난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교학인 이통현장자의 화엄을 통하여 추구한 것도 근본보광명지로서의 자성이고, 육조혜능과 하택신회를 공부하는 방법도 이 자성의 공적영지를 어떻게 증득하느냐는 것과 연관한 이해였다. 그가 말년에 대혜종고를 통하여 체득한 것도, 자성의 공적영지를 보다 빠르게 실천적으로 얻기 위한 방법론적인 자각으로서의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눌의 모든 사유체계는 자성의 공적영지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성의 공적영지’ 라는 일구가 당대 고려 사회와 고려 불교계의 모든 문제점에 대한 그의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는 지눌이 가지고 있는 사상사적 함의를 중국 불교에 대한 ‘고려 불교의 자기화 과정’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눌의 독자적인 선사상 체계는 ‘보조선(普照禪)’이라는 독립적인 용어로 부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