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소청 보살의 일생
이것이 언니가 초읽기에 들어간 5일간에 시연한 몇 가지 법입니다. 언니가 시연하고 제가 요약한 이 몇 가지 법을 본 후에 제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저는 언니가 너무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그가 저의 언니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언니가 이 며칠 동안 시연한 것을 보면서 저는 무엇을 보살의 마음씨 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보살의 마음씨, 보살의 마음씨.”
이 보살의 마음씨라는 것은 보살이 도대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되는 것일까요? 이번에 저는 정말이지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저의 언니의 이 마음이 바로 보살의 마음씨였습니다! 달리 해석할 수 없습니다! 누가 이 정도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이 아니고서야, 보살이 아니고서야 말입니다. 과거에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 차례 이야기 한 적이 있지요. 제가 어렸을 때 언니를 많이 못살게 굴었다고요. 커서도 제가 언니를 구속하였고 지금까지도 제가 마음대로 정하면 저의 언니는 일체 모든 것을 저의 말을 들었습니다. 저와 언니, 우리 두 사람은 지난 수십 년 동안을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저의 언니는 무슨 일이건 모두 저에게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5일간의 초읽기에 들어가고, 어느 날이었는지는 잊어버렸습니다만, 저의 언니가 부처님 벗들과 세상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한마디 말했습니다.
“과거에는 내 동생이 나를 못살게 굴고 나를 구속하였지만 지금은 걔가 나를 구속할 수 없다오. 나는 금강대에 앉았는걸요! 이번에는 내가 동생을 구속하게 되었어요!”
이 말을 마치고는 하하 웃더군요! 제가 말했지요.
“감히 구속할 수 없지요. 이번에는 언니가 나를 구속해야지요.” 제가 말했지요.
“노보살님, 이번에는 제가 언니에게 잘 보여야 되겠는 걸요.”
나는 언니의 손을 만지며 말했습니다.
“서방 극락세계에 가서 나를 모른 체 하지는 마세요.”
언니가 말했습니다. “그럴 순 없지. 그럴 순 없어!”
꼭 며칠간 바로 이렇게 호호, 우하하 웃었다 말할 수 있고,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지나갔습니다. 이 연극은 바로 이렇게 시연된 것입니다. 저는 당시에 언니의 이 연극의 일 막, 일 막을 보면서 저의 마음이 탁마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나약한 할머니였구나.’
저는 그에게 ‘연한 호박’ 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마치 잘 주물러 놓은 밀가루 반죽처럼 둥글게 반죽하면 둥글어지고 납작하게 반죽하면 납작해지면서 한 번도 저항할 줄을 몰랐던 사람이거든요. 한평생 천대 받고 한평생 야단맞더니 마지막에 그분은 이렇게 벌벌 떨다가 작불作佛하고 떠났습니다! 나중에 언니는 말을 하다가 이 화제에 이르자 하하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큰 이득을 보았나!”
여러분이 비디오 CD를 보시면 여러 곳에서 언니가 이 말을 합니다.
“나는 한평생 천대 받고 한평생 고통 받으며 한평생 손해를 봤는데, 마지막에 극락세계로 작불하여 떠나다니! 내가 큰 이익을 본 것이 아닌가? 네가 말하니, 노법사님 말씀과 맞지 않은 거 아닌가?”
저는 언니의 일 막, 일 막의 시연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분이 나의 언니일까? 이분이 나의 그 나약했던 언니인가?’
그렇지만 그녀는 확실히 진짜 저의 언니였습니다! 저는 정말 이 노인네를 새롭게 보았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는 감히 언니를 못살게 굴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야단친다고요? 아이고, 저의 언니는 정말 저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마땅히 얌전히 착실하게 언니에게 배워야 합니다! 언니와 비교하면 저는 언니만 못해 창피합니다. 저는 너무나 부끄럽고 너무나 창피했습니다! 어떤 홍콩의 동수님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언니는 어떤 분이신가요? 언니는 일생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건 말입니다. 제 기억에 이 몇 마디 말로 완전하게 그녀의 일생을 요약한 것 같습니다.
“한평생 천대 받고, 한평생 손해 보며, 한평생 고통 받았지만!
마침내 그분께선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작불하고 떠나셨네.”
이것이 저의 언니의 일생을 가장 진실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이건 최고의 요약입니다! 어쩌면 어떤 동수님들은 좀 더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없는지? 언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해 주기를 바라겠지요. 좋습니다! 이제 되도록 간단하게 언니에 관한 구체적인 사정을 여러분에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첫 번째로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저의 언니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평범할 수 없을 만큼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꽤 많은 우리 동수님들이 늘 이렇게 생각을 하지요.
“아이고! 부처님이나 보살님이나 그런 분들은 몰라도, 우리는 배우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아. 우리는 범부인 걸요.” 우리 언니의 일생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범부 중에서도 범부였습니다! 전형적인 범부였습니다! 조금도 특출한 점도 없고, 특수한 부분도 없었죠. 그녀는 그냥 그렇게 평범했습니다! 저의 언니가 부처님 벗들과 세상이야기 할 때에 말하더군요.
“제 동생이 하늘 높이 치솟은 백양나무라면, 저는 이름도 모르는 작은 풀입니다.”
저의 언니가 스스로 자신을 이름도 모르는 작은 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조금 더 보탠다면 그녀는 사람들에게 마구 밟히는 이름도 모르는 작은 풀이었습니다! 그저 이름도 모르는 풀이라 누구나 다 밟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아도, 작은 풀이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에게 마구 밟히는 이름도 모르는 작은 풀 말입니다! 그녀는 하늘을 울리고 땅을 흔들 만큼 매우 크고 훌륭한 일도 하지 않았고, 또 무슨 대단한 불업佛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냥 아주 평범함 사람이었지요. 제가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설마 여러분은 여전히 “난 배우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아. 그 분이야 어찌 어찌하여”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저는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저의 언니보다 더 대단치 않고 더 평범한 사람을 찾으려 해도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과거에 노법사님께서 경전 강의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늘, “부처님 공부를 하는 사람은 준비를 잘 하여야 하고, 굴욕을 실컷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말을 들을 때 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랬지요.
“부처님 공부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그렇게 봉변을 당해야 하나요? 굴욕을 받는 것도 대단하지 않나요? 어째서 굴욕을 실컷 받아야 하나요?”
이 말을 저의 언니에게 쓴다면 정말 더 이상 적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바로 전형적으로 한평생 굴욕을 실컷 받은 사람입니다. 가끔 저의 언니가 억울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면 저는 정말 언니 대신 이 불의(공평하지 못함)에 분개합니다. 저는 어떻게 억울해도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곤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때는 나는 언제나 강철처럼 강하지 못함이 안타까웠다! 무슨 일이건 다 언니 대신 해주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여러분 말씀해 보세요. 만약 그녀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제가 이러한 말들로 제 자신의 언니를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확실한 것은 가끔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말을 할 때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는 겁니다.
“언니는 못난이야!”
저는 언니에게 언제나 못난이라 불렀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 지금 성취한 것입니다! 설마 여러분에게 배우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태연히 굴욕을 참아낼 수 있습니까? 굴욕을 참는 것(忍辱)이 하나의 관문입니다. 저의 언니는 이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가장 통과하기 어려운 인욕의 관문을 그녀는 통과한 것입니다. 만약에 이 관문을 그녀가 통과하지 못했다면 지금 생에서 그녀는 성불하지 못했겠지요.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요약입니다. 저의 언니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 저의 요약은, 그녀는 인륜을 돈독히 하고 본분을 다했다는 겁니다. 인광대사印光大师께서 “인륜을 돈독히 하고 본분을 다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 말이 저의 언니에게 적절한 표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금도 과분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인륜을 돈독히 하고 본분을 다했는지, 구체적으로 다시 말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저의 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그녀는 저희 어머니 아버지의 딸로서 본분을 다했습니다. 게다가 아주 원만하게 해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다만 언니와 저 둘이었으며, 저와 언니 우리 둘은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언니는 어려서부터 결혼을 할 때까지 줄곧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다가 임종까지 했습니다. 줄곧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았죠. 결혼을 한 다음에도 집을 떠나지 않고 그렇게 말입니다. 그래서 언니가 아버지 어머니께 효도를 다했다고 제가 말하는 겁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저는 먼 발치도 못 따라갑니다. 저와 언니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때 일종의, 그러니까 일종의 일 중독자였습니다. 온종일 그저 출근해서 일만 했지요. 특히 제가 성정부(省政府 ; 지방정부)로 전근을 간 후에는 매일 통근을 하느라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잤습니다. 만약 객관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시간이 빡빡했고요. 좀 덜 객관적인 이유는 있습니까? (묻는다면) 바로 마음속에 어머니 아버지가 없었다고 말하거나, 어쩌면 어머니 아버지의 자리가 매우 작았다고 말하겠지요. 그랬던 겁니다. 그러나 저의 언니는 우리 두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최선의 효도를 언니 혼자서 다 했습니다.
특히 나중에 우리 어머니가 떠나시기 전 2,3년 동안에 노인 치매에 걸렸습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몰랐고, 지금에야 그것이 노인 치매증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때 도대체 억지를 부리면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저의 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저 언니와 형부만 못살게 굴었습니다! 하여간 저의 형부를 보기만 하면 형부를 야단 치고, 언니를 보면 또 언니를 야단을 쳤습니다. 언니는 그냥 엉엉 울면서 저한테 오곤 했습니다. “소운아, 어쩌면 좋겠니? 우리 어머니는 늘 우리를 야단만 치는구나.” … 저는 말했지요. “내가 가서 해결할게.” 저는 가서 노인네하고 담판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돌아가 보면 노인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하게, 작은 딸이 이러니저러니 말하면서, 그전에 있었던 일은 화제에 올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언니는 더욱 억울한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내가 모시고 살면서 돌봐 드리는데, 나는 언제나 야단만 치면서 작은딸은 잘 찾아오지도 않는데도 어쩌다 한번 찾아오면 마치 보배처럼 대하니 말입니다. 어머니는 언니를 막 부리고 함부로 하였느니 언니는 참 답답했을 텐데, 이런 일들을 언니는 묵묵히 다 견뎌냈습니다. 나중에 우리 어머니가 소란을 피우는 것이 어느 정도였는지 아십니까? 아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살던 집은 연결된 건물이었는데, 그러니까 중간에 작은 복도가 있고, 한쪽에 언니가 살고 다른 한쪽에 어머니 아버지가 살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복도로 통해 있었던 거지요. 나중에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도저히 방법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내내 야단만 쳤으니 말입니다. 나중에는 제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 중간 복도를 그냥 둘 수는 없어요. 담을 쌓고 각각 따로 문을 쓰도록 하세요.”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언니와 형부를 보지 못할 테니까요. 이렇게 하면 야단 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아버지는 벽돌로 담을 쌓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떼어 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어머니는 손에 몽둥이를 들고 복도 중간에서 몽둥이를 받쳐 들고는, 그 곤봉으로 쌓아 놓은 담을 때려 부셔서 창을 뚫어 버렸습니다. 계속 벽돌 몇 개를 깨서 창문을 열어 놓았으니 이것은 다시 공기를 통하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니는 그 창문을 통해서 매일매일 저의 언니와 형부를 야단을 쳤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러니 저의 언니는 정말 너무너무 억울했을 겁니다. 그러나 언니는 모두 다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말 어머니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우리가 아직 부처님 공부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아버지 어머니께 염불을 해드려야 한다는 걸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니는 효도하는 그 마음을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저는 언니의 효도가 원만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의 언니가 어머니 아버지께 한 일입니다.
언니는 할머니에게도 효를 다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형부는 두 살 때 부친을 잃어서 오직 한 분 할머니만 계셨거든요. 할머니는 지금은 우리가 왕생하셨다고 말하는데, 그때는 우리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었지요. 그때는 저의 언니가 막 결혼을 해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저의 언니가 할머니께 가서 할머니 임종을 지켜드렸는데, 당시에 형부네 그 곽씨 집안에는 자손이 귀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형부는 위로 형님이 한 분 계셨지만 형님과 형수님은 아마도 아이를 낳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농촌에서는 이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잖습니까? 결국 저의 언니네 이쪽 밖에 없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언니와 형부를 의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는 반드시 후손을 안겨 드림으로써 반드시 종족을 보존하여 대를 이어야 했습니다.
그때 저의 언니가 시댁에 갔을 때에 언니는 물었답니다. “곽씨 집안은 돈이 중요합니까, 사람이 중요합니까?” 그때 저의 언니의 형님께서 말했답니다. “우리 곽씨 집안에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언니에게 물었답니다. “이 임무를 맡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 언니로서는 꼭 이 부담을 떠안아야만 했던 거지요. 언니가 대답했습니다.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한 마디로 승낙을 하고는 언니는 그 일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10년 동안에 다섯 아이를 낳았지요! 이게 집안의 대를 잇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자손 귀한 집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의 언니는 말하곤 했습니다. “난 노인네가 편안히 눈을 감으시도록 실제 행동으로 보여 드린 거예요. 내가 당신네 곽씨 집안의 대를 이어 주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임무를 언니는 완성한 것입니다. 10년 동안 다섯 아이를 낳았는데, 딸이 넷이고 아들이 하나였습니다. 그 중에 셋째딸은 21살 되던 그해에 떠났고, 지금은 세 딸과 아들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점에서 언니는 인륜을 돈독히 하고 본분을 다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