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별이 빛나는 밤에
학예회는 학부모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으며 무사히 끝났다. 학예회가 끝나고 나자,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스미듯이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던 어둠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별말이 없이 지내던 지만이가 슬슬 내 주위를 맴돌면서 무언가 트집거리를 찾아내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혜경이는 여전히 지만이와 나 사이에 일어난 일을 모르고 있었다.
하느님이 나를 도와주시려거든 끝까지 도와주시지 왜 학예회 때까지만 도와주셨는지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하느님을 들먹이는 것은 이웃 마을에 예수를 믿으라고 선전(전도)하는 사람이 코가 큰 서양 사람하고 같이 와서 태양과 달과 지구에 관한 활동사진을 보여주면서 세상을 이렇게 만드신 하느님(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고 천당에 갈 수 있다는 말을 그 마을에 사는 동수네 집 사랑방에서 들었는데 지난번 학예회 연습으로 도와주신 것처럼 기왕이면 이번에도 도와주시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동수네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에도 기꺼이 참석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지만이와 나 사이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큰 사건이 터졌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미군과 유엔군 병사들이 큰 명절로 지키는 크리스마스를 열흘 정도 앞둔 날 5학년인 준영이 형이 오늘 신천(莘川) 건너 미군 부대에서 활동사진 트는 날이니 함께 가서 구경하자고 동네 아이들을 꾀어내 나도 따라가게 되었는데, 미군 부대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날이 어두워지면 막사 밖 너른 터에 커다란 흰 천을 걸어놓고 군인들에게 활동사진을 틀어주곤 했다. 여기에 나오는 서양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나 풍경이 신기해 마을 사람들이 철조망 밖에 모여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해도 전개되는 내용을 대충 짐작하면서 구경하기도 했는데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이런 활동사진을 보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활동사진에서 남자와 여자가 껴안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나 못된 짓을 하는 장면, 아이들이 보아서는 안 될 내용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다가 감독 나온 선생님에게 발각되어 크게 혼이 나면서도 호기심 많은 형들은 몰래 훔쳐보기를 멈추지 않았고 교묘하게 저학년 아이들까지 끌어들여 선생님이 오시면 아이들을 남겨둔 채 잽싸게 먼저 도망가기도 했다.
이날 구경을 마치고 신천을 건너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까 건너온 신천 너머 철길 쪽에서 갑자기 ‘탕, 탕탕, 탕탕’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휴전 협상이 계속되면서 어쩌면 전쟁이 곧 끝날 수도 있다는 말을 어른들에게 듣기도 했으나 지난 10월에 휴전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일선에서는 다시 엄청난 포격과 격렬한 전투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래도 전투는 주로 개성이나 연천, 철원, 화천, 양구 쪽에서 벌어지고 있어 이곳은 비교적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있던 터에 갑자기 여러 발의 총성이 들렸으니, 애들은 물론 어른들도 놀라는 게 당연했다.
마을로 돌아온 다음 날 지서(支署)에서 순경이 이장을 찾아와 여러 가지 조사를 하고 돌아갔다는 말이 돌았다. 그러면서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서로 수군대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는데 이 일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튿날 지만이는 학교에 나오지를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동네에서 지만이의 모습은 눈에 띄지를 않았다. 하느님이 내 근심을 덜어주려고 하셨는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지만이가 걱정되었다. 나는 참다못해 사정을 알아보리라 작심하고 지만이 집으로 가서 지만이를 불렀다. 주인아저씨가 나무를 하러 가는지 지게 끈을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나오다가
“지만이 딴 데로 멀리 가고 없다. 이제 이 집에서 살지 않으니 찾아오지 말거라.”
하고 언짢은 기색으로 대답하고는 뒷산이 있는 쪽으로 갔다. 지만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혹시 총성이 울리던 그날과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돌아서려는데 안쪽에서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너 지만이 숙제도 해주고 그러던 애로구나. 지만이는 삼촌 따라서 먼 친척이 사는 경상도로 갔다. 너한텐 작별 인사도 못 하고 갔구나.”
하고 경상도라고 말할 땐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혹시나 그날 총에 맞아서 죽은 건 아닐까? 하고 끔찍한 생각까지 했으나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돌아왔다. 그러나 궁금증은 가셔지지 않았다. 지만이는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났을까?
방학 날 과제물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가 뜻밖에도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지서에서 나온 순경에게 조사받은 일과 지만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지만이에게 삼촌이 두 명 있었는데 큰삼촌은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고 작은삼촌도 군인이 되어 혜산진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던 중 부상으로 오른쪽 팔을 잃고 병원에서 지내다가 제대한 뒤 지만이가 재종 누이 집에서 살고 있는 걸 알고 찾아와 올해 봄부터 함께 지냈다고 했다. 그러나 재종 매형과 의견이 잘 맞지 않았고 살림도 궁색해서 군식구로 지내는 게 부담이 되자 어떻게 해서든지 살림에 도움을 주고자 애쓰던 중 이웃 마을에 사는 젊은이의 꾐에 빠져 경원선 철길을 따라 미군 부대로 이어지는 송유관에서 몰래 기름을 빼내 판 돈을 나누어 받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날 미군에게 들켜 도망쳤는데 미군 측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마을 사람들이 지만이 삼촌에게 몸을 피하라고 해서 급히 지만이를 데리고 떠났다는 것이다. 지만이 삼촌은 국가의 유공자이기도 하고 집안 모두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했는데 먹고 사는 일이 힘에 겨워 남의 꾐을 거절하지 못하고 죄를 저지르게 되었으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하느님이 나를 도와주신 것처럼 이번에는 제발 지만이를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혜경이 문제만큼은 계속 나를 도와주시기를 속으로 빌었다.
내일이면 크리스마스다. 이날은 해방 때부터 미군(군정)에 의해 공휴일로 지냈는데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에 세계적으로 지키는 명절인 이날을 우리나라에서도 정식 법정공휴일로 정해 지키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몰라도 시골에서는 그저 쉬는 날일 뿐, 떡을 해 먹거나 서로 어울려 즐겁게 지내는 무슨 잔치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점차 명절다운 분위기로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는데 혜경이네도 그런 집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은 혜경이가 학예회 발표일을 며칠 앞둔 날 크리스마스 때 부르는 노래라면서 나에게 ‘징글벨’이란 노래를 가르쳐 주었는데 어떻게 배웠는지 영어로도 그럴듯하게 부르고 있었고 혜림이 까지도 따라서 부르면서 이 노래 말고도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화이트 크리스마스’ 등 제법 많은 노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혜경이 말로는 이런 노래를 은경이나 경희 누나도 알고 있다고 하면서 학예회 연습 때 6학년 담임인 권 선생님이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이런 노래를 부르는 애들이 더 많아질 거라고 여기며 남보다 먼저 이런 노래를 부를 줄 아는 혜경이와 은경이가 부러웠다.
점심때가 지나서 혜경이가 찾아왔다. 오늘 저녁에 송이가 자기 집에서 같이 놀자고 나하고 영식이를 초대했다는 것이다. 내일이 쉬는 날이기에 송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늘 친척 집엘 가느라 혼자 집을 지키게 된 송이가 친구들을 초대한 거라고 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송이 집에 이르니 혜경이와 수찬이가 먼저 와 있었고 잠시 뒤에 향이와 영식이가 들어왔다. 수찬이는 얼굴 한쪽에 살짝 마마(천연두)를 앓은 흔적이 있어서 부끄럼을 타는 편이지만 몸놀림이 유연하고 체조를 기막히게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는 중간 정도는 하는데 공부보다 운동에 더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송이가 방 한가운데 미군 부대서 나온 담요를 접어서 깔아놓고 장롱 안에서 어른들이 사용하는 화투를 꺼냈다. 화투 놀이는 겨울철에 어느 집에서든지 어른들끼리 사랑방에 모여 즐겨하는 놀이로 아이들에게는 하지 못하도록 엄하게 금지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기막히게도 어떻게 배워서 아는지, 모르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다. 나라가 온통 전란에 휩싸여 집이 불타고 무너지고, 몰려드는 피란민들은 수도 없이 늘어나 곳곳에 기거할 방을 구하기가 어려웠으므로 방이 여러 개 되는 집들은 대부분 세를 내주고 식구들은 비좁은 방에 여럿이 모여 지내는 형편이었다. 신문에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는 방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빈터만 있으면 아무 데나 무허가로 지은 판잣집이 늘어나 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니 공부할 공간이 부족한 아이들이 전등이 켜진 어른들의 사랑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숙제를 푸는 경우가 많았고 영리한 아이들이 민화투나 육백, 짓고 땡, 섯다라는 놀이를 어깨너머로 배우거나 요령껏 곁눈질로 익히게 된 것이다.
우리들은 민화투를 쳤다. 나도 이 놀이에 만만치 않은 실력이 있어서 송이와 우열을 가리느라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데 혜경이가 귓속말로 ‘조금 있다가 밖으로 나와’ 하고 속삭였다. 판이 끝나고 다음 판을 시작할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밖으로 나왔다. 달도 없이 칠흑 같은 밤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겨울바람이 제법 차가웠으나 이처럼 수많은 별을 볼 때면 늘 가슴이 트이고 신비스러운 기운이 느껴져 나는 별을 보는 게 참 좋았다. 우연히 동네 4학년 형네 집에서 자연 교과서에 나오는 북두칠성과 북극성, 카시오페이아라는 별자리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나중에 밤하늘에서 그 별자리들을 내 눈으로 직접 찾아보고 확인했을 때 얼마나 흥분이 되고 기뻤는지 몰랐다. 그 생각을 떠올리며 낯익은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북극성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혜경이가 나왔다. 내가 무슨 일인가 하고 물으려 하자 혜경이가 검지를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댓돌에서 신발을 찾아 신고 다가와 내 소매를 잡고 뒤뜰 쪽으로 이끌었다. 영문도 모른 채 혜경이가 하자는 대로 뒤뜰에 이르자 혜경이 입에서 귀를 의심할 만한 기막힌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오줌 마려워서 나왔어. 뒷간에 가기 무서우니까 너 저쪽 보고 서 있어.”
하는 게 아닌가? 세상에 무슨 이런 여자애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혜경이가 그만큼 스스럼없이 나를 믿고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이담에 어른이 되면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가 아닌가? 혜경이가 다소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통 크게 넉넉한 마음으로 감싸 주고 지켜주는 게 사내다운 태도라고 생각하면서 카시오페이아와 북두칠성을 올려다보고 있자 혜경이가 볼일을 다 끝냈는지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고마워. 네가 제일이야.”
하면서 내 팔을 잡았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내가 혜경이에게 밤하늘의 별자리들을 가리키며 북극성과 카시오페이아의 위치를 알려주자, 호기심으로 겨울밤 하늘을 바라보는 혜경이의 눈동자에도 별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9. 풍경 -계속-
첫댓글 아름다운 우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