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부경대 김학준 교수가 북극 다산과학기지 주변에서 결빙방지단백질을 함유한 식물을 채집하고 있다. 북극곰의 출현에 대비해 총을 메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김 교수가 결빙방지단백질을 생산하는 미세조류를 실험하고 있는 모습. 부경대 제공 |
- 극지 물고기서 단백질 추출
- 1g 1200만원… 상용화 걸림돌
- 김학준 교수 기술 국산화 매진
- 해동과정 세포 파괴 막는
- 저렴한 새 동결보존제 목표
영화에 나오는 '냉동인간'이 실현될 수 있을까. 극지 생명의 비밀을 풀면 가능성이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의견이다. 극지연구소를 중심으로 국내 과학자들은 극한의 추위에서도 생존하는 극지 생물이 어떻게 얼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 저온 적응방식에 주목해 체내에 있는 '결빙방지단백질'(antifreeze protein)을 연구하고 있다.
극지연구소는 2010~2012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메디포스트, 휴림바이오셀, 건국대, 가천의대와 함께 '국가문제해결형 연구사업'(NAP)의 하나로 '극지유래 결빙방지단백질을 활용한 고부가치 생물자원 보존 시스템개발' 연구프로젝트 1단계 사업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생물을 냉동 보관하는 데 필수적인 결빙방지단백질을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얼린 뒤 다시 해동해 살리는 확률을 크게 높이는 데도 성공했다. 적혈구는 영하 80~196도의 극저온에서 얼렸다가 녹이면 대부분 손상을 입는데 결빙방지단백질을 이용해 생존을 높이는 기술도 개발했다.
■부경대, 생체동결 연구 허브로
| |
| 세포가 동결할 때 얼음 결정이 커지면서 세포가 눌리거나 찢어지고, 해동 과정에서도 얼음이 뭉쳐지는 재결정화 현상으로 세포가 파괴된다. 아래처럼 결빙방지단백질이 있으면 커다란 얼음의 생성이 저지되어 동결과 해동에도 세포가 생존할 수 있다. |
이 프로젝트를 주도해온 극지연구소 김학준 박사가 지난해 9월 부경대 화학과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경대가 국내 생체동결 연구의 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 교수는 생체동결과 해동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김 교수가 쓴 '핵자기공명분광법에 의한 디아실글리세롤 인산 전이효소의 생체막 단백질 구조 규명' 논문은 세계 3대 과학저널의 하나인 '사이언스'(SCIENCE) 2009년 6월호에 실렸다. 이 연구는 줄기세포, 제대혈, 생식세포, 혈액 등 차세대 고부가가치 바이오산업 소재의 효율적 동결보존 연구의 신호탄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 교수는 23일 "부경대 냉동공조학과와 융합 연구를 통해 생체동결 연구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어서 모교에 왔다"며 "생체동결은 동결과 해동으로 이루어지는데, 동결 기술 대부분이 현재 외국에서 만든 장치를 사용하고 있어 국산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극지 물고기는 왜 얼지 않을까
| |
| 결빙방지단백질을 추출하는데 사용되는 남극 빙어(아이스 피시). |
지금부터 50여 년 전. '금방 얼어붙을 것 같은 차디찬 남북극의 바다 밑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에서 결빙방지단백질의 발견이 시작됐다. 바닷물 온도가 어느 점 아래로 내려가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주 작은 얼음 결정이 물고기의 혈액이나 체액 안에 생긴다. 이 조그마한 얼음 알갱이를 방치하면 순식간에 커다란 얼음 덩어리로 커져 혈액이나 체액을 얼게 해 다른 대사 가능이 마비되고 물고기는 죽고 만다. 하지만 극지 물고기는 얼음을 다루거나 얼음과 공존하는 수단의 하나로 결빙방지단백질을 생산해 낸다. 결빙방지단백질은 얼음 결정 표면의 물 분자와 화학적 결합을 통해 다른 액체 상태의 물 분자가 더는 고체 상태의 물 분자와 결합하지 못하게 해 얼음의 성장을 막는 기능을 한다. 이 같은 결빙방지단백질은 극지 물고기(남극 빙어, 등가시치, 삼세기, 둑중개)를 시작으로 식물 미세조류(돌말) 세균 곰팡이 곤충 효모 등에서 발견됐다.
김 교수는 "결빙방지단백질을 첨가해서 세포를 얼리거나 녹이면 얼음의 성장 자체를 억제해 세포가 입을 물리적 손상을 최소화함으로써 세포의 생존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1g 1200만 원… 세계 250조 원 시장
냉동인간을 살리는 일 외에도 결빙방지단백질을 활용한 냉동보존기술 시장은 식료품, 화장품, 농수산업 등 무궁무진하다. 식품산업에서는 아이스크림이 대표적.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남은 것을 냉동실에 보관하면 맛이 달라진다. 결빙방지단백질을 첨가하면 물에 의해 얼음이 생성되는 것을 막아 부드럽고 신선한 맛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단다.
의료산업으로 눈을 돌리면 이 단백질의 활용도가 더욱 커진다. 김 교수는 "고령화에 따른 노인성 질환 치료, 세포치료제, 바이오신약, 신체 장기 개발 및 연구의 원료에 해당하는 줄기세포 및 제대혈의 대량 확보와 효율적인 동결보존에 결빙방지단백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줄기세포를 뽑는 제대혈을 잘 보관할 수 있는 연구를 서울 보라매병원 공여제대혈은행과 공동으로 하고 있다.
줄기세포 및 제대혈 등과 관련된 세계시장 규모는 25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동결방지단백질이 1g에 1200만 원 정도로 고가라는 점. 김 교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결빙방지단백질을 상업화해 판매하는 캐나다 A/F프로테인사는 엄청난 양의 물고기에서 단백질을 추출하고 있어 가격이 너무 비싸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목표는 1g에 3만~4만 원 하는 결빙방지단백질을 대량 생산하는 것. "가격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종류의 극지유래 결빙방지단백질을 생산하고 세포나 조직에 맞는 효율적인 동결보존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답은 극지에 있어요."
※ 냉동인간
미국 물리학자 에틴거는 1962년 집필한 '냉동인간'에서 인체 냉동 보존술에 관한 근거를 처음 제시하며 냉동인간 사회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이 나온 지 5년 후 1967년 미국에서 최초로 인간이 냉동 보존됐고, 현재까지 100여 구가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 부산대 이상헌·임현수·김부근 교수, 남북극 해양생태학·퇴적물 등 연구
■ 지역 극지 연구자
- 부산 해양 연구인프라 탁월
- 극지硏 출신 융합연구 위해 둥지
| |
| 왼쪽부터 이상헌 교수, 임현수 교수, 김부근 교수 |
부경대 화학과 김학준 교수 외에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 연구원 출신으로 부산지역 대학에서 극지 연구를 왕성하게 하는 연구자는 더 있다. 부산대 해양학과 이상헌 교수와 지질환경학과 임현수 교수가 극지연구소 출신이다. 극지연구소의 전신인 한국해양연구소 극지연구본부 선임연구원을 지낸 부산대 해양학과 김부근 교수도 극지연구소 출신으로 볼 수 있다.
극지 연구는 해양과 떼려야 뗄 수 없으므로 융합 연구를 위해 해양 관련 연구인프라가 잘 갖춰진 부산으로 옮기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상헌 교수는 북극해와 인접한 미국 알래스카대학에서 해양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은 북극 전문가. 이 교수는 "북극항로와 함께 북극해의 해빙 생태계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며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북극해는 어장과 수산자원 측면에서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현수 교수는 남극의 퇴적지질학과 지열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임 교수는 "남극조약에 따라 당장은 상업적 이용이 제한돼 있다. 2048년 이후 개발이 가능한 만큼 영구동토층으로 토양 자체가 다른 남극에 관한 기초연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지구 온난화로 북극해 주변에 매설된 가스 파이프라인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대비와 극지에 건축물을 튼튼하게 지을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도 극지의 토양과 환경에 맞는 건축공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부근 교수도 극지 해양퇴적물을 포함한 지질해양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활동을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