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2023항저우 아시안 게임이 추석연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스포츠 경기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최선을 다하자’일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 롤러스케이트 스피드 선수 팀은 3,000m 계주에 출전하여 마지막 바퀴에서 선두를 달렸고 결승선 통과 직전 우승을 확신하고 기쁨의 세리머니를 했다. 1위로 들어와 우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지만 경기는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뒤쫓던 대만선수 황 위린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전력 질주하여 한발을 쭉 들이 밀었다. 우리나라 선수가 환호의 세리머니를 하는 순간 뒤쫓던 대만 선수가 혼신의 힘으로 왼발을 집어 넣은 것이었다. 결과는 대한민국이 거짓말처럼 0.01초의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다. 4년간의 피땀 어린 노력과 눈물, 병역혜택과 연금, 금메달이라는 명예가 순식간에 날라 갔다. 금메달을 딴 대만 롤러 대표 팀 선수는 "나는 한국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며 "그들이 그러고 있을 때 나는 계속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 장면을 본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스포츠 정신을 발휘한 대만 대표 팀에 박수를 보냈다.
영화 역린逆鱗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 의미심장한 대화가 있다. 중용 제23장을 풀어쓴 말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진다.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여러 가지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스트레스 자체를 즐기는 타입이다. 격전 후에 한 대 피우는 담배 향기의 여유처럼 힘든 과정 끝에 갖는 성취감은 너무나 좋다. 이런 내가 최근에 즐겨 찾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수십 권의 무협소설을 쌓아놓고 읽는 것이다. 사실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지 무협소설이 주는 세계는 정말 멋있다. 수많은 강호의 고수들이 넓은 중원과 변방을 아우르면서 무림의 최고수가 되고자 치열하고도 처절한 싸움을 한다. 그 과정에 인간사의 필연인 사랑과 증오, 만남과 이별, 우정과 배신, 그리고 고통과 희열이 여러 군상의 삶을 통해 다양하게 들어난다.
정확한 제목은 모르겠으나 인상 깊게 본 무협소설이 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무림의 패권을 다투는 두 사람의 최고수가 있었다. 지금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으니 선한 사람의 이름을 ‘쾌도인’이라고 하자. 그리고 이 쾌도인과 겨루는 악한 고수를 ’냉철수‘라고 하겠다.
어느 날 이 두 사람은 무림의 최고수 자리를 놓고 건곤일척의 결투를 벌인다. 그 결과 아쉽게도 쾌도인은 결정적인 패배를 하고 황야의 덤불속으로 몸을 숨긴다. 여기서 냉철수는 막강한 부하들을 데리고 덤불을 에워 싼 가운데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긴 칼을 뽑아든다. 냉철수는 알고 있다. 비록 쾌도인이 인기척 없이 숨죽이고 있지만 그가 덤불속에서 상처를 입은 몸을 숨기고 있음을 말이다. 드디어 마지막 일격의 긴 칼날이 무자비하게 쾌도인의 몸을 향해 비집고 들어올 때!
아! 보라, 쾌도인은 살고자 하는 한 가닥 처절한 가능성을 위해 온몸을 던진다. 그는 관통해 들어오는 칼날이 최소한 심장은 피하도록 오른쪽 몸을 노출하여 칼날을 받는다. 그리고는 마치 칼날이 빈 덤불을 찌르는 느낌을 갖도록 온몸을 이완시키며 극심한 고통과 아픔을 참고 견딘다. 그리고는 쾌도인이 칼날을 뽑을 때 두 손바닥을 모아 칼날을 잡는다. 왜? 칼날에 피가 묻어 있으면 그가 숨어 있다는 것이 들어 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처절한 움직임을 본 냉철수는 그의 살고자 하는 엄청난 살기(?)에 밀려 말없이 부하들에게 철수를 명하고 자리를 떠난다.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명하다. 소설은 쾌도인이 절치부심의 노력 끝에 냉철한을 이기고 진정한 무림의 제1인자가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이야기는 교육학개론을 들으면서 졸고 있는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언젠가는 여러분은 자기의 몸을 비집고 들어오는 ‘인생’이라는 냉혹한 방문자를 맞이할지 모른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든, 사업과 학업의 실패이든, 아니면 병마의 모습으로, 또는 쇄락해 가는 늙은이의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몸을 꿰뚫고 들어오는 칼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겠는가? 그래서 살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고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나약함을 사방에 알릴 것 인가? 아니면 한 가닥 실낱같은 가능성을 잡기 위해 두 손바닥을 모아 날카로운 칼날의 피를 씻어 내릴 것인가? 그렇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여러분의 몫이다. 학생들이여, 이제 그만 졸고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