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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붉은 꽃길 사이로
다시 아침이다. 2011년 8월 17일. 하늘은 잔뜩 흐리다. 두고 떠나온 내 삶의 터전 광주엔 간밤에 폭우가 내렸다는 소식이 아침을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가야할 길은 가야한다. 하루를 열기 전에 아침 산책을 나선 사람들의 몸놀림이 가볍다. 오늘도 하루 여정이 만만치 않다. 길을 떠나기 전에 걱정이 앞선다. 선암사! 벌교! 해남!
가볍게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선다. 선암사 가는 길! 남도의 길은 정겹다. 나지막한 지붕을 이고 선 민가의 아침, 보리밥 짓는 내음이 풍겨올 듯 구수하다. 선암사 가는 길에서도 배롱나무와의 인연은 계속된다. 집 안에도, 골목에도, 밭에도, 길섶에서도 8월의 배롱나무 붉은 꽃이 선명하다. 남도의 여름을 붉게 물들일 듯한 기세로 관광객을 맞이하는 배롱나무! '떠나는 벗을 그리워하다.'라는 꽃말을 가진 배롱나무! 줄기의 매끈한 모양새가 마치 살이 없이 뼈만 남은 것처럼 보이고, 붉게 피어나는 꽃은 피가 연상된다 하여 집안에 심지 않기도 하였다는 배롱나무가 남도를 찾은 이방인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또 왜일까? 떠나간 벗을 대신하여 찾아준 나그네를 향한 고마움의 표현일까? 아니면 떠나간 벗을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겠다는 단심의 표시일까?
배롱나무 붉은 꽃에 취해 꽃말의 의미를 더듬는 사이 선암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마주하고 있는 절집 선암사! 태고종의 본찰이자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태어났다는 가람 선암사! 부도밭에서 예초기로 풀을 베는 기계음과 풀내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선암사는 맑은 계곡을 끼고 이어간다. 얼마쯤 올랐을까, 드디어 계곡을 가로지르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기둥도 없이 돌로만 쌓아올린 아치형 다리에 호기심 어린 눈길이 머물기 시작하면 선암사다.
승선교! 홍예문을 계곡으로 옮겨놓은 듯한 다리. 기둥도 없이 돌조각을 정으로 쪼아 쌓아올린 승선교! 오롯이 돌의 질감을 살려낸 건축미와 한 치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는 건축술도 놀랍지만, 계곡에 발을 담그고 선암사 일주문을 향해 슬며시 눈길을 돌리는 순간 다가오는 경치 앞에서 다급한 인간은 먼저 탄성을 터트리고 급박하게 카메라 앵글을 조작할 수밖에 없다. 층층이 쌓아올린 둥근 돌다리 아래로 팔작지붕을 이고 선 강선루가 신선이 내려앉듯 한 장의 그림이 되어 들어온다. 계곡물은 맑고 경치는 황홀하다. 승선교와 강선루의 만남, 선암사 제일의 사진 촬영 포인트!
신선이 된 기분으로 승선교를 지나 부드러운 오르막을 몇 발짝 오르면 속계와 불계를 경계짓는 일주문이 비밀스럽게 나타난다. 절로 들어가기 위해 첫 번째 통과해야 하는 일주문은 사찰 진입로 초입에 위치한 문이다. 우람한 두 개의 기둥으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일주문의 형태는 ‘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건축물’이라고 할 만큼 대체로 크고 웅장하다. 그러나 선암사 일주문은 좀 다르다. 다른 사찰의 일주문에 비해 규모가 아담하여 친숙함을 더할뿐더러, 돌계단 위에 일주문을 세워놓고 흙과 돌로 담을 쌓아 담장으로 이어가기 때문에 문으로서의 기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으로서의 기능이 너무 분명하기에 많은 경우 일주문을 일주문으로 의식하지 못한 채 어느 종갓집 대문을 지나가는 듯한 착각에 빠져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계산선암사라 쓰여진 현판을 달고 서 있는 일주문을 지나면 곧바로 범종루가 나타나면서 강당에 해당하는 만세루로 이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사천왕문이 없다. 사천왕문이 없다는 것 또한 선암사만이 갖는 특이함이다. 선암사의 특이함은 경내에서도 발견된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담장을 쌓아 구분짓고, 담장 중간 중간에 문을 만들어 건물을 연결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단절된 듯 이어가는 절집 내부를 걷다보면 정원이 넓은 가정집을 걷고 있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소통과 단절은 하나인지도 모른다. 소통이 단절을 낳고 단절이 소통을 부르는 모순된 진리를 깨우쳐가는 것이 또한 삶의 길이 아닐까? 선암사 경내의 길 위에서 복잡한 내 삶의 길을 생각한다.
“아빠! 점심은 언제 먹어요?”
선암사 사하촌(?)을 벗어나면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호수를 끼고 벌교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한적한 산길이지만 양옆으로 펼쳐진 경관은 수려하다. 산이 내준 길을 따라 간간히 작은 마을이 나타나고 마을은 다시 길로 이어진다. 길이 열어주는 아름다움에 취하다보면 낙안읍성이다. 낙안읍성을 오른쪽으로 남겨두고 달리는 차 안에서 한참을 더 경치를 감상하다보면 벌교다. 태백산맥의 주 무대이자 꼬막으로 이름 높은 벌교. ‘벌교에 가거든 주먹자랑 하지 마라.’라는 말로도 유명세를 타곤 했던 벌교.
꼬막식당가엔 ‘강호동이 추천한 집!’, ‘TV에 나온 집!’, ‘1박2일 촬영한 집!’ 등 간판마다 식당마다 방송국과의 인연을 자랑한다. 언론을 바로 세워야할 이유를 새삼 생각하며 혼란한 광고, 현란한 간판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고 허둥거리다 점심을 먹었다. 정식 1인분에 10,000원. 3인분을 시켜야하지만 2인분에 공기밥을 추가하면 셋이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쥔장의 말을 듣고 2인분에 공기밥을 추가하여 가족이 점심을 해결했다. 소박하고 후한 인심만큼이나 배가 부르다. 한 개피 담배로 여유를 즐겨본다.
“아저씨, 태백산맥 문학관은 어디로 가야하나요?”
“여름날의 순천만에 볼 만한 것은 무엇이 있나요?”
처음 해남으로 가기로 했던 일정을 순천만으로 조정하고 꼬막식당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으로 향해간다. 낯선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근감을 불러오는 것은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벌교에 대한 강렬했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동안 대한민국에선 금기시되어온 여수·순천 사건에서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하여 이 시기의 좌익 빨치산 문제를 민족의 불행한 역사의 출발점으로 보고, 당시의 시대적 혼란을 민족 내부의 '계층 간 갈등'에서 원인과 결과의 맥락을 찾아나간 소설 <태백산맥>. 민족의 수난사를 시대의 편견과 현실 정치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써내려가지 않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소설 <태백산맥>. 20대 후반 어느 날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이 내게 던진 충격은 혼돈의 시작이었고 끝이었다.
문학관 내부는 피의 <태백산맥>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었기에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태백산맥문학관을 둘러보고 나오면 10시 방향으로 높다랗게 서 있는 한옥집이 소설 속의 현부자네집이다. 전통적 솟을 대문인 듯 하나 2층 구조로 되어 있고 2층 누각 전면은 모두 유리로 장식을 하였다. 조금 특이한 구조다. ‘중도 들녘이 질펀하게 내려다보이는’ 2층 누각에 앉아 사시사철 소작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을 현부자.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를 역학적으로 보여주는 집의 구조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절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지주와 소작인! 노동자와 사용자!
현부자네집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소화집’, 정하섭과의 애절한 사랑이 펼쳐지는 ‘소화집’을 둘러보고 딸아이의 손목을 잡아 일정을 재촉한다. 김범우, 하대치, 외서댁, 염상진, 염상구 등 수많은 인물들이 살아나올 듯 한 소설 속 현장에서 좀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고 허둥거리며 떠나가야 하는 오늘의 나! 그리고 미래 어느 날의 딸! ‘율어’, ‘김범우집’, ‘소화다리’, ‘중도방죽’, ‘자애병원’, 염상구를 인상적으로 부각시켜주던 ‘철다리’ 등을 기약할 수 없는 뒷날 딸의 몫으로 떠넘겨놓고 순천만으로 달려간다.
세계 5대 연안습지 가운데 하나인 순천만은 갈대로 유명하다. 가을 하늘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언제부터인가 고향을 떠난 내게 있어 향수병의 한 원형이 되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도착한 순천만엔 가을은 아직 멀고 갈대는 푸르다. 갈대숲 탐방로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허둥거리다 ‘하늘이 내린 공원’이라는 순천만의 진풍경을 보기 위해 왕복 1시간 30분 거리의 용산전망대로 방향을 잡았다. 길은 가파르지 않으나 결코 쉽다고 할 수 없는 길을 수다와 냉수로 지루함과 갈증을 달래가며 도착한 용산전망대.
나도 모르게 터지는 외마디 탄성과 함께 갈증과 피곤함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푸른 갈대밭과 빠알간 칠면초 군락, 그리고 굽이굽이 흘러나가는 수로가 만들어내는 풍광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순천만에 가면 용산전망대를 올라라. 높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를 빼고 순천만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마라.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공원이 펼쳐지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순천만! 그 절정에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있다. 순천만을 사랑하고 용산전망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바람에 실려오는 갯내음 그리고 녹과 홍의 조화 그 사이로 멈춘 듯 고인 듯 흐르는 수로 어디쯤 생태체험선이 떠가는 그림은 정말 장관이다.
경치에 취하고 바람에 풀어지며 잠시 쉬는 동안도 눈길을 빼앗아버리는 순천만! 순천만의 가을과 흰 눈으로 덮힌 겨울을 상상하는 즐거움에 이어지는 아쉬움을 가슴에 품어 안고 오늘의 마지막 여정인 화엄사로 달려간다. 힘들다. 허리는 뒤틀어지고 다리는 무겁다. 화엄사를 찾아가는 가는 까닭은 오롯이 딸아이를 생각(?)하는 대한민국 부모의 극성의 발로이지만 정작 딸아이는 힘에 겨운 듯이 이미 잠이 들었다.
불이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현존하는 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각황전과 본존 불상(本尊佛像)을 모셔놓은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화엄사는 장엄하다. 이미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려 경내를 거닐어본다. 이미 순례객들이 빠져 나간 자리에 비를 몰아올 듯한 바람만이 처마 끝에 걸린 풍경을 애무하듯 흔들어댄다. 산사엔 바람이 불고 책임이 무거운 중년 가장이 가족을 동반하고 말없이 걷는다. 어린 딸을 데리고 해질녘 산사를 찾은 것은 진정 딸아이를 위함일까 애비의 욕심일까? 말없는 부처는 욕망을 버리라 하는 데 중년 가장은 자꾸만 발걸음을 옮겨간다.
대웅전 뒤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구층암 가는 길이 슬며시 나타난다. 시원한 물소리에 이끌려 접어든 길에서 만나는 대나무 동굴, 대나무 동굴을 지나면 한 눈에 엉성한 석탑이 나타나고 석탑 뒤로 구층암 승방이 나타난다. 깨어지고 흩어진 탑재를 모아 복원한 석탑과 단청의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는 승방의 조화! 그 어느 절집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편안한 자연스러움과 소박한 경건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되는 대로 탑재를 쌓아올린 석탑과 세월을 머금고 서 있는 승방의 자연스러움 때문일까? 수도사가 잠시 비워둔 암자는 풍경 소리조차 숨을 죽인다. 그러나 구층암의 진면목은 승방을 왼편으로 끼고 돌아가야 나타난다.
구층암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스님이 거처하는 승방 마루에 서 있는 모과나무 기둥이다. 이 회갈색 기둥은 살아있는 모과나무에서 불필요한 가지만을 잘라내고 자연 상태를 그대로 활용한 듯한 데 잘라낸 가지의 흔적과 나뭇결 그리고 옹이는 물론 쌓이고 쌓인 세월의 켜까지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하여 승방의 죽은 모과나무 기둥과 천불보전 앞의 살아있는 모과나무의 대비 또한 빼놓을 수 없이 인간을 존재하게 한다. 모과나무가 죽어서 건물의 중추적 기둥으로 또 천년을 살아가는 그 앞에 나무의 수령을 알 수 없는 모과나무 가지가 서로 얽히고 설키더니 서로의 몸을 묶어 하나의 가지로 생명을 이어 다시 세월 속에 피어난다. 생과 사! 삶과 인연!
구층암은 화려하지 않아도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하고, 크고 넓지 않아도 내방객을 압도한다. 구층암에서,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쥔장의 풍모와 내면 세계를 더듬어 가면서 화려함으로 재단되는 세속적 미의 기준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귀로 듣지 않아도 그렇게 마음으로 주고받다보니 두 손 모아 드리는 간절한 기원마저도 불경인 듯하여 깜짝 놀라 조용히 발뒤꿈치를 든다. 과연 구도자의 길이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아니 아등거리며 하루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은 어디에 있더란 말인가? 가야할 길은 먼 데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날이 또 저문다. 8월 남도의 밤은 또 어떠한 기억으로 남겨질까? 가족의 피곤과 감동을 실은 자동차가 숙소로 이어간다. 어둠이 조용조용히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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