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a – Trek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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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牛耳嶺)!
우이령을 다시 우리말로 풀어 쓴다면 소귀산마루가 된답니다.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나라에서 산을 넘는 지형에 (높낮이에) 따라 명칭이 다르게 사용되는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사는 집을 기준으로 얕은 오름 길을 언덕이라 하고 그 보다 높으면 현(峴)이라 했습니다. 한문 그대로 그곳에 오르면
산을 볼 수 있다는 뜻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서울에서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아현동입니다. 신촌 방향으로
언덕에 올라서면 바로 노고산이 보였죠. 지금은 도시화된 건물로 볼 수 없지만 말입니다. 현 보다 높으면 고개라 불렀으며
고개보다 더 높으면 재라 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문경새재입니다. 그리고 재 보다 높은 곳을 령(嶺)하는데
한문으로 嶺을 부를 때 재령이라 합니다. 령이란? 바로 재의 으뜸이란 뜻이니 이 보다 더 높은 지명은 없습니다.
령이 깃든 지명은 보통 태백산맥 줄기인 백두대간 상에 있습니다. 3.8선 이남을 기준으로 보면 진부령, 미시령은 차량
통행이 가능한 도로이지만 설악산 곳곳에는 사람과 짐승들이 넘어 다니는 령이 숱하게 많습니다. 순서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시령 다음에 저항령, 마등령, 그리고 차가 다니는 한계령 그리고 점봉산 산중에 단목령, 조침령, 북암령,
차가 다니는 구룡령, 그리고 오대산 자락에 있는 진고개 선자령, 대관령, ..죽령, 새재, 추풍령,.. 육십령 이렇게 백두대간을
따라 수많은 령이 존재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령을 기준으로 삶과 언어, 문화가 각각 다르게 형성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도회지 부근에 령이 존재하는 곳은
우이령이 유일한 곳입니다. 지역 특성상을 고려하여 높다는 이유에서 이런 지명을 부여 받은 것 같습니다.
우이령은 양주와 고양을 경계 이루는 중요한 육로였습니다. 사람과 문물이 왕래되던 곳이 바로 우이령이였습니다.
공비사건 이후 취약지역으로 분류되어 전투경찰대가 설립되고 부대가 창설된 후 오래시간 동안 단절되어 오다
이것을 탐방객에 한하여 개방한 것입니다. 오랜시간 동안 단절된 통로라 생태계는 온전하게 보존된 곳이기도 합니다.
우이령은 북한산과 도봉산을 잇는 길로서 송추 교현쪽은 계곡과 풍부한 수량 그리고 밤나무와 고찰 석굴암이 있으며
오봉, 여성봉이란 암봉이 있어 무척 아름다운 곳입니다. 서울 우이동쪽은 수려한 계곡과 벚꽃나무와 고찰 도선사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개발로 벚꽃나무도 사라지고 계곡의 수량도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우이령을 넘으면서 볼 수 있는 그 유명한 오봉입니다. 우이주능선 상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양주 고을 새로 부임한 원님에겐 예쁜 딸이 있었답니다. 그 딸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는데......
그리고 이 부근에 살던 지체 높은 오형제는 각각 그 여인을 사모하고.... 또한 오형제들은 각기 벼슬을 얻어 감투를 쓰지만
혼사는 이루워지지 않는 슬픈 이야기가 있는 바위가 오봉입니다. 이 이야기는 트레킹 중 전망대에서 쉬며 물 한 모금 마신 후
들려 들릴까 합니다.

이 사진은 오봉 중 일봉 언덕 방향에서 우이령을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촬영 날짜는 같은 날입니다.
오봉은 특히 클라이머들에겐 아주 아주 좋은 훈련장소입니다. 암벽훈련장 메카 역활을 톡특하게 해 주는 암벽입니다.
슬랩, 크랙, 침니, 등등 다양한 코스가 있고 난이도에 따라 올바르게 적응하며 배울 수 있는 암장이라 옛부터
한국산악회를 중심으로 암벽강습회가 열리곤 하던 곳입니다. 60년대후반 저 역시 강습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삼봉 슬랩 트레버스 구간으로 이곳에서 10m 직상해서 오르면 여성의 치마폭처럼 넓은 바위 평면 즉
대슬라브가 60m 이상 정상까지 이어진답니다.

위의 사진을 정면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오봉 중 가장 슬픈 전설을 지닌 삼봉 감투봉과 쪽두리봉입니다. 이 사진을 찍는 날 감투봉 정상까지 climbing하여
올랐답니다.
이북 원산 지역을 고향으로 둔 어느 음악인은 봄날 우이동으로 원족을 나왔다가 우이령을 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우이령에 핀 진달래꽃을 보고 우봉과 오봉을 보면서 작곡한 노래가 있습니다. 친일을 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몰매를 맞지만 그의 노래는 우리들이 모교의 교가로 어머니의 은혜, 섬 그늘 등등으로 애창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해방전 어느 해 봄날 동무들끼리 이곳으로 원족을 왔다가 혼자 쓸쓸히 우이령을 넘어 답니다.
그래서 노랫말도 첫소절에 그런 표현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도 역시 탐방시 전망대에서 쉬면서......

석굴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말 나옹화상이 3년간 수도를 하던 곳으로서 잘 알려진 사찰입니다.
나한전의 창살 무늬가 아름답고 대웅전 뒤로 보이는 관음봉과 오봉 연결 능선과 대웅전 용마루선이 일치를 이루는 멋진 선
을 눈여겨 보면 건물과 자연의 조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또한 마주 보이는 북한산 상장 능선 가지런하게 물 흐르듯 흐르는 산능선이 보기 좋고 해질녁 잔빛은 눈을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 곳이 바로 석굴암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몰 전 떠나야 하는 탐방객으로서는 보기 힘든
풍광입니다.
전 가끔 오봉에서 클라이밍을 하면서 늦게 남아 야경과 일몰을 본 후 하산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었습니다.
혹시 우리령 길이 조금 짧다고 생각이 들면 송추폭포가까지 걸은 후 내려오는 방법도 있답니다. 아니면 둘레길 한 구간을
연결하는 방법도... 그것은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일 시: 2011. 11. 19. 오전 10시00분
모임장소: 우이동 영신여객 종점에서 하차 후 다시 큰길로 내려 오면서 좌측 코너
네파(Nepa) 장비점 앞.
차량이용: 4호선 지하철, 수유역 3번출구 - 버스 120번 또는 153번 탄 후 종점에서 하차
준 비 물: 간단한 점심과 간식및 기호식. 생수. 간편복장, 모자, 손수건, 방석, 기타 각자 필요한 물품.
트레킹 운행 계획표
총 거 리 : 6.8Km
소요시간: 약 3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