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 육바라밀(六波羅蜜)과 이타(利他) 수행(修行)
무엇이 육바라밀에 포함되는지에 대해선 두 가지의 내용이 있다. 육바라밀의 수량 결정과 순서의 결정을 겸해서 말함이다.
첫째로, 세존께서 정한 육바라밀의 총괄에 대하여 법왕(法王)의 계승인(繼承人)으로서 미륵보살(彌勒菩薩)이 그렇게 했던 중요한 이유를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해석하여 확실한 체계를 세운 것이 수량 결정의 도리이다.
이러한 것을 마음에 담아두면, 육바라밀의 수행에 가장 훌륭한 가르침으로 삼는 것이기에 마땅히 올바른 견해를 얻어야 한다.
여기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증상생의 수량결정이 상호 의존한다고 함은 보살의 넓고 큰 제행(諸行)이 원만해지려면 무량(無量)의 생(生)을 경과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면에서는 또 도(道)에 이름에 있어서 법상(法相)이 원만한 몸(身)이 없다면, 지금의 이와 같은 약간의 덕상(德相)이 있는 몸으로서는 수행(修行)한다고 해도 실(實)로 증진(增進)하기 어려우므로 몸과 모두가 원만해야만 한다.
또 이것은 어디에나 필요(必要)한 재물(財物), 무엇에나 쓸 수 있는 몸(身), 누구와도 알 수 있는 권속(眷屬)과 하려는 구경(究竟)의 일 등을 완성할 수 있도록, 네 가지의 원만함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의 원만함 만으로는 또한 번뇌의 원인으로 변할 수 있으므로 번뇌의 힘에 끌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일 지혜(智慧)가 있다면, 전생(前生)의 선업(善業)의 과(果)를 알게 되어 다시 또 모든 인(因)을 부지런히 닦아 점차 증장(增長)시킨다. 지혜(智慧)가 없다면, 전생(前生)에 쌓은 과(果)를 모두 써버려서 새로운 것이 증진(增進)할 게 없어서 내세(來世)의 고(苦)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생에서 여섯 가지의 요소가 생긴다고 하여도 무인(無因)과 역인(逆因)에서 생긴 것이 아니며, 그 순서의 원인 또한 반드시 육바라밀이기에 금생에 모든 육바라밀을 많이 닦고 익혀야 한다. 왜냐하면 원인이 다를수록 결과도 그만큼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잠시의 증상생인 것이기에 몸의 원만 등 구경의 증상생은 부처님 땅(佛地)에만 있다.
이와 같은 몸으로 보살행을 배운다면, 보살의 일에는 다만 두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의 이익을 성취하는 수량 결정은 상호 의존한다.
즉 그 중에서 이타(利他)를 완성하는데 먼저 재물로써 이익을 지어야 한다. 여기서 중생에게 손실과 해를 끼치는 어떤 보시도 이익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에서 잘 벗어나는 것이 큰 이타(利他)이므로 계율(戒律)이 있어야 한다.
그 궁극(窮極)에 이르렀어도 다가오는 위해(危害)를 참을 수 없어 한 번 되갚음하고, 두 번 다시 한다면, 계율은 청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다가오는 위해(危害)에 어떤 것일지라도 보복 없이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다. 보복을 하지 않으면 타인의 많은 나쁜 짓을 없앨 수 있고, 좋아하는 선을 지을 수 있기에 최고의 이타(利他)이다.
자리(自利)란, 지혜의 힘으로써 해탈의 안락을 얻었기에 마음의 산란이 오지 않으므로, 선정으로써 마음을 정(定)에 들게 해서 바라는 대로 목표에 안주할 수 있는 능력을 얻어야 한다. 게으른 자는 이를 일깨울 수 없다. 그러므로 밤낮으로 피로를 모르는 정진을 지어가야 하기에, 이것이 그들의 일체 근본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의 수행을 지어감에 육바라밀로써 결정한다. 즉 이르기를, 중생을 이롭게 함에 노력하고 베품을 즐기며, 해를 끼침이 없으며 인내를 닦고, 머물고 벗어남, 근본으로써 모든 갖가지 종류의 자리(自利)를 행하라 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이타(利他)에 대한 어떤 종별의 구별도 없다. 머물고 벗어남이란 마음을 목표에 머물게 함을 선정(禪定)의 행적이라 하고, 생사(生死)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혜의 행적이라고 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이 두 가지를 분별한다면, 지(止)에 대하여 관(觀)으로 오해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 깊이 지니는 것도 또한 이 선정(禪定)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육도(六度)의 원만한 몸에 대하여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모든 여러 가지 형태의 이타(利他)를 원만히 성취하는 데에 수량 결정이 상호 의존한다는 것은, 먼저 재물을 보시하는 것으로써 그 빈곤을 없애고, 다음으로는 중생에 어떤 해로움도 끼치지 않고, 또 돌아오는 위해(危害)를 참아낼 수 있으며, 이웃을 돕는 일에 싫어함이 없는 정진을 하고, 선정에 의지하여 신통 등으로 마음을 즐겁게 이끌어 법기(法器)가 되어가며, 지혜로써 말하여 그 의심을 끊어주고, 그를 해탈시키기 위해 육도(六度)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르기를, 불탐불해(不食不害)하고 어떤 상해(傷害)에도 참고 하는 일에 싫어함이 없으며, 남을 기쁘게 하고 법을 잘 설하여 이웃을 위함이 바로 진리(眞理)이니라 라고 말한 바와 같다.
이 두 게송(偈頌)은 자타(自他)의 이익(利益)을 닦음에 있어서 육도(六度)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한다. 만일 자타(自他)의 이익(利益)이 완성(完成)되는 도리를 바로 이해하려 한다면 육바라밀을 공경하며 수행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