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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춘객잔
(1)
매서운 새벽바람은 사람들의 부지런함까지도 꽁꽁 얼려버렸는지 태호(太湖)의 중심가는 아직 잠들어있었다.
하긴 아무도 다니지 않는데 누가 가게 문을 열 것이며, 가게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뭣 하러 나다니겠는가?
태호사람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겨울 아랫목에서 새벽잠을 즐기고 있는 시각, 한 사내가 가게 문을 열고 나섰다.
오십 대 중반의 인상 좋은 사내는 크게 쉼 호흡을 하며 새벽공기를 들이마셨다.
맑고 차가운 기운이 그의 폐를 통해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오감(五感)이 살아나는 느낌, 이것만으로도 이 추운 새벽을 여는 충분한 보람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사람이 지난 이십 년 간 단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는 영춘객잔(迎春客棧)의 주인 조영춘(曹暎春)이었다.
그의 아비 조철중(曹哲重)이 마흔이 넘어 본 막둥이 영춘(迎春)을 얼마나 애지중지 했던지, 증조부(曾祖父)때부터 내려오던 선향루(仙香樓)란 이름을 하루아침에 영춘객잔으로 바꿔버렸다.
아들에 대한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다행히 영춘은 아무 탈없이 영춘객잔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는 부지런하기로 강소성(江蘇省)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같은 시간에 객잔문이 열렸고, 손님이 있을 리가 없는 이런 겨울날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객잔 입구에 걸린 주(酒)자 등(燈)에 불을 밝히던 그는 저 멀리 한 사내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사내는 객잔의 등을 보며 반가운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영춘은 자신의 부지런함을 모처럼 보람 있게 만든 새벽 손님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추우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게."
"감사합니다. 어찌나 추운지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사내가 입은 옷은 얇은 솜만 댄, 한 벌의 갈색 경장이었다.
"우선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게."
"참으로 부지런하십니다."
객잔 안으로 들어선 사내가 말했다.
"자네 같은 손님이 간혹 있다네. 이렇게 새벽추위를 피해 들어오면 다음에도 꼭 다시 들르게 되지."
후덕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꼼꼼함이었다.
장사는 부지런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처음인가?"
"오래 전에 한번 들르고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혹 무림인인가?"
조심스럽게 묻는 영춘이었다.
"그렇게 보였습니까?"
사내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우리야 눈칫밥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아닌가?"
"간단한 호신술 정도입니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 그 정도는 할 줄 아는 것도 좋겠지. 참, 간단히 아침식사랑 술 한 잔 할 텐가?"
"네. 새벽부터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뭘, 우리야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어차피 이 시간에는 간단한 것밖에 안 되네."
영춘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그제서야 언 몸이 풀리는지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들어왔던 작은 보따리를 풀었다.
그 속에는 옷 몇 가지와 작은 소도(小刀)하나, 그리고 천 냥짜리 전표 일곱 장, 그리고 몇 가지 잡다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십 년을 살았던 곳을 떠났는데, 막상 챙겨보니 짐은 이것밖에 없었다.
사내는 바로 우이였다.
혁월에게 간단히 인사만 하고 낙양을 떠난 게 벌써 일주일 전이다. 혁월은 우이를 붙잡지 않았다. 만약 그가 만류했다면, 결국 떠났다 해도 마음이 더 무거웠을 것이다. 그런 혁월이 고마웠다.
떠나는 그의 등에다 혁월이 말했다.
"꼭 다시 돌아오게."
우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돌아보지도 않았다.
혁월은 세상구경을 하고 돌아오라지만,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맹을 빠져 나오는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다.
바로 불 꺼진 동료들의 숙소였다.
잠시 들러 인사를 하고 떠날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떠나는 자는 말없이 떠나야 한다. 그게 남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다.
소향과 철무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애써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며칠간을 쉬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벗어나려는 마음은 그를 낙양에서 이곳 태호(太湖)까지 오게 했던 것이다.
그 동안 두 개의 산을 넘었고, 대부분 야영으로 잠자리와 음식을 해결했다.
오늘에서야 자신이 마음에 두었던 이곳 태호에 도착할 수 있었고, 마침 운 좋게 영춘객잔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몸이 따뜻해지니 긴장이 풀렸다.
긴장이 풀리면서 그간 며칠 일부러 피했던 상념들이 다시 그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떠나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신임맹주 호위는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향매가 무척 섭섭해 했을 텐데….'
생각하면 끝이 없었다.
하지만 소향에 대한 미안함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가 남녀관계에 있어 쑥맥이라면, 소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 딴에는 속내를 안 들키려 애썼지만,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숨기는 것도 어설픈 그녀였다.
그도 그녀가 싫지는 않았다.
그들의 문제는 표현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에 대한 절실함이 없다는데 있었다.
우이는 한 번도 진지하게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건 소향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무단 호위무사들 대부분이 결혼을 하지 못했고, 어찌 했다손 하더라도 그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밤을 세며, 한 달에 한두 번 얼굴보기조차 어려운데 어찌 그 원만함을 바랄 수 있겠는가?
그들의 일은 결코 가정과 양립(兩立)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때 우이도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긴 있었다. 그가 정작 두려웠던 것은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아니었다. 지켜야 할 무엇인가가 새로 생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어머니의 쓸쓸한 죽음이 잊혀지지 않는 그였다.
그때, 영춘이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몇 가지 야채와 볶은 닭요리였다. 거기다 따끈하게 데운 술도 한 병 가지고 나왔다. 기대이상의 식사였다.
요 며칠 동안 먹거리가 부실했던 우이는 허겁지겁 닭다리를 뜯기 시작했고, 영춘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이가 대충 허기를 채웠다고 생각이 들자 문득 영춘이 말했다.
"여긴 무슨 볼일로 왔나?"
기름기가 잔뜩 묻은 입을 대충 닦으며 우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일자리를 구해볼까 해서 왔습니다."
우이의 말에 영춘이 관심을 가졌다.
"일자리? 이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가?"
잠시 뜸을 들인 우이가 말했다.
"그냥, 보표 노릇 좀 했습니다."
"오호?"
영춘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우이의 몸을 힐끗 살폈다.
그런 영춘을 보고 우이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냥 시골영감들 산책이나 시키는 정도였습니다."
권왕과 검왕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였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음, 그럼 이곳에 눌러 앉을 생각인가?"
영춘은 관심은 계속되었다.
"태호가 살기 좋다는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그 말은 곧 여차하면 눌러 살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우이의 말에 영춘은 내심 욕심이 생겼다.
영춘이 이렇게 우이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마침 객잔에 일손이 하나 비던 참이었다. 지난 오 년 간 객잔의 뒷일을 맡아오던 충삼이가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 두었던 것이다.
몸도 다부지고 예의도 바른 것이 볼수록 끌리는 젊은이였다.
"혹시 생각해 둔 일이라도 있나? 아니면 특별한 기술이라도?"
"없습니다. 그냥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생각입니다."
"음, 그럼 자네 혹시 여기서 일해 볼 생각은 없나?"
"네?"
뜻밖의 말에 우이는 약간 놀란 눈으로 영춘을 바라보았고 영춘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낼 요량으로 아예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우이에게 술을 한잔 따르며 말했다.
"직업에 귀천(貴賤)이 어디 있겠나만, 그렇다고 내 허드렛일이나 점소이 일을 하라는 것은 아니네. 자네를 보니 나이도 꽤 된 것 같은데…."
"그럼 무슨 일입니까?"
우이도 관심을 보였다.
"본디 술장사를 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주정꾼들을 상대해야 하지. 정말 귀찮은 일이야."
그제서야 우이는 영춘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주정꾼들 적당히 달래고 얼르는 일종의 객잔의 주먹노릇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흔히들 객잔의 뒷일이라 부르는 일이었다.
우이는 웃음이 나왔다.
이래서 천직(天職)이란 말이 생겨난 것인가?
보표(保 )노릇이 싫어 도망쳐 왔건만, 또 보표노릇을 해야 할 판이다.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피를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가 지난 십 년간 모은 돈은 칠천 냥이 넘었다.
열 냥으로 다섯 식구가 한 달을 풍족히 살 수 있었으니 엄청나게 큰 돈이었다.
어차피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다.
받은 돈을 쓸 시간도 없었다. 그냥 주는 대로 받아 모아온 것이 이 만큼이나 된 것이다.
그는 이 돈으로 객잔을 열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일을 그만두면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객잔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런 객잔을 차리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점소이는 몇 명을 쓰고 숙수를 고용하려면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당분간 이곳에서 일하면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자신이 먼저 나서서 부탁해야 할 일이었다.
우이의 고민을 초조하게 지켜보는 영춘은 내심 속이 탔다.
한 눈에 보아도 우이는 제법 힘을 쓸 것처럼 보였고,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젊은이 같아 보였다.
게다가 나이도 좀 있어 보였고, 잠시 일하다가 뛰쳐 달아날 것 같지도 않았다.
지난 세월 영춘에게 늘어 난 것은 단지 뱃살만이 아니었다. 사람 됨됨이를 보는 안목(眼目)또한 좋아졌던 것이다.
눈앞의 사내는 적어도 나쁜 짓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굳이 안목이니 뭐니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의 맑은 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구할 일손이라면, 이렇게 마음에 드는 젊은이를 어디 가서 구한단 말인가? 더구나 객잔의 뒷일을 하려는 자들은 대부분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불한당(不汗黨)같은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대가는 섭섭지 않게 생각해 주겠네."
영춘은 애가 탔다.
"저를 이렇게 좋게 생각해주시니, 좋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이의 말에 영춘의 입이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좋아, 좋아. 앞으로 잘 지내보세."
두 사람은 가져온 술을 나눠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영춘은 우이가 마음에 들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성실한 젊은이는 드물었다.
술 한 병을 다 비우고서야, 우이는 자신의 숙소로 안내되었다.
우이의 숙소는 뒷채 별관에 붙은 작은 방이었는데, 크기가 작다 뿐이지 제법 깨끗하고 아늑해 보였다.
"일단 푹 쉬게. 오후에 이것저것 알려 줄 테니."
영춘은 다시 맘이라도 변할까 우이를 방에 밀어 넣다시피 하곤 가게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조그만 방에 누운 우이는 모처럼 편안한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
* * *
우이가 눈을 뜬것은 술시(戌時)가 다 지나서였다.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잠이 들었으니 거의 하루 왼 종일 잠을 잔 셈이었다.
눈을 뜬 우이는 처음에는 낯선 방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내밀어 검을 찾았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은 낯선 공간이 주는 이질감뿐이었다.
그가 이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고, 방안의 사물들은 어렴풋한 윤곽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방문을 나서려던 우이의 눈에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자신의 보따리가 들어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보따리를 풀었다.
그 속에 든 일곱 장의 전표들. 그와 세상을 이어줄 새로운 도구였다. 이전에는 그것이 검이었지만 이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단검을 쌓던 가죽을 풀어 전표들을 조심스럽게 쌓다.
새 출발 할 밑천이기도 했다.
그것을 품속에 소중히 간직한 우이는 문득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루 만에 이렇게 달라져도 되는 것일까?'
생각은 그러했지만 실제로 바뀐 것은 없었다. 다만 달라지려는 그의 의식적인 노력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맹을 떠난 이후로 무공수련을 한 기억도 없다.
하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객잔 주인이 꿈인 서른 살의 평범한 노총각일 뿐이다. 자신이 그토록 바랬던 평범한 삶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어슬렁거리며 객잔으로 나간 우이는 객잔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객잔 안은 이제 막 저녁 손님들로 붐비기 시작하였고, 영춘은 입구 계산대에서 장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층과 이층을 바쁘게 뛰어 다니는 점소이는 모두 두 명이었는데, 왼쪽 눈 밑에 작은 점이 있는 소년과, 그 보다는 좀 더 어려 보이지만 마치 다람쥐처럼 잽싸게 움직이고 있는 소년이 그들이었다.
그 중 다람쥐 같은 소년이 우이와 눈이 마주쳤고, 이미 주인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부끄럽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우이는 가볍게 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다. 귀여운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주방(廚房)안을 기웃거렸다.
주방에도 역시 두 명이 있었다.
우선 숙수(熟手)로 보이는 중년인이 마침 커다란 버섯을 다듬고 있었는데, 칼질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 옆으로 열여덟 살에서 스무 살쯤 돼 보이는, 소녀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들어 보이고, 성숙한 여인으로 보기에는 좀 어려 보이는 여자가 돼지머리를 삶고 있었다.
주방의 더운 열기로 얼굴은 온통 땀투성이였지만 두 눈만은 빛나고 있었다. 무슨 일을 맡겨도 최선을 다할 것 같은 그런 다부진 느낌의 여인이었다.
그다지 미인이 아니었지만, 그 반짝이는 두 눈이 그녀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여인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이번에는 우이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여인은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이를 쳐다보았는데, 그를 보는 그녀의 눈에 잠시 이채가 서렸다 사라졌다.
주방까지 둘러 본 우이는 객잔의 대략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열 개 남짓한 탁자가 놓여진 일층은 식사와 술을 마실 수 있는 객잔의 주공간이었다.
이층은 여덟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객실이 있었는데, 하룻밤 묵어가는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객잔의 뒤편에는 세 개의 방이 딸린 별채가 있었다.
단체로 온 손님들이나 조용한 곳을 원하는 부자들이 머물다 가는 곳으로 보였다.
장사는 축시(丑時)초까지 계속 되었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자 영춘은 객잔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우이에게 정식으로 인사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우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영춘객잔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우선 낮에 보았던 점소이 둘과, 주방의 숙수와 여인, 그리고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노인까지 이렇게 다섯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조촐한 환영식이 벌어졌다.
구두쇠 영춘이 오랜만에 객잔 식구들을 위해 특별요리와 술을 준비하게 했고 덕분에 환영식은 즐거운 분위기로 시작할 수 있었다.
눈 밑에 점이 있던 점소이의 이름은 복대(福大)였고 작고 귀여운 점소이는 아평(兒萍)이었다.
이곳에서 일 한지 복대는 오 년, 아평은 삼 년이 된 이 지역 토박이들이었다.
복대는 열일곱 살로, 손님에 대한 눈치만큼은 타고났다는 평을 듣는 말하자면 타고난 점소이였다.
그는 손님이 원하는 대답을 할 줄 아는 재주를 지녔다. 그 덕에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손님들에게 용돈을 타낼 수 있었고, 운이 좋은 날은 자신의 벌이보다 더 많은 돈을 부수입으로 챙겼다.
그 재주만큼이나 그는 특이한 주머니를 가지고 있었다.
돈이 들어가기만 할 뿐 도통 나오지가 않는 주머니였던 것이다.
영춘객잔의 큰 구두쇠 영춘조차도 혀를 찰 만큼 억척스러운 그였다.
도대체 그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혹은 어디에 쓸려고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반면 어린 아평은 이제 열네 살이 되는 소년이었는데, 열한 살 때부터 점소이 일을 시작하였다. 어린 나이에 그가 점소이를 시작한 것은 홀어머니를 위한 극진한 효심 때문이었다.
노름판에서 칼을 맞고 객사(客死)한 아버지로 인해 집안 살림은 엉망이 되었고, 홀로 아평을 키우던 어머니마저 병들어 눕게 되었다. 그때 아평의 나이가 아홉 살이었다.
이후 이 년 동안 아평은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몸으로 온갖 일들을 다 했지만, 대부분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한 채 고생으로만 끝이 났다.
그러나 열 한 살 때 다행히 이곳 영춘객잔에 점소이로 들어올 수 있었고, 이후부터 다소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아평은 이곳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그나마 어머니의 약 값도 대기 어려웠지만, 사정을 잘 아는 영춘은 아평 어머니의 약값을 따로 대주고 있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영춘의 볼 살을 당겨 보면, 구두쇠 가면이 벗겨질 것이고 그 속에는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진 다른 사람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어린 아평은 생각하고 있었다.
주방의 숙수인 노달호(盧達浩)는 과거 북경의 이름 높은 북경대루(北京大樓)의 보조 숙수였다가 독립한 나름대로 자부심이 강한 숙수였다. 그러나 모두 쉬쉬하며 말하기를, 그는 독립한 것이 아니라 쫓겨난 것이라고들 말했다.
어느 날 북경대루의 단골이었던 고관대작이 식중독(食中毒)을 일으켰고 보조 숙수인 그가 죄를 뒤집어 쓴 채 쫒겨 났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의 진위(眞僞)여부를 떠나서 어쨌거나 그는 북경대루의 보조숙수였다는 사실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주방에서 보았던 여인의 이름은 목아연(木芽燕)이었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나이는 스물 네 살이었다. 4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한 그녀는 앞으로 이런 객잔을 여는 것이 꿈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려는 야무진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들 혀를 내두를 만큼 독한 면도 있었다. 평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그녀의 두 눈 때문이었다.
그녀의 맑고 깊은 눈은 어딘지 모르게 신비로웠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속까지 읽어낼 것 같은 그런 눈이었다.
게다가 싹싹하고 친절한 성격 탓에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그녀는 하루빨리 돈을 벌어 고향의 부모님들과, 아래로 여섯이나 딸린 동생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는 게 목표였다.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만나게 된 이(李)노인은 평범해 보이는 늙은이였는데, 과거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워낙에 말이 없어 모르는 사람은 그가 벙어리인줄 착각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이 노인의 주된 일은 장작을 베고, 객잔에 필요한 물건 등을 사다 나르는 일이었다.
우이는 자신을 환영해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모두의 첫 인상은 좋았다.
모두들 힘들지만 힘차게 살아가고 있었다. 우이가 바라던 삶의 모습이기도 했다.
첫 만남의 어색함은 밤늦도록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첫댓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