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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기 전에 최근에 만든 저의 동영상부터 소개하죠. 동영상에서 ‘지구천국 1-1’을 입력하고 클릭해보세요. 현재(2023년 3월 18일)까지 4회를 입력하였습니다. 각각의 會당 3~4부를 올렸습니다.
南韓과 北韓
현재 5차원과 3차원이 병존(竝存)하는 우리 지구촌에서 최대의 국제 및 국내 정치 사안(事案)은 남북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남북의 여러 가지 얽힌 문제가 풀리면 이는 태극기가 상징하듯, 지구촌 위의 모든 모순이 풀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결국 개성 공단이 재 가동되게 되었습니다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남북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금강산 관광 재개(再開), 스포츠 교류---등 모든 면에서 활발한 교류가 시작되고, 마침내 남북 불가침 또는 평화 협정이 체결되어, 한반도에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기를 바랍니다.
南韓과 北韓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의 상황은 지구촌 전체의 문제와 직결(直結)된 매우 중요한 국제 정치를 압축(壓縮)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과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이 지구촌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한 반도에서만 지금도 휴전선 155 마일을 사이에 두고 군사력에 있어서 세계 몇 위를 다투며, 지금 6.25 전쟁 당시의 군사력보다 약 20 배 가까이 더 막강한 화력(火力)을 가진 양쪽 군대가 대치하며, 이 21세기 5차원에 진입했다는 시대에, 캄캄한 과거의 흑백 논리가 지배했던 시절의 의식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이 한반도에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남북관계가 원만하게 진행되어, 드디어 과거의 그 대치 상황이 끝나고, 즐거움의 춤과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때가 올 것인가?
그것은 북한의 지도자들의 마음이 새로운 5차원의 흐름에 맞추어서 바꾸어 질 때만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려면 핵무기를 갖고 있어보았자,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을 가상의 논리(論理)가 아니고 실제 피부로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핵무기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 비로소 미국, 중국, 소련, 일본, 그리고 서방 제국(諸國)과 UN을 구성하는 모든 나라들이 제안하고 있는 진정한 남북 대화와 상호 교류가 시작될 것이고, 이에 따라서 남북 경제 건설의 시작,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 등 북한의 관광 사업의 본격적인 시작, 북한의 식량난 해결을 위해서 남한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서 비료와 씨앗, 그리고 영농 지도자들의 파견을 시작할 것이고, 남북한 의료 협정에 의하여 남한의 의사들과 약제들이 대량으로 북한에 가서 여러 가지 기초적인 치료만 해도 나을 병을 모두 치료하고,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게임에 공동 출전하고 남북한 친선 경기를 정례화하며, 남북한 학자들과 학생들을 교류하여 상호 발전 전략을 모색하고 당면한 여러 과제들을 연구하고 배우는 등, 이 모든 여러 가지 일이 일시에 실타래가 풀리듯 풀리게 될 것이다. 이어서 남북한 군사 교류와 상호 불가침 조약이 체결될 것이고, 이에 대한 군사 정치적인 보장은 한반도 주변 4강이 보장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치 편에서도 말했듯이 북한은 체제 유지가 최우선 과제이고, 주민의 생활은 그 다음이기 때문에 지금도 남북한 사이에서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지도자들의 마음에 따라서 한반도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뜻인데, 우선 북한 지도자들이 현재 어떤 심리 상태에 있는가 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하는데, 첫째는 종교적인 입장이요, 둘째는 이데올로기적인 입장, 즉 철학적인 입장이 그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이해해야만 비로소 북한 지도자들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첫째로 종교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북한은 잘 알다시피 무신론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무신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문자 그대로 우주에 편만(遍滿)해 있는 절대 정신으로서의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창조 또는 하나님이 없다는 입장의 종교관이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북한은 종교가 없는 것이 아니고,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현재의 김정은이 신이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공산당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신뿐만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절대적인 법칙인 윤회전생(輪廻轉生)과 인과응보를 부정하고, 죽음이후에 있다고 알려진 4차원의 천국계와 지옥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종교관이다. 이와 같이 무신론이 지배하는 종교관을 갖게 되면 정신적으로 어떤 상태가 될까? 이에는 다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가 있다. 즉, 위의 무신론 일지라도 높은 철학적인 원리를 이해하고서, 그 철학이 인류를 인도했던 위대한 사상가가 만들었던 철학이라면, 실제로 위의 무신론일지라도 훌륭하게 자신과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공자님과 그 이후의 동양 사회이다. 공자님의 제자 한사람이 어느 날 스승에게 사람이 죽고 난 이후에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었는데, 그 때 공자님은 “살았을 때의 삶에 관해서도 잘 모르는데, 죽은 이후를 내가 어찌 알겠느냐” 하시며, 반문한 적이 있었다하는데, 실제로 공자님은 죽은 이후의 4차원의 영계(靈界), 인간이 유체와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인간은 윤회전생을 한다는 것, 이에 따르는 인과응보(因果應報)가 필연적으로 따른다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몸인 은하계로 구성되는 별의 세계와 인간의 마음에 해당하는 우주 절대정신인 창조(=하느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우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뿐만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다른 우주도 있다는 사실, 우주에는 지구 인(人)뿐만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행성에 인간보다 수 만년, 혹은 수 백 만년 앞선 우주인과 그들의 승용물(乘用物)인 UFO가 있다는 사실---등등에 관하여 거의 몰랐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자 이후의 동양 사회는 공자님의 윤리 사상이 지배하여, 물론 많은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훌륭한 도덕 사회를 이룩하며 삶을 영위하여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꼭 위의 종교적인 진리를 모른 상태에서도 위대한 철학 사상가들의 영향으로 훌륭한 사회를 이룩하며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럼 북한은 어떤가? (공자님의 논어를 읽어보았을 때 공자님은 종교인이 아니고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성립되려면 반드시 내세관(來世觀)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것이 없고 거의가 철학 수준의 내용이라는 것은 논어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현재 공자님은 지구의 영단으로 알려진 대백색 형제단(大 白色 兄弟團)의 한 사람으로 2,500여 년 전에 죽은 이후, 재생하지 않고 그대로 빛의 인간으로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예수그리스도나 석가모니 역시 그 형제단의 일원이다.) 북한이 무신론이 지배하는 사회라면, 이를 대치(代置)할만한 훌륭한 철학 사상가의 영향은 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서, 북한에서는 어떤 종교나 철학 사상도 허용되지 않고, 오로지 김일성 주체사상(主體思想)만 허용되는 사회이다. 물론 기독교나 불교 같은 종교가 공식적으로는 인정된다 하지만, 이는 구색(具色)을 맞추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고, 주체사상만이 허용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편협되고 이상한 나라가 북한이라는 것이다. 종교 사상이 없으면, 유교 같은 철학 사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으면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북한이 내세우는 주체사상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다. 즉, 이데올로기(ideology) 적인 측면이 되겠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저 뒤에서 자세히 언급할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잠시 언급을 보류하겠거니와, 이 사상이 참다운 진리에 근거하지 않고, 너무나 많은 진리와 모순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한 국가를 이끌어가는 철학 사상으로는 타당성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결국 북한은 무신론에다 알맞은 철학 사상마저도 결핍된 채, 무력을 앞세워 주변 국가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럼 무신론이 한 사람이나 국가를 지배할 때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까? 우선 우주만물의 배후에 있는 절대 정신으로서의 창조의 존재를 부정하고, 또한 이 창조의 가장 큰 특징인 모든 인간의 현재와 과거 및 전생(前生), 전전생(前前生)의 모든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까지 모조리 이 창조의 기억 장치, 말하자면 창조의 두뇌에 해당하는 아카식 레코드(Akhasic Record)에 기록이 되고, 죽고 난 이후에 그의 삶은 이 기록에 의하여 지배를 받게 된다는 사실, 즉 인과응보와 윤회전생의 진리---이와 같은 창조, 또는 하느님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게 되고, 죽고 난 이후에는 인간은 무(無)로 되어버린다는 믿음이 그의 영혼을 감싸게 되면, 첫째로 현실의 삶에서 무슨 수단 방법을 쓰던지 권력을 잡거나 돈을 벌어서 최대한 즐겁게 살다 가겠다는 생각이 그의 두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죽고 난 이후의 삶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성(異性), 특히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여자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창조가 부여한 가장 신성한 영격(靈格)을 지닌 존재로 생각하기 보다는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것도 역시 죽고 난 이후에 삶이 없으며, 인과응보나 재생 같은 것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무신론을 가지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떤 행동을 하든, 그 것이 이번의 한 생애로서 끝나게 되니까,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전혀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마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무신론이지만 앞에서 말한 유교 등의 고도(高度)의 철학이 사회를 이끌어 가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사회생활은 잘 영위되는 바, 전술한 대부분의 동아시아의 유교권 국가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와같은 진리에 합당한 철학이 아니고, 전혀 진리와는 동떨어진 철학을 가졌을 때는 어떨까? 이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자주 나타났다가 사라진 신흥(新興) 사이비 종교를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사이비 종교들의 특성을 보면 우선 내세우는 그들의 종교 내용이 참다운 진리와는 한참 거리가 먼 이상한 내용을 그들의 종교적인 지침으로 갖는다. 두 번째로는 대체로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남성들이 많았는데, 거의가 여성 신도들과의 성(性)적인 불륜 관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는 신도들로 하여금 거금(巨金)을 내게 하거나, 강제 노역을 시켜서 신도들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든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고, 넷째로는 비밀 유지를 위하여 거의가 폭력단을 운영하여 신도들의 입을 막고, 비밀이 폭로되는 경우에는 심한 경우 살해하는 일이 많았었는데, 이는 일제(日帝) 시대 때 우리나라의 사이비 종교 몇 개만 살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진리와 동떨어진 어떤 의식 체계를 가졌을 경우에 대개 사이비 종교적인 경향을 갖는 것이 보통이며, 더욱 심한 경우에는 범죄적인 경향을 띄게 되는데, 이와 같은 행위는 보통 마피아나 야쿠자 같은 범죄단체가 갖는 특성인데, 우리가 흔히 신문지상이나 TV 같은 언론 매체에서 볼 수 있는 여기서는 차마 말하기 난감한 갖가지 좋지 않은 행위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범죄단체에서도 지폐위조 만큼은 잘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 위조 행위가 발각되는 경우 조직의 와해까지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으로 생각되어진다. 또한 이들 범죄 단체들의 가장 큰 특성이 힘에 의하여 그 조직이 유지되기 때문에, 폭력을 뒤에 감춘 위협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무신론이 되면 어떤 행동상의 특징이 나타나는 가를 잠시 살펴보았다. 북한의 경우와 한 번 대조해보기 바란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문제가 풀리는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은 북한의 지도자들이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이 사이트(site)를 이해하고서, 마음을 점차로 진리 쪽으로 바꾼다면 한반도의 문제는 별로 어렵지 않게 풀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편과 경제 편에서 이미 올렸던 지구의 여신인 가이아 여신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여기에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이 가이아의 메시지는http://www.lightearth.net에 올라온 내용인데, 어느 한국 사람이 가이아 여신을 가장해서 썼을 수도 있겠으나, 내용이 매우 의미 심장해서 깊히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여기에 올리는 것이다.
(이 사이트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현재 폐쇄되었음)
가이아의 메시지
나는 대지의 여신
살아 있는 지구 대 생명이다!
사랑과 조화의 시대를 시작하며
사랑하는 대한민국, 남한과 북한에게
새 빛과 새 힘과 새 의식
으로 전한다.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우주 율려(律呂)가 새로이 조율되어
하늘과
땅의 진동수가 올라가고
세상살이, 삶의 이치가 소리 없이 바뀌었다.
분열과 대립의 파동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하나'로 성숙해 돌아가니
남한과 북한...
때가 되었다...
이제 '통일'의 준비를 하라!
가이아는
차례차례 모든 차원을 근본으로 돌려와
지구 신명계(神明界)는 이미 하나로 통일되어 있고,
지구물질계도 파동이 느려 조금 늦게 드러날 뿐,
변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대들이 모르는 사이
저변에서는 이미 판이 달라졌으니
그것은 사랑의 판, 통합의 판, 조화의 판이다.
남한과 북한...
분단은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분열과 대립의 시대에
나라와 나라, 이념과 이념의 대결장이 되어
지구촌의 업보를 그대들이 짊어지게 된 것은
그 옛날 태초의 문명을 출범시킨 그대들을 택하여
다시 한 번 새 시대, 새 문명의 인도자로 세우고자 하는
나 가이아(Gaia)의 계획이었다.
그대들을 죄도 없이
오랜 세월 무수한 고난의 역사를 겪게 하고
마지막으로 나라와 혈육까지 생으로 나뉘게 한 것은
그대들로 하여금
눈물과 고통의 사무치는 간절함으로
지구촌 과거시대 분열의 업보를 씻어내어
새 시대 통합의 모범으로 쓰게 하려는 섭리였으니
앞으로 그대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다시없는 영광을 보상으로 받게 되리라!
나는 그대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남한은
자유를 가장한 이기적인 부의 전쟁터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양극화의 힘겨움 속에 목숨을 끊고 있고
북한은
평등을 빙자한
냉혹한 권력의 횡포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짓밟히며 굶어서 죽어가고 있다.
남한은 부를 세습하고 있고
북한은 권력을 세습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남과 북, 그대들의 고통은 같다.
부채(負債)에, 굶주림에, 꽉 짜인 노동에, 가족의 해체에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하지가 않다.
하지만
나 가이아는 그대들을 탓하지 않는다.
잘못이 있다면
지구촌의 모든 업보를 그대들에게 짐 지운 내게 있다.
그대들의 역사는
형제들의 업보를 대변하여
그 업보를 풀기 위한 역할이었음을 알고
이제는 모든 것을 되돌려
분단을
끝내고 복본(複本) 할 때가 되었다.
새 시대의 바람은 사방에 충만하니
수증하고 해혹하여 거듭난 마음으로
새 문명의 창조에 앞장서도록 하라!
부와 권력이란 한낱 물거품 같은 것
영원히 존속하며 그대들을 이끌어가는
그대들 속의 한얼 영혼이
그대들의 진아(眞我)임을 깨달아
지구촌 구시대의 어둠과 욕망의 장막을
하루속히 걷어치우길 바란다.
나 가이아가 이렇게 증언하고 중재(仲裁)하노니
그대들은 서로를 의심하지 말고
그저 믿고 따르고 부응하기를...
그동안의 역할에 수고했다고 위로해 주길...
그리하여 선천지구의 업장을 깨끗이 정리하기를...
그대들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지금껏 지구인의 삶을 옥죄어 온
탐욕과 이기주의
잘못된 이념들
금융과 군사력의 장난까지도
맥없이 물러나게 될 것이다.
빛이 나오면 어둠은 저절로 사라지듯
낮은 파동은 높은 파동을 견딜 수 없는 법
세계사의 뒤집기가
그대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니
자유와 공동 선(共同 善)이 조화된 사랑의 시대를 열어라!
그대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고 앞으로 나아가라!
전쟁으로 구시대를 판갈이 하며 그대들 역시 사라질 것인가?
대화하고 소통하여 함께 새 시대를 열어나갈 것인가?
선천 분열시대의 희생양으로 명운을 끝낼 것인가?
새 문명시대의 종주국으로 축복의 길을 갈 것인가?
공은 그대들에게 있다.
새 시대의 주기는 이미 와 있고
지구는 빠르게 달라질 것이다.
기득권 지도자들이 아니어도
이름 없는 서민들 중에는 깨어난 사명자(司命者)들이 즐비하다. 기득권 사람들이 손을 놓아도 세상은 어차피 그리 될 것이다
가이아는 다만
그대들 현재의 지도층에게도 헌신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공은 잠깐 동안만 그대들 손에 머물 것이고
이내, 이름 없는 준비된 영혼들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강대국들의 위세는 염려하지 말아라.
저들은 모든 것을 좌우하고 있다고 여기나
그것은 과거시대 자만(自慢)의 잔영일 뿐
지금은 더 이상 힘을 못 쓴다.
그들은 분열과 대립의 기억에 젖어 있지만
지금은 통합과 조화의 시대이기에.
지난 시대에 물들어 변화를 거부하는 자는
개인이든 세력이든 나라든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남한과 북한...
그대들이 새 시대의 진리를 주장한다면
강대국들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나 가이아의 진동수가 이미 다르기 때문이다.
판은 이미 달라져 있다.
지금은 통일하고자 하면 된다.
그대들이 그토록 열망해온 꿈이 이루어진다.
가이아의 진동수는 바뀌었고
신명계는 통일되어 있고
강대국들도 더 이상 힘을 부릴 수 없다
안팎으로 때가 되었다!
이제 그대들 자신의 결단만 남아 있다!
남한과 북한...
일단은 '선언'부터 해 보라
우리 '통일'하기로 했다고...
이미 '통일'했다고...
체제는 신경 쓰지 마라.
체제는 그대로 두고, 천천히 합쳐나가면 된다.
일단 '선언'부터 해 보라!
그러면 그리될 것이다!
그대들이 위대했던 건
'한얼'이 그대들 속에 있고
그대들 자신이 곧 '한얼'임을 알았던
드높은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리에 충만한 그 기상으로
만방을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로
태초에서처럼 다시 한 번
'하나됨'의 축제를 '선언'해보라!
우주의 주인은 그대들이다.
신이 따로 있고, 주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대들이여!
그 옛날 한얼 빛처럼!
다시 한 번!
이 지상에 '한얼의 나라', '한얼의 지구'를 선포하라!
나 가이아는...
한없이 기뻐하며 춤추며...
무한한 사랑의 파동으로...
그대들을 도울 것이다!
그대들을 따를 것이다!
강 병 천
가이아의 마음으로...
출처:http://cafe.daum.net/sinmunmyung/hNoN/164(대통합)
위의 글을 읽어보면 현재 지구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섰으며, 남한과 북한은 강대국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통일의 길로 들어서라고 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에는
"http://www.lightearth.net/---자유마당---북한에드리는 고언"을 한 번 읽어
보자. 이 글은 강병천 씨가 직접 작성한 글인데, 역시 의미 심장하여 한 번 읽
어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이 사이트는 저 앞에서 말했듯이 현재 폐쇄되었음)
*북한에 드리는 고언(苦言)---강병천
“지금은 우주의 주기가 달라져, 하늘과 땅이 변하고, 사람도 그 존재의 양상이
혁신되고 있는 중이다. 말 그대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지 않으면, 새로워진
지구에서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때가 온 것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란 본래 도가에서 나온 말로, 글자 그대로 '뼈를 바꾸고
태를 벗긴다.'는 뜻인데,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이전의 모습을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선천에서 후천
으로, 분열과 대립에서 통합과 조화로, 옛 지구에서 새 지구로,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이 말은, 사람에서 신선으로, 즉 일반적 의미에서의 사람에서 신령스런 차원의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뜻인데, 지금의 우주적 차원 변동기에 즈음하여, 조금의
과장도 아닌 당연한 구호다. 즉, '환골탈태(換骨奪胎)'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넘어가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화두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화두를
붙들고서, 혹자는 바깥의 메시아 또는 외계 존재를 기다리기도 하고, 혹자는
그동안 해 온 수행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하늘과 땅, 지
구 구석구석이 이미 새로운 진동수로 등업[등업(等 UP): 등급을 나타내는 등
(等) 과 <지위,성적,정도, 나이 등이 위쪽으로(올라감)의 뜻을 가진 영단어 UP
의 합성어로 웹사이트에서 회원등급이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감을 말한다]되
어 판 자체가 달라진 만큼, 변화는 그리 어렵지가 않다. 지금까지는 판이 달라
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환골탈태였기에 신인의 등장은 매우 드물었지만, 지금
부터는 이미 달라져 있는 판 위에서의 환골탈태이기에, 스스로 변화하겠다고
선언하고 행동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신인으로 차원 상승할 수 있게 되
는 것이다. 말하자면 환골탈태의 '대중화'시대가 온 것이다. 지금까지는 낮은
진동수의 여건 위에서 추구했기에, 특정 종교인이나 수행자들이 모여, 특정한
장소에 성전과 아쉬람을 짓고, 특정한 방식의 신앙과 수행에 집중적으로 몰입
할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지구 전체가 높은 진동수로 바뀌어 있어, 사람들
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상의 삶을 통에서나 영적 성숙과 도약이 가능하다.
이미 달라져 있는 진동수에 자신을 맞추기만 하면 된다.
사랑과 통합의 진동수로 그 마음을 바꾸고, 봉사와 헌신으로 실천하면 되는 것
이다.
오늘날은 일상의 삶에서, 정치나 경제현실 속에서, 문화와 예술 속에서,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류 속에서 영적 성장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일
반화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회도 성숙해지고, 개인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상승해간다. 주제를 지구촌의 사회적 현안으로 한정해 보기로 하자. 과거에는
소위 도를 닦기 위해서 사회 현실에 등을 돌리고, 고고한 척 유유자적하는 것
이 오랜 유행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치, 경제 등 현실무대에서 진리를 구
현코자 노력하는 것이 자기실현에 더 빠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시대이다.
(예를 들자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정의와 상식,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여 사회를 범죄자들로부터 보호하는 사람이 진정한 법조인이다. ---본인의 註)
지구촌의 정치. 경제적 현실을 새 지구의 진동수에 맞추어 혁신시키고자 하는
바램과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시작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세인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이고, 반환경적이고, 탈 진리적인 행태가 한계에 봉착하였고, 그 한계
를 극복하여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도출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지구촌은
이미 판갈이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대륙별로 글로벌 공동체를 형성하
고, 전 세계적인 단일 체 구성을 모색하고, 이데올로기를 넘어 공통의 합리적
대안을 추구하고, 지구환경의 보존을 위해 힘을 합하고, 민주, 인권의식이 열
악한 나라들도 마저 깨어나고, 배후의 비밀세력들은 점차 힘이 빠져나가고, 등
등....... 겉으로는 여전히 자본주의의 속성인 '이기적 무한욕망의 전쟁터'인
것 같지만, 이면에서는 거대한 변화가 몰려오고 있다.
지구의 진동수가 이미 분열과 대립이 아닌 통합과 조화의 파동으로 달라져 있
기에, 공존. 공생, 공영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과거와 미래
두 가지 패러다임이 공존하면서 서서히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쪽으로 이동해
가고 있는 중이다. 분열과 대립의 진동수에 바탕한 이분법적 패권주의와, 통합
과 조화의 진동수에 바탕한 자발적 공동체주의가 뒤섞인 채 혼돈의 모습을 보
이고 있다. 무대를 좁혀 동북아를 들여다보자. 동북아는 세계무대의 중심으로,
지구촌의 혼돈이 첨예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 정치. 군사. 외교는 여전
히 접점이 없는 패권추구의 벽에 가로막혀 있지만, 경제는 이미 하나로 연결되
어 있고, 문화. 예술은 공유되고 있으며, 어쨌든 큰 흐름으로 볼 때는 민주, 인
권, 공생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선천시대 분열과 대립의 흐름이 여전히 기세
를 올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각 나라 기득권자들의 미련일 뿐, 저변
시민사회의 흐름은 사실상 그런 것엔 관심이 없다. 가질 것도 지킬 것도 없는
대다수 시민들은 그저 행복한 일상을 바랄 뿐, 한류 노래와 한류 드라마에 즐
거워하며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 다니고 싶은 것이 희망사항 1호다. 즉, 한국
도, 중국도, 일본도, 동남아도, 미국까지...
크게 보아 구시대에서 새 시대에로의 환골탈태가 각각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얼핏 보아 과거 패러다임과 미래 패러다임의 혼돈상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과
거시대 진동수는 이미 없어졌고, 새 시대 진동수로 판이 달라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통합과 조화의 흐름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는 중에 있다. 동북아 문
제의 중심에는 한반도가 있다. 한반도는 동북아 전체의 그런 흐름에 방향타 역
할을 하고 있다. 즉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통해 과거 청산도 되고, 새 시대의
문도 열리는 그런 식이다. 그리고 그 최후의 초점에 북한이 있다. 북한은, 거
의 모든 나라들이 나름대로 꾸준한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온 데 반해, 오랜 세
월 문을 닫고 변화 없이 지내오는 바람에, 많은 부작용들이 누적되어, 결과적
으로 대단히 드라마틱하고 급작스런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즉 북한은 자의든 타의든 혁명에 가까운 방법이 아니면 달라지기 어려
운 상태에 놓여 있고, 그 과정이 비록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일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영 멸망의 길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 북한은 그동안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잘못된 길을 걸어 왔다. 일당 독재가 장기화
되면서, 권력은 점점 경직되고 우상화되어, 3대 세습을 하지 않으면 쉽사리 붕
괴될 수도 있는, 달리 대안이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경제는 오랜 동안 외
부와의 교류가 끊어지고, 내부적으로는 창의성과 열의가 사라져 회생 불능의
상태에 놓여 있다. 군사력은 이미 수십 년 째 낙후된 채, 겨우 핵무기 몇 발로
주위를 협박하며 버티고 있으나, 사실 핵무기란 게 따지고 보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강대국들이야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약소국의 경우에는 공격용으로도 방어용으로도 아무런 유용한 수단이 못되고,
오히려 고립과 핍박을 자초하는 빌미가 될 뿐이다. 사용하는 순간 자멸로 이어
질게 뻔한 것이니만큼, 쓰지도 못할 애물단지를 끌어안고 온갖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사상은, 한 갑자(甲子)가 넘도록, 과거 일제에 항거하던 투쟁적 사고
와, 서구 이분법 사상의 산물인 공산주의의 편 가르기에 의한 피아 적대적 사
고를 그대로 유지하여, 스스로도 괴롭고, 남한을 비롯한 주변국들까지도 끝없
이 괴롭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
면, 멀쩡한 사람들까지 정치범으로 몰아, 짐승만도 못한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
와 고문과 굶주림으로 죽어가게 만든다. 하늘 아래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짓을 수 십 년 째 저질러오고 있다. 오늘날 영혼의
존재와 윤회의 이치가 널리 알려져, 종교의 본질이 밝히 드러나고 있고, 더 높
은 차원의 영성까지 추구되고 있는 이 시대에, 끝까지 유물론적 사고를 버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영적 성장과 진정한 행복의 추구를 가로막아오고 있다.
(일설에는 그나마 약간의 영적 호기심은 남아 있는지, 일부 상류층들은 종종
이름난 도인 혹은 점쟁이 또는 무당들을 몰래 불러다 상담을 하기도 한다고 한
다.) 그런 비정상적인 사회를 갑자가 넘는 세월동안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는
중에 지구는 후천시대 통합과 조화의 주기로 넘어와 진동수가 달라졌으며, 선
천시대 분열과 대립의 진동수 위에서 생존을 유지해 온 북한의 체제는 가히 풍
전등화의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강대국의 패권추구로부터 나라를 지킨다
는 명분도 없진 않았으나, 정권의 유지 강화를 위해 지나치게 대결구도를 이용
해 온 것도 사실이었고, 스스로 고립을 풀고 동구권이나 동남아와 같은 개혁.
개방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
금의 상황은 그동안의 많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혁명적이 아닌 점진적인 방
법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한 처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젠 비상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을 수밖
에 없는 처지라면, 그래 좋다. 혁명이라도 해보라! 주변 나라들은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해 왔기에 시대가 달라졌다고 쉽게 무너지진 않는다. 이대로 꾸준
히 환골탈태하며 새 주기에 맞춰 가면 된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엔 극단적으로
문을 닫고 변화를 거부해왔기에, 살아남기 위해선 '혁명적인 환골탈태'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간도 없다. 이미 시대는 후천으로 넘어와 있다. 출
구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급한 대로 다음 몇 가지부터 신속히 시행하라!첫
째, 비핵화를 선언하라!둘째, 개혁. 개방의 길을 선언하라!셋째, 남한과의 정
상적 교류 협력을 선언하라! 전술적. 공작적 접근을 버리고 진정성 있게 당당
히 나서라! 다행히 남한의 새 정부는 신뢰에 기초한 남북한 교류에 대해 진정
성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여 진다.넷째, 하루빨리 민주적인 체제로의
전환을 시작하라!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가 다 신이다. 모든 사람을 한얼님으
로 존중하라! 부와 권력이란 한낱 껍데기에 지나지 않고, 사람의 영혼은 매 윤
회마다 다시금 본질로 돌아간다.다섯째, 남한과의 통일논의에 들어가라!자본
주의와 공산주의 등 이분법적 이념들을 넘어, 만민공동의 행복을 추구했던 고
대 환국(桓國)의 정신으로 새 정치, 새 경제를 모색하라! 결과가 있다면 인류
전체의 미래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런 길을 신속히 추진하라.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간신히 유지해 온 체제가 붕괴되고, 자신들이 사지로 내몰릴 수도 있
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그대로 있으면 망한다. 시대는 새 진동수로 달
라졌기에, 옛 스타일은 어차피 소멸하게 되어 있다. 이리 하든 저리 하든 어차
피 죽을 가능성이 크다면, 까짓것 통 크게 한 판 벌여서 세상을 정상으로 돌려
놓고, 깨끗이 죽는 것도 역사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우주에는 카르마
의 법칙이 있어서, 공은 공대로 그 보상을 받게 된다. 아무리 오랫동안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다고 해도, 어느 한순간 진정성 있는 발심으로, 일거에 상황
을 옳은 방향으로 돌린다면, 적어도 복은 아니더라도 화는 면할 수 있을 것이
다. 소련을 개방시킨 고르바초프가 죽었는가? (단죄 받았는가?) 중국을 개방시
킨 등소평이 죽었는가?
한국의 민주화를 선언했던(그리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망하는 상황에서였긴 하
지만) 남한의 전두환. 노태우가 죽었는가? 그대들도 죽지 않는다. 직접 나서서
주도적으로, 경천동지할 역발상으로, 개방을 선언하고, 민주화의 로드맵을 제
시하고,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에의 의지를 선언해보라. '혁명선언'을
해보란 것이다. 남한의 변화는 오랜 동안 계속되어온 만큼, 거기에 보조를 맞
추려면 빠른 속도로 혁명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오히려 역사의 물줄기를 바
로 잡은 의인으로까지 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수 십 년 유지해온 경
직된 체제에서의 갑작스런 선언은 내부적인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강력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으니, 누구도 거기 대해 도전하진 못
할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살아 있을 때 하면, 오히려 일사불란하고 발 빠
른, 주도면밀한 혁명이 가능할 것이다. 외부적인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
금까지 강대국들은 패권주의에 입각하여 세계경영을 해왔지만, 이제부턴 반대
로 통합과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들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지구 진동수가 이
미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은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지만, 사실은
각각 자국 내부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문제들로 시달리고 있다. 배
후의 비밀세력들조차 그 패턴이 많이 달라져 있어, 지금은 통합으로 가겠다고
하면, 아무도 그것을 방해하거나 이용하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시기이다.
혁명하기엔 절호의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지도자들이여!지금은 지구사
의 비상한 시기이다!우주의 새 흐름에 부응하는 나라는 살고, 역행하는 나라는
도태될 것이다!지금까지는 공고한 체제 속에서 안정된 권력을 누려왔는지 모
르나, 지금부턴 그렇지 않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살아남
는 쪽으로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져라. 과거의 기억에 젖어 안일하게 있지 말
고, 스스로 비상을 걸어 신속하게 환골탈태를 시도해야 한다. 남한도 살고 북
한도 살고, 한민족 전체가 함께 살아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멋진 선택을 해보
라. 나아가 동북아와 지구촌 전체에 통합과 평화의 살아 있는 메신저가 되어보
라.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열쇠가 그대들의 손에 들려 있다. 북한의 마지
막 환골탈태에 동북아의 운명과 지구의 미래가 달라진다. 물론 그대들이 변화
를 거부해도, 스스로는 도태될지언정 세상은 제 갈 길로 갈 것이지만, 그대들
까지 한 수 동참하면, 세상은 더욱 빠른 속도로 새 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으니, 무조건 환골탈태의 길로 가라. 그리
하면 신명계의 보호가 그대들에게도 임할 것이다! (남한은 신성과 영성을 존중
해 온 공덕으로 이미 신명계의 넘치는 보호 속에 있음)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
하며 조상의 역사를 신화로 가르치고 있는 정신 나간 남한 학계와 달리, 단군
릉까지 발굴 조성하며 실재했던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웅변으로 표현할 줄 아
는 그대들이기에...서구사회의 온갖 퇴폐한 문화에 물들어 있는 남한에 비해,
그래도 마지막 한 가닥 순수한 심성을 지켜오고 있는 그대들이기에... 그대들
이 진정으로 평화와 공생의 길을 천명한다면, 반드시 조상 신명계의 가호가 함
께 할 것이다!”
이상이 강병천씨의 글인데, 이 글이 지금의 시점에서 매우 타당성 있는 글이
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바로 2012년 12월 21일 이후에 지구촌은 이미 5차
원의 세계로 진입했기 때문인데, 정확히 5차원과 3차원이 병존(竝存)하는 시대
가 지금이라는 것은 정치 편과 경제 편에서 자세하게 논하였다. 그러므로 북한
은 지금 변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에너지가 이
미 통합과 화해, 그리고 평화와 사랑의 에너지 대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
는 것이다. 북한의 지도자들이 이 글을 읽고 있을까? 필자는 아마도 읽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영적(靈的)인 현상을 통하여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는 중이다. 북한에 큰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럼 한반도와 지구촌 전체의 상황에 대한 조감도(鳥瞰圖)는 이 정도로 해두
고, 지금부터는 남북 문제에 관한 좀더 세밀한 내용을 검토해보자. 한민족의
특성을 말하라 하면 9,000년 역사를 통해서 남의 나라를 거의 침략해 본 적이
없었으며, 은근과 끈기, 근면성과 우수한 두뇌, 어떤 환경에서도 즉시 적응하
는 놀라운 적응력, 풍부한 정(情), 그리고 세계의 어떤 종교가 들어와도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잘 융화하는 넓은 마음,---등등 오늘날 아시아뿐만 아니라, 최
근에는 유럽과 중동 등 세계 전역(全域)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한류(韓流)의 근
원인 우리의 정신문화, 고유의 무용과 음악, 고유의 음식 문화, 그리고 피겨스
케이터(figure skater) 김연아 및 리듬체조의 손연재와 더불어 박
세리, 최경주, 양용은, 신지애, 미셀위, 김미현, 박지은, 박인비, 김세영, 리디
아 고를 비롯한 수많은 프로골퍼(pro-golfer)들, 김남일,박지성, 이운재, 안정
환, 박주영, 이청룡,이영표,설기현,김두현,조재진,차두리,박주영, 기성용, 구
자철, 윤빛가람, 이동국, 지동원, 손흥민, 이근호, 등의 많은 축구 선수들과 아
시안 게임과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수 많은 선수들과 기타 박찬호, 선동
열, 이승엽, 추신수, 임창용, 김병현, 류현진, 이승엽을 비롯해서 월드 크래식
베이스볼 챔피언 쉽(World Classic Baseball Champioship)에서 국민들을 열광시
켰던 선수들, 응씨배, 삼성화재배, 후지쓰배, LG배,춘란배,--등 바둑 세계 대
회에서 엄청난 승리를 이끌어 낸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이세돌, 유창혁, 최
철한, 박영훈, 원성진, 박정환, 신진서, 박지은, 조혜연, 이민진, 문도원, 이슬
아, 최정, 김은지, 문민종
등 바둑 기사들, 그리고 소프라노 홍혜경을 비롯하여 조수미, 정명훈, 백건우,
한동일, 정경화, 장영주, 신영옥, 김재형, 장한나, 조성진, 선우예권, 김계희,
김봄소리 --등 많은 클래식(classical) 음악인들, 특히 2011년 6월에 모스크
바에서 개최 된 차이코프스키 콩크르
(Tchikovski Concours) 대회에서 성악부문 남자 베이스 박종민, 여자 소프라
노 서선영 씨 1위, 피아노 부문 손열음 2위, 조성진 3위(이 피아노 부문은 이
콩크르의 꽃이라 불린다), 바이올린 부문 이지혜 3위 등 한꺼번에 이처럼 대거
입상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하겠으며, 수 많은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과 기타리스트 장대건---등등 이처럼 세계
로 진출하며, 선진국의 문턱을 막 넘기 시작한 우리나라지만, 이에 반해서 한
민족은 수 백 번에 걸친 외침을 받아왔으며, 한반도 내에서도 수 없이 국가(또
는 왕조)는 성립하고 멸망하였다. (2022년 6월 현재 우리나라는 선진국 중
상위권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남북한의 분리와 대립도 하나의 역사적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한반도가 과거 역사에서 너무 많은 시련을 겪어서, 여러 예언서에서 말했듯이 2012년 12월 21일 3차원에서 5차원으로 상승한 이후에 (실은 당분간 과거의 3차원과 현재의 5차원이 함께 가는 시대라고 알려져 있다) 있을 후천 낙원의 시대에는 예언서들의 말대로 지구의 중심 국가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주의 진리는 영원한 강자도 없고 영원한 약자도 없으며, 토인비(Toynbee) 교수의 문명서점설(文明西漸說)을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우주에는 고정, 불변한 것은 없고 주역의 원리대로 계속해서 사물은 변화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해 가는 것이다. 즉 세계 역사의 조류를 살펴볼 때, 지구촌은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 교수의 말처럼 제 1의 농업의 파도, 제2의 공업의 파도에 이어서 현재 제3의 파도 후기에 있고, 이어서 새롭게 시작한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제4의 파도가 시작되고 있다. 말하자면 과학 기술의 가속적인 발전과 지식 정보의 대량 유통으로 인한 ‘후기 산업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국면으로 집입하였는데, 보통 1950년대부터 이 시대에 진입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인류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민주와 공산의 이데올로기의 분쟁에 휘말려서 3차 대전의 위험 앞에서 전례 없는 공포를 느꼈었다. 다행히 인간의 소유욕을 차단해 버리는 비합리적인 공산주의의 붕괴로 인하여 이제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이데올로기의 자연스러운 통합이 거의 이루어졌고, 드디어 지구촌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21세기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주축(主軸)으로 한 정보, 통신의 발달과 이어서 인공지능을 주축으로 한 새로운 국면과 이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이코노미(global economy)의 구축(構築), 즉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화하는 완전한 세계 단일 경제 시스템(system)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며, 이는 인터넷 전자 상거래 등에서 보듯이 그 과정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UFO에 의한 우주 진출과, 생명 공학의 발전에 의한 생명 탄생의 수준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즉 세계는 핵무기에 의한 인류 멸절이냐, 또는 한 차원 높은 문명의 세계에 진입하느냐의 기로에서 이데올로기(ideology)의 통합이라는 엄청난 격변을 겪게 되었고, 요한 계시록에 나타나는 아마겟돈의 대혼란이나 격암유록에 핵미사일로 추정되는 소두무족(小頭無足), 즉 ‘발이 없고 머리가 작은 물체’가 지상에 떨어지는 전쟁을 겪지 않고서, 평화롭게 정치, 경제 질서를 유지하는 가운데, 한 차원 높은 새로운 시대의 문명권에 진입하는 초기 단계를 맞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몇 개의 광역 경제권, 즉 NAFTA, ASEAN, APEC, EU, ASEM(ASEM은 경제보다 정치적 성격이 더 크다.) 등으로 분리되어서 상호 경쟁과 협조를 병행하면서 발전하고 있으나, 결국 이와 같은 지역 경제권은 전 세계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화해와 화합 그리고 통합의 조류가 앞으로의 세계사 본류(本流)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북한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세계사의 큰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남북한의 최대 현안 문제가 되어 있는 북한의 핵은 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은 채, 계속되다가 2012년에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하여, 유엔의 대북 제재의 강도(强度)가 과거보다 몇 단계 높아지고, 남한이 이에 전적으로 지지하자, 북한은 지난(2013년) 3월 한, 미 연례 군사 연습을 이유로 초 강경 노선으로 선회하여 한 국가로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 행진을 하면서, 개성 공단까지 폐쇄하였다. 그 이후 간신히 남북 장관급 회담이 성사 되는가 했더니, 북한이 정식 정부 조직이 아니고, 하나의 민간 단체 외각(外殼) 단체에 불과한 조평통(=조국 평화 통일 위원회)의 한 실무 책임자에 불과한 서기국장(=강지영)을 장관급이라고 하여서, 결국 대표의 격(格) 문제로 인하여, 이 회담은 무산되고, 이어서 어렵게 개성 공단이 재가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성공단도 지난번 (2015년 말) 핵실험으로 다시 폐쇄되어, 지금부터는 북한이 어떤 제안을 해 오더라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남한과 미국이 응하지 않는 국면으로 들어서게 되었다.(이번 문제인 정부가 들어서서 베를린 선언을 하면서 북한에 대화제의를 하였으나 북한은 ICBM 급 미사일 발사로 응답하면서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았다.) 또한 강력한 유엔의 제제에 의하여 북한의 해외 식당에서 경영난에 허덕이게 되자, 상납금에 시달리다 급기야는 13명의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 집단 탈출하여 남한에 왔고, 이어서 다시 3명이 추가로 탈출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북한은 이를 남한이 납치했다고 주장하나, 인권을 가장 존중하는 지구촌의 모범 민주주의 국가인 남한이 사람들을 납치했다는 것을 믿을 국가는 지구촌에서 북한 말고는 없을 것이다. 급기야 어제(2016년 6월 23일)는 스위스가 북한의 비밀 계좌를 동결하고, 20 여개의 품목을 북한에 수출할 수 없다는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또한 소련도 북한이 모든 은행계좌를 폐쇄하는 상황으로 돌입하였다. 심지어 남한에서 북한에 보내는 인도적인 지원 물품도 이제는 완전히 끊어버렸다.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한다면 북한은 사실상 국가 해체의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북한이 제 5차 핵실험을 한다면, 중국이 석유와 식량의 북한 유입을 완전히 차단하는 최후의 단계에 접어든다는 것이 본인의 판단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쓸모없는 핵무기를 포기하고 이란과 같은 국제 무대에 복귀하는 단계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열역학 제2의 법칙'에 의하여 완전한 멸망의 단계로 가느냐 하는 기로점에 현재의 북한이 처했다고 할 수 있다. '열 역학 제 1의 법칙'이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고, 제 2의 법칙이란 '엔트로피의 법칙'이라하며, 에너지의 자발적인 방향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에너지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가게 되며, 만일 정체되는 경우 그 에너지는 급격한 변동에 의하여 결국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가게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에너지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인간사에도 적용된다는 것이고, 성모마리아는 이 현상을 그녀의 텔레파시로 보낸 책인 '성모마리아의 메시지, 너희의 행성을 구하라'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북한은 변화하지 않을 경우 필연적으로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엔트로피란 자연물질이 변형되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열역학 법칙은 우주(보다 엄밀하게는 고립 계)의 에너지가 항상 일정하다는 제1법칙
과 우주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제2법칙으로 구성된다. 엔트로피 법칙인 제2
법칙은 자발적 과정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자연계 최고의 법칙이다. 우주 안에서 실질
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은 자발적 과정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
는 것, 열이 온도가 높은 물체에서 온도가 낮은 물체로 이동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발적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펌프를 사용하여 물을 높은 곳으로 퍼올리고, 냉동기를 이용하여 열을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이동시킨다. 이들 자체만을 보면 자발적일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펌프와 냉동기를 돌리기 위해 연료를 태우고 전기를 생산해야 하는
데, 이들 모두를 합친 과정은 자연계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자발적 과정이다. 우리는
자연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을 이용하여 유용한 일을 하고 물질을 만들어 삶
을 영위해나간다.
볼츠만의 표현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무질서 정도에 대한 척도이므로, 우주는 결국 보
다 무질서한 상태를 향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하의 온도에서 물이 얼음이 되는
것이나, 원시 대기에서 생명체가 탄생하고, 이들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탄산가스, 물,
빛을 이용한 광합성을 통해 성장하고 번식하는 것은 엔트로피 법칙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과정에서도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우주는 보다
무질서하게 된다. 즉, 물이 얼음이 되는 과정이나 식물의 광합성 과정, 그리고 생명체
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들 계의 질서는 증가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위로 방출되는 열
은 다른 분자들의 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우주 전체는 보다 무질서하게 되
기 때문이다.
열역학 법칙은 물질계에 적용되는 법칙이나, 이를 사회와 국가 현상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1921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소디는 열역학 법칙이 “모든 정치체제의 흥망
성쇠, 국가의 자유와 속박, 상업과 산업의 동향, 가난과 부의 근본, 그리고 모든 종족
의 복지까지도 관장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즉,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여하한 고립계(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계)에도 적용된다. 사회·
정치적으로 고립계에서는 각 개체가 보다 다양해지며, 전체가 보다 무질서해지는 방
향으로 변하는 것이 자발적 과정이다(독재자는 이런 것을 막기 위해 항상 외부 요인을
언급하면서 사회적 엔트로피의 증가를 억제하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북한이 과거처럼 온갖 술수를 써가면서 협상 불패(不敗)의 신화를 계속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제는 진실한 마음으로 대화에 임하여 남북이 진정한 대화와 발전을 향한 공동 발걸음을 시작할 때인 것이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현재 북한의 지도층, 특히 군부와 김정일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마르크스(Marx)의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시작된 공산주의는 잠시나마 지구촌을 뒤흔들었던 이데올로기(ideology)의 분쟁을 촉발하였으나, 결국 이는 긴 인류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순간적인 해프닝(happening)으로 끝나게 되었으며, 남북 간의 모든 긴장 관계도 결국 이데올로기의 갈등에 의하여 생긴 만큼, 이제 요원(燎原)의 불길이 소나기에 의하여 서서히 꺼지다가 결국 완전히 꺼지는 것처럼, 북한도 결국 중국처럼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하여, 실용주의적 사회주의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 해왔는데, 2013년 상반기에 북한이 취한 막말 행진을 보았을 때, 아직도 그 길은 멀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남북 관계를 폭 넓게 조감해 보려면 아무래도 남한의 민주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를 주의 깊게 조명해 보고,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선 민주주의부터 생각해 보자. 다음은 동국대 교수였던 백경남 교수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책 p36부터 p70까지를 요약한 것이며, 여기에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약간 가미하였다. “민주주의는 문자 그대로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정치 형태이다. 이 민주주의를 한 마디 말로서 간단히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고 가슴에 와 닫게 해준 사람이 바로 에이브러험 링컨(Abraham Lincoln)이다. 즉 그는 민주주의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곧 민주주의라고 했었는데, 이 한 마디보다 더 간결하고 힘 있게 민주주의를 정의한 말은 없을 듯하다.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있는데, 이 개념은 인류 역사를 통하여 한결 같이 추구해온 인간의 염원이라고 보면 될 듯한데, 이에는 자유, 평등, 인간의 존엄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자유부터 살펴보자. 사실 이 자유는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도 인간처럼 모두 가장 절실히 요구하는 생물체의 본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살고 있는 원숭이나 표범을 잡아서 동물원에 가두었다고 했을 때, 그 동물원에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길길이 날뛰고 우리에서 벗어나가려고 하는지는 굳이 가보지 않고서도 훤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자유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로 하는 개념인 것이다. 과거 왕정 시절에는 실제적인 자유는 국왕 한 사람에게만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공산주의 국가는 국가의 권력이 절대화 되고, 그 구조는 전체주의화 하여 국민의 자유는 조직적으로 빼앗긴다. 또한 무정부주의는 국가의 권력을 부정하고 무제한의 자유를 주장한다. 그러나 무제한의 자유는 자유방임주의로서 그 부작용이 너무 커서 지금은 무정부주의를 부르짖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공산주의는 과거 1990년대 초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후 동구라파는 붕괴 되었고, 지금은 중국과 북한 그리고 라오스와 큐바가 아직 고수(固守)하고 있으나, 북한을 빼면 나머지 세 나라는 공산주의라기보다는 사회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중국은 사유재산 소유를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다가, 1980년대 초부터 탁월한 지도자인 등소평 주석의 지도하에 개혁 개방이 추진되었고, 지금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있으며, 완전한 시장 경제체제는 아니더라도 준(準)시장 경제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 체제는 아직도 일당 지배 체제로서, 과거 동구라파 공산주의 붕괴 시 조자양 중앙 위원의 주도아래 이루어진 정치적인 개혁의 운동은 벽에 부딪치고 결국 천안문 유혈 사태를 초래 하여, 체제를 바꾸는 일은 실패하게 되었다. 현재의 중국은 사회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자유가 허용되고, 과거의 동구라파나 모택동 시대 때의 국가 통제는 많이 완화되어, 정치 체제 역시 준 민주주의라 할 수 있으나,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서구(西歐)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의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당국은 현재의 중국을 공산주의 국가로 불리우는 것보다는 사회주의 국가로 불리우는 것을 원하고 있다. 자유는 다시 한 국가의 외국에 대한 주권을 둘러싼 외교, 정치의 자유와 그 나라 안에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자유로 나눌 수 있으며, 이 자유의 역사를 개관해 본다면 우선 고대 사회는 노예 제도가 보편화 되어 있었으며, 이 때 노예는 자유가 없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항이다. 중세에는 주로 봉건 영주와 교회의 세력[이때 교회는 물론 구교(舊敎) 즉 카톨릭이었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하였고, 다시 르네상스를 거쳐서 17, 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 때에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사회 시간에 배웠던 바와 같이 자연법 사상이 나타나서 자유는 인간의 생명, 재산과 함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 되었다. 그리하여 절대 군주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 운동이 본격화 되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그 결과 1789년에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있게 되었고, 또한 미국의 독립 선언과 아울러 1776년의 ‘버지니아 권리 장전’이 선포 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따라서 결국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 하는 생각이 보편화 하게 되었다. 드디어 20세기와 우리가 살고 있는 21 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유는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정신적,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인 자유를 국가가 보장해주는 방향이 그 것이다. 특히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국가가 되도록 많은 자유를 부여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이기심은 신(神)의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하여 조정되어 결국 조화와 번영을 가져 온다”고 하였다. 이 보이지 않은 손(Invisible hand)은 또한 시장(市場)의 자율적인 조절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고 있다. 현대인은 다시 물질적인 궁핍으로부터 해방되어, 경제적 사회적인 안정 속에 들어가야 비로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보편화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시장 경제의 자유에 따른 독과점 행위 등의, 일반 개인으로서는 규제가 불가능한 것을 국가가 대신해서 해야 하는 등 국가의 역할이 날로 증가하게 되었다. 결국 국가는 ‘업적 국가’, ‘분배하는 국가’, 그리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국가’로서의 기능, 즉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국가는 재정 지출이 더욱 크게 되었고, 이에 따라서 전통적인 보수주의는 다시 변화를 하게 되어 ‘신 보수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신 보수주의의 개념은 늘어난 국가의 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하여 국가는 공공 지출을 줄이고, 아울러서 자유로운 투자 활동을 하게 되며, 경제 집행 과정에서 국가의 개입을 될 수 있으면 줄이고 시민들의 요구 사항도 줄이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며, 그와 동시에 개인의 자유의 기회는 확대하는 방향이 신 보수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자유는 신앙, 양심의 자유와 언론, 출판의 자유, 그리고 집회, 결사(結社)의 자유 등의 개인의 자유와, 선거권과 피 선거권에 관한 정치적 자유, 그리고 ‘모든 개인은 자기의 재산을 신성 불가침한 것으로 소유하고, 자기의 의사에 따라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유’와, 어떤 계약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이 때 물론 노예 계약이나 이중 결혼 계약 등 위법한 계약은 당연히 안 된다) 계약의 자유 등 다양한 자유가 있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자유와 분리할 수 없는 이념은 평등이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신분, 혈통, 재산, 종족, 성별,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 평등하다”는 이 이념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본 이념이며, 이 때 평등은 도덕적인 인격이 모두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적인 인격이 법적인 능력 면에서 같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인 기회의 균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자유와 평등이 중요한 것처럼 타인의 자유와 평등도 중요하므로, 항상 인간은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평등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법적인 평등이다. 모든 인간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치적인 평등인데, 이는 정치 과정에 참가하는 기회의 균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동등한 선거권과 피 선거권을 갖는 것을 말하고, 또한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대의제(代議制)및 다수결원칙(多數決原則)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셋째는 사회적인 평등인데, 이는 경제생활, 사회생활, 그리고 문화생활에 대한 참가의 평등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 사회적인 평등의 가장 핵심적인 것은 교육의 평등, 즉 교육의 기회 균등이 될 것이고, 국민은 누구나 의무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음은 바로 사회적 평등의 이념에서 비롯했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의 평등은 경제적인 평등인데, 누구나 노력에 따라서 정당한 결과를 향유할 권리가 있으며,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상속, 증여 등에 의한 재산 획득에는 국가가 관여하여 세금으로 경제적인 평등을 실현하려고 한다. 상속세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경제적인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사회적인 시스템(system)으로 고착시켜 놓으면 오히려 인간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인위적, 획일적인 사회가 되어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과거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그러했으며, 지금의 북한이 그러하다. 자유와 평등은 또한 박애의 정신과 반드시 함께하여야 한다. 즉 사회에는 능력자와 무능력자가 있기 마련인데,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박애의 정신으로 해소,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서구(西歐) 선진 국가들의 복지 정책은 바로 이와 같은 이념에서 비롯한 것이며, 사회 안전망(社會安全網=social safety net: 정부의 근로자에 대한 고용과 실업에 대한 각종 대책, 개인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된 뒤 다시 직장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노숙자 같은 사회적 무기력 층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 가지 사회적인 안전 대책을 말한다)을 구축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념에서 비롯한 것이다. 평등에 관한 가장 결정적인 역사적 선언을 말하면 미국의 독립선언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 되었고, 인간은 조물주(=하느님)에 의하여 천부(天賦)의 권리를 부여 받았으며, 그 가운데에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의 문구와 프랑스 혁명의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자유, 평등과 함께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尊嚴)이다. 로마시대의 수사학자이고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Seneca)는 “인간은 인간에 있어서 성(聖)스러운 존재”’라고 하였다지만, 이 인간의 존엄이 헌법에 명문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후였었다. 종교적 속박과 사회적인 신분 제도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의 긍지와 인간의 존엄이 의식되기 시작된 것은 르네상스 때 부터였었다. 죤록크(John Locke)는 “인간은 누구나 생명, 자유, 그리고 재산권의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하였다 하는데, 이는 천부인권(天賦人權), 즉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권리로 보았고, 이를 자연권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타인에 의하여 이 자연권이 침해받지 않고, 자연권을 가진 인간을 서로 존중하기 위하여 인간 사이에 만들어진 계약이 곧 국가 성립의 토대가 된다. 프랑스 혁명의 의의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곧 “인간의 존엄에 대한 존중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과 인간성을 철저하게 파괴한 히틀러의 ‘파시즘’에 대하여 민주주의가 승리함에 따라서, UN 헌장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및 기본권의 불가침성’에 관하여 명시(明示)하였으며, 각국은 속속 헌법에 이 정신을 반영하기 시작하였다.다음에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관하여 알아보자. 우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는 무엇보다도 국민 주권 원칙이 있다.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국가는 영토 내에서 사회를 구속하는 최종적인 결정을 하고, 또한 그 주권을 행사하며, 영토 내의 국민을 보호하며, 피라밋 형의 조직을 통하여 결정, 실행, 조정의 기능을 행하며, 물리적 강제력으로 질서를 유지한다. 이때 결국 합법적인 최고 권력이 필요하며, 이를 주권(sovereignty)이라고 한다. 주권의 특징은 영구성, 포괄성, 배타성, 절대성, 불가양성(不可讓性), 그리고 불가분성(不可分性)이고, 이 최고 권력이 군주에게 있다면, 이는 군주주권이 될 것이고, 국민에게 있다면 이는 국민 주권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국민 주권은 국가의 최종적인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 된다. 국민 주권 다음에 중요한 민주주의의 원칙에는 대의제(代議制=a representative system)가 있다. 즉 고대 그리스에서 시행되었던 국민이 직접 정치에 관여하는 직접 민주주의는 이상적이기는 하나, 오늘날처럼 사람들의 수가 많은 환경에서는, 비현실적이므로 당연히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여 국민의 의사를 결정하게 하는 대표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가 일반적이다. 물론 오늘날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데에는 국민투표가 있기는 하나, 이는 찬반(贊反)의 표를 던질 뿐 정책이나 법안에 대한 수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의 대표를 선정,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또한 뽑히는 대표는 당연히 상식, 지식, 판단력, 입법 영역(立法 領域), 그리고 도덕적으로 일반 국민보다는 더 뛰어나야 한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오늘날 의회의 대표(국회의원)는 국민 전체의 대표이며, 또한 그 대표는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거민의 의향(意向)에도 어느 정도 충실하게 되어, 지역 대표적인 성격도 함께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지역 대표의 관념이 국민대표의 관념보다 더 우월하게 되면 의회제(議會制)의 불안정을 가져 올 수도 있다. 의회가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면서, 국가의 통합을 가져오는 데 저해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의회의 의원이 갖고 있는 자질(資質)과 대표를 선출하는 국민들의 안목, 즉 자주적 선택이 중요하게 된다.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있어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토론의 원칙이다. 대표제의 정치에 있어서는 대표가 국민의 의지, 이해, 동향을 반영하며, 사회의 여러 대립을 통합하여야 하는데, 이 때 충분한 토론을 거쳐서 행하여야 상호 이해의 상위(相違)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공동 사회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과 둘째 토론 과정에 참여하는 권리가 된다. 의회의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려면 반드시 이 토론의 과정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토론의 기능은 대립하는 의견을 조율하여 서로가 타당한 판단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해관계의 조정은 타협이 중요하고, 이 타협은 설득을 요구한다. 토론이 없다면 곧 마음의 움직임인 ‘사고(思考)의 자유’를 정지시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활발한 토론 참가의 활성화로 인한 사회의 활성화는 사회 발전의 직접적인 동인(動因)이 되는 것이다. 국민의 자유로운 토론에 의한 정치적 결정 과정에 참가를 제도화한 것으로는 정당, 선거, 의회, 그리고 정부가 있다. 정당은 우선 선거 민을 위한 정치적 강령(綱領)을 작성한다. 그 강령을 선거민에게 제시하고, 선거민의 선택에 맡긴다. 정당은 그 강령이 형성될 때까지 그 강령에 대한 토론을 하고, 다시 선거민 앞에서 다른 정당과 토론을 하여,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서로 경쟁한다. 그리하여 선거를 통하여 뽑은 그들의 대표가 어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지 토론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의회는 계속적인 토론이라는 활동에 참여하게 되고, 정부 또한 책임을 가지고 정책의 실현까지 여러 심의 과정(=토론 과정)을 거치게 된다.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원칙에는 다수결원칙(多數決原則)이 있다. 이것은 개인 개인의 의사(意思)와 이익을 전체적 통합까지 높이는 수단이다. 민주주의의 신념이 널리 퍼져 있는 오늘날에는 다수결 원칙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다수의 결정에 소수가 복종하는 것은 의무로 되어있다. 다수결 원칙의 타당성은 사회 내의 의견이 다수파와 소수파로 나뉘어졌을 때, 전원 일치란 경험적으로 불가능 하므로,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보다 더 정당성을 보유하는 데 있다. 다수결에 의하여 여러 가지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다수에 의하여 어떤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다.즉 개인 개인은 불완전하고 또한 각각의 의견이 다르므로, 다수파의 견해에 따라서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논거에 근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일의 쟁점에 있어서는 그 일에 대한 토론 과정을 거쳐서 찬성과 반대의 이원성(二元性)을 띄게 된다. 그리하여 찬부(贊否)를 묻는 형식으로 결정되게 된다. 정치에 있어서 다수결 원칙이 권력에 기초한 통합의 한 방식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측면으로부터 본다면, 다수결 원칙은 보다 많은 개인의 의사(意思)가 받아들여지고, 자기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강제(强制)당하는 사람은 소수이므로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합당하다.
이 다수결 원칙이 그 기능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개인적인 자유로 집단의 의사 결정에 참가하는 개인은 자유롭게 의견을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토론의 자유) 둘째는 의사 결정에 참가하는 구성원이 어느 정도 동질성(同質性)이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일단 다수결에 의하여 선택된 가치는 일반 사회적, 문화적 가치에 상응(相應)하므로, 다수가 소수에 우월하다는 근거는 국민의 가치 추구의 동질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ABCDEFGHIJ 의 10명의 자질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면 어떤 안건 Q에 대해서 ABCDEF 6명이 찬성하고, GHIJ가 반대했다면 그 안건은 찬성으로 결론이 날 것이고, 이에 대해서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ABCDEF의 6명의 자질이 다른 GHIJ에 비해서 현저히 낮고, 심지어는 전과자가 몇 명이 있고, 또한 민주주의 국가인데도 지나친 사회주의적 또는 공산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다면 전체적으로 동질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설령ABDCEF가 찬성하여 그 안건이 찬성 쪽으로 가결된다 할지라도 이론적으로 그 안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동질성의 중요성은 바로 이런 곳에 있다.---나의 註)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기본 원리 중 법치 원칙을 생각해 보자. ‘법’(法)이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와 국가 권력의 한계를 규정하고, 지배 원칙을 법률에 의거(依據)하도록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정치에 있어서는 권력을 장악한 지도자의 그 때 그 때의 임의(任意)의 의사(意思)에 의하여 정치가 행해진다. 과거 군주나 절대 군주(절대 군주 국가는 중세적인 다원분열(多元分裂)을 극복하려고 강력한국가권력을 배경으로경찰권의 내용을 확대, 강화하였고, 경제정책면에서는중상주의
(重商主義)를 취하여 국부(國富)의 증대를 꾀하였다.---naver 백과사전) 시대에는 왕은 바로 법이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심지어 ‘짐은 국가이다’라고 까지 말하였다. 군주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주 자신과 그를 둘러싼 소수의 이익을 위한 정치가 행해졌다. (지금의 북한 역시 그렇다. 원래는 인민민주주의라고 공표하였으나, 오늘날의 북한은 소수의 공산당 정예 요원은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리나, 대다수의 북한 국민들은 노예로 전락했다고 할 수 있다. 즉 크게 보아서 북한은 수수 권력층과 다수의 노예로 구성된 사회이다. 이 노예로 전락한 가장 단적인 예가 바로 북한의 해외파견 근로자들이다. 이들 근로자들은 임금의 대부분을 국가에 바치고 약간의 금액으로 근근히 살고 있는데, 이는 북한의 협동농장이 대부분의 공장 노동자들의 경우와 비슷하다. 즉, 예를 들어서 지금은 폐쇄된 개성 공단이 경우 북한 근로자들이 받은 임금의 대부분을 국가에 헌납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1789년 프랑스의 국민 의회에 의한 인권선언(人權宣言;The Declaration of Hunan Rights)은 법에 의한 지배의 원칙을 명문화 하였다. 모든 법률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법인 헌법은 국가 기관을 조직하고, 정치권력의 지위를 규정하며, 국민과 국가의 법적 관계를 명시한다. 특히 국민의 기본권은 국가 권력에 의해서도 침해할 수 없으며,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에는 반드시 이를 법률에 의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 법률은 인간의 존엄과 그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법률로서 보호하는 현재로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이 백경민 님의 책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의 요약이다. 1990년대 초 동구라파의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지구상의 공산주의는 사실상 그 막을 내렸다 할 수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사회주의 국가는 중국, 북한,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쿠바 등의 나라들인데, 저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국의 경제 체제는 이미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 전환하기 시작하여, 완전한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허용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중간 단계에 와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 체제는 1당이 지배하는 체제이며, 이와 같은 점에서는 큐바나 라오스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인데, 사실 공산주의의 경제 이론의 핵심은 사유 재산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잉여가치설 즉, 생산에 있어서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노동자의 전체 생산량보다 더 적은 양을 받고, 이에 따라서 나머지 부분(=잉여, 剩餘, 가치)을 자본가가 착취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자본주의는 궁극적으로 붕괴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이론, 즉 잉여가치설과 자본주의 붕괴론인데, 이 이론과는 반대로 공산주의가 붕괴하는 바람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 경제 이론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이 공산주의를 창시한 사람은 칼 마르크스
와 엥겔스 인데, 그중 칼 마르크스는 유태인으로서 턱에 수염을 많이 기른 사
람이었고, 현재 대한만국에서 턱에 수염을 많이기르고서 좌파들의 사상적인 대표자 격으로서 우파와 투쟁의 선봉에 있는 사람이 바로 김어준이다. 즉, 김어준이 바로 칼 마르크스의 재생인데, 앞으로 대한민국이 모든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진정한 참된 진리 위에서 지상천국으로 변함에 따라서, 김어준도 과거의 그의 모든 잘못된 사상이 대 변화를 겪을 예정인바, 마르크스에 의하여 성립된 공산주의 사상이 이제 그 완전한 종말을 맞이하는 상황에 점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암시장으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공식적인 시장이 형성되어, 북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거래를 중심으로 시장 경제가 막 그 싹이 솟아나려 할 때, 느닷없이 화폐 개혁을 하여, 물가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하고, 그 결과 생필품(生必品), 특히 식량의 조달을 어렵게 하여, 아사자(餓死者)를 속출하게 하여, 암울한 과거의 천리마 운동을 지금도 계속하려는 듯한 시대착오적인 정치 감각을 북한의 지도자들이 갖고 있지 않느냐 하는 우려가 컸는데, 북한 당국도 뒤늦게 실패를 인정하고 경제 개혁을 다시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최근에 보인다는 것이 약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옛날 이야기 이고, 최근의 코로나와 유엔의 경제
제재로 인하여 북한의 경제는 거의 침몰 직전에 와있으며, 아사자가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 300 만명을 넘어서서 대량 아사자가 금년(2022)과 내년에 걸쳐서 있을 조짐이 보이고 있다.) 북한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중국이 걸어왔던 개혁 개방과 아울러서 남북 경제 협력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바로 몇 년 전에 있었던 화폐 개혁의 실패였다. 사실 화폐 개혁의 진정한 목적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원만하게 만드는데 있어서, 신흥 자본가를 억누르고, 통치체제를 보다 확고히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기도 하다. 즉 인민 대중의 이익보다는 최고 권력자와 그 주변인의 이익이 최우선 시 된다는 전체주의 또는 독제 체제의 전형을 이번에 확인시켜 주었던 셈이다. 그럼 다시 백경민 씨의 책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이론을 간단히 요약 고찰해보도록 하자. 그는 논하기를, "사회주의란 재산 제도에 어떤 변경을 가해서, 빈부의 대립이라는 사회적 불평등을 없앰으로서 어떤 의미의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실현하려는 운동과 사상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주의라 해도 공산주의 국가의 관점과 민주주의 국가의 관점이 상당히 다른데, 공산주의 국가에 있어서의 사회주의란 공산주의 제 1단계, 또는 낮은 단계로 보고 있다. 즉 공산주의의 전 단계란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 사회주의란 인간성 회복과 삶의 안전에 대한 보증을 위하여, 빈부의 격차를 없애면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제적 민주주의 까지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나)의 의견으로는 동구라파의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인하여, 공산주의의 전 단계 또는 낮은 단계로서의 사회주의 이론은 이론상 폐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경제 이론 자체가 이미 폐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현재 자기들 나라를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고 사회주의 국가라고 불러 주기를 원한다면, 이때의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본 사회주의가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바라보는 사회주의라고 해야 이론상 옳다고 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이다.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라면 당연히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즉 바로 앞에서 말한 인간성의 회복, 다시 말해서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등 인간이 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생각되는 천부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는 생각을 해야 하는 데, 바로 이런 점이 현재 중국이나,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라고 할까, 정치 경제 이론의 모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지구촌 역사의 큰 흐름은 정보의 통합과 경제의 통합에 이어서 궁극적으로는 지구촌이 5차원의 천국의 경제, 즉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변할 것이니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생각하며, 중국의 대국으로서의 자존심도 있고 하니까, 이론상이건 실제적이건 정치, 경제에 있어서 지나친 대립 의식은 좋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공산주의 경제 이론은 고찰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직 사회주의 국가가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기본 철학은 간단히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공산주의를 말하기 전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자. 다시 백경민 씨의 책으로 돌아가서 그의 이론을 요약하여 앞에서 말했던 내용을 여기서 다시 약간만 반복한다면, "사회주의란 재산 제도에 어떤 변경을 가해서 빈부의 대립이라는 사회적 불평등을 없앰으로서 어떤 의미의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실현하려는 운동과 사상"으로 알려져 있다. 공산 국가에 있어서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의 제 1단계 또는 낮은 단계에 해당된다. 그러나 서구(西歐)에 있어서 사회주의는 인간성 회복과 삶의 안전에 대한 보증을 위하여 빈부의 격차를 없애면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제적 민주주의에 까지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공산권에서 바라보는 사회주의의 특징을 살펴보자. 공산주의 국가에서 받드는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적인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서구 민주주의의 근간인 ‘인권보장’과 ‘권력에 대한 통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당연히 민주주의가 아니다. 즉 공산국가에서의 사회주의는 인간을 공산주의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권리는 사회주의 이름하에 공산당의 의지에 속하며, 그들의 임의(任意)에 따라서 해석된다. 개인은 당이 제시하는 진리에 일치하는 행동을 하여야 되므로 공산권의 사회주의는 결국 인간의 정신을 고양(高揚)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공산권의 사회주의는 한 개인의 모든 생존 영역, 즉 물질적 영역 외에 사회적, 정신적 영역까지 지배의 범위를 장악하고, 조정하여 생노병사(生老兵死)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을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포함시켜 전개시킨다. 1948년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그 자신의 사회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말하고, 그 이전의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말하였다. 공상적 사회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프랑스의 생시몽과 퓨리에, 그리고 영국의 오웬이 있다. 이들 3인이 말했던 사회주의는 일종의 유토피아적인 이상사회 이었다. 엥겔스는 그의 책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 발전’에서 ‘이들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한 것은 천재적이나, 사회발전에 과학적 법칙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상적 사회주의에 불과하다’라고 비판을 가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 변혁은 변증법적 필연이고, 그 변증법적 실현은 계급투쟁을 통한 혁명에 의하여 구체화 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생각과는 반대로 역사는 전개 되었으며, 위의 3인이 제시했던 초기 이상적 사회주의는 시민사회의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그 발전적 극복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오늘날 서구(西歐)의 사회민주주의의 중요한 사상적 맥락이 되고 있고, 오히려 마르크스적 사회주의 또는 과학적 사회주의는 동구라파의 사회(공산)주의 몰락에 의하여 그 존립(存立)의 기반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공산주의에 관하여 간단히 알아보자. 라틴어로 communis(공동 소유)를 어원으로 한 공산주의(communism)는 인간이 추구하는 생산 수단이나 재산 등을 공유화(公有化) 또는 사회화(社會化) 하고자 하는 학설, 경향, 그리고 운동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공산주의는 1) 재산의 공유화를 위하여 사유(私有)의 생산, 소비 수단을 없애고, 2) 정치, 경제, 사회적 차이가 없고, 모든 인간이 완전히 자유롭고, 평등하고, 물질적, 정신적인 욕구가 만족하게 이루어진 3)국가, 지배, 계급 상태가 없어진 사회, 경제 질서를 이루기 위한 사상, 이론, 세력 및 조직을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당 선언’을 하면서, 그는 사회주의를 미온적(微溫的)이고 온건한 개량주의라고 비난하면서, 대신 ‘공산주의’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에서는 각인(各人)은 그 능력에 따라서 소득을 분배받아, 자기의 바라는 소비재를 구입할 수가 있으므로,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에서는 소비 생활 상의 불평등과 소비재의 사유는 아직도 존재한다. 즉 각인은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노동 업적에 따라서 재화를 취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각인은 능력에 따라서 노동하고, 욕망에 따라서 소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소비재 분배상의 불평등은 없어지고, 자기와 타인 사이에 소유상의 구별도 필요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다. 매우 이상 상태의 사회를 그린 공상 속 사색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럼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ideology)를 생각해 보자. Ideology는 이념(idea)과 논리(logos)의 합성어로‘ 이념의 논리’란 뜻을 갖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일반적으로 사상, 주의, 가치관 등의 체계를 말하는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이다. 공산주의 사상은 변증법(辨證法)적 유물론(唯物論)과 유물사관(唯物史觀)을 토대로 한 경제, 정치, 이론을 전개하면서,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기 위하여 계급투쟁과 프로레타리아(proletariat) 혁명을 선동하는 획일적인 사상을 도식화(圖式化)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경제 이론의 기초는 노동 가치설과 잉여(剩餘)가치설이다.우선 변증법적 유물론을 살펴보자. 변증법적 유물론은 마르크스 주의의 핵심으로, 두 가지 철학 개념, 즉 변증법적 이론 방식 및 세계와 그 현상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을 총화(總和)시킨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세계관이다. 본래 변증법(dialectics)은 그리스의 대화(dialogos)에서 유래된 말로서, 그리스 시대의 변증법은 논쟁자들의 토론 속에 내포된 모순이 폭로됨으로서 진리에 도달한다는 변론술이었다. 소크라데스가 이 변증법을 사용하였고, 플라톤은 진리에 도달하는데 장애가 되는 모순을 제거하는데 이 변증법을 사용하였다. 헤겔은 진리를 명제(命題) 상호간의 논리적 관계로 정의(定義)하고, 사유(思惟)는 직접 추리(推理)의 과정이 아니라,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즉 인간의 사유는 정립(=these)과 반정립(antithese)의 대치(對峙), 그리고 종합(=synthese)으로 진정한 발전을 이룬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그 유명한 정,반,합(正,反,合)의 과정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 Hegel은 다시 절대 이념의 발전 과정을 위의 정,반,합의 관점에서 정리하여, (1)이념 자신의 상태(正) (2)모순의 요인이 발현(發現)하여 대립 상태에 들어간 상태(反) (3)대립이 종합되어 제 3의 고차적(高次的)인 상태에 들어선 상태(合)로 파악하였다. 여기서 Hegel의 변증법의 주체가 무엇이냐가 중요한데, Hegel은 이를 이념, 또는 정신, 혹은 관념으로 보았다. 그런데, 포엘바하(Ludwig Feuerbach)는 Hegel의 정, 반,합의 이론은 긍정하나, 주체를 정신으로 보지 않고 물질로 보았다는 점이 Hegel과의 차이점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 Hegel과 포이엘바하 두 사람 모두 결별(訣別)하고, 자기 자신의 독특한 ‘변증법적 유물론’을 체계화 시켰다.” 여기서 백경남씨의 설명을 잠간 멈추고, 북한으로 눈을 돌려서, 북한의 주체사상 중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다루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는 것인데, ‘김일성 주체 사상(국제 승공 연합, 통일 사상 연구원 펴냄, 1989) p37에 따른다면 Marx는 원래 포이엘바하를 추종하여, 처음에는 포이엘바하의 ‘자연주의적 인간관’을 따랐었는데, 나중에는 이를 포기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포이엘바하의 인간관으로는 ‘계급투쟁(階級 鬪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포이엘바하의 인간관은 인간애 즉 사랑이 중심이었는데, 대립과 투쟁의 철학(유물 변증법)을 갖기 시작한 마르크스에게는 포이엘바하의 인간관은 계급투쟁을 저해(沮害)하는 반동(反動) 철학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에서 인간 생활에 가장 중요한 ‘사랑’을 사람의 사회적 속성으로 삼지 않은 이유가 바로 마르크스의 입장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백경남 교수로 돌아와서 이 유물 변증법이 왜 잘못되었는가를 알아보자. “우선 인간의 존재, 사상, 그리고 자연에 대한 문제는 인간이 존재하는 이상 영원한 문제이고, 지상에 인간이 존재한 만큼의 긴 시간에 걸쳐서 제기된 문제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을 자기들이 설정한 철학 속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그들의 철학만이 절대적 진리라고 하여 인간을 그들의 ‘개념의 틀’ 속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즉 인간의 다양성, 창조성, 정신적 존재, 또는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로부터의 무한한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정신이 아닌 물질을 모든 변화의 주요인으로 본다면, 종교, 도덕, 철학, 또는 사회의식도 물질이 본질이어야 한다는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그리고 논리의 모순을 통하여 인간의 사상이 발전한다고 하는 Hegel의 공식에 ‘자연’이나 ‘역사의 발전’을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즉 유물론과 변증법의 한계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 현상을 자연이나 물질 현상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무리이다. 사회 현상은 자연이나 물질 현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공산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사적 유물론(史的 唯物論)을 생각해 보자. Marx와 Hegel은 인간계를 포함한 전 세계를 끊임없는 운동 과정으로 본 것은 같은 입장이나, Hegel은 세계의 본질을 정신으로 본 반면, Marx는 세계의 본질을 물질로 본 것이 차이점이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 사회의 변천을 설명하는 방법으로서 인간의 역사에 적용시켜,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하는 가정 하에 사적 유물론(史的 唯物論)을 전개하였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은생산 용구와 더불어 일정한 생산 경험과 노동 능력을 갖고 생산 용구를 사용하는인간이라는 요소의 결합이 낳은 역량을 지칭하는 생산력(生産力=force of production)이다. 사회의 하부구조(下部構造), 즉 생산 과정에서 인간들이 서로 맺게 되는 상호 관계를 뜻하는 생산관계의 총체인 사회의 경제적 하부구조가 법률, 정치, 사회인식 등 상부구조(上部構造=superstructure)를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사회를 원시 공동 사회, 고대 노예 사회, 중세 봉건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구분하고, 미래는 계급투쟁의 결과 자본주의 사회가 결국 공산주의 사회로 변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상과 같은 Marx주의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와 역사에 적용한 유물사관에 기초하여 인류 역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고, 역사 발전을 계급투쟁을 통한 발전으로 파악하여, 역사의 본질을 어디까지나 계급투쟁과 관련지었다.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물질에 두고, 인간의 중요한 의식과 의지를 무시하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인간의 창의가 생산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놓쳤다. 즉 역사의 원동력인 생산력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에 기인하고 있음은 명백하고, 바로 이점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기술이란 물질의 소산이 아니고 인간의 ‘정신적 상황’ 속에서의 창의력의 소산임을 마르크스 이론은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발전의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한 경제적 요인을 역사의 불변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한 것은 무리였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이론의 또 하나의 허점은 역사 발전의 마지막 단계이다. 즉 마지막 단계인 ‘공산주의 사회’는 그 이상 발전, 변화할 사회가 없는 영원한 자유의 제국인 이상사회가 된다는 것인데, 이는 변증법의 이론과는 모순(矛盾)된다. 즉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도 마지막일 수는 없으며, 변증법의 이론상 과도기적 역사 발전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고대와 중세의 생산관계가 현대에 와서 크게 변화하였는데도 고대 인간의 관념인 불교, 기독교, 그리고 유교는 오늘날까지도 존속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유물사관으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정신문화가 생산관계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공산주의의 핵심 이론인 경제 이론에 관하여 알아보자. 공산주의 경제 이론의 핵심은 잉여가치설(剩餘價値說)이다. 즉 모든 상품은 인간 노동의 지출에 의하여 생산되며, 일정량의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을 가지고 있어, 상품의 가치는 그 필요 노동 시간의 양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런데 늘 자본가는 노동자로부터 임금 이상의 것을 얻으려하여,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주는 노동 가치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보다 많아, 그 차액을 자본가가 착취한다고 보는 것이 잉여가치설이다. 그런데 이 노동 가치설은 상품이 주로 인간의 노동에 의하여 생산되는 농업이나 수공예품 등의 생산에는 적용되나, 현대와 같이 다양한 요소에 의하여 상품 가치가 결정되는 시대에는 맞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즉 상품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수요와 공급이 서로 일치하는 지점에서 결정되며, 사회적 평가에 의해서도 상품의 가치는 달라진다. 또한 예술품 같은 것은 비슷한 노동량의 투입에도 생겨나는 가치는 예술가에 따라서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게 된다. 또한 기업 경영으로 발생한 이익은 자본가가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자본주의는 통상 기업 경영으로 얻은 이윤을 사회를 위하여 재투자하여, 프로레타리아(proletariat=무산 계급)는 시민 계층이 되었다. 오늘날 노동의 세계에 있어서, 노동의 저소득 율은 타인의 착취라기보다는 노동 가치 자체(1인당 생산성으로 생각할 수 있음)가 낮은 데에도 그 원인이 있으려니와, 사회에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것은 부유한 사람의 착취보다는 능력과 노력의 결과가 더 많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경제 이론에서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붕괴론인데, 이는 동구라파 공산주의 몰락으로 그 결과가 공산주의 이론가들의 예측과는 정 반대로 나타났으며, 따라서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다.”
이상이 백경민 교수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관한 이론을 요약한 것이다. 필자가 이미 끝난 공산주의를 새삼스럽게 언급한 것은 아직도 북한이 개혁 개방을 외면하고, 공산주의 경제 이론을 고집하면서 몇 년 전에 화폐 개혁을 실시하고, 시장을 폐쇄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글의 본론인 북한의 주체사상에 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주체사상에 관한 지식도 역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서 국제 승공 연합에서 펴낸 ‘김일정 주체 사상 비판(1989년, 7월 1일, 통일 사상 연구원 출판부)을 요약하기로 하겠다. “김일성 주체사상은 ‘사람 중심론’이라 칭하며, 북한에서는 ‘사람 중심의 새로운 철학 사상’이라고 자찬(自讚)하면서 인간관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있다. 즉 주체사상은 사람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첫째: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다. 둘째: 사람은 물질적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다. 셋째: 사람은 그 본질적 특성으로서 자주성(自主性), 창조성(創造性), 의식성(意識性)의 사회적 속성을 지닌다. 넷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회적 존재인 사람에게만 고유(固有)하다. 다섯째: 세계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이 책에서는 우선 이와 같이 주체사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위의 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 이외의 동물은 어떤 점이 다른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사실 사람과 다른 동물 사이에는 차이점이 거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고 차이점이라면 영(靈)의 진화(進化) 과정상 보다 더 고급영(高級靈)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사람이냐 동물이냐로 구분되어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블로그인http://blog.naaver.com/bonanza7000,즉 ‘영혼이 머무는 천국’ 또는 종파를 초월한 종교란 의미에서 ‘초월적 종교의 원리’의 기본 개념 속에는 우주를 관통해서 인간이 절대로 변경할 수 없는 우주 법칙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현재 불교에서의 핵심적 교리인 ‘윤회전생’이 있다는 것과, 그 윤회전생의 과정상 인간이 다른 동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고, 다른 동물이 인간으로 태어나는 일도 가끔 있으며, 심지어는 인간의 영혼이 너무 저급해서(=너무 엄청난 죄를 지어서) 동물로는 태어나지 못하고, 곤충으로 태어나는 현상까지 이야기 하려고 한다. 즉 인간과 다른 동물은 우주의 절대정신인 창조(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등의 차이가 없으며, 단지 그 영혼의 상태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의해서, 동물로 태어나느냐, 인간으로 태어나느냐가 결정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차이점이라고 할까, 다른 점을 고찰해 보도록 하자. 인간과 인간 이외의 동물과의 차이점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직립보행(直立步行)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인류학자들이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하다르 계곡)나 남아공화국 등의 나라에서 수백만년 전의 인골(人骨)을 발굴하여, 유인원과 인간을 구별하는 첫째의 기준이 직립보행을 하였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이다. 물론 두뇌의 크기도 기준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직립보행처럼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차이점인 언어에 관하여 말한다면, 인간이나 동물이나 의사소통을 하는 언어를 갖고 있다는 것은 같다. 물고기나 육상 동물, 조류 등은 최소한 몇 십 개의 의사소통 방법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단지 다른 동물은 단순한 소리나 몸짓으로 뜻을 전함에 비해서, 인간은 자음과 모음이 서로 어울려서 음운(音韻)을 형성하고, 일정한 문법 체계를 이루는 고차원적인 언어를 사용하나 동물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세 번째는 도구와 기계의 사용인데,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에 있어서 인간과 동물의 구별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가지고 개미집에서 개미를 나오게 하여 잡아먹는 것이나, 돌을 갖고서 견과류(堅果類)를 깨어서 먹는 것 등이 그 것인데, 단순한 도구의 수준을 넘어선 기계의 사용은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네 번째의 매우 중요한 차이점인 고등 정신 기능에 관하여 살펴보자. 인간이나 동물이나 생각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동물은 단순한 생각을 하고 인간은 선과 악을 분별하며, 남을 배려하고, 분석, 비판, 종합을 하며, 여러 가지 학문을 발전시키며, 철학과 종교를 갖고 있다. 즉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이성적(理性的) 존재’라는 것인데 다른 동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섯째로 아프리카 초원같은 자연 상태에서 동물은 장애자(障碍者)가 없다는 것이다. 장애 동물은 곧 잡혀 먹혀버리나, 인간 사회에서는 장애자가 보호를 받으며, 온전한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여섯째로 인간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스포츠가 동물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동물들이 서로 장난을 하면서 뛰어 놀거나, 때로는 어떤 놀이 물건을 두고서 서로 경쟁하면서 놀이하는 장면을 스포츠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인간들처럼 규칙을 정해놓고 심판이 공정하게 심판을 보면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는 동물에게는 없다. 여섯째, 인간은 인간 상호간에 또는 다른 동물에게도 ‘배려와 나눔의 미덕'을 실천하나, 동물들은 사자가 식사를 다 한 후에 새끼들을 먹이는 행위 등의 같은 종족에게 배려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나, 사자가 다른 동물, 가령 배고픈 하이에나에게 먹이를 양보하거나, 다른 무리의 사자들에게 먹이를 양보하는 일 등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즉 ‘배려와 나눔’은 인간 특유의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이상으로 인간과 다른 동물사이에는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는데,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각을 할까? 생각을 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이에 대한 답변은 한국이 낳은 인간을 넘어서 神의 경지에까지 도달했다고 생각되는 고 안동민씨의 영사 임상 기록(靈査 臨床 記錄)을 살펴보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그의 책 제령(除靈)(태종 출판사, 1975) p81에 보면 ‘전생(前生)에서의 약속‘ 편이 나온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중년의 부인이 안동민님을 찾아 왔다. 원인 모를 중병을 앓고 있는 듯 했다. 소화가 안 되고, 몸이 무거우며 날이 갈수록 탈진해 간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꿈에 갓을 쓴 노인들이 나타나서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는 사라지는 꿈을 자주 꾸고, 또한 밤마다 산비탈에서 손으로 무덤을 파는 꿈도 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래도 죽을 때가 가까워져서 이런 꿈을 꾸는 것 아니냐 하는 자신의 꿈 해몽도 말하면서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순간 그 여자가 빙의령(憑依靈)에 의하여 앓고 있다고 생각되어서 영사(靈査)를 해보았더니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여인의 전생(前生)이 봉천사(奉天寺) 경내의 천정에 살고 있었던 족재비였다는 것이다.
천정에서 늘 스님들의 독경 소리를 듣고서는 이 족재비는 신앙심이 생겼다. 스님이 설법하신 인과율(因果律)과 전생설(轉生說=輪廻 轉生說)을 믿게된
이 족재비는 죽고 난 후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죽기 위하여 끼니를 굶었다. 그러자 스님의 조상령(=수호령 또는 보호령)들이 이 족재비의 정성을 갸륵하게 여기어 이 집안의 후손인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하고, 인간이 되면 동물이 사람이 되므로 정상적인 인간의 생활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스님이 되도록 한다는 약속을 이 족재비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된 후 약속을 어기고 스님이 되지 않았다는데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약속을 어긴 이 여인을 저승으로 데려가기로 하고 이 여인에게 빙의하였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정을 알게된 안동민 님은 조용히 그 조상령들을 설득하였다. 즉 부인은 앞서의 생에서는 족재비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엄연한 인간이고 한 남편의 부인으로서, 남편과 자식들을 돌보아야할 책임을 지고 있는 몸이라는 것과, 이 여인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동물이 인간으로 태어나면 전생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우주 법칙 때문이지, 이 여인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러자 조상령들은 알아듣고 모두 이탈하였다. 그런데,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였다. 제령한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해서 손으로 무덤을 파는 꿈을 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영사를 해보았더니, 놀랍게도 전생의 그 족재비 새끼들이 이 여인에게 빙의되어 있었다. 그 새끼들은 안동민 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물론 영사를 하는 도중에 빙의령이 하는 말이니까, 보통 사람은 들을 수 없는 마음의 대화인데, 놀라운 것은 그 새끼들이 인간과 비슷한 논리(論理) 구조로 말하였다는 점이다. 다음은 책에 쓰여진 그대로 옮겨논 것이다. ‘선생님은 잘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우리 동물들의 세계는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지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굴은 우리 손으로 파서 만들면 되고, 인간을 해치는 들쥐가 우리들의 먹이이고, 또한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들처럼 애써 배우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은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적이 누구라는 것도 알고 있고, 무엇을 먹이로 해야 하는 것도, 또한 먹이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가, 자식들은 어떻게 길러야하는가 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욕심 덩어리 이지만, 우리는 필요 없는 욕심은 없습니다. 인간들은 우리 동물들을 불쌍하게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더러운 공기를 마시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오히려 불쌍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한 것부터가 애당초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를 구출해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상이 그 여인에게 빙의된 족재비 자식들이 한 말이다. 실로 당당한 말이지 않는가? 그러자 안동민씨는 다시 이 족재비 자식들을 설득하였다. '이 부인이 앞서 세상에서는 너희들의 어머니였는지는 모르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것이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 그리고 너희들이 이 여인을 저승으로 데려가서 다시 동물로 태어나게 하려는 것 때문에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 등을 설명하여 주었다. 그랬더니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단 말 이예요’라고 하여 안동민씨도 그만 웃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그 자식 족재비들은 이탈하였고, 그 후 그 여인은 다시는 무덤을 파거나 할아버지들이 나타나는 꿈을 꾸지 않고 정상적인 여자로 돌아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의문점에 봉착하게 된다. 과연 동물들이 앞의 족재비처럼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동물이 인간으로 환생할 경우 과거 동물이었을 때의 기억은 모조리 잊어버리나, 인간이 동물로 환생할 경우는 과거 인간이었을 때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또한 위의 안동민씨의 이야기를 과연 믿을 수 있느냐, 또는 소설이나 드라마 작가들처럼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점이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앞의 경우는 동물이 인간으로 환생하는 예이나, 다음은 인간이 동물과 곤충으로 재생하는 경우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곤충으로 재생한다는 말인가? 턱도 없는 일이다.”라고 말하면서 일소에 붙이고, 읽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그는 과거의 고정 관념에 묶여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응? 그래, 그거 재미있고, 어떻게 보면 엄청난 진실인데---. 과거에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김길태나 강호순같은 자가 참회 없이 죽는다면 “짐승보다 못하다.”라는 옛말처럼 짐승보다 한 단계 아래인 곤충으로도 환생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참다운 진리는 어떤 것이든 받아들인다”라고 생각하는 열린 마음의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첫 번째 경우인 인간이 곤충으로 환생했다가 엄청난 노력 끝에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안동민씨의 책 ‘심령치료’(29) (심령치료, pp120~126, 서울, 태종출판사,1975.) 제 2장 동물 령(靈)들의 암약(暗躍) 에서 ‘닭을 무서워하는 소년’ 편을 보면, “어느 소년이 닭을 몹시 무서워하며, 또한 심한 노이로제로 고생하여 그의 어머니가 그 소년을 안동민씨에게 데려 왔는데, 영사(靈査)를 해보니, 고려 시대 때 고력사(高力士)란 수도승이 설악산에서 죽은 일이 있었는데, 지박령(地縛靈) 되어서 있다가 마침 그 학생이 설악산에 오게 되자 빙의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고력사를 이탈시켜서 노이로제는 치료했는데, 닭을 무서워하는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아서, 다시 영사를 해보니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즉 "그 학생의 전생은 아주 먼 옛날 중국의 주(周)나라 궁궐에 있었던 어느 신하였는데, 아무런 죄도 없었던 신하들을 옥사(獄事)를 일으켜서 많이 죽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재생하는 과정에서 지네로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 지네는 전생이 사람이었으니까, 당연히 자기가 전생에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일부러 닭을 찾아가서 닭에게 먹혔으며, 그렇게해서 죽고 난 후에 다시 태어나고 보면 다시 지네가 되어 있기를 수 없이 반복해서, 이제는 사람이었다는 기억도 희미해질 즈음, 어느 달 밝은 밤에 먹이를 찾아서 밖으로 나왔던 지네는 동구 밖 길가 큰 나무에 방(傍)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방을 읽어보니(전생이 사람이었기 때문에 방을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필자 註), 마침 그 고을 원님이 중병을 앓고 있는데, 고을 명의(名醫)가 말하기를 왕지네를 약제로 쓰면 낫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지네는 빠른 발걸음으로 그 원님 집을 향하여 기어갔으나, 동구(洞口)에 이르러 어느덧 날이 밝아져서 그만 그 곳 닭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안 된다. 나는 사또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라고 소리쳤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닭들이 그 지네를 쪼아 먹으면서 내는 시끄러운 소리에 농부가 달려 와보 니 지네가 닭의 입 속에 들어가고 있었다. 농부는 그 닭을 잡아 지네를 꺼내서 원님에게 갔고 갔으며, 다행히 그 원님은 병이 낫게 되었다. 다음에 그 지네가 다시 태어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까닭없이 눈물을 계속 흘리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안질(眼疾)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안동민씨와 그 어머니와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적어본다면, “‘그럼, 우리 아들이 지네였다는 말인가요?’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장면이 아드님과 관련해서 떠올랐을 뿐이고, 그 것이 사실임을 증명할 길은 물론 없습니다. 아드님이 닭을 무서워하는 것은 닭에게 잡아 먹혀서 모처럼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또다시 지네로 태어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동화 같은 이야기군요. 어쨌든 이 애가 노이로제 상태에서 풀려났으니 감사합니다.’라고 학생의 어머니는 치하(致賀)를 하였다. 그뒤 얼마가 지난 뒤, 이 학생이 완전히 그 전과 같이 되어 학교에 나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주를 지배하는 인과율이 얼마나 엄격한 것인가를 알려주는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한다.”
이상이 인간이 곤충으로 환생하는 예이며, 필자는 이 이야기가 정확한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 다음에는 인간이 개로 환생하여 자기의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예를 살펴보자. 안동민씨의 책 ‘전생을 봐 드립니다’(안동민저, 명문당, 1989) p261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안동민 씨가 체질 개선 연구소를 운영하기 전에는 동민문화사라는 출판사를 경영하였는데, 수금(收金) 관계로 영업 부장이었던 김범룡씨와 함께 부산에 갔을 때의 이야기인데, 그때 H 외판 센터의 박사장을 만났다. 박사장은 저녁 때 술한잔을 대접하겠다는 제의를 하여서, 일행은 박사장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니 마침 흰 스핏츠 한 마리가 달려 나와서 박사장에게 안겼다. 한참 술잔이 오고 가는 도중에 박사장은 안동민 씨에게 ‘안 사장께서는 사람의 전생을 알 수 있다고 하였는데, 동물에도 전생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라고 말해서 "글쎄요, 아직 경험은 별로 없지만 인간이 때에 따라서는 동물로 환생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니까, 동물에도 전생이 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박 사장은 "그렇다면, 우리 포리(스핏츠의 이름)의 전생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 해줄 수 없을까요?" 라고 말하자,"좋습니다. 한 번 노력해보죠."라고 말하고 그 스핏츠를 보자 한 폭의 그림이 거침없이 안동민씨의 마음 속에 떠 올라오는 것이었다. 다음은 안동민씨의 말이었는데, "이 개의 어미는 어느 고관 부인이 프랑스에서 귀국할 깨 가져온 것이고, 아빠는 한국에서 태어난 스핏츠가 아니었던가요?" 라고 묻자, 박사장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아니 그 것을 어떻게 아시죠? 맞습니다."라고 했다. 안동민씨는 계속해서 말하기를,"이 스핏츠는 루이 16세(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왕--필자 註)의 시녀였습니다. 그 시녀는 평생에 개를 지나치게 사랑하여, 개와 더불어 성생활(性生活)을 했고, 사람하고는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의 인격을 모독하고 짐승과 같이 자신을 다루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 스핏츠로 태어난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모두 어안이 벙벙해지고, 그 스핏츠는 갑자기 와들와들 떨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안동민씨가 "라, 브와라, 브네, 이씨=자, 이리 오너라."라고 말하는 순간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안동민 씨에게 오는 것이었다. 다시, "아쎄브, 씰, 브프레=자, 앉아라."라고 하자, 스핏츠는 얌전하게 앉았다. 그러자, "도르메=누워라."라고 하자, 스핏츠는 안동민 씨 곁에 있는 베개를 베고 모로 눕는 것이었다. 안동민씨는 "어떻습니까? 한국에서 태어난 개가 프랑스 말을 알아듣는 것을 보십시오."라고 말하였고, 박 사장은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인간이 동물로 환생한다는 사실을 시인하였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고 안동민 씨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인간과 동물의 전생을 훤히 알아보고, 또한 빙의령을 이탈시키면서, 수많은 영사(靈査) 임상 기록을 남겼을까? 그의 책 내용은 과연 사실일까? 그렇지 않으면 소설가나 극작들처럼 꾸면 낸 이야기일까? 라는 의문점에 관해서 설명해보자. 고(故) 안동민 씨는 서울 태생으로서, 아버지는 소설가 춘원 이광수 님과 막역지우(莫逆之友)사이였으며, 경기 중학교(과거 5년제 중학교)와 서울대 문리대 국어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출발하였으며, 동민 문화사를 설립하여 주로 전집류(全集類)의 책을 출판하였으나, 회사의 운영이 잘되지 못하던 차에, 원래 요가 수련과 정신 수련을 계속한 결과 어느 덧 깊은 깨달음에 도달하여, 사람의 현생과 전생을 읽고, 또한 그 현생과 전생에 얽혀있는 여러 가지 인과(因果)의 결과 빙의(憑依)된 영을 영계로 보내어, 주로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빙의된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던 영각자(靈覺者)였다. 그의 영능력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 경지였는데, 인간의 현생과 전생, 전전생, 그리고 여러 생에 걸친 과거의 전생 기록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빙의령을 그 빙의한 영의 보호령과 빙의 된 사람의 보호령, 그리고 안동민씨 자신의 보호령을 불러서 빙의된 영을 영계로 가게 하는 일을 주로 하여서 병을 치료하고, 염파를 보내서 가령 집나간 자녀를 다시 집으로 오게 하는 등 영능력을 발휘해서 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행복으로 인도하였으며, 4차원의 심령 과학과 우주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법칙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면서, 주로 영사 임상 기록으로 이루어진 책과 다른 책을 합하여 대략 150 권정도 써서 출판하였으나, 정작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고, 필자처럼 영혼, 사후의 세계, 심령과학,---등 정신 현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나 알려졌던 사람인데, 필자가 판단하기로는 과거 예수님이나 부처님과 거의 대등한 영각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깝게 1990년대 중반에 먼 나라로 가고 말았다. 그리고 수 천 년 또는 수 만 년 전의 그의 전생은 우주인이었는데, 그 우주인이 타고 온 우주선은 지금도 지구를 돌고 있고, 안동민씨가 지구에서 해야 할 사명을 끝마치면, 우주인으로 환생하여 그 우주선을 타고 원래의 고향으로 갈 것이라고 그의 책에서 말하고 있다. 그럼 그의 모든 영사 임상기록은 사실일까 허구일까? 우선 그가 전생을 읽고 제령을 하는 심령치료의 이면에는 심령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여러 가지 지식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무당이나 점쟁이 등과는 확연히 다르고, 그의 모든 행동에는 합리적인 설명이 있어서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를 다루는 일을 하지만 지극히 합리적인 영각자로서의 행동을 했다는 점이 다른 일반적인 심령술사 들과는 다른 점이다. 둘째로는 그가 사람들의 현재의 마음과 전생 전전생의 여러 가지 일들을 읽고서, 그것과 연관된 빙의령을 설득해서 영계로 가게 하는 제령을 하고 난 후 환자의 질병이 즉각 치료되었다는 사실이 그의 전생 이론을 믿을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즉 제령에 관한 임상 실험과 임상 기록에 의하여 누구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론에 입각한 믿음을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그가 소설가로서 모든 일을 꾸며서 지어낸 일이지 않느냐에 관해서는, 평소의 그의 말과 행동은 공인(公人)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노출되어 있었고, 심령과학적인 지식이 뛰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의 모든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까지 인간의 영체(靈體) 안에 기록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거짓을 꾸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넷째로는 그의 제령 임상 기록에 관한 책을 보면 무엇보다도 그의 모든 제령 행위에는 증인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그 증인은 일반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빙의령에 의한 질병을 실제로 치료 받았다는 점---등등이 그가 썼던 모든 책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말하게 하는 이유이다. 그러니까 이를 다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A: 영각자 안동민씨(A씨라고 하자)는 한국 서울의 중류 가정에서 태어나서 정상적인 중등교육(경기중)과 고등교육 (=대학교육,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을 받았던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B: A씨는 출판업을 하면서 신춘문예 당선을 계기로 소설가의 직업을 가진 정상적인 상식인(常識人) 이었다.
C: A씨는 요가와 정신 수련을 오랜 세월동안 하여 영체(靈體)가 특히 발달했고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이 와서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頓悟), 즉 별안간 깨닫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됨. 실은 그의 전생이 인도에서 많은 수련을 한 요기(yogee) 였다고 말하며, 또한 외계에서 온 외계인으로서 앞에서 말한 대로 오랜 옛날에 온 UFO가 아직도 지구 주위를 돌고 있으며, 그가 지구상에서 사명을 마치고 그 UFO로 귀한 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했음] 영각자로서의 생을 시작했다 하였다.
D.그는 영어, 일본어, 불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사람으로서 약 150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그의 책은 일본어로 많이 번역되었었다.
E. 그의 영능력은 가히 神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사람의 현생의 과거와 전생, 전전생---등을 읽었으며, 단지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전생과 현생에 얽혀서 빙의된 영혼을 제령을 하는 특수 능력자였다.
F. 그는 진동수라는 특이한 이온수를 만들어서 제령 전 약 100일 동안 마시게 하여, 체질을 변화시켜서 제령했으며 단순히 제령에 그치지 않고, 사람이 매우 건강하게 되도록 하였으나, 대가(對價)는 정해진 약간의 수고료만 받았으며, 수많은 사람을 행복으로 인도한 과거의 성인(聖人) 들의 행적과 비슷한 일생을 살았다.
G. 그의 영사 임상 기록을 통하여 수립한 경험을 통한 심령 이론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인간의 윤회전생에 관한 것인데, 인간이 다른 동물이나 곤충으로 환생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인간이 다른 동물로 환생할 때는 인간이었을 때의 전생을 생생하게 기억하여 매우 괴로워하고, 동물이 인간으로 환생할 경우에는 전생이 기억나지 않아서 주물주의 오묘한 이치를 알게 하였다. 인간이 다른 동물로 환생할 수 있다는 이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불교의 석가모니께서 이미 이야기 했던 내용으로서, 불교에서는 이를 축생계(畜生界)에 빠진다고 하고 있다. 이상이 영각자 안동민 씨에 관한 설명인데, 예수님이 정작 고향에서는 그다지 환대를 받는다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크게 인정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 이치로, 안동민 씨는 한국에서는 그 다지 크게 환영과 인정을 받지 못하였지만, 일본에서는 거의 신적(神的)인 존재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너무 샛길로 빠져서 다시 북한의 주체사상으로 되돌아 가자. 주체사상의 첫 번째 명제인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다.”를 생각해 보자. 우선 주체사상에서는 이 ‘사람’의 개념이 매우 애매모호 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거 Marks 공산주의 이론에서는 저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Marks가 포이엘바하의 인간관을 포기하고 계급적 인간관을 확립했던 바와 같이, 공산주의 이론에서는 인간은 ‘자연적 인간’이 아니고, ‘계급적 인간’이다. 그런데 주체사상에서는 김일성 사상을 밝힌 책 ‘주체사상(主體思想)의 철학적 원리’라는 책의 9쪽에서 사람을 ‘물질적 발전의 특출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자연계에서 벗어난 특출한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하며,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은 계급적 인간이 아니고 분명히 자연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람을 역사 발전에 사용할 때는 갑자기 ‘계급적 인간'으로 둔갑(遁甲)해 버린다는 것이다. 포이엘 바하의 자연적 인간관에서는 이성(理性), 사랑, 의지 등을 중시했기 때문에 Marxs가 이를 포기하고, 계급투쟁 이론을 전개시키기 위해서는 계급적 인간관이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 계급적 인간관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는 솔직하고 분명했는데, 주체사상은 이를 분명히 하지 않고, 주체사상의 근본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모두 계급투쟁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계급적 인간을 마치 자연적 인간인 것처럼 꾸몄다면 이는 위장(僞裝)이요, 거짓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주인에 관하여 검토해 보자. 주인은 ‘자주적인 인간’을 뜻할 때도 있으나, 대개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물건의 소유주’, ‘주종 관계에 있어서의 주인’, ‘대상에 대한 주체’, ‘추종자에 대한 지배자’, ‘피 지배자에 대한 지배자’ 등의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다.’에서의 주인의 뜻도 앞에서 말한 ‘사람’의 개념처럼 매우 애매하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에는 이밖에도 위의 ‘주체 사상의 철학적 원리’ p10에는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 세계의 주인은 세계를 지배하는 뜻의 주인같기도 하고, 운명의 주인에서는 자주적인 인간으로서의 주인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에서는 ‘사람은 자연을 개조하고 사회를 변혁하며, 새것을 창조하는 것이 사람의 역할’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사람은 주인의 개념이 아니고 표현 그대로 인간의 역할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주인’의 뜻이 애매한데, 여기에서 계급투쟁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억지 주장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인을 ‘대상에 대한 주체’라고 해석한다면 주체는 대상을 지배 또는 지도하고, 대상은 주체의 지도를 순순히 받는 입장이 된다. 즉 추체사상에서는 역사 발전에 있어서 인민대중이 추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주체를 따라가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차라리 추체와 주체 사이에 투쟁이 벌어진다면 논리적으로 맞으나, 주체와 대상 즉 주인과 그 주인의 지배를 받고 있는 대상의 투쟁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이리하여 ‘주인’을 ‘대상’에 대한 주체라고 해석하면, 계급투쟁 차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마르크스나 레닌처럼 ‘유물 변증법’의 모순의 이론을 출발점으로 해서 계급투쟁을 이끌어 냈다면, 논리상의 하자(瑕疵)가 없었을 텐데, 어떤 이론 성립 상 가장 중요한 논리상의 하자가 있다는 것은 주체사상 자체가 큰 모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의 두 번째의 명제인 ‘사람은 물질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존재이다.’를 생각해보자. 주체사상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특히 강조하여, “세계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것은 오로지 사람 뿐이다.”(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p10)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세계(=자연계)의 다른 존재들은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인간 이외의 동물계에는 계급투쟁이 없으나 인간 사회에는 계급투쟁이 있다는 것으로서, 그 이유가 바로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이외의 생물, 예를 들어서 꿀벌이나 개미 (또는 늑대 가족, 사자 가족, 코끼리 무리, 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무리지어 사는 많은 동물들도 있다.---나의 註)들이 모두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명제는 생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틀렸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사람은 그 본질적 특성상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사회적 속성을 지닌다.’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 주체사상에서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사람의 본질적 특성인 동시에 인간 고유의 속성(p10)'이라고 강조한다. 우선 자주성에 관하여 생각해 본다면, 이 자주성 역시 인간 고유의 특성이 아니고 다른 동물에도 자주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즉 현대인이 아니고 태고적 사람들의 삶의 양식(樣式)을 생각해 보면, 그 때의 사람들은 동굴에서 살았으며 사냥이나 어로(漁撈)를 하며 살았다는 것은 우리가 학교의 사회 시간에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사항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삶의 양식은 호랑이나 곰 등의 삶의 방식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즉 자주성은 인간 고유의 속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주성의 뜻에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힘은 인간 이외의 동물에도 당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외의 동물들은 먹느냐 먹히느냐의 생존 경쟁과,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남느냐 못남느냐(=적자생존, 適者生存)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인한 자립심 또는 자주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운명의 주인’이라는 자주성은 인간 고유의 특성이 아닌데, 주체사상에서 이를 특히 강조하는 것은 동물 세계에는 없는 혁명 투쟁이나 계급투쟁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창조성(創造性)에 관하여 알아보자. 주체사상에서 창조성이란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인간의 속성(p11)'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바로 ‘목적의식적인 세계의 개조’의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창조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즉 무(無)에서 새로운 것(=有)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우주 창조와 예술가의 작품 창작과 비슷한 개념이다. 그러나 위의 '개조(改造)'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다시 고쳐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개간(開墾) 사업, 간척(干拓) 사업, 고속도로 건설, 터널 굴착 등이 자연 개조 사업에 해당된다. 고속도로의 경우는 평지에 도로를 새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창조라고도 할 수 있어서, 이때는 창조와 개조가 같은 뜻으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오래된 아파트를 리모델링 (remoleling) 하는 것은 가장 전형적인 개조 사업이다.---필자 註] 그러나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발명품을 만들어 내거나, 기업가들이 자연에서 원료를 채취하여 기계를 가지고 인공을 가하여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창조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생산이나 발명이야말로 자연에 대한 주된 창조 활동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에서 창조의 개념을 주로 개조에 국한 것은 이 개념을 주로 역사에 적용하여 ‘사회의 개조’(p29), ‘사회의 변혁(p58)'의 필연성을 도출하여, 이 창조를 정복이나 투쟁의 개념까지 확장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에서는 이 창조성이 인간에게만 있는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고 하나, 인간이외의 동물에도 창조성이 있다는 것이 또한 문제점이다. 예를 들어 개미는 땅 속이나 썩은 나무속에 집을 짓되, 그들의 조직적인 집단생활에 적합하도록 집을 짓는다. 벌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조직적, 위계적(位階的) 집단생활과 산란(産卵)에 맞게 집을 짓는다. 또한 까치는 높은 나무 위에 알을 낳기에 적합하도록 집을 짓고, 거미도 벌레들이 잘 걸리도록 집을 짓는다. 동물들의 이와 같은 집짓기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창조의 개념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동물들의 행위는 창조가 아니고 본능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본능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창조 행위가 아니라고 말을 못한다. (즉 본능적인 창조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은 이들 동물들에 비해서 학습을 한 후에 창조활동을 하니까 학습적 창조 행위라고 할만하다---나의 註) 다음은 의식성(意識性)에 관하여 알아보자. 주체사상에 있어서 의식성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즉,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조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인간의 속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철학적으로 매우 애매한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의식성이란 외계를 인식하고 외계(外界)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속성’이라고 표현함이 적절할 것 같다.
그러나 주체사상에 있어서 의식성이 사람 중심론의 주요 개념이라면, 이 의식성이 종래의 의식성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그런 설명은 없고 위와 같이 철학적으로 매우 애매한 정의만 내리고 있다. 그런데 이 의식성이 인간에게만 있느냐 하는 점인데, 이는 상식적으로 어떤 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반응할 때 의식이 작용하지 않는 동물은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실험을 통하여 식물도 의식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현재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식물들에게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의 음악을 식물에게 들려주어 식물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작물법을 실제로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나의 註) 심지어 최근의 연구 결과는 물질의 기본 단위인 소립자에도 의식이 있다는 것이 일부 물리학자들에 의하여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로 주체사상에서는 의식성이 인간에게만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이 것 역시 인간 사회에만 있는 계급투쟁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상이 승공 연합에서 펴낸 ‘김일성 주체사상 비판’의 내용을 대충 요약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주체사상의 핵심 요소인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우리 인간에게만 있는 고유의 속성이 아니고, 타 동물들에게도 있는 동물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임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게는 없고 인간 사회에만 있다는 ‘계급투쟁’이나 ‘혁명투쟁’의 논리적 근거가 허구(虛構), 또는 잘못된 진실이 되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계급투쟁 이론도 결국 잘못된 틀린 이론이라는 것이다.
자 이쯤해서 남북관계에 관한 글을 마칠 때가 되었다.
북한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핵을 포기하고, 시장 경제를
허용하며, 외국인의 투자를 최대한 유치하여 경제를 활성화하
는 일인데, 정작 북한은 현재 이와는 반대로 거꾸로 가고 있
다 할 수 있는데, 이는 유일사상의 잘못된 철학 사상에 집착
한 잘못된 정치 행태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전쟁 상황은 절대
로 조성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말한다면, 전번에 미국 클린턴
전(前)국무장관이 밝힌 바대로 북한은 현재 1~6기의 핵무기
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 2022년은 아마도 수 십 기로 증가 했을
것으로 추정함)
또한 1961년부터 ‘화학화 선언(化學化
宣言)'에 따라서 화학 무기를 약 2,500톤~5,000톤을 보유하
고 있다하는데, 이는 미국,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양이며, 생
물학 무기 즉 세균 무기도 다량 보유하고 있으며,약 20만에
달하는 특수부대(남한
의 특전사와 같음) 요원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전력이며,
휴전선 일대에 배치된 장(長) 사정거리 포는 너무나 위협적인
전력으로서, 미사일은 대공(對空) 무기로서 방어할 수 있으나,
포탄은 방어하기가 매우 어려운 무기이고, 북한의 많은 수의
잠수함 전력은 매우 위협적이며, 전번 서해 천안함 사건으로
뉴스의 전면에 등장한, 어뢰를 한두 개 장착할 수 있는 소형
잠수정도 무시할 수 없는 무기가 되고 있다. 즉 현재의 남북
한의 파괴 능력은 6.25 전쟁 당시와 비교해서 약 20배 수준
이라고 한다. 따라서 남북한의 전쟁은 완전 파괴와 전멸의 과
거 지구 역사상 아틀란티스와 무 제국간의 전쟁과 비슷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끝으로 고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때 썼던 한시 한수를 옮기면서 이 글을 마친
다.
*南北 頂上 會談
分斷悲劇半世紀 분단의 비극은 반 世紀인데
解氷和解天機來 解氷 화해의 天機가 찾아왔네.
南北頂上相見禮 남북의 頂上들이 相見禮를 행하니
坊坊曲曲祝聲杯 방방곡곡에 축배의 소리있네.
離散家族再相逢 이산 가족들은 다시 相逢하니
經協互惠施恩齊 경제 협력하고 서로 혜택주어 널리 恩惠 베푸네.
世世永永無窮國 世世 永永토록 無窮한 나라여
天下槿國念祈世 天下의 槿國을 世上에 念願, 기도하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