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가 다섯 개의 마을, 친퀘테레
여행을 시작하기 전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던 때에 같이 공부하고 있던 형이 친퀘테레를 추천했다. 너무 좋아서 몇 번을 다녀왔지만 또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당연히 이탈리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던 나는 친퀘테레로 가기로 했다. 독일에서 출발하여 스위스를 지나 친퀘테레를 찍고 프랑스로 남부로 넘어가기에 나쁘지 않은 동선이었다. 친퀘테레를 검색도 해보지 않고 무작정 구글지도에서 해변가 큰 도시들 이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이름의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다. 친퀘테레는 지명이 아닌 다섯 개(친퀘[cinque])의, 마을(테레[Terre])이라는 뜻이었다.
지금은 다녀온 사람들도 많고 정보가 꽤 많은 듯하지만, 당시에는 정보가 비교적 많지 않았다. 몬테로소(Monterosso al Mare), 베르나차(Vernazza), 코르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리오마조레(Riomaggiore) 이렇게 다섯 개의 마을이다. 해변가의 다섯 개의 마을은 그 전경이 아름다웠다. 특히 해가 지고 나서의 모습은 ‘내가 진짜 유럽에 있구나’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첫 마을이었던 몬테로소와 마지막 마을인 리오마조레였다. 최근에는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Pisa)에서 리오마조레를 방문하는 루트로 많이 가면서 리오마조레부터 여행을 시작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지만, 나에게는 몬테로소가 첫 마을이다. 그만큼 인상 깊은 여행지였다.
먹으면서 행복해지는 여행의 시작
몬테로소에 도착한 우리는 전망이 좋은 해변가 카페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는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커피를 선택함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이라 에스프레소(나중에는 이걸 왜 진작 안 먹었을까 싶을 정도로 이탈리아의 커피는 맛있었다)의 맛을 알지 못했기에 그나마 무난한 라떼 마키아또와 크루아상을 시켜 먹었다. 유럽은 어딜 가나 빵이 맛있는 편이었는데, 이탈리아 커피와 함께 먹으니 정말 환상이었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먹으면서 행복해지는 여행이. 간단히 먹고, 바로 근처에 있던 해수욕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다 바다에 들어가니,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치 수영장처럼 바닷속이 훤히 보였다. 정말 맑은 물에 작은 물고기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보였다.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신기하고 신이 났다. 이래서 전 세계 이탈리아 바다로 놀러오는구나 싶었다. 신나게 놀고 나니 허기가 졌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가는 길에 마침 젤라토 집이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스크림 귀신이지만 평소였다면 밥을 먼저 먹고 먹을 디저트였다. 하지만 그때는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탈리아 젤라토였기 때문이다. 식사에는 진심이 아니었지만 디저트에는 진심이었던 나는 정말 행복했다. 컵에는 분명 두 스쿱의 젤라토가 있었지만 없어졌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너무 맛있어서 사라지는 젤라토가 너무 아쉬웠다. 그때부터였다. 매끼 젤라토를 챙겨먹게 된 이유가. 젤라토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먹는 것에 큰 기대가 없었던 우리는 갈 곳이 애매해 이탈리안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는 당연하게도 파스타. 이것은 행운이었다.
그동안 먹은 파스타는 파스타가 아니었구나, 그저 토마토 소스가 올라간 면이었구나 싶었다. 가장 기본적인 토마토 파스타를 시켰음에도 면의 느낌이 달라서인지 너무 맛있었다. 탱글하면서도 쫀득한 면이 이전에는 먹어보지 못한 맛이었다. 늦은 점심이었던 우리는 너무 맛있어서 그 자리에서 하나씩 더 먹게 되었다. 이렇게 맛있는 파스타를 왜 이제야 먹게 되었을까, 이탈리아에 온 지 며칠이 지나서야, 이탈리아에서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야 하며 아쉬워했다(이후 프랑스 니스에서도 파스타를 먹어 봤지만 그 맛이 아니었다). 그렇게 옆에서 두 접시씩 먹고 있으니 신기했는지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중년의 여성분들이 말을 걸어왔다. 몬테로소에 처음 도착했을 때 동양인은 거의 없다고 느꼈었는데, 그래서인지 동양인인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그들은 미군이었고, 휴가 중에 이곳에 왔다고 했다. 과거에 주한미군으로 근무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듣고 반가워서 말을 걸었던 것이다.
마침 호주에서 오래 살았던 일행은 이곳에 미국인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고,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 미국인이라고 해서 의아해했는데(지나가는 영어도 다 들려서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유명한 작가의 책에 친퀘테레에 대한 여행기가 있어서 그것 때문에 유명세를 타 미국인들이 많은 것이었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하고 서로 좋은 여행되길 바란다며 인사 후 그들은 먼저 일어났다.
여행 계획 살아가는 즐거움이 된다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들과 새로운 경험들은 아직도 그때를 추억하게 하는 것 같다. 사실 여행을 할 당시에는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아서 하루하루 숙소를 옮겨 다니며 힘들기도 했지만(하루는 숙소를 구하지 못해서 캠핑장에서 자기도 했다) 힘들었던 경험은 오히려 진한 추억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 등 여러 국가들을 더 다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이탈리아의 여행기를 부족한 글쓰기 실력으로 두서없이 나열해보았다. 코로나 시국에 시작한 나의 법원 생활은 이제야 조금씩 회복이 되어가고 있다.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도 이제는 점차 제약이 풀려가고 있다. 그동안 지친 일상에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다. 앞으로 일상이 회복되면 다시금 여행을 계획하며 또 살아가는 즐거움이, 힘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