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의 복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10절).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세상의 영광과 부를 얻고 시련이 없는 생애를 맞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하시는 대신에, 세상이 그들을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함께 극기와 굴욕의 길을 걷는 특권을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잃어버린 세상을 구속하기 위하여 오신 그분은 하나님과 인간의 적인 원수들의 연합 세력에 부딪히게 되었다. 악한 사람들과 악한 천사들은 단숨에 해치우려는 마음으로 동맹을 맺고 평화의 왕을 대적하기 위하여 대오를 가다듬었다. 그분의 모든 언행이 하나님의 자비심을 나타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같지 않은 그분의 모습이 더할 수 없는 적의를 품게 했다. 그분은 우리의 본성에 속한 악한 정욕이 발휘되도록 방종을 허락하지 않으심으로 가장 격렬한 반대와 적의를 불러일으키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도 그와 같다. 의와 죄, 사랑과 증오, 참과 거짓 사이에는 억제할 수 없는 갈등이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결의 미를 나타낼 때, 그것은 사단의 나라에 속한 백성을 빼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악의 왕이 그것을 대항하기 위하여 일어난다. 박해와 치욕이 그리스도의 정신에 젖어 있는 모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박해의 성격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그 원칙 곧 그 아래 깔려 있는 정신은 아벨 시대 이후로 지금껏 주님의 택한 자들을 살해해 온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고자 애쓸 때, 그들은 십자가에 대한 공격이 그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하늘의 법칙에 순종하는 모든 자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대오(隊伍)를 벌이고 있다. 그러므로 핍박은 슬픔의 원인도 되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시련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겠다고는 약속하지 않으셨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약속하셨다. 그분께서는 이런 말씀들을 주셨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명기 33장 25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린도후서 12장 9절). 만일, 그대가 예수님을 위하여 시뻘겋게 단 풀무 속을 지나가도록 요구당한다면, 그분께서는 바벨론에서 진실한 세 사람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그대 곁에 계실 것이다. 구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그분과 함께 굴욕과 치욕을 당할 때마다 기뻐할 것이다.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그들은 그분을 위해 받는 고통을 달게 여긴다.
각 시대를 통하여,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해 왔다. 그는 그들을 고문하고 죽였으나, 그들은 죽음으로써 승리자가 되었다. 그들은 확고 부동한 믿음으로 사단보다 더 강하신 분을 나타내었다. 사단은 고문하고 몸을 죽일 수는 있었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생명은 건드릴 수 없었다. 그는 감옥의 벽 속에 감금 시킬 수는 있었으나 정신은 속박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둠 저편에 있는 영광을 바라볼 수 있었기에 이렇게 말 할 수 있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장 18절).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린도후서 4장 17절).
하나님의 영광 곧 그분의 품성은 당신께서 택하신 자들에 의해 시련과 핍박을 통해 나타난다. 세상의 미움과 핍박을 받는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게 된다. 그들은 세상의 좁은 길을 걸으며, 고난의 도가니에서 정결하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동안 쓰라린 투쟁을 경험한다. 그들은 극기를 감내해야 하며 처절한 실망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죄의식을 일깨워 주고 죄로 인한 비애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므로, 그들은 죄를 가증하게 보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됨으로 그들은 그분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 선지자는 거룩한 이상(異像)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승리를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이 있고 …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 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요한계시록 15장 2, 3절).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요한계시록 7장 14, 15절).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11절).
사단은 타락한 이후 기만을 통해 활동해 왔다. 그는 하나님을 그릇되게 나타내 온 것처럼, 그의 대리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릇되게 나타내고 있다. 구주께서는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시편 69:9)고 말씀하신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훼방이 미치게 된다.
대중과 함께 어울린 사람들 중에서 인자보다 더 혹독하게 비방을 받은 사람은 없다. 그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원칙에 변함없이 순종하였기 때문에 조롱을 받고 모욕을 당하셨다. 그들은 까닭 없이 그분을 미워했다. 그러나 그분은 원수들 앞에 태연하게 서서 비난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받을 유업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표명하시고,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악의 화살에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치시며, 핍박을 당하더라도 실망하지 말도록 권면하셨다.
비방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수는 있으나 품성을 더럽힐 수는 없다. 품성은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신다. 우리가 범죄하고자 마음먹지 않는 한, 사람의 능력이든 사단의 능력이든 간에, 심령을 더럽힐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심지(心志)가 견고한 사람은 가장 고통스런 시련과 가장 절망적인 환경에 놓일 때에도 번영 중에 있을 때 곧 하나님의 빛과 은총이 그에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일 때와 동일하다. 그의 말과 동기와 행동이 잘못 전해지고 왜곡되게 알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성패가 걸린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두기 때문에 그런 일을 개념치 않는다. 그는 모세와 같이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하여(히브리서 11장 27절) 참으며,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고린도후서 4장 18절)을 바라본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것들이 사람들에 의해 오해를 받고 누명을 쓰고 있는지 훤히 아신다. 그분의 자녀들은 아무리 심한 모욕과 경멸을 당할지라도 인내와 신뢰를 보이며 조용히 기다릴 만큼 여유가 있다. 그것은, 드러나지 아니할 비밀이 없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그분께 높임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분께서는 당신의 청중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야고보서 5장 10절)으로 보여 주셨다. 아담의 자손 중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아벨은 순교자가 되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 노아는 광신자요 민심을 소란케 하는 자라는 조소를 받았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히브리서 11장 36, 35절)다.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 택함을 받은 사자들은 욕을 먹고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국외로까지 널리 퍼져 나갔다.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은 이 대열에 가담하여 동일한 사업에 투신해야 하며, 그 사업의 원수들이 진리를 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리를 위하여 일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리가 정면에 나타남으로 모욕을 받을지라도 그러한 일을 통해 그것이 연구와 검토의 주제(主題)가 되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의 마음은 동요되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논쟁과 비난, 그리고 양심의 자유를 속박하기 위한 모든 시도는 깨우지 않으면 잠들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일깨워 주는 하나님의 수단이다.
하나님의 사자들의 역사에서 이런 성과가 있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고상하고 웅변가인 스데반이 산헤드린 회의 충동으로 돌에 맞아 죽었을 때, 복음 사업에는 전혀 손해가 없었다. 스데반의 얼굴을 영광으로 물들게 한 하늘의 빛과, 그가 죽으면서 드린 기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은 곁에 선 완고한 산헤드린 회원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는 예리한 화살과 같았다. 그리고 또, 핍박하던 바리새인 사울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택함을 받은 그릇이 되었다. 오랜 후에, 노령의 바울은 로마의 감방에서 이런 편지를 썼다.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빌립보서 1장 15-18절). 복음이 바울의 수감을 통하여 널리 전파되었으며, 그 결과 가이사의 궁전에서까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썩지 아니하는(베드로전서 1장 23절) 말씀의 씨는 오히려 그것을 없애려는 사단의 노력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뿌려진다. 그분의 자녀들이 받는 비난과 핍박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이 찬양을 받게 되고 영혼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
비난과 핍박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은 크다. 백성들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의 상급을 가리켜 보이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 상급을 전적으로 내세에서만 받게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세상에서부터 받기 시작한다. 여호와께서는 옛날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세기 15장 1절)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상급이다. 사람은 여호와 임마누엘, 곧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고,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골로새서 2장 3, 9절)는 분의 특성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마음을 더욱 넓게 열 때 그분과 조화를 이루게 되고, 그분을 알고, 그분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깨달아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부를 소유하며,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에베소서 3장 18, 19절) 하심을 더욱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이사야 54장 17절).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에 하나님께 찬미하고 기도할 때,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이 기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곁에 계셨으며, 그분의 임재의 빛은 하늘 궁정의 영광으로 어둠을 밝혔다. 로마에서, 바울은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차꼬를 차고 있다는 것도 잊고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립보서 1장 18절). 그리스도께서 산상에서 하신 바로 그 말씀이, 핍박을 받고 있는 빌립보 교회에 보낸 바울의 기별 가운데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장 4절)는 말로 울려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