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문학 21호 원고
들꽃나영
귀를 닫다
들리는 소리
믿을 수 없는 소리
마음에는 물음표만 남았다
어제 귀를 막았는데
아침에 새들은 여전히
시끄럽게 울고 있다
오른쪽 귀를 열어야 하는지
왼쪽 귀를 열어야 하는지
다 들으려니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고
전부 막으려니 답답하다
아버지
낡은 서랍에서 손 때 묻은
산 호두를 훔쳤어요
문갑 위 코끼리 한 마리도
기꺼운 허락은 받고 내 책상으로 옮겼지요
계집아이라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셨지요
푸르른 그 피를 받았으니
그 무엇도 부럽지 않습니다
어느 날
선물한 붓 한 자루
아버지의 벼루 통 안에
곱게 숨 쉬고 있습니다
천둥 번개에도 흔들리지 않는
질긴 뿌리에 감사합니다
버르장머리
다른 사람을 바꾸려하는가
내가 나를 바꾸기도 힘이 드는데
어찌 상대를 바꾸려 하는가
이름도 근사하게
고쳐준다고 아웅다웅 싸움질이라
옳다 그르다 패악질로 따지다 보니
옛사람 황희 정승이 생각이 난다
너도 맞다
니도 맞다
그대도 맞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는 바꾸면 좋지만
상대를 바꾸려 하면 할수록
마음만 거칠어진다네
짝사랑
분주한 일과 속 그네들은 바쁘다.
이름도 잊은 채 살아가는
날들이 몇 날이었나
그는 이름만 아들이다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은 지 오래다.
플라타너스 이파리 속 까치들 노래에
화들짝 반가워한다
문득
녀석이 오려나
소식을 들려주려나
그 흔한 전화로 들려주는 목소리도
꼬깃꼬깃 접어서 감추어 두었다
전화도 허탕치는 날
달력에 오늘을 엑스로 그렸다
특별한 날이니까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소고기를 듬뿍 넣은 미역국을 꾸역꾸역 먹었다
가족이 모여서 밥을 먹은 지가 언제인지도 모른다
쓸쓸한 생일날
카톡으로 파리에서 빵이 배달되었다
카뱅크에서 축하머니가 날아왔다
온 종일 핸드폰은 뜨겁다
드륵 드륵 까꿍 까꿍
핸드폰에 사랑이 수북이 쌓였다
느껴지지 않는 빈 사랑이 더욱 씁쓸하다
그래도 퍽 운수 좋은 날이다
달력에 별 다섯 개를 그려 넣었다
물 같은 사람
너의 눈 속에
내 얼굴 비칠 때
너의 눈빛이
나를 다 가져갔을 때
또렷이 들리는
내 안의 환희
너의 소리가
나를 편안하게 할 때
어느새
너의 노예가 되었구나
무한히 넘쳐나는
내 마음은 활화산
고르디우스의 매듭
몸은 하나 마음은 갈래 갈래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니까
얼굴은 붉게 얼룩이 진다
마음이 머릿속에서 여러 갈래로 엉키고
설키어서 분화하고 있는 중이다
거듭 가지치기도 하고 가지가 천 갈래 만 갈래이다
두통이 심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어느날엔가
어디로 가는지 모를 마음을 잡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사로 잡혔다
이기고 지는 것도 없이 끝없이 매듭을 잡고
만지작 거렸다
가만 조용히 매듭을 자르고 나서
마침내
마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술수를 부리고 잔꾀를 썼지만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은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한 생각 놓아버리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알랙산드로스의 짜증을 베어내며
잔잔한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글 무당
연필을 벗 삼아서
한바탕 놀아보세
신명이 올라오면
내면의 굿판에서
제대로 몰아내고서
뒤풀이를 하리라.
흑진주
눈 뜨면 밀려오는
시리디 시린
소금물
아픔이 키워 낸
아주 작은 점 하나
조용히 키워가는
아픔의 결정체
어둠의 방에서
겪어내는
작은 몸부림
끝내는 아무도
깨지 못하는
단단한 심장
익선동에 가면
무지갯빛 색깔이 있다
소박한 간판이 있다
관광객이 있다
외국인이 있다
향토색 짙은 맛 집이 있다
소박한 한국의 정서가 있다
연인들 가족들 사랑이 있다
낡은 기와지붕에는
옛사람들이 보인다
나비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아지랑이빛 꿈들이 날개를 달고
아롱아롱 넘실거리는 이 곳
낯선 이방인들도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긴다
숫자놀이
하나에 하나를 더하니
넷이 되었습니다
하나에 하나를 빼고
하나에 다른 하나를 더하니
셋이 되었습니다.
하나가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고
시간의 흐름은
아주 자연스럽게
더하기와 빼기를 반복합니다
소통
부모 자식 간에도 소통이 안 될 때가 있다.
A로 이야기 하면 B로 알아듣고 대화를 하면서, 서로가 의견을 이야기 하다보면 부모는 억누르려고 하고, 자식의 입장에서는 계속 우기니 반항하는 것 같고, 침묵이 흐르다 보면, 어른들이 바뀌지 않음을 알고 관계가 소원해진다. 그래서 서로 대화하기를 두려워한다.
제일 가까운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의 부재는 대화 단절로 이어진다. 또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면 만나는 횟수를 줄인다. 가끔씩 전화로 안부 묻기도 꺼리게 된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나중에는 전화하는 것도 큰마음 먹어야 하게 된다. 또 안부라도 묻고 나면 대화마저 중단이 된다. 이럴 때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한 세대를 건너뛰면, 부모는 손자를 마냥 어여뻐하게 되고 교육은 부모에게 맡기고 오로지 사랑만으로 대하니 그나마 대화가 된다.
손녀는 부모님의 안부를 전하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안부도 묻고 세대를 뛰어 넘어서 사랑을 이어준다. 할아버지는 대학생 손녀에게 한 달에 한번 용돈을 주며, 한 달에 한번 전화를 요구하고 손녀는 용돈을 받았으니 날짜에 맞춰서 전화를 한다. 계산적인 것 같지만 아주 이치에 맞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전자제품은 6개월마다 신형이 나온다. 1년이 지나면 구형이 되어 헐값에 팔리거나 세일을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들의 세대 차이도 빠르게 나타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빠르게 5년 이내로 급격히 세대 차이가 남을 느낄 수 있다. 나이든 사람이 세대 차이를 조금이라도 덜 느끼려면 빠르게 변해가는 컴퓨터 기기와 핸드폰 조작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배워야 한다. 외국의 영화와 지금 유행하는 영화를 보고 젊은이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무엇이 그들의 관심사인지 알아가지 않으면 꼰대 소리만 듣는다. “나 때는 말이지” 이런 말을 극히 삼가해야할 이야기다. 젊은이와의 대화에서 따돌리지 않으려면 현대사회의 문제점과 시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엄마는 몰라”,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자녀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대화에서도 밀려나는 세대가 되고 만다.
어른으로서 권위와 체면만 앞세우지 말고 지금의 MZ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을 하며 열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때이다.
정(情)없는 사회
반려동물을 가족보다 더 사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보릿고개 때는 굶주리고 살았던 우리 부모님 세대에 비하면 한층 편리하고 괜찮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치열한 경쟁과 비교되어 상대적 박탈감으로 힘이 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간섭받기도 싫어하고 간섭하기도 싫은 그야말로 차가운 세상이 되었다.
정이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우리는 정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질이 풍부할수록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서인지는 모르지만, 행복지수가 낮아지고 있음을 우리는 느낀다. 정은 사랑보다 깊고 오랜 세월 동안 쌓이는 것이고 쌓아가는 것이다. 사랑이 달콤한 사랑에 비유된다면, 정은 감칠맛이 나는 된장이나 치즈 같은 발효 식품에 비유될 것이고, 사랑이 겉절이 맛이라면, 정은 묵은지처럼 오랜 시간이 흘러서 숙성이 되어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그런 것이다.
갖고 싶었던 물건을 용돈을 모아서 여러 날 수개월에 걸쳐 기다리고 기다려서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가졌을 때 얼마나 행복했던가? 지금은 부모님이 카드를 주면 소소한 어떤 물건이라도 살 수 있지 않은가? 세대가 달라질수록 가치관과 생활태도 등 현격한 차이를 느낀다.
정월의 세시 풍속의 변화도 10년을 기준으로 보면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조금씩 변화해 왔지만 2023년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정말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명절날 새 옷을 입고 큰집 작은집 세배를 하러 다니고 세뱃돈을 받았던 어린 시절은 기억 속의 일이다. 지금은 설날 해외로 여행을 가고 가까운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영화를 보고 맛 집으로 맛 여행을 하는 시대이다.
차가 밀려서 오랜 시간이 걸려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고향으로 가던 것도 이제는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에 따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쇼핑몰이나 카페가 늘고 있다. 생활의 변화라고 치부하기는 씁쓸한 면도 없지 않다. 어떤 카페에서는 부모님과 갔을 때 눈치를 봐야 하는 곳도 있다. 데이트를 하는 남녀의 문화에서도, 수줍게 차 한 잔을 마시고 음식점에서 소박한 식사를 하던 세대와 현재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빠르게 받아들인 서구문화 때문인가?
편리함과 개인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합리적이지만,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과, 경로우대 사상과 효의 개념이 빠르게 퇴색되고, 자기중심적 개인주의와 이웃이라는 개념이 무색해지고, 사람과 사람이 교감하기 보다는 강아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며 부족한 사랑을 대신하는 것은 조금은 안타깝다. 물론 반려동물이 주는 정서의 안정과 교감을 전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순위로 보면 사람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넘쳐나는 미래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약력
들꽃나영 (김나영)
경북 봉화에서 태어남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 국문학 전공
2017세계환경문학 등단
저서. <들꽃의 노래>, <그것도 사랑>, <들꽃의 일기>
첫댓글 들꽃나영님의 풋풋하고 싱싱한 느낌의 시편들과 울림 큰 산문들 감사드립니다~
오타 달콤한 사탕(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