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안케전투는 참전용사들의 마지막
적전지,638고지에서 목숨걸고 싸웠던 상처의
흔적을 우리는 잘 기억하며 되새겨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십자군으로
월남전투에 파병되어 잘 싸우고 돌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43년전 그때를 회상해 봅니다.
1972년 4월 10일, 맹호 기갑연대 제5중대는
작전 출동 명령을받고,쌍 프로펠러 시누크헬기에
탑승하여,*안쭝산계곡/번개작전에 투입되기위해
병력 5/86명이 출동했습니다.
죽음의 계곡으로 소문난 현지에 도착, 안쭝산 어느한편 넓은 개활지,집결지에 도착한 전 병력은 산개하여 경계및 휴식을 취하던중, 우리는 영문도 모른채,*황급히 철수하여...,
중대 기지로 복귀했다. 해가저믄지 오랜시간
어둠이 짙터온 늦은시간 밤이였다.~
아닌게 다를까!. 다음날인,1972년 4월 11일
제5중대는,UH -1H헬기 수십대에 탑승하여
기갑연대 1대대 1중대기지(소도산 중대)에,~
렌딩하여(오전11시경)그때부터 작전은 전개
됐다. 만반에 준비상태를 갖추고,*638고지를
향해 진격했다.
적 에게 포위당해 고립돼있는,*정태경 대위
6중대를 구출해내기 위한,490무명고지 낙타봉
적 월맹군 소탕작전이다.
638고지 남동쪽으로 길게뻗은 능선, 중간지점
490무명고지 적진을향해 진격했다.
그때부터 죽음을 각오한,*개전은 시작되었다.
제5중대는,*4차에 걸쳐 490무명고지 탈환시
까지의,*전면전(공방전) 과정과 피해상황은
이 글의 앞전에 2편의 글은 썼습니다.,
중복되어 생략합니다.~ - -
4차에 걸쳐 월맹군과 전면전이 벌어졌으며,,,
제5중대는,*개전 8일만에,*72년 4월 19일
여명공격으로,*490무명고지를 탈환하여
유리한 고지점령으로 전투지대 확보및고지사수
와 지역확보로 진지강화를 위한 경계및 참호
구축에 들어갔다.
다음날 공백중인 소대장 보충요원이 잔득
기장돼 보이는 후임소대장 1명이,490고지에
도착했다.~ 3소대장,*이강열 중위 전사(공백)
2소대장,*권성진중위 팔 관통상으로후송(공백)
관측장교;한정삼중위 전사(공석)그외많은병사들!
잔득 긴장한 표정으로 도착한 보충소대장!
계급장없이 완전군장에..., UH -1H헬기로
490무명고지에 렌딩했다.
나는,~ 병사인줄 알고 한참동안 반말로 상황을
이야기해 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
언제왔느냐등 반말로했다. 얼마후 이야기하다
*소대장이라고 했다.(중위 였다),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야기 도중, 맹호사단 사령부 연병장에서
곧바로 헬기타고 왔다고 한다.
원래는 사단 보충대에서, 2주간 대기하며 제반
적응교육을 받고 자대배치된다.
그런데 얼마나,*긴박하고 맹호사단이 사기가
떨어졌으면...,*정득만 사단장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훈시가, 5분만에 끝났다고,~
너희들은 살아서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마라!.*안케,638고지 전투는 반듯이 승리
하고 말것이다."이상" (훈시끝.) 신임 소대장이
긴장된 표정에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제5중대의 전투과정과, 승리과정, 피해상황은
앞전에,~ 2편에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상기할수있는 내용입니다.
피로 어룩졌던, 우리 5중대에서 살아남은
전우 여러분!. 용사님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내가 속해있던 5중대 화기소대,81mm 박격포
포반원은, 주; 2 ~ 3회 도로정찰, 지뢰탐지기
2대 가지고,*빈케읍 까지 나갑니다.
우리 2대대장님이, 5중대 기지방문이 예정되면
키 크신,*한영수 중령님,,, 도로정찰은 서로들
나갈려고 합니다.(키작은 포사수, 뚱뚱한 탄약수)
왜? 도로정찰 나가면, 월남인, 민간인을 볼수
있기때문, 게다가,*꽁까이도 볼수있으니까!
고참들이 주로 나갑니다. 나는 항상
인솔자 입니다.~ - -
●기갑연대 제5중대 기지의 정체는?
그때는 자유월남,~ 빈딩성, 퀴년시 빈케읍에서
약 4 km 떨어진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사방으로 광활한 초원지대로, 기지 주변엔
소떼들!. 약 600여 마리의 소떼들이 지나 다녔고
꼬마 목동들이 소떼를 몰고 다니는걸 봤지요.,
그렇습니다. 피와 땀으로 맺어진, 제5중대
전우님들!!!.~ 2소대장 권성진 중위,*팔 관통상,
오른팔에 관통상 입고도, M - 60엄호사격에
격분하며 혼신을다하던,*안하사, 분대원 잃고
전사, 부상자 많아,*넋이 나갔던...,
나이 어리고, 체구가 작았던,*김윤식 하사는
(정신 때문에)후송 갔는데...,
한정삼 관측장교 전령 울음소리가 잊혀지지
않습니다.상관으로 모시던, 한정삼 중위가
처절하게 전사한 그자리, 참호속에서 그렇게
슬피울던 병사(일병)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 병사 생각이 납니다.
그외도 이름들을 기억못하지만 전사한 병사들
부상당한 많은 병사들이 생각납니다.
명복을 빌고, 위로를 보냅니다.~
*전우의 영혼(님 그리워...)란 추모의 노래가
영혼이되어 하늘나라에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잘생긴!. 미남중대장 ; *안영소 대위 5중대장
후임으로 부임한 학군출신,*계인용 대위님!.
내가 귀국하면 중대기지 방어가 불안하다고
나를,~ 귀국하지말고 연장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던,*계인용 중대장님!.~
안케전투시 490무명고지 공격시, 8부능선까지
단독 공격으로 유명했던,*함박코 M -30 유탄
발사기 사수!. 딸기코에 코가 주먹만해서
별명이 함박코 였습니다.
기타 잘치던,*김춘호 병장, 털보 이세기 상병,
그외 이름들이 생각나지않는 소대원들!!!.~
화기소대장 님은 귀국 말년이라,*안케전투에
참전하지 않고, 중대기지를 지키는,*잔유대장
으로,,, 기지에 남았지요.,(공석이였던가 아리송)
화기소대원들 건강히 잘 살고있으며, 노년을
잘 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합니다.~ - -
감사합니다.~ 기갑연대 제5중대, 화기소대
81mm 포반장(당시 24세, 육군하사)
●파월가수/군인가수 정연후(올림).
* 010 - 5210 - 2871#
첫댓글 아! 아! 아소리밖에 안나오네요. 처참했던 그모습이 그려집니다. 고귀한 체험담 정연후 군인가수 전우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이 글을 마음 정리하여 올리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나중에 또 댔글 올리겠습니다. 몇일전 연평해전 보고 감정이 격해 한없이 울었는데 오늘 이글 보고 전사 전우들 생각에 눈물이 나네요. 아 노년에는 조그만 감정이 그저 기억력은 잃어가고 서글프네 그때 그 상처
2대대 한영수 중령님은 그뒤에 베트콩 오인으로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어 도중에 본국 귀국을 당한 것으로 압니다
기억이 새롭게 피어나네요~5중대 대원들을 찾느라 수고 하시는 모습도 선합니다,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글도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