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민낯 - 석유 피를 부르는 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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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09.16. 03:40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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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민낯
석유
피를 부르는 원료
요약 땅속에서 천연으로 나는 탄화수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가연성 기름. 검은 갈색을 띤 액체인 천연 그대로의 것을 원유라 하는데 이것을 증류하여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석유 피치, 아스팔트 따위를 얻는다. 동력의 연료와 공업용으로 널리 쓴다.
석유, 20세기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보급품
20세기 초 일본에서 몇 개의 유전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유전의 채굴량이 국내 수요를 감당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초라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뒤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
20세기 전쟁에서 석유란 없어서는 안 될 보급품이었다. 석유 없이는 전차도 비행기도 함대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ABCD(미국, 영국, 중국, 네덜란드) 포위망에 고립된 일본군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당시 일본의 대미 석유 의존도는 80%였는데 미국이 일본에 대한 수출을 금지하고, 다른 나라를 통해 석유를 공급받을 항로도 봉쇄하고 나니 더 이상 전쟁 수행이 불가능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진주만 공습의 원인은 석유
자국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너무도 적었기에 일본은 어떻게든 포위망을 뚫어야 했는데 그때 생각한 것이 바로 진주만 공습이다.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궤멸시키고 협상을 해 미국으로 하여금 전쟁에서 빠지고 다시 기름을 수출하도록 하겠다는 다소 무모한 계획이었다. 진주만 기습은 성공적으로 끝나지만 이후 일본은 협상은커녕 분노한 미군에 의해 처참하게(핵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무너지고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전함 애리조나는 일본군 폭탄에 피격 받은 뒤 이틀 동안 불타올랐다. 함선 일부는 나중에 인양되었으나, 나머지 부분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만약 일본 내의 유전 생산량이 자급 가능한 수준이었다면 아마 진주만 공습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진주만 공습의 원인은 다름 아닌 석유였던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석유로 20세기 초강대국이 되다
석유는 텍사스 주의 가장 가치적인 광물들 중의 하나이다.
많은 이들이 ‘석유’ 하면 중동을 연상한다. 그러나 중동의 유전은 20세기 중반에 개발된 것이고 그 이전에 전 세계에 석유를 공급하던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과 러시아였다. 미국의 텍사스 유전과 러시아의 바쿠 유전은 20세기 중반 이전까지 전 세계에 석유를 공급해 왔으며 그로 인해 두 나라는 20세기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점점 기울어가던 영국이 다시 되살아나고 어업에 의존해 살던 노르웨이가 부강해질 수 있었던 것도 해양 탐사를 통해 발견된 북해의 유전 덕분이었다.
석유를 얻는 자가 세계를 얻는다
생산 기반 시설이 거의 없던 중동의 여러 나라들도 석유 하나만으로 돈이 끊이지 않고 있다. 리비아 같은 경우에는 국가에서 모든 어린이들에게 노트북을 제공하는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왕족들이 엄청난 규모로 부정 축재를 하는데도 국민들이 별 관심이 없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재정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의 제7대 부총리,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하얀
대항해시대(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유럽인들의 신항로 개척이나 신대륙 발견이 활발하던 시대) 무렵에는 향신료를 얻는 자가 세계를 얻었다면, 현대에 와서는 석유를 얻는 자가 세계를 얻는다고 할 수 있다.
석유를 둘러싼 각종 분쟁들이 끊이지 않다
그렇기에 석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 분쟁들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진주만 공습부터가 석유로 인해 발생한 분쟁이며 20세기 중반 엄청난 유전들이 발굴된 이후로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석유를 필두로 하는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은 지구온난화와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피를 부르고 어둠을 부르는 석유, 미래에 석유가 어떤 일들을 초래할지는 몰랐겠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석유를 “땅의 피”라고 불렀다. 지금 와서는 정말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가 없다.
석유는 고대부터 사용했다
석유는 난방과 동력을 위한 연료뿐만이 아니라 플라스틱과 아스팔트 및 각종 화학물질의 필수적인 재료로 현대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질이다. 흔히 석유가 중세 이후에 발견되어 곧바로 인류에게 필수적인 물질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석유는 고대부터 사용돼 온 물질이다.
1세기경의 중국 후한의 역사가, 반고
고대 이집트인들은 대략 기원전 2천 년부터 석유를 사용해 왔다. 연료로 사용했던 것은 아니고 윤활유 혹은 설사제로 썼다. 중국인들은 같은 시기 중국에서도 석유를 이용했다고 주장한다. 한나라 시절 역사가 반고의 <한서(漢書)>에 석유에 대한 언급이 발견되니 기원전 2천 년은 과장이라도 적어도 꽤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이 석유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중국 남북조 시대, 병 치료에 석유를 사용했다
송나라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심괄
중국에서도 처음부터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5~6세기 남북조 시대의 기록을 보면 석유가 이 빠진 노인들의 이를 다시 나게 해주며 모든 병을 치료한다고 적혀 있다.석유에 불을 붙인 기록은 송나라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심괄의 저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석유는 얼핏 보면 옻나무의 진과 다름없이 보이며, 태우면 짙은 연기를 내고 센 불길을 낸다. 그 연기로 먹을 만들 수 있는데 이렇게 만든 먹으로 쓴 글은 옻칠을 한 것처럼 검고 윤기가 돈다. 그 글씨의 아름다움은 소나무 검정으로 만든 먹에 비할 바가 아니다.”
17세기까지 고래 기름이 떨어졌을 때 대체재로 쓰인 석유
그때까지도 석유는 연료로 쓰이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불을 붙이거나 난방을 하는 데는 고래 기름, 나무 땔감 등이 쓰였다. 독한 냄새와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석유는 당시에 불완전하고 조잡한 연료로 여겨졌다. 17세기까지도 석유는 고래 기름이 떨어졌을 때 어쩔 수 없이 대체재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역사상 최고 대부호 록펠러, 1859년에 유전을 발굴하다
유럽인들은 유럽의 몇몇 지역, 아메리카 대륙, 중동 지방 등에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것을 이미 19세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별 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석유의 가능성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때고 딱히 쓸데가 없는 물질에 주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885년 당시 록펠러, 역사상 최고 대부호였다.
현재 환산 가치로 300조 원가량의 자산을 가졌던 역사상 최고 대부호인 록펠러가 1859년에 유전을 발굴했을 때도 그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대박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석유의 정제법이 알려진 그 당시에 그가 스탠더드 오일을 창립하고 석유로 한 일은 알코올램프에 들어갈 등유를 추출해 내는 것이었다. 여러 가정에서 등유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사업은 조금씩 빛을 보는 것 같았으나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는 바람에 그는 일시적으로 파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석유 엔진 자동차들이 전 세계에 보급되다
1885년 특허를 낸 벤츠 자동차
파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사업가들 덕이었다. 1879년 니콜라우스 오토가 가솔린으로 작동하는 내연기관을 발명하고 고틀리에프 다임러가 그것을 개량한 후 특허를 내 자동차 제조 그룹인 다임러 AG(Daimler AG)를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벤츠’를 설립한 유명한 카를 벤츠도 독자적으로 차세대 에너지(석유)를 이용한 엔진을 개발해 가솔린 자동차들이 전 세계에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독일의 자동차 사업가들은 록펠러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의도치 않게 간접적으로 그를 세계의 대부호로 키워준 것이다.
록펠러는 세계 최대부호,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
장래성이 불투명한 정유 사업이 차세대 유망 사업이 되는 것을 눈치챈 록펠러는 석유 시장을 독점하려는 야망을 품고 합병에 합병을 거듭해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손에 쥔다. 그의 자본력을 통해 미국의 각종 사업은 활기를 띠었고 이후 발발한 세계 전쟁으로 록펠러와 미국은 각각 세계 최대부호, 세계 최강대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채산성에 따라 달라지는 석유 매장량
석유의 매장량이 얼마나 남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채 30년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분석부터 400년 이상은 버틸 수 있다는 의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석유 매장량은 채산성이 있는 유전을 전제로 계산된 것이다. 한마디로 ‘파내 봤자 손해인’ 석유는 계산에 넣지 않는다는 것.
아사바스카 강 강변에 오일 샌드, 1900년
그렇기 때문에 원유 값이 오를 때마다 추산 매장량이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석유 값만 받쳐주면 군소 유전 심지어 오일샌드(oil sand, 석유를 머금은 모래에서 원유를 추출해 내는 것)까지 이용이 가능하고, 그런 계산을 해보면 400년 이상 석유 체제는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막을 내리는 석유 중심의 에너지 체제
그러나 매장량과 상관없이 석유 중심의 에너지 체제는 점차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석유로 인한 환경오염, 중동 지역 등의 분쟁으로 안정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유가 등은 각국 정부와 기업가들로 하여금 석유 체제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하며 다른 대안을 찾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들은 상용화가 되지 않았을 뿐 충분히 개발된 상황이다. 자동차와 발전소 등이 아직 석유를 전제로 한 체제이기에 대체에너지가 일정 규모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값이 비싼 탓이다.
석유 시대 마감, 석유의 고갈이 아니라 경제 논리에 달려 있다
상용화 추세에 있는 전기자동차
미국에서는 한때 전기자동차가 보급되었다가 회수된 바 있다. 이미 전기자동차도 상용화가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증거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경제 논리이다. 앞으로 석유 시대가 얼마나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석유 시대의 종언은 석유의 고갈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석기시대가 돌이 고갈되어 끝난 게 아니듯.
[네이버 지식백과] 석유 - 피를 부르는 원료 (사물의 민낯, 2012. 4. 16., 김지룡, 갈릴레오 S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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