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대(輪藏臺)다. 책장의 일종으로 글을 알지 못하거나, 불경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공덕이 같다고 한다. 나서서 돌려보니 고장 났는지 꿈쩍도 안하는데, 김태헌씨가 나서서 돌리니 돌아간다. 역시 공덕을 쌓은 사람은 무언가가 다르다.
23佛이 모셔진 石室. 500 나한상(羅漢像), 그리고 법고(法鼓, 큰북)와 목어(木魚, 목탁)가 있는 법음루 등 숨은 보석이 많은 곳인 만큼, 조계종과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불교 33개소의 순례성지 중 제 1호가 보문사이다.
보문사 운치가 묻어나는 배경으로 사진 한 컷을 남긴다.
우리는 오늘 이곳 보문사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어쩜 아무것도 얻지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 그저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걸로 되었다.
오늘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사진이다. 나(自我)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다음에 찾은 곳은 석모도의 용궁온천이다. 네비에도 안 나오는데 다들 잘 찾아온다. 노천탕인데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공짜다.
온천수온이 50℃ 이상으로 절절 끓는데도 공짜라고 모두 인내심의 극치를 보여준다. 정말 용하다.
발을 담근 채로 가만히 있으면 그래도 좀 괜찮은데, 누군가가 일어서거나 물을 흔들기만 해도 높은 온도의 온천수가 밀려들기에, 모두들 발을 들며 괴성을 지른다. 그래도 이렇게 족욕을 통해서나마, 긴장된 다리근육이 풀 수 있어 다행이다.
용궁온천은 이 족욕시설 외에도 실제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목욕탕이 설치되어 있다. 입구에 신발장 같은 탈의실을 거쳐 바로 목욕탕으로 진입하는 컨테이너식 간이건물이긴 하나, 남탕과 여탕이 분리되어 있다. 큰 대야에 더운물을 담았다가 식으면 목욕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직접 목욕하기는 물이 너무 뜨거웠다. 목욕탕 실내까지 진입하고도 돌아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족욕을 마친 우리는 석포항으로 출발한다.
석모도 들어올 때 준비하지 못했던 새우깡을 사들고 갑판으로 나온다. 출항한다는 뱃고동 소리를 신호로 갈매기 떼가 몰려든다. 새우깡을 손가락 끝에 잡고 있으면, 갈매기가 귀신같이 날아와서 입에 물고 재빨리 달아난다.
배가 외포리선착장에 도착할 때까지, 갈매기는 지친 기색없이 새우깡을 구애한다.
줄기차다. 덕분에 우리도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당초 계획은 강화도에서 저녁(갯배 생선구이)을 먹고 대부도로 가기로 했으나, 배 타는데 대기시간이 없는 덕분에 1시간 이상 앞당겨졌기에, 어둡기 전에 예약된 숙소에 먼저 짐을 푼 다음, 현지에서 적당히 저녁을 먹기로 했다.
80km 장거리 이동이었지만 시화방조제를 지날 무렵, 멋진 석양이 우리를 붙잡는다.
햇님이 서쪽 바다 끝을 향해 자꾸 달려가고 있다.
우리네 인생도 저렇게 치달아가고 있을까? 그래도 아름다운 광경을 남겨두고 떠나니 이 또한 괜찮아 보인다.
찬바람이 강하게 불었지만 멋진 장면을 놓치지 않고 구경할 수 있었다.
시화방조제는 낚시꾼들의 천국인지, 포터를 개조한 이동용 낚시용품 매장이 몇 군데나 있었다. 아직 완전한 일몰은 아니다. 시화방조제를 따라가다 보니, 조력발전소가 있는 T-라이트휴게소가 나온다.
여기서 바닷가 석양을 보며 운치있게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완전한 석양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소망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커피를 한잔씩 타서 마신다.
태양이 서쪽 바다 저 멀리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바라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서해 일몰을 구경할 수 있도록,
일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주신 아름다운 동행 여러분께, 잠시 지면을 빌어, 무지하게 고맙다는 감사의 말씀을 전해 올립니다. 아름다운 동행. 파이팅!!!
관광호텔 뒤편에 있는 민박집을 용케 찾았다. 벌써 저녁 8시가 다되어간다. 서둘러 큰 길로 나와 적당한 식당을 찾는데 쉽지 않다. 오래 시간 끌기도 무안하여, 23호 할머니집을 선택한다.
들어와서도 선뜻 식사메뉴를 정하지 못하고 있자, 주인(할매)이 추천해 준다. 쭈꾸미뽁음이다.
나를 더 사랑해보자는 오늘의 주제가 유효했는지, 4일차 여행 중이란 우리들이 안쓰러워보였는지 아니면 부러웠는지는 몰라도, 주인 할매가 김치전과 막걸리를 서비스로 내준다. 고슬하게 잘 익은 김치전을 안주로, 장수막걸리 한 잔 부어마시니 그냥 술술 잘도 넘어간다.
후한 인심만큼이나 아는 지식이 많고, 아직도 소녀같이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여린 할매였다. 꽃봉우리를 피우는 마음으로 한가운데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받치듯 방긋거리는 모습을 보라. 마음이 편안하니 세상사 모든게 편안해보인다.
비록 함께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기회가 있다면 다시 한번 더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만남인데도 정이 듬뿍 들었다. "덕분에 마음 따뜻한 저녁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인생, 길에서 묻기로 하고 떠나왔는데
인생, 그딴 것을 묻는다고 쳐다만 본다.
인생, 그딴 것은 그냥 사는 게 답이란다.
그렇게 4일차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