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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창14장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한 기록이 있는 유명한 장입니다.
“[1]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창 14:1-5)
1절 4왕
2절 5왕과 싸우더라. 소돔왕 고모라 왕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창 14:10)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창 14:11)
4왕의 승리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창 14:12)
5왕 중에 아브라함 조카 롯이 살고있는 소돔왕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돔을 정복하게 되고, 아브라함 조카 롯이 사로잡힘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창 14:13)
성경에서 히브리 사람 표현이 최초로 나온다.
☐ 히브리 인, 유대인, 이스라엘 인 약간의 다른 의미는 무엇인가?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창 14:14)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창 14:15)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창 14:16)
배경내용이다.
오늘 공부하게될 14:17- 새로운 미팅이 시작된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창 14:17)
아브람: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 13절에서 히브리인이라고 언급한 아브라함이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 14:18)
살렘은 어디인가? 가장 유명한 지명, 예루살렘,이라고 알고 있는데, 여기는 살렘이라고 한다.
예루=도시,city 이다. 히) 이르, 도시 살렘=솔로몬 비슷한 발음이다. 같은 뜻이다. 샬롬에서 온 단어이다. 평화이다.
이 살렘이 예루살렘일 가능성은 높으나 지명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살렘왕이다. 히브리어로는 멜기세덱, 멜기, 멜레크=왕이다. 세덱=챠다크, 의,
이=나의, 엘리야=나의 하나님은 여호와다.
다니엘=나의재판관은 하나님이시다. 멜기세덱=나의 왕은 의로우시다. 의로운 나의 왕
어디인지 모르지만 살렘왕, 샬롬, 솔로몬,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평화의 왕이 된다.
서로 상, 올래, 김상래, 목사님 아버님이 목사님의 이름을 예언적으로 지으셨습니다. 서로 상(相), 올래(來), 서로 서로 그리스도께로 오라. 하는 이름을 예언적으로 성함을 지으셨습니다.
그가 다스리던 지명이 살렘왕, 나의 왕은 의롭다. 멜기세덱, 역사적 실존인물이다.
시110:4 멜기세덱 / 구약성경에 두 번 나오는 이름이다.
기가 막힌 해석의 근거가 된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 14:18)
엘, 엘리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부름, 바벨론 포로 이후에 많이 나타난다.
성소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표현,
성소가 무너진 다음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말한다.
멜기세덱을 소개할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이곳에 제사장이란 단어가 처음 나온다.
우리는 아론만 생각하지만, 처음 나온 제사장의 표현은 멜기세덱에 사용된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창 14:19)
복을 주옵소서를 두글자로 하면? 빌축(祝), 복 복(福), 축복(祝福)이다.
축복하여 이르되=복을 주옵소서, 동어반복이다.
히브리서인들이 껌뻑죽는 아브라함, 멜기세덱이 등장하더니 아브라함을 축복한다.
히브리서7장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히 6:19)
6장의 결론: 영혼의 닻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20)
반차order
예수님이 휘장안에 들어가신다. 우리도 함께 들어간다.
멜기세덱의 순서를 따라 들어가셨다.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창14:18 제사장이 제일 먼저 나옴, 히브리서인들에게 멜기세덱은 어떤 존재인가?
예수를 같은 히브리인으로서 예수를 믿고 크리스챤이 되었던 그들이, 다시 아브라함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조상인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 창18:14을 이야기하면서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그 예수가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이 되었어,
7장은 28절까지있다.
7장의 구성
①1-3절 멜기세덱을 설명
②4-10절 멜기세덱의 위대함을 설명
③11-25절 더 좋은 언약을 설명
④26-28절 멜기세덱 보다 더 높으신 그리스도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히 7:1)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히 7:2)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 14:19-20)
성경최초로 1/10이 나왔다.
창14장의 중요성
1) 히브리 사람이 맨처음 나온다. 히브리민족
2) 제사장이 맨처음 나온다.
3) 1/10이 맨처음 나온다. 십일조의 기원
히브리서의 저자가 예수를 붙들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히 7:1)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히 7:2)
멜기세덱: 의의 왕, 살렘 왕:통치지역이다. 평강의 왕,
이름의 문자적 의미:의의 왕,
다스리는 지역: 평화의 왕
이 말의 굉장의 의미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0)
하나님 통치의 특징을 말할 때, 언제나 말하는 것이다. 딱 두마디로 요약하면 인애와 진리,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인내와 진리, 의와 화평
의=멜기세덱, 화평=살렘,
구약성경의 평화, 제가 평화박사이다. 수없이 붙들고 씨름했던 성경절이다.
요한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말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말하면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진리=의, 은혜=살롬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춘 표현이 바로 살렘왕 멜기세덱이다.
내가 옳아, 평화가 없고,
내가 평화이다. 하면 의가 없다.
하나님의 통치에서만 이것이 조화를 이룬다.
인간의 나라중에 의와 평화가 입맞춘 왕이 살렘 왕 멜기세덱이다. 평화의 왕, 의로운 왕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시편이 이야기하고 있던 완성된 통치, 한국이나 미국이나 통치자들의 상황 때문에 어렵다. 옳음과 평화, 백성들이 힘들어 하는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3)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창14장에 가보니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 14:18)
멜기세덱이 역사적인물인가? 그리스도인가? 아브라함을 만나서 축복한 것을 보면 인간이다. 인간이면 당연히 아버지, 어머니도 있을 것이다. 누구 아들 멜기세덱이라고 없다. 역사적 인물인데, 아무 소개없이 느닷없이 나타난다.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창 10:21)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다. ㅎ,ㅂ 밖에 없다. 에벨을 헤벨로 읽어도 된다.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이라고 했다.
에벨-히브리 말이 나왔다.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창 11:10)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창 11:1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5)
에벨이 두 아들을 낳고, 벨렉이라 지음- 세상이 나뉘었다.
무슨 사건 때 세상이 나뉘었다.
11장 바벨탑 사건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9)
그 흩어진 때가 언제인가? 10:25절 에벨이 벨렉을 낳았을 때
셈의 후손중에 에벨사건,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창 11:16)
이 때 바벨 사건이 있었다.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창 11:24)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창 11:25)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창 11:26)
아브라함의 족보이야기, 11:10-26 아브라함의 족보이야기,
족보가 셈의 후손, 에벨의 후손이다. 에벨 때 바벨탑
조카 롯을 찾아왔다. 창14:18 멜기세덱은 다른 곳에 전혀 언급이 없다.
한국의 욕: 족보도 없는 게 까불어, 개도 족보가 있는 시대이다. 개들도 결혼하고 사돈을 맺는다. 개사돈이라고 한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3)
멜기세덱에게 진짜 어머니, 아버지, 족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 없을 뿐이다.
김상래 잠언
1장 1절 아무리 바빠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시간이 있다.
1장 2절 기록이 기억을 능가한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기록을 이기는 더 큰 권위를 설명한다. 이 기록이 없는 상태를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아들과 닮았다는 긍정적 의미로 해석한다. 히브리서 저자의 영감적 권위이다. 어떤 기록이 없는 것에 의미 부여를 이렇게 신적 영역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0)
시85:10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 권위있는 해석이다.
아브라함을 축복,
존재론적 차원에서 멜기세덱을 높인다.
7:4-10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관계측면에서 설명한다.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히 7:4)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히 7:5)
히브리인들은 제사장 하면, 레위, 레위하면 십일조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히브리서 기자의 독특한 표현, 허리, 생명의 유전이 있는 곳
갈빗대: 생명의 유전, 레위는 야곱의 아들,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히 7:6)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히 7:7)
아브라함은 히브리 조상이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보다 낮아.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어떤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존경하는 신계훈 목사님, 신계훈 목사님을 축복한 하나님, 하나님은 휠씬 더 높으신 분이시다.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히 7:8)
여기는? 저기는?
여기는 레위사람들,, 저기는 멜기세덱 이야기이다. 창세기의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이야기이다.
아무리 위대한 제사장도 죽었다. 멜기세덱은 7:3에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영원히 제사장으로 있다. 항상 , 늘 현재로...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히 7:9)
현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히브리서 저자의 독특한 주장을 본다.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히 7:5)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히 7:9)
레위도 아브라함을 통해 1/10조를 바쳤다.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히 7:10)
우리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현대인들: 아버지의 죄가 아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히브리서 저자는 생명적 유전적 입장에서 말한다. 레위는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다. 아브라함이 1/10를 바쳤기에, 멜기세덱이 얼마나 높은지 생각해보라.
7:1-4 멜기세덱의 반차가 더 높은 6가지 이유
2절 1) 더 높은 제사장
2 이름의 평화, 의와 살롬이 입맞춤
2) 존재가 다르다. 시작과 끝, 족보가 없다.
4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5-7 4)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받았다.
8절 5) 레위는 죽는 제사장, 죽은 기록이 없는 제사장
9-10 6) 레위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분이시다. 십일조를 받는 레위도, 십일조를 드리신 분이 멜기세덱이시다.
이름과 다스림
멜기세덱 시대를 떠나 레위 시대로 돌아갈려고 하는가?
예수 없는 삶에서 예수 믿어, 다시 예수 없는 곳으로 가려고 하느냐?
세상에서 소유한 것이 아무리 높은 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20)
7:1-10 멜기세덱은 위대한 제사장
유대인들의 머리의 궁금증: 가만히 있어봐, 예수님이 멜기세덱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제사장이 되려면 레위지파여야 하잖아?
11절부터 제사직분이 바뀔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히 7:11)
여기서 율법은 십계명이 아니라 여기서 율법은 제사직분을 설명하는 레위기 율법입니다.
7:11의 표현은 무엇에 근거해서 나왔나? 구약의 멜기세덱 이야기가 2개뿐이다. 창세기14장과 시110편이다.
7:1-11은 창세기 14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110편 두 곳 뿐이다.
시110편 메시야 시편, 예언시이다. 가장 전형적인 예언시, 메시야 시편이다.
“[1]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 110:1-3)
다윗이 섬기는 내 주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주는 메시야를 가리킨다.
발판, 발로 밟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메시야에게 권위를 부여하신다. 메시야가 어디서 왕권을 잡는가? 주는 메시야이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메시야)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
너는 메시야보고 말한다. 메시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다 하신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고 맹세하면서 말하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했었잖아.
여호와께서 시편 110편에서 메시야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된다고 했어!
그러면 히브리 기자는 뭐라고 말할 수 있어요. 레위 시대에 모세 시대에 레위의 반차를 따르는 아론 제사장이 정말 온전히 다 이루었으면 다윗 시대에 와가지고 왜 메시아 시대를 예언하면서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있으리라 라고 예언했겠냐? 아까 히브리 3장에서도 배웠지요. 여호수아와 모세가 온전한 안식을 주었다면 왜 다윗이 또 다른 때에 다른 안식이 있으리라고 했겠냐 하는 얘기했었죠. 히브리 기자는 다윗 시대의 시편을 인용하면서 모세의 시대를 넘어서는 메시아 시대에 대한 예언과 약속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똑 같은 논리로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 7장 11절에서 모세 시대에 레위 서열을 따른 아론 제사상 직분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윗 시대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지 않느냐! 그 메시아 시대를 우리가 지금 다윗이 예언한 메시아 시대를 지금 예수에게서 발견하지 않았냐! 그러니 멜기세덱이 언제 레위지파이냐 12절 결정적인 성경들이 여기서 나옵니다. 7장 12절입니다.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히 7:12)
레위지파여야하는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직분이 바뀌었은즉, 다윗 시대에 와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있겠다고 했으니 제사직분이 바뀐 것이다. 이 율법은 십계명이 아닙니다. 제사직분을 만드는 제사법입니다.
인간의 논리를 완전히 뒤집는 논리이다. 논리적으로 말하려면, ‘율법이 바뀌었으니 제사직분이 바뀌었다.’라고 말해야합니다. 그런데 7:12은 바꾸어 말합니다.
제사직분이 바뀌었음 즉 율법도 반드시 바뀌어지리니 무슨 말이에요. 예수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 이 말하고 똑같은 맥락입니다. 바리세인들은 “너 왜 안식일을 어겨?” 이렇게 말했잖아요. 개명에 따라 네가 묶여야 돼, 근데 예수께서는 “나는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도 내가 정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한 거거든요.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이 말은 뭐예요? “나는 모든 것을 주장할 수 있는 분이야!”
주어진 논리를 어떻게 설명해요. 자연계의 원리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은 자연계의 원리를 초월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그쵸.
창조주 하나님은 자연계의 원리를 따라가시지만 자연계의 원리를 초월할 수도 있잖아. 지금 이 논리는 그 말이거든요. 하나님이시니깐 그렇게 하신 거지! 안식일에 주인이시거나 안식일을 주님이 마음대로 지키실 수 있겠지.
“제사 직분이 바뀌었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뀐다.”
율법이 바뀌었으니 제사직분이 바뀌어야 한다. 이거 아니에요. 안 됩니다. 이걸 갖다가 십계명이 바뀌었다 이렇게 적용시키는 것은 정말 성경을 잘못 읽은 거지요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히 7:13)
그게 무엇이냐? 그들의 생각을 완전히 깨부순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히 7:14)
예수님은 누구 아들로 태어나셨나?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마태복음은 요셉의 아들이라고 알려준다.
족보가 없다고 했는데, 족보가 나온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족보이야기가 나온다. genesis+logos 족보
조상을 2명밖에 기록해 놓지 않았다. 아브라함과 다윗, 다윗은 유다 후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의 시간을 말해주는 2가지 기술, 이후와 이전을 이해해야 한다.
이후? 약속한 이후
이전? 동거하기 이전
히브리서인들의 결혼단계 3단계가 있다.
1) 약혼: 심정적 연합- 대중들에게 이야기하나
2) 정혼: 법적 연합, 개역한글에서는 정혼, 정혼은 법적 권한이 있다.
3) 결혼: 육체적 연합, 동거가 허락된다.
정혼했기에 요셉의 혈통이 되고, 결혼하지 않았기에 동거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혈통적으로 인간과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마 1:2)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마 1:19)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 1:20)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하고 법적 메시야의 조상이 된다.
누가복음3장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눅 3:23)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사람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영역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동거하기 전에는 몰라 이런 의미이다.
“그 위는 마앗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서머인이요 그 위는 요섹이요 그 위는 요다요”(눅 3:26)
히브리 7장으로 돌아옵니다.
우리 주님은
히7장 레위의 아들이 아니고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유다인들이 생각하기를 제사장은 레위지파에서 와야하는데, 예수와 멜기세덱 무슨 상관있어?
멜기세덱의 반차로 하자.
너희들이 아는데로 유다지파로 났어. 그런데
멜기세덱반차는 처음부터 레위자손 아닌 지파로 된다고 하잖아.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히 7:14)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히 7:15)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히 7:16)
결정적인 표현 7장에서 결정적인 표현 16절이다.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의 직분은 불멸의 생명의 능력에 의해 주어졌다는 것이다.
새언약의 근거가 되는 것은 불명의 생명의 능력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정확해도 생명이 없으면 건조하다. 살지 못하면 의미없다.
신앙의 증거는 능력이다. 불멸의 생명의 능력이다. 꺼지지 않는 불멸의 생명의 능력이다.
생명과 능력이다.
사라지는 능력이 아닌 불멸의 능력이다.
우리가 아무리 정확히 옳다고 해도, 생명이 없으면 의미없고, 힘이 없으면 연약하고 허약하다.
문맥을 전혀 모르는 분들이 십계명이 패했다는 구절이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히 7:18-19)
십계명이 패했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 계명만 남아있다고 설명하는데 잘못 사용하기도 한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아론 제사장 직분을 말한다. 무익하므로 폐함, 사망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히 7:19)
히브리서의 독특한 표현 “더 좋은”이 나온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2)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히 7:23)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히 8:6)
7:19 더 좋은 소망
7:22 더 좋은 언약
8:6 더 아름다운 직분, 더 좋은 약속
8:6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 더 좋은 언약의 근거3가지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히 7:23)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히 7:24)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히 7:5)
1) 여러 제사장 vs 한명 제사장
2) 여러번의 제사vs 단번의 제사, 영원히 단번에, 영단번,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히 7:26)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십자가는 두 번 다시 없다. 영원히 단번에를 신학적 용어로 “ 영단번”이라고 한다.
3) 약점 가진 여러 사람과 온전한 아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히 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