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목(連理木)/ 안희자
막바지에 이른 가을이 계룡산자락에 단풍을 뿌려놓았다. 만산홍엽이다.
산 아래는 관광차가 쏟아놓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등산객들은 저마다 배낭을 메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산 정상에 오르려고 속도를 내는 그들을 피해 한적한 산책로를 택했다. 서로 제 몸의 제한속도를 알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중증 심장병 환자다. 그런 탓에 생명을 담보로 해야만 산에 오를 수 있다. 등산하는 것도 장시간 걷는 것도 심장에 과부화가 걸려 숨이 가빠지는데, 이럴 땐 포기할 수밖에 없다.
굼뜬 걸음으로 숲에 들어서니 느티나무며 갈참나무가 고운 자태로 나그네를 맞는다. 모든 생명들은 스스로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가 보다.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지나가자 낙엽들이 우수수 해탈을 한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여 오색빛깔 융단을 펼쳐놓았다. 낙엽을 긁어모아 손에 쥐어보니 온기가 느껴졌다. 어릴 적, 오 남매가 잠들 무렵이면 어머니가 깔아놓았던 이불속처럼 포근했다. 그래서일까. 숲속은 늘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게 다가온다.
숲에 들면 나무가 내뿜는 냄새도 좋다. 갓 볶아낸 커피 냄새 같아서 강아지처럼 킁킁거리며 나무에 코를 갖다 댔다. 마치 피톤치드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지친 나의 몸과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듯했다.
천천히 자드락길로 들어서자 신기하게 생긴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연리목이었다. 몸통 굵은 참나무와 왜소한 고욤나무가 한 몸을 이루었다. 가까이 있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목(連理木)이라 한다. 이렇게 두 나무가 연을 맺으려면 십 년이란 세월이 흘러야 한다니, 그 어느 사랑에 비하랴. 참나무는 살점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는데, 고욤나무는 작고 노르스름한 고염을 옹골차게 매달았다.
나무에도 지고지순한 마음이 있는 걸까. 서로 떨어져 있건만 얼마나 애틋하게 사랑했으면 한 몸이 되었을까. 모진 세월 함께 견뎌낸 사랑의 결실이지만, 때론 비바람 치는 궂은 날도, 더러는 매서운 혹한의 날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인간처럼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서로 맞지 않는다고 돌아서는 법도 없었다. 그들은 흙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영원한 사랑나무로 살아갈 것이다.
비바람은 나무에만 부는 것은 아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다복하게 살던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휘몰아친 태풍에 집안의 기둥이 뿌리째 흔들렸다. 남편의 심장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심장이 기능을 못해 입술이 푸르게 변해가더니 온몸이 풍선처럼 부어올랐다. 숨이 차 한 걸음도 뗄 수 없었고, 먹지도 눕지도 못한 채 앉아서 꼬박 날밤을 새우기도 했다.
궁핍한 살림에 남편은 적잖은 수술비와 아이들 걱정에 눈물을 훔쳤다. 수술을 해도 희망이 없다며 묵묵히 견뎌내던 남편이 포기라는 말을 뱉어냈다. 방안을 떠돌던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져버렸다.
남편이 시들시들 앓아도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고집을 세우던 남편이 급작스럽게 수술실로 옮겨졌다. 그때 나는 남편을 바라보고 손잡아주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눈물바람으로 수술실 앞에서 그저 “살려달라.”고 되뇌며 기도했을 뿐. 생과 사의 경계에서 12시간 이어진 대수술은 피를 말리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남편의 곁을 지키는 동안 간당간당했던 그의 생명은 다시 태어났다. 그때 남편의 소중함을 알았다. 지금도 남편의 가슴에 지네처럼 새겨진 상처의 흔적을 볼 때면 가슴 뭉클해진다.
남편이 안정될 무렵 내게도 태풍이 불었다. 심장병이 악화되면서 맥박이 뛰지 않아 자주 정신을 놓아버렸다. 숨이 차 걸을 수도 없었다. 가슴에 인공심장박동기를 삽입하고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 아픈 몸으로도 내 곁에서 병수발을 해준 남편이 고마웠다.
돌아보면 나는 그를 일으켜 세웠고 그는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수술 후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는 갱생의 시간은 겨울처럼 춥고 길었다. 창밖너머에서 눈부신 햇살을 이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다.
이후 투병생활하면서 우리는 자주 숲을 찾게 되었다. 다시 찾은 숲은 여전히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포근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숲을 거닐 때마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단풍에 취해 걷다가 숲에서 꿈을 꾸기도 했다. 오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남은 생이 토끼 꼬리만큼 짧아도 둘이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 만 있다면 바랄 게 없다.
동병상련의 마음이라 그런지 우리는 아픔을 겪고부터 더 가까워졌다. 청춘들처럼 화끈하지 않지만 이젠 측은지심으로 살아간다. 아프지 않았다면 우리의 사랑이 쪽빛 하늘처럼 깊어질 수 있었을까.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숲길을 내려오는데, 휘청거리는 내 모습이 불안했던지 남편이 손을 꼭 잡아준다. 내려오는 발길이 한결 가벼웠다.
어느덧 우리 부부도 만추의 가을에 이르렀다. 세월의 풍화에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고 온몸이 마른 낙엽처럼 버석거린다. 서로 번갈아 몸이 아프다보니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평생 병원신세를 져야한다고 생각하면 서글픈 마음이 끝없이 갈마들지만, 숲을 찾고부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계룡산자락의 단풍 숲을 돌아보며 내 가슴속에 연리목 한 그루를 심었다. 연리목이 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아름다운 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 연리목처럼 사랑으로 포용하며 살아가는 법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오늘처럼 남편과 나란히 숲길을 걸으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아닌가.
결혼하고 42년을 남편과 맞는 가을이다. 사는 동안 몇 번의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비록 몸은 낙엽처럼 사위어가지만, 생의 끝까지 남편과 함께 손을 맞잡고 살아가리라.
지는 해를 배웅하며 돌아가는 길, 남편과 내 얼굴도 붉은 단풍으로 물이 들었다. 가을 숲은 내게 속삭인다. 아픔은 잊고 아름답게 살아가라고.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남편과 나는 또다시 숲을 찾을 것이다.
첫댓글 박종희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이 영광을 선생님께 드립니다. 더욱 정진하여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
안희자 선생님, 정말 애쓰셨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신 결과물입니다. 건강도 잘 챙기시고 앞으로 더 깊이 있는 글로 감동주시리라 믿습니다.
아픈만큼 깊어지는 두분의 연리목 같은 사랑이 참으로 애틋해 보이십니다.
김남숙선생님, 감사드립니다.부족한 글에 힘을 실어 주셔서 더욱 힘이 납니다. 새해엔 선생님께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김남숙 선생님, 내년에는 선생님이 상 받는 시상식장에 같이 설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선생님~~ 그럴 수 있을까요?
선생님 말씀이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연리목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연리목과 부부의 연을 잘 이끌어내셨네요.
계룡산은 1년에 두어번 정도 찾는 곳입니다.
남매탑으로해서 갑사로 내려가기도 하고
힘들면 남매탑에서 발길을 돌려 내려오기도 하지요.
건강을 회복해서 계룡산 오래도록 다니시기를 기원합니다.
박순철선생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용기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