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간 풀숲 위로 새벽안개가 몰려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어스름 새벽빛에 앞뜰의 풀잎은 간밤에 내린 이슬에 젖어있고, 그 너머로 펼쳐지는 구릉의 나무는 꿈속처럼 희미하게 형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김승옥, 무진기행 중>
김승옥이 이십 대에 썼다는 무진기행 속의 안개가 이랬을까?
피부에 와닿는 서늘한 공기의 촉감에 가을이 곁에 왔음을 느낍니다. 밤사이 울던 귀뚜라미며 풀벌레도 가을에는 그 울음 속으로 눌러 삼키는지 한층 꺾여있습니다. 밤새 그렇게 처연히 울더니만 여운만 부려 놓고 새벽 속으로 사라집니다. 커피를 한 잔 타 마시면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듣습니다. 고독의 빛깔과도 같은 단조의 첼로 선율이 흐릅니다. 아무도 찾아올 사람 없는 이 시간에 가을의 흐느낌 같은 음악을 들으며, 고독의 척도가 그 인간의 척도라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떠올립니다.
며칠 전 지금은 폐역이 된 고모역을 처음으로 둘러보고 왔습니다.
추억과 향수의 간이역입니다. 젊은 시절 한 번쯤은 기차를 타고 가다 차창 너머로 코스모스가 피어있던 간이역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을 테지요. 서울에서 오면 대구와 동대구역을 지나 그다음이 고모역입니다.
고모역은 2006년부터 간이역으로 운영되다가, 지금은 폐쇄되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대구로 기차통학을 하면서 지나다니던 역이어서 정이 가는 곳입니다
고모역은 일제 강점기에 징병과 징용에 끌려가는 자식과 이별한 장소였다고 합니다. 당시 증기기관차는 이 부근의 고갯길을 더디게 올라갔는데, 이때 어머니가 아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 하였다고 해서 고모(顧母)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고모령은 1949년 발표된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의 배경이 된 장소입니다.
가사에 가랑잎이 휘날린다고 했으니 아마도 가을날이었나 봅니다. 대중가요가 민초들의 시대적 정서를 곡과 가사로 솔직히 표현하고 있을진대, 이 노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가사에 울음과 눈물과 망향초 신세 같은 것들이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였을 것입니다.
역 마당에는 자연석에 새긴 구상 시인의 '고모역' 이라는 시도 보입니다. 북에 두고온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과 폐역의 쓸쓸함이 교차됩니다.
고모역에서 멀리 않은 곳에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비가 있습니다. 1991년 고모령 입구인 대구 수성구 만촌체육공원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으로 애창되기를 염원하면서 노래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군대생활 하던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던 때가 있었지요.
노래비 한편에는 한국일보 김문호기자 불망비가 있습니다. 1991년 9월 고모령 노래비 취재에 열중하던 중 뒤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지 못하여 순직하였다는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간이역과 고갯길이 만들어 낸 그리움과 향수의 이야기들. 역은 임무를 마치고 폐쇄되어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기능은 잃어버렸지만, 이제 사람들에게 추억을 실어다 주는 공간으로 남아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폐역과 노래비를 보면서 간이역에 얽힌 추억과 옛날을 회상하며 지난 시절의 그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첫댓글 고모역사 앞으로 참 많이 다니는길이였는데...
제게도 추억에 젖게하는 장소인데. 들어가서. 자세히 본적없는곳을 눈앞에 펼쳐놓으셨네요^^
가까운곳이라 시간될때. 사색에 젖고싶은날 걸으렵니다
전에 써뒀던 글인데 여기로 옮겨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