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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옥 시집
녹아서 없어진 말들
■ 책 소개
최동옥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녹아서 없어진 말들』(신국판 100쪽 10,000원)이 <도서출판 두엄>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총 4부로 나뉘어 60편의 시와 김남호 문학평론가의 해설(녹아서 없어진 말들, 난청의 시 쓰기)을 싣고 있다.
■ 시인의 말
또 이렇게 서툴고 부끄러운 시집을 펴냅니다.
한 줄이라도 더 나은 글을 꿈꾸지만
내 삶이 그렇듯이 달라진 것은 없어 보입니다.
자연에게서 나무에게서 심지어 짐승이나 야생화에게서
삶의 비의를 물어보지만 그들의 답을
내가 어리석어서 알아듣지 못하고
내 펜이 무뎌서 받아쓰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이 시집은 내 삶만큼이나 소중합니다.
그저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것으로 기뻐하겠습니다.
■ 표제시
녹아서 없어진 말들
내게로 다가온 온갖 소리들이
비처럼 가늘어지다 멀어지고
있는 듯 없는 듯
나뭇가지 새들이 앉고 날아올라도
사라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밤마다 텔레비전 속
이상하게 움직이는 수상한 입술들
자꾸 물어볼 수도 없어
고개만 갸웃거리다 나는 점점 남의
입술을 탐색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자 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의 사이 전선의 기척
내가 누운 이쪽까지 전해지지 않는
오랜 세월 입에서 놓친 무수한 말들은
유배의 비극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난청으로 제값을 받지 못해
제대로 된 삶이 되지 못해 충돌하며
귀머거리 입구에서 역류해서야
딸자식 이름으로 구멍이 뚫린 난청
귀속에 닿는 언어, 동네 개 짖는 소리가
그립지도 않는 난청의 유배지에서 들렸다.
■ 표4글
그는 삶의 어느 길목에서 청력을 상실했다. 일상의 목소리 크기로는 대화가 어렵다. 아내와 나란히 누워도 어둠속 아내의 전언은 “내가 누운 이쪽까지 전해지지 않는”(「녹아서 없어진 말들」)다. 같이 살아온 세월 동안 아내의 입에서 “놓친 무수한 말들은” 나에게 당도하지 못하고 둘 사이를 떠돌 뿐이었다. 소리가 사라진 곳에서는 어떤 위로도 주고받기 힘들었고, 소리를 잃은 곳은 “유배지”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최첨단’ 보청기를 했노라고, 이젠 뭐든 다 들린다고 싱글벙글하는 게 아닌가. 어찌된 거냐고 물었더니 딸 은지가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성능이 좋은 보청기를 해주더란다. “딸자식 이름으로” “난청”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비로소 시인은 적막한 ‘유배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사람의 마을’로 돌아온 것이다.
― 김남호(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해설
녹아서 없어진 말들, 난청의 시쓰기
―최동옥 시인의 삶과 문학
김남호(문학평론가)
1.
우리는 종종 시인에게 ‘왜 시를 쓰느냐’는 질문을 한다. 시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집약해서 듣고 싶을 때 이 질문을 하게 된다. 너무 마땅한 질문이고 평범한 질문이지만 때로는 이 질문이 폭력이 될 때도 있다. 누구나 시를 써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왜 사느냐’고 묻는 것만큼 곤혹스러울 수 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죽어야 하는 게 아니듯이, 시를 쓰는 이유가 없다고 시 쓰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런 시인들에게 ‘왜 시를 쓰느냐’는 질문은 한가롭거나 사치스러울 수 있다. 그들에게는 시 쓰기가 곧 사는 일의 일부분이어서 분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시 쓰기는 일종의 비명이고 최소한의 존재확인이다. 사는 일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면 어찌 견디랴. 내가 왜 사는지 막막하기만 할 때 시라도 한 줄 안 쓰고 어찌 배기랴. 초라한 내 화단에 어느 날 민들레 한 송이가 피었을 때 시가 없다면 무엇으로 희열을 표현하랴.
질문이란 묘해서, 질문에 답을 하는 순간 답을 하는 사람이 명료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답을 하는 순간 답하는 자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후자에게 질문은 폭력이 된다. 내가 아는 최동옥 시인이 그렇다. 그에게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호떡이나 뒤집을지 모르겠다. 그에게 시는 살아가는 근사한 구실도 아니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악세사리도 아니다,
세상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금세 사라지지만
영원히 남는 기록들을
축구선수는 축구공에 싸인 하고
배구선수는 배구공에 싸인 하고
야구선수는 작은 공에 싸인 하고
으깨어진 어깨로 지게를 부리어
누구를 만나든 농부였다고
농부가 벗어놓고 간 저 삶의 무게
그대로 싸인이 된다.
- 「싸인」 전문
시인이 말하는 ‘싸인(sign)’은 무슨 신호나 상징이 아니다. 나를 상대에게 증명해주는 일종의 표식이다. 하지만 종종 단순한 표식을 넘어 성공의 증거로 인식되기도 한다. 유명 인사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내가 그 사람을 직접 만났다’는 증거로 싸인을 요구하고, 상대는 기꺼이 싸인을 해준다. 그런데 유명인과는 거리가 먼 최동옥 시인에게 싸인이 특별한 이유는 그의 딸이 유명한 배구선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딸이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싸인”을 해주는 모습을 시인은 흐뭇하게 지켜보곤 한다.
그래서 시인에게 싸인은 “금세 사라지”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세상이야기”)을 “영원히 남”겨두는 “기록”이다. 한때는 잘나가는 선수였음을 축구공에, 배구공에, 야구공에 기록해서 건네 주는 것이다. 하지만 싸인을 반드시 유명 인사만 남기라는 법은 없다. 누구나 자기 삶의 흔적과 상처를 싸인으로 남긴다. 시인은 “으깨어진 어깨”로 스스로가 농부였음을 “싸인”한다. 이 싸인을 통해 시인은, 나는 비록 가진 것 없는 농부로 뼈 빠지게 살았지만, 내 딸을 국가대표 배구선수로 키웠고, 딸아이가 하는 저 싸인이야말로 내 노동의 보람이자 내가 세상에 왔다가는 “끝나지 않은/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누군가가 최동옥 시인에게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싸인을 하기 위해서”라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2.
이처럼 최동옥 시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그는 196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고, 전주에서 성장했다. 서울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했다. 하지만 이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어느 날 운명처럼 경전선 열차에 올랐고, 그저 ‘섬진강이 좋아서’ 낯선 하동에 정착했다. 가진 거라곤 몸뚱어리밖에 없었던 그는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 했다. 막노동에서부터 풀빵장사, 목욕탕 보일러공, 호떡장사에 이르기까지 쉬는 날이 없었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농사일에서부터 구멍가게, 매실 쪼개기 등 잠시도 손을 쉬는 법이 없었다. 한때 그의 구멍가게였던 <중앙상회>는 하동읍내의 명소였다. 가게 앞에서 굽는 그의 호떡은 맛있기로 소문이 났고, 창업을 안내하는 어느 프로그램에 초청돼서 ‘호떡 강의’도 했다. 그에게 ‘삶의 무게’는 온몸으로 치러야 하는 ‘돈의 무게’에 다름 아니었다. 그 외에는 허식이고 가식이었다.
노가다 일용직은 멈춤이 없다
내 몸 하나 숫자 손가락으로 처분되며
드나들던 인력사무소 어둠의 골목 시간에도
호명을 기다리는 순간은 애절해지는지
야광 띠 작업복 안전화에 저 삶의 무게
무엇인가 가득 실려 있는 근심으로
쌉싸름한 담배연기 내품는 공사현장에
차가운 냉기만 남겨진 아시바에 두 팔을 건다
나보다 더 힘든 지축을 흔드는 굉음 풍경에
이름도 모르는 공사현장 용어들 속으로
성난 불빛만 반사되는 낯선 작업들
일당으로 늘상 그대로만 살아가는 일용잡부
가느다란 목소리 소주잔에 채워져 있다.
- 「삶의 무게」 전문
오랫동안 그는 새벽 시간에 인력사무소에서 대기하며 “노가다 일용직”으로 어디론가 팔려가기를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내 몸 하나 숫자 손가락으로 처분되며” “호명을 기다리는 순간은 애절”하다. 오늘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야광 띠 작업복 안전화”에 “무엇인가 가득 실려 있는 근심”으로 그의 몸은 이미 무겁다. “차가운 냉기만 남겨진 아시바에 두 팔을” 걸고 “이름도 모르는 공사현장 용어들 속으로” 들어간다. “성난 불빛만 반사되는 낯선 작업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루치의 노동을 팔고, 그 값으로 일당을 받고,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끌며 돌아와서 “가느다란 목소리 소주잔에 채”우면 하루가 끝난다. 그는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서 버텨야 한다는 일념으로 견딜 뿐이다.
힘들었던 그 시간을 채우고
날이 어두워졌다
시린 두 손을 바지춤에 묻어
집으로 가는 터덜터덜 그림자
대숲 계단을 걸어올라 갈 때쯤
불어오는 바람 한줄기 속에서
흔들리는 나뭇잎 바라보니
여전히 유효함을 알게 하듯
내가 나의 타인이고 싶을 때
모든 것을 덮고 싶은 가로등 불빛
산다는 것에 허무함이 찾아올 때쯤
그 길 끝나는 곳에 어슴푸레함으로
서있는 그림자 모습은 아내였다
서로를 위한 인정받고 싶은 삶의
시간으로 가장 따뜻한 저녁 먹었다
-「산다는 것은」 전문
힘들었던 하루 일을 마치고 어두워져서야 귀가길에 오른다. 그의 집은 하동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달동네. “시린 두 손을 바지춤에 묻”고 “터덜터덜” “대숲 계단을 걸어올라”간다. “내가 나의 타인이고 싶을 때” “산다는 것에 허무함이 찾아올 때쯤” 가로등 아래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만난다. 시인은 비로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만나 “서로를 위한 인정받고 싶은 삶의 /시간”을 맞는다. “가장 따뜻한 저녁”의 순간이고,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3.
그는 삶의 어느 길목에서 청력을 상실했다. 일상의 목소리 크기로는 대화가 어렵다. 그래서 그와 대화를 나누려면 고함지르듯이 해야 하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싸우는 모습이 되곤 한다. 나뭇가지에 새가 날아와서 울음소리로 존재를 알려도 알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새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밤마다 텔레비전 속은/이상하게 움직이는 입술들”만 있어서 “소리를 더 잘 보”려고 눈을 기울여야 했다.
나와 아내의 사이 전선의 기척
내가 누운 이쪽까지 전해지지 않는
오랜 세월 입에서 놓친 무수한 말들은
유배의 비극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난청으로 제값을 받지 못해
제대로 된 삶이 되지 못해 충돌하며
귀머거리 입구에서 역류해서야
딸자식 이름으로 구멍이 뚫린 난청
귀속에 닿는 어느 동네 개짓는 소리가
그립지도 않는 난청의 유배지에서 들렸다
- 「녹아서 없어진 말들」 부분
아내와 나란히 누워도 어둠속 아내의 전언은 “내가 누운 이쪽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같이 살아온 세월 동안 아내의 입에서 “놓친 무수한 말들은” 나에게 당도하지 못하고 둘 사이를 떠돌 뿐이었다. 소리가 사라진 곳에서는 어떤 위로도 주고받기 힘들었고, 소리를 잃은 곳은 “유배지”에 다름 아니었다. 견디다 못해 보청기를 착용했지만 부작용으로 더 힘들어서 사용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최첨단’ 보청기를 했노라고, 이젠 뭐든 다 들린다고 싱글벙글하는 게 아닌가. 어찌된 거냐고 물었더니 딸 은지가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성능이 좋은 보청기를 해주더란다. “딸자식 이름으로” “난청”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제는 “그립지도 않는 난청의 유배지”에 “어느 동네 개짓는 소리가” 들린다. 비로소 시인은 적막한 ‘유배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사람의 마을’로 돌아온 것이다.
4.
시인에게 외동딸 은지는 단순한 자식이 아니다. 그가 살아온 보람이고, 살아야 하는 이유이고,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기적이다. 아무리 엄마를 닮았다고는 해도 왜소한 체구의 자신에게서 어떻게 6척 장신의 딸이 태어났는지, 그 어려운 가난 속에서 어떻게 이토록 예쁘게 자라주었는지, 어떻게 혹독한 훈련의 시간을 버티고 사법고시에 패스하기보다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수로, 프로선수로 커주었는지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딸이 국가대표 배구선수니 이젠 딸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좀 크고 번듯한 집에서 살아도 되지 않겠냐고 해도 그는 여전히 오막살이를 고집한다. 달동네 끄트머리에 있는 그의 오막살이 사립문에는 오랫동안 문패에 <은지네 집>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지나치면서 보니 그 문패의 딸 이름 위에 빨강색 볼펜으로 조그맣게 ‘국가대표’라고 써놓았다. 딸에 대한 시인의 마음이 뭉클하게 느껴져서 한참을 그 문패 앞에 서 있었다. 고백컨대 그날 본 그 문패는 지금까지 내가 본 세상의 어느 문패보다도 당당하고 아름답고 눈물겨웠다.
그 문패가 걸린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좁작하지만 단정한 마당이 나온다. 그 마당 한 귀퉁이에 정갈하게 떠놓은 정안수가 보인다. 매일매일 코트에서 전투를 치르는 딸을 위해 내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천지신명께 혹은 부처님께 마음을 모아 비는 일뿐이었으리라.
간절한 마음 모아
딸아이 이름으로 연등을 단다
긴장감은 늘 체육관 저 소리들 속에 갇혀 있고
승과 패는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건만
그래도 프로선수, 푸른 꽃 피운 것 보면
대견하다 우리 딸, 잘 견뎠다!
- 「공양(供養)」 전문
5
시인에게 딸이 별이라면 아내는 하늘이다. 딸이 대들보라면 아내는 기둥이다. 그래서 그는 지독한 ‘딸바보’이고 소문난 ‘애처가’이다. 아내한테서 전화가 오면 같이 술을 마시가다도 바로 일어서서 뒤도 안 돌아보고 간다. 사랑하는 일만큼 ‘무서운’ 일도 없다는 걸 시인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하긴 그를 살게 해준 게 딸이고 아내인데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랴. “내 가난한 염전 한켠에서 그물에 걸려든/꽃게처럼/빨간 다라이 먼 바다에 띄어놓고/푸르디푸른 시간을”(「앉은뱅이꽃」) 쪼개온 아내가 아닌가.
이젠 아내도 “흰머리가 푸석하게 보이며/어깨는 한쪽으로 기울어 호미질 하는/모습에” 시인은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리지만” 아내의 모습에서 지난 세월의 아픔이 고스란히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궂은 일 어떤 일에도 밀리지 않던 당신”이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법. “호미 놓고 삭신이 쑤신다고 되뇌면서”도 “밭이랑에서” “잡풀 한포기 자라나는 꼴 못 본다”(「당신 같으면」). 그렇게 일밖에 모르던 아내가 마음이 허전한지 오늘은 바람 좀 쐬어달란다.
내 집에 딸이 없는 그 휑한 집 놔두고
신랑 따라 나 좀 바람 쐐주면 안돼?
와온 마을 바닷가 방파제를 걷는다.
지금까지 서방놈을 에워싸고 있는 감정
짜디짠 세월 한바탕 목놓고 싶지 않으랴
우두커니 물속 깊이만 실컷 바라보며
정박 중인 배들과 불끈 쥐었다가 풀어 걷는
바닷바람 쐰 속 시원하기는 하나
노을로 저미는 한 때 일렁이는 바다에
다시 한 번 속마음은 몇 번씩 뒤집어진다.
- 「마음을 깨물다」 부분
이젠 허리도 다리도 성한 곳이 없어서 구멍가게도 접고, 집에서 텃밭이나 가꾸며 살고 있는 아내다. 그런 아내가 오늘은 “세탁기 여러 번 돌려/이불 빨래 두툼한 잠바까지 널어놓고”는 딸이 없는 집이 휑하게 느껴지던지 갑자기 “나 좀 바람 쐐주면 안돼?”하고 나들이를 원한다. 시인은 아내를 데리고 순천만 와온으로 가서 방파제를 걷는다. 지난 얘기를 나누다 감정이 격해진다. 하긴 아내 입장에서 가난하고 무능한 남편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는가. “지금까지 서방놈을 에워싸고 있는 감정/짜디짠 세월 한바탕 목놓고 싶”었으리라. 아내와 함께 온 바닷가, “바닷바람 쐰 속 시원하기는 하나” “속마음은 몇 번씩 뒤집어”질 뿐이다.
6.
현실은 늘 각박했고, 시라도 끄적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아내 입장에서는 시 쓴답시고 밤을 새우는 남편이 얼마나 얄미웠겠는가. 하루 벌어 하루 살다시피 하는 처지에 가당치 않게 시가 다 뭔가 싶었을 것이다. 시인은 아내 눈치 살펴가며 몰래 시를 썼고, 2007년 토지문학제에서 하동소재 작품상을 받았다. 어려운 환경 탓에 중학교도 겨우 졸업한 시인이 난생 처음 문학으로 상이란 걸 받은 것이다. 이 상으로 한껏 고무된 시인은 드디어 2010년 종합문예지 『문학광장』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꿈에도 그리던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2017년에 첫시집 『앉은뱅이꽃』을 상재했다. 그는 시집의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항상 시보다 생활이 우선이었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더욱 어려워지고 힘들기만 한 세상, 그럴 때마다 조금씩 써온 문장이 내 인생에 한줄기 희망이란 사실을 알았다. (…) 시집을 내자니 걱정이 앞선다. 빈손이 시리다.”(「시인의 말」, 『앉은뱅이꽃』 서문)
요즘은 읍내의 노인/장애인 복지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낮은 곳에서 힘겨운 사람들을 도우며 산다.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진실한 시인이고, 가장 성실한 가장이고, 가장 따뜻한 이웃이다. 두 번째 시집 낼 때가 안 됐냐고, 일부러 들릴락 말락 낮게 귓속말로 묻는데도 바로 알아듣고 겸연쩍게 웃는다. 역시 요즘 보청기는 성능이 좋다. 이젠 그에게 ‘왜 시를 쓰느냐’고 물어봐도 될 것 같다. ■
최동옥 시인 약력
-1960년 전북 전주 출생.
-2007년 토지문학제 하동소재부문 우수상 수상.
-2010년 ˂문학광장˃ 신인상으로 시인 등단.
-시집 『앉은뱅이꽃』이 있음.
-하동문인협회 회원.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일반예술활동준비금지원사업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