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다리
우동식
고향 친구들 계 모임에서 강원도 영월, 정선, 삼척 등 지난날 석탄을 운반했던 길인 운탄고도(運炭高道)로 여행을 다녀왔다. 서로의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 가까스로 크리스마스 연휴를 이용하게 되었다. 일박 이일의 일정 중 첫 번째 여정이자 생각을 많이 낳게 한 대상은 영월 평창강의 섶다리였다.
‘섶다리’는 ‘섶’으로 만든 다리이다. ‘섶’이란 잔가지와 솔잎과 같은 잎새, 잡풀 등 땔감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 이름답게 다리 가장자리에서 푸르던 솔잎들이 마르기 시작하여 군데군데 붉은 빛을 띠고 있는 모습들이 주변의 하얀 눈과 어우러져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다리 아래를 보니 놀랍게도 교각 역할을 하는 것은 별로 굵지도 않은 통나무들이었다.
그러기에 이 섶다리는 자동차나 우마차를 위한 다리라기보다 단순히 가까운 들녘으로 일을 나가기 위한 생활형 다리라 할 것이다. 혹은 가벼운 행장으로 외출을 나가는 마을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 다리를 건너면 새 소리, 바람 소리에 둘러싸인 산골 강촌마을의 자연이 가슴으로 스며든다. 하늘과 강과 나무들이 뿜어내는 넉넉한 무위자연의 세계를 유영하는 듯하다.
이 다리가 놓인 곳은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평창강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농번기가 끝나고 강물이 얕아지는 10월경에 이 섶다리를 만들고, 그것을 기념하는 문화축제를 연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까움이 어린 놀라운 사실은 이 다리가 이듬해 여름철에 물이 불어나면 저절로 휩쓸려 내려가 사라지는, 전통 방식의 임시 다리라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일 년 이상을 사용하지 않는 한해살이 다리로서, 이것은 만들 때부터 끊길 것을 아는 단명의 시설인 셈이다. 더구나 이 주천면의 섶다리는 미관상, 안전상의 이유로 장마가 오기 전에 애써 철거하기까지 한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이 다리는 자연에 순응하는 친환경적 존재이다. 다리가 홍수에 떠내려가는 것이라 해도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만드는 재료가 순전히 나무와 흙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섶다리는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모습 그대로를 상징적으로 재현해 주고 있는 문화적 존재라 하겠다.
그러함에도 해마다 그 다리를 새로 가설하는, 그 놀라운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자연에 순응하면서 전통적 풍속을 지켜가려는 마을 사람들이 지닌 이체동심(異體同心)의 유대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고장의 전통을 지켜가는 친환경 다리라면 또 하나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청주 무심천(無心川)변의 ‘꽃다리’이다. 일제시대에 나무 다리에서 콘크리트 다리로 개축되었다가 이제는 수목원(樹木園)으로 단장된 이 다리는, ‘남(南)다리’라는 옛 이름과 함께 전통을 가꾸어 가는 청주인의 이름다운 마음씨가 아로새겨져 있는 듯하였다. 젊은 시절 청주에서 잠시 살았을 때 보았던 그 다리는, 그 옆으로 나란히 달리고 있는 현대식 다리인 ‘청남교’와 잘 어우러진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새삼 부끄러워지는 일이 하나 있다. 지난 설날 때의 일이다. 올해 설부터는 차례를 생략하자는 큰집 맏조카의 제안에 우리 가족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의했었다. 게다가 큰아이가 아예 1박 2일 여행을 가자기에 주저 없이 동해 호미곶으로 떠났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해안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백색 지붕의 풀빌라에 들었다. 청보리밭이 바람 따라 물결처럼 일렁이고, 그 발치에 길다란 쪽빛 바다의 흰 포말들이 갈매기처럼 파닥이는 모습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마치 바다 침대에 누운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떠오르는 아침 해의 동그라미가 해안에서 펼쳐 든 ‘상생의 손’ 에 살짝 얹히는 장면을 보았고, 맛있는 해산물도 즐겼다.
여행에서 돌아와 아이들은 다시 서울로 갔다. 명절 첫날에 아무런 격식 없이 구경 잘하며 마음 편하게 잘 지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뿌듯한 마음 한 켠에 왠지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밀려 들어왔다. 어쩐지 명절답지 못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러다 보면 큰집 가족들과는 차츰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핵가족 시대의 분위기라 해서 조금의 저항도 없이 민족 고유의 풍속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기만 한가.
최근 어느 강연회에서 우리나라 위기 지수가 육십칠 퍼센트인데, 그 첫 번째 원인이 가정 파괴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하였다. ‘대가족이 모여 북적대는 불편함에 못 이겨 핵가족끼리 즐기는 단출함을 좇는 가운데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유대와 인정 속에 피는 전래 풍속의 꽃향기가 아닐까’ 하는 심경에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했다. 그것은 시류를 따라 허물어지는 전통에 대한 아쉬운 소회라고 할까.
다시금 판운리 강마을의 섶다리를 생각해 본다. 해마다 그 다리를 새로 놓고 또 허물어야 하는 불편함을 이기고 상부상조의 마음으로 마을 축제의 거룩한 혼(魂)을 이어가는 그 마을 사람들의 고결한 마음에 어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으랴! 자연의 섭리를 가장 잘 실천하는 자연 친화의 상징으로서 판운리의 섶다리는 편의를 우선하는 현대에서 전통을 소중히 이어가는 정신의 보루 같은 존재라 할 것이다.
섶다리, 너는 세월의 급류(急流)에도 끄떡없이, 이 땅의 소중한 옛것 지킴이의 역할을 이어 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영원할지니….
---금오산수필문학회, 《금오산수필》 제7집(2024.12), 257~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