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등반기
유월의 토요일에 검단산과 사랑을 나눴다.
친밀감을 느껴서 열정을 쏟고 헌신을 보태게 되면 분명 사랑에 홀랑 빠진 것이다.
때론 사랑은 미친짓이다. 그러나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더 미친짓이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것.
이래저래 세상사에 시달려도 흘러는 가는 세월이기에 가슴에 묻어두고 썩힐 일이 대하소설 몇 부작이나 될 거라는 것. 욕망과 집착 때문에 늘어난 번뇌가 불평을 달고 내게서 나왔으니 고스란히 내게로 되돌려지는 것일 터.마음에 시커먼 때 잔뜩 묻히고 살다가도 진리를 붙들면 조심스러워질 인생길로 접어들라치면 산만한 경전이 따로 없다.
고로 하남시에 사는 고모님댁 고종질 결혼식에 왔다가 토요일에 검단산에 들어갔다. 경전 속으로.
강변역에서 (서울) 테크노마트 방향으로 걸어가 하남시 검단산행 버스에 올랐다. 30분쯤 지나 검단산 4거리에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에니메이션 고등 학교 앞을 지나 검단산 등산로에 들어섰다.
산딸기는 젖꼭지만하게 익어 가느라 햇살 통통했다.
하늘을 몽땅 그린 모자이크 처리중인 솔숲부터 반긴다.
푸르싱싱한 것이 향낭까지 꿰차고 맞아주니 어떤 사람이 싫다할소냐!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내친김에 성주풀이 자락자락 풀어 거니노니 돌길은 발장단 되어 주었다.
앗싸! 이건 또 무엇인가?
솔숲 옆으로 구비구비 계곡 물소리가 반주를 넣어준단 말이지. 좋을씨고. 솔숲이 그칠 즈음 전나무 숲이 그야말로 쭉쭉빵빵하게 대기중이었다. 마구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는 속때까지 밀어내면서 산림욕을 시켰다.
광주산맥의 끝자락인 검단산은 '신성한 제단으로 쓰이던 산' 이라는 이름처럼 천신을 모시던 산답게 신령스러운 기운이 쫘악파고 들려 했다.
지난 달엔 참성단이 있던 마니산엘 갔더랬는데 이번에는 검단산이라니.
이러다가 나에게 영험한 '그분'이라도 오시는 것 아니야. 뻐꾹이 노래 들으며 전나무숲을 올라가다가 보면 다시 솔숲이 이어달기를 하였다. 향기는 줄을 대싸니 내 콧구멍과 허파는 오늘 호강에 겨웠지. 초록공기 무진장한 숲이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라는 사실이 신명에 프리미엄까지 얹어주었다.
검단산 해발 657m 이다. 관악산과 비슷한 높이지만 산길로 편도 2.28Km 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걸린다.
초록 공기가 들어가는 족족 전신에 땀 쪽쪽 빠져나와 전신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이 환상의 시스템 앞에서 요놈의 입에는 "죽인다 죽여" 하는 소리만 자꾸 붙었다. 정상을 앞에 두고 가파른 돌계단이 밧줄 없이 오르기엔 힘에 부칠 듯 싶었다. 뭉게구름 수놓은 청비단 하늘이 정상에 오르니 월계관처럼 처억 얹혀졌다. 선글래스 벗어 던지고 마음을 휘두르니 팔당댐과 양평쪽 두물머리가 유리판처럼 반짝거렸다. 한강이 검단산의 치맛자락이라 했던가? 고 앞뒤로도 산 산 산 뿐이고 산들은 초록 벨벳을 걸치고 짜르라니 흘~러내렸다.
그 산마루에 긴 나무의자를 갖다 놓은 하남시청의 센스! 쨩! 의자에 앉아서 산과 구름을 굽어보니 신기가 동하고 하늘에서 동앗줄이라도 내려올 듯 싶었다. 선녀도 별거 아냐. 내 옆에서 다리쉼 하시던 오십 중반으로 어림되는 부부가 콩고물 묻은 떡 세 조각을 스틸로폼 접시에 담아 내미셨다. 대관령 갔을 때 떡취(쑥종류)나물을 뜯어 두었다가 데쳐 찹쌀 방아 찧어 만드신 떡이라는데 이름하여 '산취떡'이란다. 쑥떡 빛인데 향은 그보다 흐리고 쫀득거리기는 판정승감이었다. 산에서 웬떡이냐!
나는 제크 비스킷 한 봉지를 내밀고 너무 약소한 듯 싶어 인삼껌 두 개를 얹어 드렸다.
산에서 먹으면 제크에 묻은 소금에서 단맛이 돈다. 나만 그런거야~ 가져간 냉커피와 오복차 (내가 만든 차: 더위 이기려고 오미자, 구수하라고 둥글레, 감잎은 엇따 써, 몸에 좋은 약은 쓰다니까 말린 칡뿌리, 향기도 중요하니까 쟈스민을 넣어 끓인 물) 500ml 와 함께 오르락내리락 했더니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또, 아카시아껌을 씹으며 산길을 거니는 나만의 센스! 나뭇잎이나 꽃만 보고는 이름을 도통 모르는 나무들이 많았지만 감히 그 느낌을 입에 달지 말기로 하자.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입방정을 떨어대면 기분이 왕창 더럽더란 말이지. 말도 못하는 아니 내가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진 저 나무들도 그럴 것만 같았다. 오늘은 저들이 나의 연인들이니 존중해줘야지. 산을 다 내려오다 오른 쪽으로 한눈을 팔면 "호국사"가 있댔다.
자그마한 약수터와 종각까지 있는 암자인데, 절마당에는 불두화가 소담스레 미소경을 읽고 있었다.
어디나 (산이든 바다든) 디카를 찍느라 아우성인데 디카도 없이 오른 나 같은 사람이 할 일이 뭐 있겠는가. 눈찌검이나 실컷 할 밖에. 호국사를 오르는 계단은 폐타이어로 축조된 것이었는데 꽃잎이 그 위에 떨어져 누우면 "화전"처럼 보인다면 믿을래나 말래나. 게다가 절마당 노송의 가지가 흐드러지다가 절집 지붕 위에 겹지붕을 만들어 솔꽃 기와를 두른 모습이 까치 두 마리와 어우러져 심중에 그림 한 점 챙겨 주는 것을 누가 마다해.
스님과 공양간 보살들 지나가실 때마다 합장하고 경의를 표하니 관음의 미소로 답례하시고 시낭송 같은 불경 (현대어로 풀어쓴 듯한 법구경) 테잎까지 틀어 주셨다. 내가 너무 오래 절집 평상에서 헤찰했던 모양이다.
"남의 허물은 겨처럼 까불어 흩어버려라......"
이 말을 심낭에 넣고 머위가 지천인 남새밭을 돌아 갔던 길 되짚어 술렁술렁 내려왔다. 집이다.
사들고 온 수박부터 냉장고에 넣어 두고 올들어 처음으로 찬물 샤워를 했다. "검단산"이었으니 목욕재계를 하고 갔어야 했는데 내맘대로 순서를 확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