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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그 녀석이 접속하는 중
전창수 지음
- 미래의 그 녀석이 접속하는 중에 등장하는 단편소설 -
달라진 돌파구
텔레레터 접속
핸드폰 안에는 그녀석이 있었다
달라진 돌파구
전창수 지음
01.
“한희야!”
“왜 불러?”
“나랑 놀자!”
“엄마 왜 그래?”
“장난 한번 해 봤어!”
“근데, 뭐 먹는 중이야?”
“호빵”
“왜 이렇게 조금씩 먹어?”
“목 말라서”
“음료수에 마시게?”
“음료수가 참 맛있어. 최고급 과일로 갈아 만든 건데, 세 번씩이나 농축한 거래.”
“말이 돼?”
“뭐가?”
“과일을 세 번씩 농축하면, 그게 음료수야?”
“그게 음료수가 아니고 뭐야?”
“내가 보기엔 그건!”
“그건?”
“밥풀이야”
“한희야!”
“농담 같은 진담!”
02.
“엄마가 호빵 줄게!”
“엄마, 나도 호빵 있어.”
“그래도, 내가 주는 호빵은 달라”
“어떻게 다른데?”
“말을 해.”
“그게 무슨 소리야?”
“한번 시험해 볼까?”
“진짠지 한번 보고 싶네.”
나는 호빵을 한희에게 주고 호빵에게 말을 시켜보라고 했다.
“호빵, 너 진짜 말해?”
“빙그레.”
“뭐야 그게?”
“다시 한번 해봐.”
“호빵아, 웃지 마.”
“흑흑!”
“엄마, 진짜!”
“재밌잖아.”
“하나도 없어, 재미.”
“그럼 뭐 재밌는 거 없어?”
“엄마?”
“응?”
“내 호빵 어디 갔어?”
“안 속아!”
“아니, 진짜로 내 호빵 어디 갔어?”
“응?”
“나, 방금까지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장난치지 말고.”
“장난이 정말 아니고.”
“아니라고?”
“진짜로 사라졌어.”
“잠깐만.”
나는 한희와 함께 집안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호빵아, 호빵아.”
“엄마, 뭐하는 거야?”
“날아갔을지도 몰라서 찾고 있어.”
“그게 말이 돼?”
“호빵이 말하고 날아다닌다는 것을 믿으면.”
“믿으면?”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 펼쳐질 텐데.”
“엄마, 무슨 엉뚱한 소리야?”
“그걸 믿으면.”
“응.”
“호빵을 통째로 삼킬 수가 있어.”
“엄마, 무슨 헛소리야? 호빵을 어떻게 통째로 삼켜?”
“통째로 삼키면.”
“응.”
“아주 재미있는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질 거야.”
“엄마, 그 말 정말이지?”
“정말이야. 한번 믿어보지?”
“잠깐,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엄마가 여태까지 너를 키울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아, 맞다.”
“그럼, 믿을 수 있지?”
“아, 믿을 수 있어. 엄마는 직업이 없지.”
“그래, 맞아. 아빠도 없고, 직업도 없는데, 널 어떻게 키웠겠어. 호빵 덕분이야.”
“아, 그럼?”
“그래. 너도 믿어 봐. 이제 나의 호빵을 너에게 물려줄 때가 됐어.”
“그래야겠네.”
“호빵아, 호빵아. 어디 있니?”
“엄마, 호빵이 대답 안해?”
“안 하네.”
“내가 불러볼게.”
“그래.”
“호빵아, 호빵아!”
“나, 여기 있어. 여기 너무 캄캄해.”
“어, 호빵이 드디어 대답했다.”
“엄마, 호빵 목소리가 원래 이래?”
“아니, 원래는 아주 어른스럽고 중후한 남자 목소리였는데, 갑자기 애기 목소리는 왜 나는 거지? 호빵아, 너 누구니?”
“나, 방금 태어났어. 근데 여기 왜 이렇게 캄캄해? ”
“아, 또 태어났구나. 캄캄해?”
“응, 여기 너무 캄캄해. 나 좀 꺼내줘.”
“얘!”
“응?”
“화장실 가서 꺼내야겠다.”
“아, 진짜!”
“빨리!”
“알았어!”
03.
“엄마, 얘야?”
“잘 씻었지?”
“호빵이 먹을 것처럼 안 생겼네?”
“얘!”
“응?”
“진짜 호빵이면 먹었지.”
“아, 이름이 그냥 호빵이야?”
“응. 내가 그냥 호빵이라고 부르는 거야.”
“아, 그런 거야?”
“응. 호빵처럼 즐거움을 주라고 호빵이라고 불러. 우리 호빵 먹으면 즐겁잖아.”
“아, 그런 거구나.”
“근데, 얘는 왜 내 뱃속에 들어가 있었지?”
“호빵아, 너 거기 왜 들어가 있었어?”
“어, 나 지금 태어난 거 아니야?”
“아, 그런 건가?”
“엄마, 호빵은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어?”
“처음에?”
“응.”
“호빵아?”
“응?”
“너 아빠가 누군지는 아니?”
“내가 아빠도 있어?”
“있을 리가 없나?”
“없을 걸. 근데, 나는 왜 이렇게 작아? 둘은 이렇게 큰데?”
“아, 그게 문제네.”
“잠깐만, 호빵, 너 남자야, 여자야?”
“그런 것도 있어?”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먹기도 해야 돼?”
“잠깐만, 얘 생식 기능이 아예 없네.”
“먹으면 안 되겠다.”
“호빵아, 너 왜 거기 있었는지 몰라?”
“응. 나 태어나보니 캄캄했고 밝은 데로 나오니까 둘이 있네. 나 왜 여기 있는 거야?”
“아빠는 갔나 보다, 한희야.”
“아, 그럼?”
“얘를 남겨 두고 갔나 봐.”
“엄마?”
“응?”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냐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호빵을 처음 알게 된 건.”
“알게 된 건?”
“네 아빠를 알고 나서부터인데.”
“응.”
“호빵이 아빠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호빵이 데려갔어. 아빠를. 그래놓고.”
“그래놓고?”
“나한테 와서, 아빠를 살리고 싶으면 자기 말을 들으라고.”
“어?”
“호빵이 우리를 먹여 살린 거 아니야?”
“호빵이 아빠를 데려갔으니까, 자기가 우리를 먹여 살리겠다고 자기가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어.”
“아, 그럼?”
“호빵이 없으면, 우리는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없어. 그런데, 이 애를 남겨놓았다는 건, 이애가 우리를 먹여살려야 하는데.”
“엄마, 나 직장 구하면 되는데.”
“스무 살인가?”
“응. 이제 나 직장 구할 수 있어.”
“그래?”
“내가 이 호빵 아이 먹여 살릴… 아니지. 얜 안 먹어도 되지.”
“얘가 아니라, 우리가 먹고 살아야지.”
“그럼?”
“당장 직장 구할 수 있어?”
“얘는?”
“내가 데리고 있을게.”
“그래, 알았어. 당장 전화해 볼게.”
“선불 받아야 되는데.”
“가불해 주는 직장으로 알아볼게, 선불이 아니라.”
“알았어.”
04.
“직장은 구했어?”
“응.”
“가불은?”
“받았어, 3개월치 먼저 받았어. 중간에 그만두거나 하면, 두배로 변상해야 돼.”
“그럼, 이제부터.”
“나, 잠만 자고 바로 회사가야 돼.”
“이 애는 내가 데리고 자?”
“응.”
“알았어. 호빵아, 자자.”
“자는 게 뭐야?”
“잠도… 안 자는구나, 참…”
“엄마, 얘 안 자면 어떻게 해야 돼?”
“엄마도 못 자.”
“어, 그럼 어떻게 하려고?”
“호빵아빠가 있으면 해결되는데, 어디로 간 거지, 대체.”
“호빵아빠는 자?”
“자는 게 아니고, 호빵아빠는 내가 잘 때면 다른 데 어딘가로 갔다 와. 그런데, 이 애는 안 자면 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아, 난 자야 되는데.”
“괜찮을 거야. 자고 회사 가. 먹고 사는 게 먼저지.”
“알았어, 나 잘게”
호빵아이는 뭐가 좋은지,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호빵아이에게 대답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라고 부르면 돼?”
“그래. 엄마라고 불러.”
“아니야, 내가 엄마야.”
“응?”
“내가 엄마고, 이 분은 할머니. 호칭 헷갈리지 마.”
“그래? 그럼, 이쪽은 엄마, 이쪽은 할머니?”
“한희야, 그냥 내가 엄마하면 안돼?”
“엄마, 나 잘게. 내일 아침에, 아니, 나중에 얘기해.”
“알았어.”
“엄마라고 불러, 할머니라고 불러?”
“호빵아.”
“응?”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아, 그럼 둘다 엄마라고 부를래.”
“응?”
“이쪽은 한희 엄마, 이쪽은 한 엄마.”
“아, 그래. 알았다.”
“그럼, 나 정말로 잘게”
“그래, 알았어.”
“호빵아?”
“응?”
“너는 정말로 왜 거기 있었는지 몰라?”
“응.”
“왜 거기에 있었을까.”
“근데, 한 엄마.”
“응?”
“엄마가 먹는 거 그거 나도 먹으면 안돼?”
“먹을 수 있어?”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 그거 뭐야?”
“이거 빵이라는 건데?”
“무슨 빵?”
“찐빵.”
“나도 줘.”
“그래, 여기 조금 떼어줄게”
나는 호빵아이에게 찐빵의 한 부분을 살짝 떼어서 건넸다. 호빵아이는 그 빵을 맛있게 쩝쩝 먹었다.
“맛있어?”
“응.”
“더 줄까?”
“응.”
“그래, 더 줄게.”
“응.”
나는 찐빵의 부분을 조금 더 떼어서 호빵아이에게 건넸다. 호빵아이는 또 찐빵을 맛있게 먹었다.
“어때?”
“너무너무 맛있어. 더 줘.”
“응?”
“그거 그냥, 나 다 줘.”
“응.”
나는 찐빵을 통째로 호빵아이에게 건넸다.
“엄마도 먹어야 되는데?”
“엄마도 먹어야 돼?”
“응.”
“그럼, 잠깐만.”
호빵아이가 입 속에서 우물우물거리더니, 호빵의 일부를 입에서 뱉어내고는, 거기에다 바람을 훅 불었다. 조금 후, 호빵 세 개가 눈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먹어 봐.”
“너도 할 줄 아는구나.”
“나도?”
“아빠도 그랬는데.”
“아, 그런 거였구나.”
“응!”
“호빵아.”
“응?”
“앞으로 우리 계속 먹여 줄래.”
“응. 그럴 수 있어. 근데, 꼭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뭔데?”
“아빠라고 했던 그 사람.”
“응.”
“그 사람을 찾아줘.”
“아, 그래야지.”
“그럼, 내가 먹여줄게.”
“그럼, 한희 직장은 어떡하지?”
한희의 잠꼬대가 무르익어갈 무렵, 호빵아이는 찐빵을 먹고 나랑 조금 얘기를 하더니 놀랍게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호빵아이도 꿈결에서 아빠를 찾고 있는지, 아빠, 아빠를 계속 외쳐대었다. 나는 꼭 호빵아이의 아빠를 찾아주리라 다짐했다. 한희는 직장을 계속 다녀야겠지. 한희의 인생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내 미더움으로 다가왔다. 한희의 인생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몸을 떨었다. 호빵의 아빠가 없다는 사실은 내게 너무도 슬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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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 지음
1.
“당신은 성경 전체통독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경수가 연습장 속의 그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지?’
경수는 그 글자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는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근데 이건 왜 글자가 저절로 써지지?’
경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써진 글자에 대답을 한다.
“아니요, 없어요.”
그러자 다시 글자가 저절로 써진다. 마치 경수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어볼 마음은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어요. 왜 묻는 거죠? 그리고 이건 뭐예요?”
“이건 텔레레터라고 합니다.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접속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구요. 혹시 저랑 대화를 원하십니까?”
“정말 사람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게 가능한 건가요?”
“지금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마구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레터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일 거고, 저 역시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저는 지금 텔레레터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와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 레터를 받으시는 분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저는 그냥 학생이에요. 학생이고, 철학을 전공하죠. 근데, 이 레터는 왜 되는 거죠?”
“아마도 하나님께서 많은 걸 이루시기 위해 저에게 주신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요?”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인가요? 이거 전에는 아주 안 좋은 거였다는데?”
레터 속의 그 사람은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레터 속의 그 사람은 사라졌다.
2.
다음 날, 영희에게 물었다.
“영희야, 혹시 텔레레터라고 알아?”
“아, 너도 드디어 알게 되었구나?”
“알아?”
“요즘 유행하는 거야.”
“유행이라니?”
“요즘 텔레레터로 대화하는 사람 많아.”
“무슨 대화?”
“그 사람이 여러 가지 물어봐. 너한테 뭘 물어봤어?”
“성경 볼 생각 있냐고.”
“나한테는 카피 써 본 적 있냐고 물어봤는데.”
“사람마다 다른 질문이 가나?”
“그런 거 같아.”
“근데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알아.”
“몰라 사람인 거 외에는 몰라.”
“사람이야?”
“사람인 거 확실해. 왜냐하면 사람이 아니면, 24시간 대화가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근데, 부르면 대답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대화하다가도 자기 화장실 간다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그러니까 사람 맞는 거지?”
“아, 그러네. 사람은 맞네. 근데 이게 어떻게 가능해?”
“옛날에도 되지 않았어?”
“아, 그때는 못된 귀신들이 하는 거 아니었어?”
“아, 그런 거였나?”
“그래서 그때는 귀신들이 하는 줄 알고 그런 말 많이 했잖아. 악한 영들은 떠나갈지어다!”
“아, 그렇지 맞아. 그래서 그때는 거의 서로 간에 속고 속이는 거였지.”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
“지금은 그냥 물어보기만 하던데?”
“어, 왜 물어보기만 하지?”
“그리고 특별한 얘기는 안해?”
“몇 번 물어보고 끝이야.”
“그게 좋아?”
“응, 나한테 누군가 뭔가를 물어봐 준다는 거,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걸 말할 수 있다는 거. 그게 좋던데?”
“넌 안 그래?”
“아니, 난 얘기하다가 끊겨서.”
“아, 제대로 얘기 못했구나. 그 사람 그래. 얘기하다가도 무슨 일 생기면 막 끊기고 그래.”
“아, 진짜 사람 맞구나.”
“사람 맞으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어떻게 해? 그럴 때는?”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얘기해 보곤 하지. 그러다 보면, 우리끼리 더 얘기하다 보면 문제가 풀리기도 해.”
“아, 그렇게 해?”
“응, 혹시 그 사람한테 해결해 달라고 떼쓰거나 조르면 그 사람이 그렇게 얘기한대. 내가 그걸 왜 해? 라고 얘기한대.”
“그래? 그렇게 얘기한대?”
“자기는 그냥 물어보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해결은 스스로 하는 거라고 얘기한대.”
“아, 그럼 진짜로 속이는 사람은 아니네?”
“맞아, 속이는 사람은 아니야. 다음에 얘기가 되면, 몇 개 물어봐 달라고 해봐.”
“아, 그래볼까? 점점 궁금해지네”
“그치, 나도 그렇게 빠져들었지. 텔레레터의 세계에.”
“그래?”
“근데, 주의할 게 있어.”
“뭔데?”
“너무 재밌다고 막 하면 안 돼.”
“왜?”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그리고 거기에 빠져서 자기가 할 것들을 놓치면 안 돼.”
“아 그렇지. 맞아.”
“그러니까, 여유가 되는 시간에 해야지. 자기 할 것들 내팽개쳐 놓고 하면, 그 사람한테 혼날지도 몰라.”
“아, 그래?”
“응, 그러니 혼나고 싶지 않으면 조심해.”
“아, 응… 알았어…”
3.
“저와 이야기해 보시겠습니까?”
드디어 경수가 기다리던 텔레레터의 반응이 왔다.
“네, 하겠습니다. 질문 좀 해주세요. 어떤 질문이든지요?”
“어떤 질문을 원하십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지금 원하시는 공부가 있습니까?”
“저, 지난번에 얘기했던 철학과 학생인데요. 혹시, 철학에 관해 뭐 질문하실 건 없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네에.”
“상담에 관련된 책을 100권 이상 읽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철학과도 상담에 관련된 책을 읽어야 하나요?”
“읽으면 안 되나고 생각하시나요,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아, 읽어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저, 읽은 게 없는데 어떻게 해요?”
“그렇다면, 읽으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읽을 의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 보세요.”
“네, 잠깐만요.”
경수는 인터넷서점에 접속한다.
“접속했어요”
“상담을 검색해 보세요.”
“네 검색했어요”
“거기서 책을 하나 골라보세요.”
“이유가 많으니 그냥이라고 할 수밖에”
“그 책을 선택하셨습니까?”
“네,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철학과님에게 미션을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뭔가요?”
“제목을 보고 그 느낌을 적어보세요.”
“아, 제목만 보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상담에 관련된 책을 100권 이상 읽으신 후에 저를 불러주세요.”
“언제든 부르면 대답해 주시나요?”
“말씀드리자면, 저는 당신의 필요에 따라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움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상담에 관련된 책 100권 이상을 읽고 난 후에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당신의 선택이 됩니다. 만약 그때에 제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당신의 길이 따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 느낌을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이유가 많으면 그냥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건가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은 대답해 드리지만, 제가 모르는 부분은 대답해 드릴 수 없네요. 철학과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유가 없으면 그냥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유가 많으면 그 이유들을 일일이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철학과님, 그럼 이 텔레레터를 종료하시겠습니까?”
“아니, 벌써요?”
“철학과님, 저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럼 이만 접속을 종료해야 할 듯합니다. 철학과님, 그럼 다음 기회에 또 뵐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아, 네에.”
이렇게 금방 끝난 경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연습장 속의 그 사람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4.
“영희야”
“응?”
“텔레레터 속의 그 사람은 왜 이렇게 금방 나가 버려?”
“우리도 길게 얘기 안하는데?”
“우리라면?”
“아, 우리? 같이 모여서 얘기하는 애들 있어.”
“그래?”
“우리, 같이 모여서 얘기하다 보면, 접속이 되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 같이 얘기하곤 하는데, 길어야 5분이야.”
“그래?”
“우리도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는데, 그렇게 얘기하곤 사라져.”
“아, 도대체 그 사람 누구인 거야?”
“사람은 맞는 건 확실한데, 알아야 돼?”
“아, 궁금해 미치겠어. 누군지.”
“왜?”
“그 사람하고 직접 얘기했으면 해서.”
“왜?”
“텔레레터로 하니까 얘기하다 말아버리는 것 같아서.”
“우린 아닌데.”
“아니야?”
“그럼 우리 모일 때 같이 모여서 해 볼래”
“그래도 돼?”
“응, 그래도 돼.”
5.
“몇 명이야?”
“경수까지 다섯 명”
“드디어 다섯 명이 된 거야?”
“응.”
“다섯 명 모이면 얘기하랬어.”
“아, 좋아! 드디어 다섯 명이다!”
“그럼, 시작해…”
“잠깐만.”
“왜?”
“이분 접속 가능 시간이”
“아 그렇지… 아직 5분 남았다.”
“경수야, 우리 5분 후에 이분하고 연습장으로 얘기할 건데.”
“아, 텔레레터로?”
“응, 텔레레터로.”
“우리 중의 대표자가 쓸 거야. 우리 5명 모이면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했어.”
“뭔데?”
“텔레북, 텔레신문, 텔레상담, 텔레토론, 텔레말씀”
“이게 다 뭐야?”
“한 사람당 하나씩이래.”
“그래서 다섯 명 모이면 이거 한다고 한 거야?”
“응.”
“그래서 한 사람당 하나씩 맡으랬어.”
“아, 그래?”
“난 뭐야?”
“텔레말씀”
“말씀이 뭐야?”
“성경이라고”
“아 내가 왜?”
“우리 다 교회 다니는데, 너만 안 다니니까.”
“그런 법이 어딨어?”
“안 할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할 거지?”
“할게”
6.
“저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어 보시겠습니까?”
“네, 저희 준비되었어요.”
“그럼 첫 번째는 누구십니까?”
“기적이 1번이요.”
“어떤 걸 하시겠습니까?”
“저, 고민이 있는데요?”
“어떤 고민이 있으십니까?”
“텔레레터란 게 정말로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텔레레터로 하는 이 모든 걸 긍정적인 것으로 만드시겠습니까, 부정적으로 만드시겠습니까?”
“아, 그럼 그걸 우리가 만드는 건가요?”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긍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긍정적인 면을 보고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가도록 노력한다면 텔레레터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좋은 것이 될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저, 생각 좀 해 봐야 할 거 같아요. 다음 사람으로 넘겨도 되죠?”
“다음 분은 누구십니까”
“저, 텔레북 하고 싶어요.”
“아, 그러십니까. 그럼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책의 어떤 부분을 무작위로 펼쳐서 송신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은 / 단순히 일을 열심히, /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 적당한 쉼과 몰입의 시기를 /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 안상현 『네가 혼자서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중에서“
“이거 보고 막 뭔가 떠오르는데, 어떻게 해요?”
“떠오르시는 대로 막 쓰면 본인의 것이 됩니다. 본인이 쓰고 본인이 활용하시면 됩니다. 쓰는 동안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네에!”
“이번에는 누구십니까?”
“저는 토론을 하겠다고 한 사람인데요. 엑셀 자격증을 따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나요? 이거 여기서 토론하면 되나요?”
“네, 그렇습니다. 같이 얘기 해 볼까요?”
“같이요?”
“지금 접속하신 분이 좀, 많이 계실 텐데 떠오르시는 분 얘기하세요.”
“아, 우리만 있는 거 아니에요?”
“네, 많은 분들이 함께하시니, 같이 얘기하시면 됩니다.”
“연습장인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분이 얘기할 기회를 드려도 될까요?”
“네, 얘기해주세요”
<일단, 이 레터의 주인은 얘기한다>
<네, 제가 얘기해요?>
<우선, 시작을 하셔야지요.>
<아, 그렇죠. 시작할게요.>
<네.>
<일단, 따려는 마음은 잘 모른다. 대신, 못 따는 방법은 안다.>
<정말요?>
<못 따는 방법 알아요?>
<네, 압니다.>
<그럼, 오늘은 신다님의 얘기를 듣는 걸로.>
<아, 그럴까요?>
<잠깐만요. 이분 이름이 신다예요?>
<네, 그렇습니다. 이분 이름이 신다예요. 본명은 아니지만.>
<아 그렇게 부르는군요.>
<그러니까, 못 따는 방법은요?>
<못 따는 방법은>
<아 기대된다>
<대충 공부한다.>
<끄악~>
<공부할 마음을 갖지 않는다.>
<아악~>
<어떡해든 되겠지, 라는 마음을 갖는다.>
<이럴 수가!>
<엑셀 따려는 과정과 모든 과정에 대해서 귀찮아한다.>
<따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시험시간에 한 번 더 보면 떠올릴 수 있는 것도 귀찮아서 대충 보고 나온다>
<딸 마음 전혀 없네>
<그렇게 해서 신다는 단 한 문제 차이로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진짜요?>
<이렇게 용기 있게 고백합니다>
<끝인가요, 오늘 토론?>
<네 끝났습니다>
<아, 진짜 재밌어!>
“이렇게 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다음 분으로 넘어갈까요?”
“네에~ 다음으로 넘기래.”
“아, 나야?”
“다음 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텔레신문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시작하나요?”
“네, 신문에 나온 내용 중에서 발췌합니다.”
“이건 어떻게 하시는 건가요?”
“텔레북과 방식은 비슷합니다. 다만, 신문으로 바뀌었을 뿐.”
“아, 네 그럼 문구 주세요!”
“과거를 떠올리며 상념에 잠기는 것이 아닌, 그 시간을 지금 여기로 가져오는 능동적인 행위였다. - 국민일보 2020년 12월 12일 토요일 오피니언 <오은의 문화스케치 중>”
“뭔가 느낌이 오는데 어떻게 하나요?”
“그 느낌 그대로를 기록하시면 됩니다. 느낌대로 기록하시다 보면 어느 순간에 어느 곳에 도달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시면 되죠?”
“네에, 그렇습니다.”
“나는 이거 써야 돼! 네가 마지막이야!”
“아 그래? 드디어 나야?”
“그래! 그럼 행운을!”
“이번에는 누구십니까?”
“아 그게 저… 철학과 학생인데요…”
“아, 그분이시군요. 합류하셨나 보군요?”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담당하셨습니까?”
“텔레말씀이요.”
“아, 관심이 생기셨나요?”
“아니요, 이렇게 해야 제대로 얘기할 수 있다고 해서.”
“그럼, 바로 말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네… 네에…”
경수는 다소 당황하며 연습장 속의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 고린도전서 1장 10절”
“이게 성경에 나오는 내용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오늘 텔레레터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아니, 저, 끝이예요?”
“더 말씀하시길 원하십니까?”
“아 네. 좀 더 대화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지금부터 아주 길고 긴 대화를 철학과님과 하겠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아주 길고 긴 이야기가 될 듯하고요. 지금까지 했던 모든 텔레레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릴 겁니다.”
“그럼?”
“네, 이미 지금까지 들은 얘기 지금까지 한 얘기에 대한 보충 설명일 뿐입니다. 원하십니까?”
경수는 연습장 속의 그 글자들과 그 속에 있는 사람을 본다. 그 속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 속에는 삶이 있었다. 그리고 경수는 삶을 바라본다.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낡은 것들 속에 새로움이 있었다. 연습장. 컴퓨터가 아닌 시대. 전자화된 이 시대에서 다 떨어진 낡은 연습장이 경수에게 주는 것들은 지금까지 경수가 생각해오던 것, 또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경수는, 마음으로 중얼거린다.
텔, 레, 레, 터. 그, 렇, 지.
핸드폰 안에는 그 녀석이 있었다.
신발장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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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수는 그 괴물들을 바라보았다. 아주 쪼끄만 녀석들이었는데,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도롱뇽을 닮은 갈색얼굴인데, 귀는 또 개구리처럼 연두색이었다. 세 마리나 있었다. 그 녀석들이 상수를 발견하고는, 잠시 멈칫했다. 상수가 그들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상수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 녀석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 세 녀석은 다시 아까 바라보던 그곳을 바라보았다. 상수는 그 녀석들이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녀석들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그 녀석들은 그 핸드폰만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고, 움직이지 않았다. 상수는 그들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상수는 조금씩 그들에게 다가가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그때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띠리리리리리. 그러자, 그 세 녀석들은 서로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놀란 상수는 잠시 뒷걸음질을 쳐, 그들과 거리를 두었다. 짧은 팔과 짧은 다리. 색깔은 파란색. 상수는 그제서야 그들의 전체 몸이 눈에 들어왔다. 기괴했다. 파란색과 연두색과 갈색의 기묘한 조화였다. 그들은 짧은 팔과 다리를 이용해 서로를 공격했다. 한 녀석이 다른 녀석에게 공격을 가하면, 또 다른 녀석이 그 공격을 가하고 있는 녀석을 공격하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공격의 방향이 앞으로 나란히 하는 것처럼 원으로 둘러서, 자신에게 공격을 가하는 녀석이 아니라, 다른 녀석을 공격하고 있는 녀석을 서로 공격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상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핸드폰은 한참을 그렇게 띠리리리리 울리다가 이내 꺼졌다. 그러자 그 녀석들도 싸우기를 멈췄다. 다시 그들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상수는 다시 앞으로 다가가 보았다. 역시 그 녀석들은 상수를 한번 쳐다보긴 했지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다. 상수는 그 녀석들과 핸드폰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함부로 그들에게 끼어들기엔 아직 그녀석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파악되지 않았다. 상수는 그들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자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삑. 삑. 이번엔 문자가 온 것 같았다. 핸드폰은 계속 삑삑 울렸다. 그러자, 그 녀석들이 서로의 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마치 씨름을 하는 줄 알았는데, 한 녀석이 다른 녀셕의 꼭 껴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녀석이 그 녀석의 품에 안기면서 그들은 서로를 보듬어 주고 있었다. 상수는 이 희한한 광경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핸드폰의 삑삑 소리가 멈추자 그 녀석들은 또 다시 정지모드였다. 상수는 과감히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 녀석들은 여전히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핸드폰이 또 울릴까? 상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녀석의 옆에 자리를 잡아보았다.
조금 후, 또 다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카톡 소리 같았다. 그러자 그 녀석들이 상수의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조그만 손들을 내밀어 상수가 앉아있는 곳의 무릎을 공격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워낙 조그마한 손이라 그런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마치, 상수에게 장난을 거는 모양 같았다. 상수는 그들이 정말 자기를 공격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장난을 치려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상수는 손을 내밀어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상수의 손위로 올라와 아예 자리를 잡았다. 워낙에 작은 녀석들이라 상수의 손 위로 세 녀석 모두가 올라와도 자리가 충분했다. 상수는 점점 더 그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상수의 손 위로 올라온 녀석들은 상수를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었다. 상수는 그들을 손 위에 올려놓은 채로 핸드폰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손바닥 위의 그 녀셕들은 상수의 그런 행동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핸드폰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그 녀석들이 갑자기 손바닥 위에서 뛰면서 난리치기 시작했다. 무언가 불안해 보였다. 상수는 손바닥을 핸드폰에서 먼 곳으로 옮겨보았다. 그러자 그 녀석들이 잠잠해졌다. 상수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액정화면이 커져있었다. 거기에는 부재중 전화 표시가 있었다. 상수는 문자버튼을 터치해 보았다. 그러자 공격! 공격! 공격! 이라는 문자가 수십통 와 있었다. 상수는 이게 뭔가 싶었다. 카톡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파고들기! 라는 카톡이 와 있었다. 누군가 장난치는 거 같았다. 이 녀석들을 데리고 장난을 치는 듯 했다.
상수는 분개했다. 아니, 이 녀석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 녀석들도 생명체인데, 이렇게 마구 가지고 놀아도 되는 거야? 이 녀석들도 감정이 있는데. 상수는 이 핸드폰의 주인이 이 녀석들의 정체를 알고 가지고 노는 것이라 짐작했다. 이 녀셕들이 핸드폰 문자와 소리에 반응하는 걸 보고, 가지고 노는 것이다. 상수는 이 핸드폰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해 보았다. 딱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보다 상수는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더 컸다.
상수가 찾은 방법은 이 녀석들과 핸드폰을 분리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핸드폰을 그대로 두고 이 녀석들을 데리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수는 그 녀석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로 그 건물의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녀석들에게서 생기가 사라졌다. 거의 죽어가려고 했다. 아니, 이게 아닌데. 녀석들은 상수의 손바닥 위에서 축 늘어져 있었으며 숨을 헐떡였다. 핸드폰 때문인지, 바깥의 찬 공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상수는 다시 건물 안으로 그 녀석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헐떡이던 그 녀석들은 다시 정신이 들었는지 다시 상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상수가 자신도 핸드폰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상수는 아까의 그 핸드폰으로 다가가 그 핸드폰으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뭔가 난리를 칠 줄 알았던 그 조그만 녀석들은 핸드폰 소리가 나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상수는 다시 궁금증이 들었다. 이번에는 상수의 핸드폰으로 거기에 놓여진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봤다. 핸드폰 소리가 들렸지만, 역시 그 녀석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은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인가? 상수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은 어떤 조직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상수는 그들을 손바닥에서 내려놓았다. 그 녀석들은 상수가 하는 대로 그냥 내벼려 두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 상수는 그 녀석들을 놓아두고 다시 한번 핸드폰이 울리기를 기다려 보았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상수는 끈질기게 기다려 보았다.
드디어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리리리리. 그러자 이번에 그 녀석들은 핸드폰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핸드폰의 액정화면 속으로 뛰어들었고, 그 속으로 사라졌다. 상수는 무슨 일인가 싶어 핸드폰으로 다가갔다. 그 조그맣고 귀여운 괴물들은 사라졌고, 핸드폰의 액정은 깨져 있었다.
상수는 얼른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서 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려 했다. 그런데 놀라운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핸드폰 배경 안에서 그 녀석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상수는 핸드폰의 앱들을 터치해 보았다. 작동하는 데에는 이상이 없었다. 상수는 배경화면이 있는 어플로 들어가 보았다. 거기에는 온통 그 녀석들만 있었다. 모든 배경화면 속에 그 녀석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그 녀석들은 어디에서 온 녀석들일까. 이 녀석들은 무엇일까.
2.
상수는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대학생활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핸드폰 속의 그 녀석들이 함께 한다는 것. 상수는 핸드폰을 꺼내서 그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그 녀석들이 무표정한 듯 하면서도 해맑은 표정으로 핸드폰 속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누군가 상수를 불렀다. 미희였다. 상수는 그 녀석들을 들킬까 싶어 얼른 핸드폰을 집어놓고 미희의 부름에 대답했다. 미희는 상수에게 오늘 조별과제가 있는데, 같이 할 생각 있느냐고 물었다. 상수는 특별하게 거절할 이유를 못 찾아서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과제가 뭐냐고, 아직 상수는 듣지도 못한 과제가 있느냐고 미희에게 물었다. 교수님 블로그에 오늘 내줄 숙제에 대해 미리 올라왔다고 했다. 블로그에 대해서도 듣지 못했다고 하자, 미희는 그건 학교 홈페이지게시판에 올라와 있다고 했다. 블로그 이웃추가는 자율이나, 블로그에 와서 교수님의 글들을 보면, 전반적인 학사일정이 잡혀 있을 거고, 과제에 대한 팁도 주니, 나름 편할 거라고 했다. 상수는 미희에게 블로그 주소 좀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미희가 상수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상수는 미희의 전화에 손을 대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콕콕 눌러주었고, 미희는 상수에게 전화를 했다.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그 녀석들이 핸드폰으로 침입한 후 처음으로 울린 전화였다. 핸드폰 소리가 울리자 상수는 깜짝 놀랐다. 히히히히히히. 그 녀석들의 목소리 같았다. 상수는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미희의 전화번호가 찍힌 그 양 사이드로 그 녀석들이 웃는 모습이 보였다. 미희는 전화소리도 참 희한하다며 웃었다. 머쓱해진 상수는 얼른 미희의 전화가 오는 것을 끊고 미희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오늘 과제는 개구리와 도롱뇽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분석하는 거다. 팀은 최소 2인 1조, 최대 4인 1조다. 2주의 기간을 줄 테니, 모두 빠짐없이 제출하도록. 오늘은 첫 개강 날이니, 수업을 간단히 마치고, 질문이 있는 학생은 지금부터 개인적으로 내게 오도록!”
어려운 과제다. 상수는 그저 미희와 어떻게 이 과제에 대해 얘기해야 할지 머리를 짜냈다. 미희가 개구리는 낮은 온도의 물에서는 자기가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서서히 죽어간다는 얘기를 했다. 도롱뇽도 그러냐고 상수가 묻자, 도롱뇽은 조금 민감해서 아마 조금만 물이 뜨거운 느낌이 들면 당장 도망칠 거라고도 말했다. 상수는 그러냐고 그럼 도롱뇽과 개구리의 차이점은 그걸로 해도 되냐고 묻자, 미희는 자료조사는 해봐야 아는 거 아니냐고 재차 물었다. 상수는 알았다고 하고, 자료조사는 각자 하는 거냐고 미희에게 묻자, 우선 각자 조사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부족한 자료는 같이 조사하자고 했다. 상수는 알았다고 하고 미희와 헤어졌다.
3.
상수는 핸드폰 속의 그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상수는 딱히 자료를 조사할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미희가 다 해 오길 바랐다. 아니면, 같이 조사하기를 바랐다. 상수는 이 과목을 딱히 좋아서 신청한 것은 아니었다. 비교학. 과목 이름 자체가 모호했다. 학점을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점수를 잘 준다기에 그냥 신청한 것일 뿐이다. 비교학은 정해진 수업의 틀이 없다. 무엇을 비교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어떤 때는 부모님과 나를 비교해 보라기도 한단다. 또 어떤 날은 개와 고양이, 그리고 어떤 날은 곤충과 나를 비교해 보라기도 한다는 데, 그래서 상수는 비교적 쉽겠거니 생각했다. 남과의 비교라면 지겹게 해 오던 상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구리와 도롱뇽의 비교라. 딱히 흥미가 당가지 않았다. 그런데, 상수는 그때까지 잊고 있었던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핸드폰 속의 그 녀석들이다. 그 녀석들은 도롱뇽과 개구를 섞어놓은 듯한 형상. 어쩌면, 이 녀석들에게서 답이 나올지도 몰랐다. 상수는 핸드폰 속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녀석들이 즐겁게 뛰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녀석들은 상수의 핸드폰 속에서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어떻게 이 녀석들이 핸드폰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지만, 상수는 그저 그 녀석들을 바라보는 게 즐거웠다. 상수가 그 녀석들을 바라보면, 그 녀석들은 늘 즐거워했고 상수는 그게 좋았다. 상수는 이번에도 오래도록 그 녀석들을 바라보다가, 말을 한번 걸어보았다.
“너희들, 개구리와 도롱뇽의 차이점을 아니?”
녀석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대화가 되네? 상수는 이 녀석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 녀석들에게 얻을 거라곤 없는 듯 했다. 상수는 그 녀석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 또 다시 물어 보았다.
“너희들, 내 말을 알아들어?”
그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러나 그 녀석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거나 저을 뿐. 상수는 궁금했다. 이 녀석들이 과여 말을 할 수 있는지. 상수는 또 다시 물었다.
“너희들, 말은 할 줄 아니?”
그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상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그 녀석들에게 물었다. 그 녀석들이 아버버버버 하면서 뭔가를 말하려는 목소리가 핸드폰의 스피커 소리로 들려왔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말은 못하는구나. 그것이 말인 줄 아는구나. 하지만, 조금 후에, 핸드폰의 화면에서 풍선모양이 그려지면서 그 안에 글자가 들어있었다.
‘우리는 말로는 표현 못하지만, 말은 알아듣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구. 우리는 너랑 있으면서 말을 다 습득했어. 이 이상한 거 속에 들어와서 글자라는 것도 다 배웠어. 우리는 네가 우리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도 알아. 우리는 외계에서 온 사람이 아니야. 우리는 사람이 만든 존재야. 그래서, 우리는…우리는…’
상수는 깜짝 놀랐다. 이 녀석들이 글자를 안다는 것에 놀랐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데에 대해서도 놀랐다. 그러나, 그들은 말을 잇지 못하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그럴까? 상수는 그것이 더 궁금했다. 이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상수는 더 물었다.
“무슨 사연이 있어?”
그러나 그 녀석들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화면 속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어, 어디로 갔지? 그때 갑자기 미희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미희의 손 안에는 작고 귀여운 그 녀석들이 얌전히 서 있었다. 상수야 상수야,를 연발 외치며 달려오는 그녀의 모습은 놀랐다기보다는 무척 흥미가 당긴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상수가 당황했다.
“상수야, 너 나한테 전화했어? 네가 나한테 전화오는 걸 받았는데, 이 녀셕들이 튀어나왔어.”
“어, 내가 전화한 게 아니라…”
“와, 신기하다. 이 녀석들은 어디서 나온 녀석들이야?”
“글쎄, 어디서 나왔을까?”
상수는 미희에게 그간의 사정들을 자세히 미희에게 설명했다. 미희는 점점 더 흥미가 당긴다는 듯이, 상수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이 녀석들이 너의 핸드폰 화면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온 거란 말이지?”
“응”
“그럼, 원래 그 핸드폰은 어디에 있는데?”
“집에 그냥 뒀어. 혹시 몰라서”
“그럼 거기에 가 보자. 뭔가 비밀이 숨어 있을지 모르잖아.”
미희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비밀을 발견하는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상수는 미희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냥, 이 녀석들고 이렇게 어울리는 걸로 만족하면 안 돼? 꼭 비밀을 파헤쳐야 돼?”
“궁금하지 않아? 이 녀석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만들었는지?”
“그 녀석들은 누군가에 의해 분명 만들어졌겠지. 그런데 지금은 나의 친구가 되었어. 나는 이 녀석들하고 친구가 되어서 좋았어. 그런데 그 녀석들을 만든 사람을 찾아내서 뭐하려고? 비밀을 밝힌다 한들, 그게 이 녀석들한테 무슨 도움이 되는데?”
미희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조그맣고 귀여운 괴물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상수의 말에 수긍을 하는 건지, 아니면, 반발을 하려는 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저, 상수는 이 작고 귀여운 괴물들이 자기에게로 다시 와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이 녀석들은 미희의 손 안에서 눈웃음을 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장난을 걸고 있을 뿐이었다. 어딘가로 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또 다시 핸드폰 속으로 들어가려는 걸까. 미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미희가 이번에는 모르는 번호라며, 받지 않으려고 하자, 그 녀석들이 미희의 핸드폰을 그 작은 손으로 가리켰다. 얼른 받으라고 재촉을 하는 것 같았다. 미희는 그 녀석들의 강요에 못 이겨 핸드폰의 받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 녀석들이 또 핸드폰 속으로 들어갔다. 미희가 깜짝 놀라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상수도 깜짝 놀라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희의 핸드폰을 보았으나 그 인에도 그 녀셕들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있던 핸드폰, 거기에 가 봐야 할 거 같아!”
미희가 상수에게 재촉했다. 상수도 이번에는 그럴 수밖에 없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미희와 상수는 상수의 집으로 갔다. 핸드폰 속에, 혹은 핸드폰이 있는 장소에 그 녀석들이 있기를 바라면서.
4.
그 녀석들은 상수의 방에 없었다. 깨진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지만, 거기에도 그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다. 미희는 깨진 핸드폰 화면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미희가 뭔가를 발견한 듯 했다.
“이 밑에 좀 봐, 뭐라고 써 있어.”
상수는 한번도 핸드폰을 자세히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핸드폰을 습득하신 분은 02-1234-1234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충분한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상수는 반대했지만, 미희는 이미 핸드폰에 손이 가 있었다. 핸드폰의 띠리리릭.누군가 받는 소리. 미희는 핸드폰을 습득해서 연락드린다고 건너편의 누군가에게 말을 건넸다. 상수는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미희가 하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미희가 곧 가자, 고 말했다.
“어디로?”
“오래, 자세한 건 와서 얘기하자는데.”
“꼭 가야 돼?”
“그 녀석들이 있을지 모르잖아.”
상수는 미희와 함께 전화 속의 사람이 존재하는 조그마한 까페로 갔다. 거기에는, 40대 중반 즈음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있었다.
“카페 운영하시나요?”
미희가 발랄한 목소리로 물었다.
“운영은 하지만, 장사는 잘 안 되지요. 그래도 단골 몇 분이 계시니까, 그분들 덕에 먹고는 살아요.”
“자, 여기 아저씨 핸드폰이요.”
“감사합니다.”
“액정 깨졌는데, 괜찮아요?”
“흔히 있는 일이죠. 금방 고쳐요.”
미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녀셕들은 보이지 않았다. 40대 중반의 아저씨는 핸드폰을 들고 들어가더니, 곧 새 핸드폰 두 개를 가지고 나왔다.
“두 분이 오셨으니, 두 개를 준비했습니다.”
“어,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상수가 잠시 거절의 의사를 밝혔지만, 40대 중반의 아저씨는 개통까지는 못 드리지만, 어느 통신사에서 쓰든 쓸모가 있을 거라며, 기존의 핸드폰 유심칩을 옮겨서 심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면서, 아주 좋은 핸드폰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직접 만드신 건가요?”
미희가 물었다.
“네, 맞아요. 직접 만들었습니다.”
“기술이 뛰어나시네요?”
“제가 핸드폰 제조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제품의 모든 기술을 다 섭렵했죠.”
“그러시구나.”
미희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여전히 그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다.
“손님이 오셨네요. 제가 바쁠 것 같아서 오늘은 이만. 차 드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세요. 제가 대접해 드리지요. 핸드폰 찾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미희와 상수는 고맙다고 감사인사를 하면서, 카페를 나왔다.
“가만 있어봐, 이 녀석들 이 안에 들어있을지도 몰라. 핸드폰 켜보자.”
미희가 핸드폰을 켰으나, 켜지지 않았다. 배터리가 부족한가 보다.
“상수야, 네것도 한번 켜봐.”
“안 켜지는데?”
“유심칩이 없어서 그러나? 아님, 배터리?”
“잠깐, 아 저기가 좋겠다. 저 카페 들어가서 배터리 충전 좀!”
미희와 상수가 카페에 들러서 두 개의 핸드폰 배터리를 모두 충전해 보았고, 유심칩도 갈아서 껴보았다. 그러나 핸드폰은 켜지지 않았다.
“허, 안 되겠다. 아저씨한테 다시 가보자.”
상수는 별 말없이 미희의 뒤를 따랐다.
다시 간 카페에는 아까와는 달리,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그 녀석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마시고 있는 찻잔에 커피잔에, 그 녀석들의 그림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은 그림이었다는 건가?
40대 중반의 아까 그 아저씨가 다시 미희와 상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미희는 아저씨에게 성급하게 말했다.
“아저씨, 핸드폰이 안 켜져서요.”
“아참, 깜빡했네요. 이 스티커 붙여야 켜져요. 특수 배터리가 연결되어 있죠.”
그 조그맣고 귀여운 녀석들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 스티커였다.
“아저씨, 이 녀석들…”
“제가 개발한 캐릭터에요. 이 녀석들이 실제로 살아서 뛰어다닌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죠. 그리고 삶에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래서 이 캐릭터를 제가 대접하는 모든 컵과 받침에 새겨넣었어요. 그리고, 특수배터리도 이 녀석들의 캐릭터를 개발하면서 개발할 수 있었구요. 마음에 드시면 좋겠는데요! 아, 핸드폰 켜시면 배경화면에도 그 녀석들이 있을 겁니다. 마음에 드시면 얼마든지 복사해서 나눠주셔도 돼요. 저는 커피와 차를 파는 사람이지, 그림을 파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상수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러나 미희는 오히려 밝아보였다. 그 녀석들이 진짜로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는 느낌에 상수는 자신이 지금까지 본 것이 헛것일 뿐이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미희는 상수의 표정을 보더니, 왜 그러냐고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상수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미희에게 얘기했다.
“사실, 우리가 보게 되는 모든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사실은 개구리로 알고 있는 게 사실은 도롱뇽이었고, 도롱뇽이라고 알고 있던 게 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잖아. 진짜 내가 알고 있는 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잖아.”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상수는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미희가 아저씨가 준 핸드폰에 스티커를 붙이고 전원을 켰다.
“와, 진짜 켜진다. 신기해라.”
미희가 감탄하면서 핸드폰의 전원을 키자, 그 조그맣고 귀여운 녀석들이 배경화면을 설정되어 있었다. 미희는 미적거리고 있는 상수의 핸드폰을 빼앗아, 거기에 스티커를 붙이고 전원을 켰다. 핸드폰이 켜졌다.
“상수야, 이것 봐!”
“응?”
핸드폰에 있는 배경화면에서 그 녀석들이 이리저리 뛰어놀고 있었다.
“이거, 움직이는 그림인가 봐!”
상수는 미희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과 자신의 것을 비교해 보았다. 둘 다 그 녀석들이 있었고, 그 녀석들이 신나게 이리저리 뛰어놀고 있었다. 상수는 무심코 그 녀석들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너희들, 내 말 알아들어?”
그러자 그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희는 상수를 쳐다보며, 약간의 미소를 띄었다.
“와, 신기해라! 이 녀석들, 진짜로 살아 있나 봐.”
상수와 미희는 이 녀석들이 있는 화면을 계속 바라보았고, 그 녀석들과 대화를 계속 나누었다. 그 녀석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혹은 고개를 가로젓거나, 아니면 말풍선으로 대답을 했다. 상수는 이 순간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랐고, 미희는 이 상황을 보면서 계속해서 웃었다. 너무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5.
상수와 미희는 결국 교수님께서 내주신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 교수님께서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미희가 대답했다.
“저희들은 과제 대신 더 소중한 걸 얻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얘네들이요!”
그러면서 미희가 핸드폰에 있는 그 녀석들의 괴물사진을 교수님께 보인다.
“그 녀석들은 어디서 났나?”
“핸드폰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어서, 주인을 찾아줬는데, 그 주인이 찾아줘서 고맙다며 이걸 주셨어요.”
“핸드폰 주인은 뭐하는 사람인데?”
“카페 주인이요.”
“그래, 거기가 어딘가?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자네 둘에게 A플러스를 주지. 하지만, 거짓말이라면, 자네들은 F일세.”
“네, 수업 끝나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미희가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자신들도 같이 가보고 싶다며 아우성을 친다.
“좋아, 좋아! 오늘 수업은 이걸로 끝내고, 지금 다 같이 미희양이 말한 그곳을 방문하도록 한다. 안내하도록!”
학생들을 모두 데리고, 미희는 그 카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학교에서는 걸어서 1시간은 걸리는 거리였지만, 아이들은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 괴물사진이 신기했었나 보다.
“저기에요. 저기 보여요! 근데, 차는 교수님께서 사 주시는 거죠?”
미희가 애교를 떨었다.
“좋다. 미희양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사마. 하지만, 거짓이라면 사지 않겠다.”
미희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면서 가게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카페에서 서빙하고 있는 아가씨가 있었다.
“혹시, 여기 사장님께서는 지금 자리를 비우신 건가요?”
“아, 그분이요. 얼마 전에 떠나셨습니다.”
“네, 어디로요?”
“자기가 여기서 할 일은 더 이상 없다면서, 이 가게 저한테 넘기시고 그냥 어디로 가신단 말씀도 없이 떠나셨어요. 저보고 이 카페 운영하면서 돈 좀 모아놓으면, 나중에 돈 떨어져서 찾아오면 약간만 주면 된다 하시고는, 막무가내로 맡기고 떠나셨어요”
“저, 그럼 사장님은 그 아저씨랑 관계가?”
“저, 여기서 가끔 일 도와주던 알바생이에요.”
“그럼, 혹시 이 녀석들의 정체를 아세요?”
미희는 핸드폰 배경화면 속에 있는 그 녀석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이 녀석들! 여기 있었구나.”
그 아가씨는 드디어 발견했다는 듯이,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혹시, 찾고 있었나요?”
“네, 이 녀석들은 어디든 가죠. 그래서, 통제가 불가해요. 어느 날은, 어떤 할아버지가 와서는 이 녀석들이 왜 내 핸드폰 속에 들어 있느냐는 거에요. 그래서, 할아버지, 이 녀석들은 자기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요, 했더니,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시면서 그러는 거에요. 내 살다가 별 녀석들을 다 봤네. 그 녀석들은 그 할아버지 곁에 오래도록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또 다른 곳을 찾기 시작했죠.”
그때까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교수님께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이 살아 있는 녀석들인가요?”
“사장님께서는 그냥 그렸을 뿐이라고 해서 잘 모르세요. 그런데 그 그림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건, 조금 역사가 되었죠. 어느 날, 어떤 꼬맹이가 오더니, ‘엄마, 얘네 나랑 말을 해’ 하고부터였어요. 진짜로 그 그림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장님만 그 그림을 쳐다보면, 얼음 상태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사장님은 전혀 모르시죠. 그 그림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걸요. 그러더니, 제 핸드폰 속에서도 며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사장님께 저 여기서 알바 하고 싶다고 얘기했죠.”
“잠깐만요, 그럼 아가씨께서는 그냥 여기에서 손님으로 오셨던 거였어요?”
미희가 적극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네, 처음엔 그냥 손님이었죠. 그런데, 이 녀석들 덕분에 알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러라고 하신 거에요.”
“혹시 그럼 그 깨진 핸드폰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가요?”
“아, 사장님께서 그거 가지고 가셨어요. 그거 자주 깨져요. 이 녀석들이 핸드폰 너머의 공간으로 이동할 때, 어쩌다 한번씩 깨지는 데요. 그건 이 녀석들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을 의미하는 거에요. 사장님께서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깨진 핸드폰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핸드폰을 내어주고, 그리고 그 깨진 핸드폰은 수리해 놓곤 하시죠.”
“혹시 이 녀석들에 대해서 사장님께 얘기해 보셨어요?”
“네, 사장님께서는 그게 진짜 사실이라면, 내가 할 일은 이걸 매번 고쳐놓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인지 아닌지는 내가 보지 못했으니까 모르겠다. 그냥, 나는 그림을 더 열심히 그리고 싶고, 발명을 더 열심히 하고 싶다, 라고만 말씀하셨어요.”
상수는 사장님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왜 사라졌는지가 궁금했다. 그러나 상수의 그 생각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미희는 질문을 멈추고 교수님께 이제 우리 말이 사실인 걸 알았으니, 차를 사라고 했다. 그리고 에이플러스도! 라고도. 교수님께서 껄껄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학생들은 신나서 저마다 먹고 싶은 차를 주문했다. 그날, 40여명의 학생들에게 차를 판 아가씨도 덩달아 신이 났다. 상수도 카모마일을 하나 주문했다. 오늘따라, 왠지 그 차가 쓰게 느껴졌다. 여전히 상수의 마음은 무거웠다.
상수는 그 아가씨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혹시, 그 아저씨 소식 들리거든 연락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아, 그러세요. 어려운 일 아니니까요. 연락처 주세요.”
상수는 아가씨에게 연락처를 남겼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카페의 이름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혹시, 이 카페 이름이요?”
“아, 도롱뇽과 개구리요.”
“아…”
카페이름이 도롱뇽과 개구리. 사람들이 과연 이름을 보고 이 카페를 찾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상수는 카페 밖으로 나가 보았다. 카페 간판에도 그 녀석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카페 이름은 써 있지 않았다. 미희가 그런 상수를 보더니,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그래?”
“카페간판에 이름도 없고 그림만 그려져 있는데, 아가씨는 카페이름이 도롱뇽과 개구리라는데…”
“그럼, 물어보면 되지…”
미희는 얼른 아가씨에게 카페 간판에 이름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카페 간판에는 없고, 쿠폰에 있다고 했다.
“쿠폰? 우린 왜 쿠폰 안 줘?”
교수님께서 웃으면서 따졌다.
“저, 이미 쿠폰값 반영해서 할인해 드렸습니다.”
아가씨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미희가 쿠폰 하나만 보여달라고 했다. 거기에 도롱뇽과 개구리라고 진짜로 써 있었고, 역시 그 녀석들의 그림이 있었다. 상수는 그 쿠폰을 보았다. 어딜 가나 그 녀석들이 있었고, 어딜 가나 그 녀석들만 눈에 들어왔다. 상수는 그 녀석들에게 너무 깊이 빠진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6.
교수님께서는 약속대로 상수와 미희에게 에이플러스를 주었다. 같은 청강학생들도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 신기한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에이플러스를 준 이유는 핸드폰 주인을 찾아준 데 대해서 기특하게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 놀라운 체험을 다같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그 녀석들이 살아서 뛰노는 것은 보지 못하지만, 교수님의 핸드폰 배경화면에도 그 녀석들의 그림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녀석들이 교수님의 핸드폰에서도 뛰어노는 걸 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그 배경화면을 깔아놓았다. 그러다가 그 녀석들이 보고 싶을 때는 미희를 찾아가서 그 화면을 보고 싶다고 하면, 미희는 언제든지 그 녀석들이 놀고 있는 걸 보여주었다. 그러나, 상수는 조금 달랐다. 상수는 다른 학생들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상수에게 말을 잘 붙이지 않았다. 상수는 그 녀석들을 잘 보지도 않았다. 왜 이 녀석들은 미희와 나의 핸드폰에 둘 다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문을 풀 숙제는 사장님게 있을 것만 같았다. 상수는 아가씨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좀처럼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가씨에게 연락이 온 것은 학기가 끝날 때 즈음이었다. 이제, 비교학 과목은 기말고사만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교수님께서는 기말고사는 자신이 지금까지 체험한 것들,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까지 다루던 주제들을 수필 형식으로 쓰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니, 미리 공부할 필요도, 미리 써올 필요도 없었다. 그날 와서, 즉석에서 쓰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이 체험한 것을 쓰는 것이 비교학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과의 비교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험이 있기 전날, 상수는 전화를 받았다. 아가씨는 아저씨가, 내일 오전 즈음에 잠시 들를 것이라고 했다. 아저씨가 보고 싶다면, 그때 오시면 될 것이라고 했다. 상수는 교수님께, 중요한 일이 생겨서 시험은 못 볼 것 같다고, 다음에 다시 수강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교수님께서, 그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상수는 사실대로 말했다. 교수님은 자신도 함께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 상수의 시험을 치를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 시험은 조교에게 부탁하면 된다고 했다. 상수는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 상수는 도롱뇽과 개구리 카페로 갔다. 아가씨가 웃으며 인사했다.
“사장님, 곧 오실 거에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교수님꼐서 상수와 차와 자신의 차를 시켜주었다. 그리고 아가씨한테 쿠폰을 달라고 했다. 아가씨는 웃으면서 쿠폰을 건네주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교수님과 상수 외에는 없었다.
30여분 쯤 기다렸을까, 사장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님이 있는 걸 보더니, 깜짝 놀랐나 보다. 그리고, 상수임을 알아보았다.
“아,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이분은 누구?”
“저희 교수님이세요”
“아, 안녕하세요. 지금은 사장이 아니지만, 이전에 이 집 주인이었던 사람입니다.”
“아, 알고 있습니다. 오신다는 소식 듣고 왔습니다.”
“아하, 그러시군요. 제가 돈이 좀 떨어져서 돈 받으러 왔습니다.”
그러면서 카운터로 가더니, 아가씨에게 얼마 정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얼마 필요하신지 말씀하시면 그만큼 드릴 수 있어요.”
“돈 많이 벌었나 보네. 우선, 1000만원.”
“가능해요.”
“현금으로?”
“아니요. 계좌이체요.”
“아, 고마워.”
그러더니, 곧 가려고 서두르는 모양이었다.
“어, 사장님, 저분들, 아까부터 기다리셨는데요.”
“나를?”
“네.”
상수가 있는 테이블로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다가왔다.
“사장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는데요, 상수가.”
교수님이 대신 이야기했다.
“어떤?”
상수가 물어보기 시작했다.
“개구리와 도롱뇽의 존재를 아세요?”
“그야, 내 그림이지요그 둘을 절묘하게 조합한.”
“아니, 살아 있는 거요.”
40대 중반의 아저씨, 사장님은 상수를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때로는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어요. 그랬을 때, 모든 존재는 확장을 하지요. 때로는 하나가 둘이 될 때도 있고, 둘이 셋이 될 때도 있어요. 내가 아는 것을 모두 말해 버리고 나면, 그들은 숨기 바쁘지. 내가 누군가의 위에 서 있는 존재가 된다면, 그럴 필요가 있지. 그래서 삶이란 게 힘든 거라요. 교수님께서는 잘 아시겠네요.”
교수님께서 껄껄 웃었다. 교수님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걸 상수는 그때 느꼈다.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학생.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내 번호 알지요?”
상수는 잠시 사장님이 무슨 얘기를 하나 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처음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아, 그 전화번호가…?”
“액정이 깨진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니지요.”
상수는 한참 동안 말이 없이 있었다. 사장님은 곧 다시 떠났다. 교수님은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상수는 그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으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교수님께서 지금부터 시험을 치르곘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학교가 난리가 났다. 자기 핸드폰에서도 그 녀석들이 뛰어놀고 있다며, 기뻐하고 있는 녀석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희가 상수에게 물었다.
“어제 무슨 일 있었지?”
“사장님 만났어.”
“그랬었구나.”
미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때, 범용이가 상수에게 다가와서 애기했다.
“상수야, 고맙다.”
“응? 뭐가?”
“네 덕분에 희망을 찾았어.”
“내가 뭘 했는데?”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잖아.”
그러면서, 범용이는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거기에서 그 녀석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다.
“난 한 게 없는데?”
“교수님께서 이야기했어. 그 카페 사장님한테 가서 다른 학생들도 다 이 녀석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정말, 고마워.”
“아니, 난…”
범용이가 그런 말을 하고 가더니, 또 다른 학생이 와서 말을 건다. 고맙다는 인사였다. 그렇게 몇 번의 인사를 받았는지 모른다. 미희는 그런 상수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상수야.”
“응?”
“고마워.”
“뭐가?”
“그냥.”
미희는 그냥 웃더니, 그 말만 하고 저 멀리 공을 차고 뛰어다니는 학생들 곁으로 다가가 자신도 축구할 수 있다면서 끼워달라고 말했다. 미희는 놀랍도록 축구를 잘했다. 상수는 그런 미희를 한참 동안 그냥 지켜보았다.
7.
10년 후, 상수는 여전히 그 녀석들의 배경이 있는 핸드폰을 쓰고 있다. 어쩌면, 이 핸드폰은 영원히 고장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수는 굳이 핸드폰을 바꾸어야 할 이유를 못 느꼈다. 그 녀석들은 여전히 핸드폰 속에서 뛰어놀았지만, 거기엔 10년 전에 비해 하나 바뀐 게 있었다. 녀석들은 미희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걸 좋아했다. 녀석들이 미희의 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미희에게서 전화가 오곤 했다. 이번에도 왔다.
“어, 어디야?”
“이제 퇴근해.”
“어, 나도!”
“집으로 갈 거야?”
“아니, 우리 어디 가서 맛있는 거 보고 영화도 보고 가자. 불금이잖아.”
“어디서 볼까?”
미희가 상수에게 장소를 주소를 보내겠다고 했다. 상수는 미희가 알려준 주소로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주소가 호텔연회장이다. 호텔 연회장? 무슨 일일까.
상수가 도착하자, 미희가 나와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무슨 날인데?”
“그 녀석들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준 날.”
“그런 날이 뭐야?”
“에이 바보, 네가 비교학 기말고사 시험 본 다음 날.”
“아, 오늘이?”
“그래서 10주년 기념으로 모두 너 보고 싶다고 해서.”
“근데 그렇게 말하면 되지, 왜 영화는 보자고?”
상수가 툴툴댔다.
“그러면 너 안 올까 봐서.”
상수는 기쁜 건지, 부담스러운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친구들이 자신을 보러 온다는데 싫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연회장에는 이미 동창생들이 와 있었다.
“반가워, 상수야! 우리 모두 기다리고 있었어!”
상수는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는 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 녀석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녀석들이 상수에게 핸드폰을 들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상수는 핸드폰의 앞쪽을 앞으로 향하게 하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동창생들 모두가 핸드폰을 손에 들고 상수를 따라 손을 흔들었다. 그들의 핸드폰 속에 그 녀석들이 있었고, 모두 똑같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미희도 상수의 옆에서 핸드폰을 손에 들고 손을 흔들었다. 미희의 핸드폰 속에는 상수의 사진이 있는 것만 다를 뿐, 모두 그 녀석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핸드폰 속에 각자에게 의미있는 사진이 걸려 있었고, 그 녀석들은 그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흔드는 그 녀석들이 상수의 눈에 들어왔다. 상수는 웃었다. 어쩌면, 그 웃음은 친구들이 상수에게서 볼 수 있었던 첫 번째 웃음이었을 것이다. 상수가 웃는 것을 본, 친구들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미희의 눈도 조금씩 젖어들었다. 상수는 그 눈물의 의미를 몰랐으나, 지금 이 순간, 웃음을 거두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