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602호죠?"
집안의 홈스피커에서 딩동댕 신호가 울려 통화버튼을 누르자 쇳소리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 그런데요.”
“아! 여기 경비실인데요, 댁에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네에? 무슨 일이라뇨?”
“저 아래층 502호에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뭐라구요? 신고라뇨?”
이에 깜짝 놀란 내가 묻자 경비아저씨가 자초지종을 전해왔던 것이다.
“댁에서 무슨 공사가 벌어졌습니까? 아래층 집에서 층간소음으로 신고를 해왔다구요.”
“아니! 공사는커녕 청소기도 돌리지 않고 있는데요.”
“네! 그래요? 근데 왜 층간소음이 시끄럽다고 신고를 해왔죠?”
그런데 다음 순간 알고 보니 주방쪽 베란다에서 마누라가 작은 돌절구통에 마늘을 다지느라고 콩콩 소리를 내고 있지 않은가? 그제야 나는 아래층의 소음신고 이유를 깨닫고 얼른 경비실에 대답을 했다.
“아! 우리 집사람이 돌절구에 마늘을 찧고 있네요. 그래서 아마 신고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이리하여 잠시의 층간소음 문제로 인한 소동을 가라앉혔는데, 순간 나에겐 어려서 내 고향 청양에 살 때 절구통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즈이아버지! 절구통이 오래 돼서 다 썩었네유! 새 절구통 파주면 안되남유?”
그 시절에 우리집에선 수십년 된 절구통을 쓰고 있었는데 썩고 낡아서 땜방까지 했지만 곡식을 찧으면 벌어진 절구통 틈에 곡식이 끼이거나 잘 찧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려? 그럼 오서산에 가서 절구통감을 베어와야겠구먼!”
아버지께선 이런 대답과 함께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다가 어린애 키만큼 잘라서 오랫 동안 그늘에 말렸다. 그리고 도끼와 자귀로 절구통을 만들었는데 향긋한 관솔냄새와 함께 새 절구통은 헛간에 놓이고 드디어 곡식을 찧는데 사용되었던 것이다.
“얘! 정순아! 꽃밭에 분꽃이 핀걸 보니께 보리쌀 대껴서 삶을 때가 되었다.”
특히 여름에 비가 오는 날은 시계가 없어 분꽃이 피는 것으로 시간을 가늠해서 어머니께서는 큰누나에게 이런 지시를 내리곤 했다. 그러면 큰누나는 절구통에 보리방아를 찧었고, 둘째형님은 사랑채 부엌에서 쇠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아이구! 엄니! 지가 보리방아 찧다가 골병든당께유! 방앗간에서 찧어오면 안되남유?”
이때 큰누나의 불평에 어머니께선 펄쩍 뛰시며 화가 난 목소리로 대꾸하셨다.
“이것아! 보리방앗삯이 얼만지나 알어? 그까짓 보리방아 찧기가 뭬가 힘들다구 그려?”
이런 어머니의 꾸중에 큰누나는 여름뿐 아니라 일년 내내 절구통에 온갖 곡식의 방아찧기에 그야말로 골병이 들 정도였는데, 요즘엔 시골에서도 절구통에 방아를 찧는 풍습이 아예 사라졌다. 그래서 마누라에게 이런 고향의 방아찧던 추억을 얘기했더니 엉뚱한 대답이 날아왔던 것이다.
아내 : “어이구! 그리구본께 날 절구통같은 마누라라구 놀리면서두 밤마다 방아를 찧으러 뎀비던 시절이 까마득허구먼유?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