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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4-출애굽기 1장-14장
<출애굽기-제1 장-1 신 1:1 주해 참조<8 애굽인 들이 빛을 거절하는 죄를 범함>
애굽 사람들의 죄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그토록 은혜롭게 보내신 빛을 거절한 것이었다(청년 지도자 1897. 4. 15).
<제2장-10 모세는 애굽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공부하였음(히 11:26, 27>)
애굽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였다. 모세의 힘은 모든 능력의 근원이신 만군의 주 하나님과 교제를 나눔에 있었다. 그는 세상적인 모든 유혹을 의연히 뿌리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다. 그는 자신을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바로 왕의 공무를 수행하면서 그는 계속해서 하늘 정부의 율법을 공부하였고, 따라서 믿음도 자라났다. 그 믿음은 그에게 매우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아주 어릴 때 받은 교훈의 토양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그의 생활은 속박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준비였다. 그는 그 일들을 묵상하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임무에 늘 귀를 기울였다. 애굽 사람을 죽이고 난 다음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애굽에서 도망쳐 나와 목자가 되었고, 더 이상 어떤 큰 일을 하려고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지성에 어둡게 드리워 있던 안개는 걷혀졌다. 그는 피난처로써 하나님을 찾게 하는 정신 훈련을 쌓아 갔다(편지 21a, 1893).
11 두 종류의 장군직을 위한 훈련(행 7:22)―모세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섭리로 큰 일을 맡을 만한 인물이 될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다. 그는 군대의 장군이 되도록 철저한 훈련을 받았고, 적을 맞아 싸워서 승전하고 돌아올 때는 전 군대가 그를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이 모든 칭찬에도 불구하고 그가 끊임없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뜻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었다(청년 지도자 1903. 1. 29).
<제3 장=1 선택받은 이드로>
이드로는 하늘 원칙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방 세계의 흑암 중에서 선택되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대리자들을 지명해 오셨고, 또 이 대리자들이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많은 증거들을 주셨다(편지 190, 1905).
사립 학교로 전학된 모세―모세는 사치스러운 궁정으로부터 보다 개인적 학습을 받을 수 있는 사립 학교로 전학하였다. 여기에서 주께서는 모세와 교통할 수 있으셨고, 그리고 그런 방법으로 모세를 교육하셔서 광야 생활의 고난과 시련, 그리고 위험들에 관한 지식을 얻게 하셨다(청년 지도자 1900. 12. 13).
2-5 불붙는 떨기 나무의 실재성―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일을 해석하는 일은 가장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당황케 한다. 그것은 꿈도 환상도 아닌 생생한 현실이요, 모세가 그의 눈으로 본 것이었다. 그는 떨기 나무 가운데서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얼굴을 가리웠다. 이것은 그가 직접 하나님의 면전에 서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과 말씀하고 계셨다. 그가 그때에 본 광경과 그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으로 인하여 마음에 받은 감명을 결코 다 묘사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마음에서 절대로 지워지지는 않았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시는 말씀에 두려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때 하늘은 그에게 매우 가까이 와 있었다. 하나님이 하늘 궁정을 떠나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사람이 친구와 말하듯” 얼굴을 마주 대하여 말씀하시다니,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겸양이신가!(청년 지도자 1900. 12. 20).
14 인간은 현재를 보고 하나님은 미래를 보심―“나는 … 이다”라는 말씀의 뜻은 “영원한 현재”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 동일하시다. 하나님은 아득히 먼 과거의 사실들과 먼 미래를 보시되, 우리가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고 있는 것처럼 분명하게 보신다. 우리는 우리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모른다. 만약 알 수 있다해도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복지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크시고 항상 계신 분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활용할 기회를 주신다(원고 5a, 1895).
20 재앙―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표―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인들에게 속박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권위보다 우위(優位)에 계시며 모든 지체높은 사람들 위에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셨다.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그분이 행하신 이적과 기사들은 자연의 힘보다 그분의 힘이 더 크시고, 자연계를 창조하신 그 능력을 무시하고 자연을 숭배하는 위대하다는 사람들보다 그분이 더 크신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그 교만한 애굽 나라를 두루 행하셨다. 그와 꼭같이 말세에도 그분은 땅에 두루 행하실 것이다(리뷰 1900. 7. 10).
<제4 장-10 사업에 자아가 개입될 것을 두려워 함>
준비와 시련의 시간이 지나고,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말씀을 모세가 다시 한번 받았을 때 그는 말이 둔하고 겁이 많고 자아를 불신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고 말하면서 자신은 말이 둔하므로 할 수 없다고 호소하였다. 그는 한 때 애굽 나라의 장군이었고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였지만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자아가 그 사업에 개입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원고 11, 1903).
21 빛을 거절함으로 마음이 강퍅하게 됨―바로는 하나님의 신의 강력한 역사를 보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통해서 행하시는 이적을 보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반역심이 강한 그 왕은 거만하게 묻기를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출 5:2)고 하였다. 하나님의 심판이 점점 더 증가되어 갔을 때도 그는 완강하게 반항하였다. 하늘의 빛을 거절함으로써 그는 완고하고 감수성이 무딘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인식되지 않은 이 하나님의 현현(顯現)은 더 큰 빛을 거절하도록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는 수단이 되었다. 분명하게 명시된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높이는 사람들은 바로 왕이 말한 것같이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순종하리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빛을 거절할 때 마다 마음은 더욱 강퍅해지고 이해력은 더욱 어두워진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더더욱 담대하게 거절하게 된다(원고 3, 1885).
하나님이 바로를 자아의 손에 넘기심(마 12:31, 32)―연이은 하나님의 모든 증거들을 바로가 완강히 거절하자 그 증거들은 계속해서 그로 더욱 강하고 완고한 하나님의 도전자가 되게 하였다. 이리하여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명시된 뜻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이 계속되었다. 바로의 이 경우는 성령을 거스리는 죄에 대한 분명한 예증이 된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주께서는 조금씩 조금씩 성령을 거두어 가셨다. 당신의 제어하시는 힘을 옮겨 가신 후에 하나님은 그 왕을 모든 폭군들 중 가장 포악한 자의 손에 그를 넘기셨다(리뷰 1897. 7. 27).
바로는 완고한 고집을 심고 거둠(갈 6:7)―“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바로는 완고한 고집을 심고 그것을 거두었다. 그는 스스로 이 씨를 땅에 심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새로운 힘으로 그것의 성장을 더 이상 간섭할 필요가 없는 것은 마치 옥수수 씨앗의 성장을 간섭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해야 할 일이란 씨가 싹이 트고, 움이 돋고, 종류에 따라 열매를 맺도록 그저 놓아 두는 일이다. 추수 때에 가면 뿌려진 씨앗이 어떤 종류인지 알게 된다(원고 126, 1901).
반역이 반역을 초래함―그 재앙이 멈추자 왕은 이스라엘을 가지 못하게 하였다. 반역이 반역을 초래한다.그 왕은 하나님의 뜻에 계속 반대해왔기 때문에 매우 강퍅해져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무섭게 나타나는 데도 그의 전 존재는 그것에 반역하여 일어 섰다(3영적 215).
바로는 죽더라도 이스라엘은 보전될 것임―바로는 여호와를 거스려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하였고 그가 목도한 모든 표적과 놀라운 기사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아론이 다시 그 앞에 나타나면 죽이겠다고 감히 위협하였다. 만일 바로가 여호와를 거스려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하지 않았다면, 구원하실 수도 멸망시키실 수도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고 겸비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적들을 얼마든지 행하실 수 있으며, 비록 애굽 왕을 죽이는 한이 있어도 그의 택하신 종들의 생명을 보전하실 것임을 알았어야 하였다(3영적 220).
<제7 장-1-13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히브리 사람들은 아무 특별한 신앙의 시련이나 실제적 고통과 어려움 없이 자유를 얻고자 기대하여 왔다. 그러나 저들은 아직 해방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저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거의 없었으며 그분이 저들을 위하여 일하시기에 적당하다고 판단하실 때까지 참을성 있게 저들의 고뇌를 견디려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낯선 땅으로 옮겨가는 고통을 겪기보다 노예 상태로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저희 습관이 애굽 사람들과 흡사하게 되었기 때문에 애굽에 거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바로 앞에서 나타내신 당신의 첫 능력으로 저들을 해방시키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의 포악한 정신을 완전히 드러내게 하는 동시에 당신 자신을 당신의 백성에게 나타내시고자 모든 사건들을 당신의 섭리로 지배하셨다. 그들은 그분의 공의, 그분의 권능, 그분의 사랑을 보고서야 애굽을 떠나 그분을 봉사하는 데 헌신하기로 작정할 것이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희가 애굽을 떠나기 싫어할 만큼 부패하지 않았었더라면 모세의 직무는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부조 260,261).
10-12 술객들의 이적은 거짓이었음―그 술객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행하신 이적들과 흡사한 것들을 몇 가지 그들의 마술로 행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실제로 막대기를 뱀이 되게 하지는 못했지만 대 기만자의 도움을 받은 마법으로 뱀처럼 보이게 하여 하나님의 일을 모조하였다. 사단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하여 또 그들의 반역을 부추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는 그의 부하들을 도와주었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함에 있어서 바로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증거라도 붙잡고자 하였다. 그는 자기의 술객들도 이 모든 기사를 행할 수 있다고 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말했다. 하나님의 일과 술객들의 일의 차이는 앞의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며, 뒤에 것은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고, 앞의 것은 참된 것이었지만 뒤의 것은 거짓이었다는 점이다(3영적 205,206).
14 열 재앙―지팡이로 뱀이 되게 하신 이적과 강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하신 이적은 완고한 바로의 마음에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했고 다만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그의 증오심을 크게할 뿐이었다. 애굽 술객들이 한 일은 바로로 하여금 모세가 행한 이적도 마술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게 하였으나 개구리 재앙을 그치게 한 후부터 바로는 그 일이 마술로 되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들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개구리들을 순식간에 티끌로 변하게 하실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개구리가 다 죽자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무더기를 이루었다. 애굽인들은 저희 눈앞에 죽은 개구리를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공기는 몹시 탁해졌다. 이리하여 왕과 및 온 애굽인들은 이 일이 마술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이 보내신 재앙이므로 이것은 저희의 헛된 철학으로써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라고 생각하였다.
마술장이는 이를 만들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마술장이나 애굽 사람이 다 마술장이가 이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만이라도 가지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바로로 하여금 모든 불신에 대한 변명을 그의 마음에서 없애게 하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술장이라도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라는 말을 하게 하셨다.
그 후에 파리 떼의 재앙이 이르렀다. 이 파리는 일년중 어떤 시절에 우리를 괴롭게 하는 그런 파리와는 다른 파리였으니 애굽 전역에 내린 파리는 크고 또 독하여 사람이나 짐승을 매우 아프게 쏘았다. 하나님께서 이때에 당신의 백성과 애굽 백성을 구별하셨으므로 고센 땅에 거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파리가 없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애굽인의 가축에게 중한 병의 재앙을 보내시는 한편 히브리 사람의 가축은 보호하셨으므로 한 마리도 죽지 아니하였다. 그 후에 사람과 짐승에게 종기의 재앙이 임하였다. 마술장이는 저희 자신조차 이 재앙에서 보호할 수가 없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뇌성과 맹렬한 불이 섞인 우박 재앙을 애굽 전역에 보내셨다. 사람들로 재앙이 우연히 임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각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미리 알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에게 온 세상이 히브리인의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는 것과 뇌성과 우박과 폭풍이 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함을 증명하셨다. 한 때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라고 말하던 교만한 바로도 스스로 겸비하여져서 말하기를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하였다. 그는 모세에게 청하기를 자기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이 큰 뇌성과 우박을 그치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다음으로 무서운 메뚜기 재앙을 보내셨다. 왕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대신에 메뚜기 재앙 받기를 택하였다. 그는 아무 뉘우침이 없이 자기 나라 전토에 이적으로 나타난 무서운 재앙이 이르는 것을 보았다. 그 후에 주께서 애굽에 큰 어두움이 임하게 하셨다. 애굽 백성들은 다만 빛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 대기가 매우 무거운 것 같고 호흡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들의 집에는 깨끗한 대기와 광명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에게 무서운 재앙을 하나 더 보내셨는데 이 재앙은 그들이 이미 경험한 것들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었다. 모세의 마지막 요구를 반대한 자들은 곧 바로왕과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이었다. 애굽 백성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땅을 떠나도록 허락받기를 원하였다. 모세가 바로왕과 애굽 사람과 및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재앙의 성질과 그 영향을 알게 하였다. 애굽 사람에게는 무척 무서운 밤이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무척 영광스러운 밤이었다. 그 밤에 엄숙한 유월절 절기를 세우게 되었다.
애굽 왕과 교만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요구에 복종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애굽 왕은 매우 뒤늦게 굴복하였다. 고통이 심할 때는 조금 응낙했다가도 고통이 다시 사라지자 승낙했던 것을 다 취소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재앙이 애굽에 내리게 되었다. 바로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당하게 하여 강제로 그를 굴복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전 애굽이 파멸을 당한 후에라도 바로왕은 끝까지 고집하였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보내지 아니하므로 임하는 각 재앙의 성질과 영향을 바로에게 알렸다. 재앙이 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그대로 임하는 것을 보았으나 바로는 굴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땅 안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기를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애굽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말미암아 고생을 당한 후에는 남자들만 가서 제사를 드리라고 허락하였다. 온 애굽 나라가 메뚜기 재앙으로 인하여 거의 다 파멸을 당한 후에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과 그 아내와 및 자녀도 나가는 것을 허락하였으나 가축을 데리고 나가는 것은 허락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모세는 왕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저희의 모든 장자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죽일 것이라고 말하였다.
각 재앙이 바로에게 점점 더 가까이 그리고 맹렬하게 임했었 지만 이 재앙은 어떤 다른 재앙보다 더욱 심한 것이었다. 교만한 왕은 심히 노하였을 뿐 자신이 겸손해지지는 않았다. 또한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 무서운 밤을 위하여 크게 준비하는 것과 문에 피를 발라 표를 삼는 것을 조롱하였다(살아 134-136).
<제8 장-7 바로는 재앙이 내리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우상에게 기도함>
애굽에 그 재앙들이 내리고 있는 동안에도 바로 왕은 정해진 시간마다 나일 강에 그의 미신적인 기도를 드렸다. 매일 아침 강에 나아가 강둑에 서서 그 강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상세히 열거하면서 또 그 물의 위대한 능력을 말하면서 그 물에 찬양과 감사를 드렸다. 그 내용인즉 그 강물은 땅을 적시며, 그들의 식탁에 먹을 것을 제공하므로 그 강이 없으면 그들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 등이었다(4영적 54,55).
<제9 장-3 재앙들이 끼친 영향을 시험함>
주의 말씀에 유의하였던 사람들은 가축들을 우리와 집 속으로 모아 들였지만 바로와 같이 마음이 강팍한 사람들은 그들의 가축들을 들에 그냥 두었다. 이것은 애굽인들의 높은 교만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그들이 멸시하고 잔인하게 대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분께서 돌보시는 것을 보고 그들의 마음에 받은 감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3영적 214).
<제11 장-1,8 모세가 담대히 바로를 다시 만남>
모세에게는 바로 왕의 면전에 다시 오지 못하게 하는 금령이 내려져 있었고 다시 보는 날에는 틀림없이 죽이겠다는 위협이 있었지만 이 반역하는 왕에게 한번 더 전해야 할 하나님의 기별을 가지고 모세는 그의 어전으로 담대히 들어 갔다. 그리고 두려움 없이 그의 앞에 서서 주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모세가 애굽에 내릴 재앙에 관해서 왕에게 말할 때 이제까지 애굽을 방문한 어떤 사람들보다 더욱 두려웠기 때문에 모든 애굽의 모사들은 모세 앞에 부복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가라고 간원하였고, 따라서 바로왕의 노여움은 극에 달하였다. 그는 모세를 두렵게 할 수가 없었고 왕의 권위 앞에서도 떨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모세는 지상의 어떤 군주보다 더욱 힘있는 팔에 의지하고 있었다(3영적 221, 222).
<제12 장-1-14 순종, 믿음의 증거>
유월절은 기념적인 동시에 모형적이요, 애굽에서 구원받은 과거를 가리킬 뿐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을 죄의 속박에서 석방하시고자 하는 더 큰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희생 제물로 바쳐진 새끼양은 우리들의 구원의 유일한 희망이신 “하나님의 어린양” 곧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사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고 말한다. 한편 유월절 양을 잡는 것으로는 넉넉치 않았다.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하였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영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세상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 뿐 아니라 우리 각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속죄의 희생의 공로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피를 뿌릴 때에 사용된 우슬초는 정결의 상징이었으며 문둥이와 죽은 사람을 만짐으로 부정하게 된 사람들을 씻는 데 사용되었다. 시편 기자의 기도 가운데도 우슬초의 의미가 나타나 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희리이다”(시 51:7).
어린양은 그 뼈 하나도 꺾이지 않고 온전히 준비되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하나님의 어린양의 뼈도 하나도 꺾이지 않아야 하였다(출 12:46; 요 19:36). 이렇게 그리스도의 희생의 완전함이 표현되었다.
그 고기는 먹어야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심을 우리가 믿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그분에게서 영적 능력과 영양을 끊임없이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의 뜻을 설명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53, 54,63)고 하셨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율법을 받고 당신의 생애에 그 원칙을 실천하시며 그것의 정신을 나타내시고 그것들이 마음에 끼치는 능력을 보여주셨다. 요한은 말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하였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그분의 경험에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소화하여 이것이 생활과 행동의 원동력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저들은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고 하나님의 속성을 반사해야 한다. 저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 속에 생명이 없다.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업이 그분의 제자들의 정신과 사업이 되어야 한다.
어린양은 쓴 나물과 함께 먹어야 했는데 이는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고통을 회상하기 위함이었다. 그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를 취할 때에 우리의 죄를 통회함으로 해야 할 것이다. 또 무교병을 사용하는 데도 깊은 뜻이 있었다. 이 절기 동안에는 저희 집에 누룩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유월절 법에 명시되어 있었고 유대 사람들은 그것을 저들의 규례로써 엄격히 지켜야만 하였다.그와 같이 죄의 누룩도 그리스도에게서 생명과 영양을 받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일소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고전 5:7, 8) 하였다.
노예들은 자유를 얻기 전에 장차 성취될 큰 구원에 대한 저들의 믿음을 보여야 하였다. 피의 증거를 저희 집에 두어야 하였으며, 저들은 자신들과 가족들을 애굽 사람들과 분리시켜 저희 집안에 모여 있어야만 하였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들에게 주어진 지시 중에 한가지라도 무시하였거나, 저희 자녀들을 애굽 사람들에게서 떼놓기를 게을리 하였거나, 어린양을 잡고서도 그 피를 바르지 않았거나, 아무라도 저희 집 밖에 나가 있었거나 하였다면 저들은 안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저들이 필요되는 모든 것을 하였다고 정직하게 믿었을지라도 저들의 성실이 저들을 구원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여호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멸망시키는 자의 손에 의하여 저희 장자를 잃을 것이었다.
백성은 순종으로 저들의 믿음을 증거하여야 하였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 얻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저희 구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저희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를 범죄의 형벌에서 구속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우리는 죄에서 순종으로 돌아서야 한다. 사람은 행함으로가 아니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그의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주셔서 죄에 대한 화목제물로 죽게 하시고 진리의 빛과 생명의 길을 나타내셨고 의식과 특권을 주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구원하는 방편들과 더불어 협력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도움을 감사한 마음으로 선용해야 하며 하나님의 모든 요구들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부조 277-279).
31,32 바로의 교만이 낮추어짐―보좌에 앉은 왕으로부터 가장 비천한 종에 이르기까지 애굽 사람들은 괴로움을 당하였고 그들의 장자들은 죽었다. 그때에 애굽 전역에 큰 호곡이 있었다. 그때에야 바로는 거만스럽게 내뱉었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를 기억하였다. 그는 마음을 낮추고 모사들과 방백들과 함께 급히 고센 땅으로 가서 모세와 아론 앞에 부복하여 “가서 너희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였다. 그들의 요구대로 필요하다면 양떼들과 소떼들도 같이 가라고 하였다. 만일 재앙이 좀 더 계속하면 그들 모두가 다 죽은 사람같이 될까 봐 속히 떠나라고 간청하였다. 바로는 또 모세에게 축복 기도를 요청하였다. 이유는 하나님의 종의 축복 기도를 받으면 두려운 재앙의 영향을 더 이상 받지 않도록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3영적 246).
38 많은 애굽인들이 하나님을 인정함―애굽 땅에서 보여 주셨던 이적과 기사들을 보고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한 꽤 많은 애굽인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천사가 애굽인들의 장자들을 치는 그 두려운 밤에 그들은 가족들을 데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 좀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섬기던 신은 지식도 없고 구원하거나 멸망시킬 힘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들은 애굽을 떠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정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는 애굽인들을 그들의 집으로 영접해 들였다(3영적 224, 225).
<제14 장-1-14 믿음의 전진> ―이곳에 가르쳐진 큰 교훈은 모든 시대를 위해서이다. 흔히 그리스도인 생애는 위험에 둘러 싸이고, 의무는 이행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앞에는 절박한 파멸이 있고 뒤에는 속박이나 죽음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나가라” 하신다. 우리는 비록 우리의 눈으로 어두움을 꿰뚫을 수 없고, 우리의 발 근처에 찬 물결을 감지할지라도,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의 전진을 막는 장애물은 주저하고 의심하는 정신 앞에서는 결단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불확실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지고, 실패나 패배의 위험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순종을 연기하는 자들은 결코 순종하지 못할 것이다. 불신은, “장애물들이 제거되고 우리의 길을 똑똑히 볼 때까지 기다리자” 고 속삭이나 신앙은 용기있게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믿고, 전진하도록 재촉한다.
애굽 사람들에게 흑암의 장벽이었던 구름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큰 빛의 홍수가 되어, 온 진영을 비추고, 저들에게 앞 길을 밝혔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는 불신자에게는 암흑과 절망을 가져오는 반면에 신뢰하는 영혼에게는 충만한 광명과 평화를 가져다 준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혹 사막이나 바다 가운데일지라도 그 길은 안전한 길이다(부조 290).
15,16,21,22 그리스도의 손이 물들을 물러가게 함―그리스도의 힘있는 손이 홍해의 물들을 물러가게 하고 벽처럼 서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분은 바다 가운데 마른 길을 내시고 이스라엘로 발이 젖지 않고 건너게 하셨다(원고 155, 1899).
23,26-28 애굽인들의 은혜의 기간이 끝남―바로의 전(前) 군대, 바로의 모든 말들과 병거들 그리고 마병들이 바다 한 가운데 바닥에 있었을 때에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 위로 통과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추적하는 애굽 군대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모세가 그의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었을 때 큰 벽같이 물러 서 있던 물들은 다시 그 자리를 채우고 본래 대로 되었다. 그 많은 군인들 중에 단 한 사람도 도망친 사람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길을 따르고 하나님의 길을 거절하기로 한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 멸망되었다. 그때가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기간의 끝이었다(원고 35, 1906).
25-27 바로는 홍해 가운데서 죽음―바로는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 한 계단씩 한 계단씩 불신의 길을 걸어갔다. 마침내 애굽 전역에 걸쳐서 각 가정의 자랑인 장자들이 쓰러질 때까지 그러하였다. 이 일 후에도 그는 군대를 거느리고 서둘러 이스라엘을 좇아와 전능자의 팔이 구출해 간 그 백성을 끌어 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인간의 힘과 싸운 것이 아니라 보다 크신 능력과 싸운 것이고 결국은 홍해 가운데서 죽었다(원고 126, 1901).
출애굽 1장에서 14장까지 숙고
<1장- 8 애굽인 들이 빛을 거절하는 죄를 범함>
<제7장-1-13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
<제8장-7 바로는 재앙이 내리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우상에게 기도
바로의 교만이 낮추어짐-장자의 죽음으로>
모세는 명령을 따라 순종했고 동풍을 불어서 바람으로 물을 날려 보내신 분은
그리스도의 칭조주 하나님이셨다
<애굽인들의 은혜의 기간은 홍해를 건너는 순간에 끝남->
교훈들-
첫째 재앙—나일강을 피로,둘째재앙-개구리 재앙.세째 재앙: 이, 넷째 파라.다싯째 생축 악질,여섰째,종기 일곱째 우박,여덟째 매뚜기,아홉째 흑암,열째-장자죽음,
그리고 출애급이 시작되고 홍해를 건널 때 밤새도록 통풍을 불어서 바닷물을 마르게 하신 하나님
홍해흫 건널 때 이스라엘 젝성들에겐 은혜의 시간이 마쳤습니다
마찬가지로 우에게도 야곱의 환란이 시작되면 은혜의 시간이 바쳐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영적 이스라앨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출애급을 통하여 배운 교훈은 하나님은 살라계시고 당신의 벡성들을 위해 우리 모두를 죄악 세상 에급에서 건져 네셨습니다
능력에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도 매순간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서 우리 주님을 선택하겠습니다
바로 처럼 완악한 우리의 고집을 주님의 온화한 성품으로 바꾸어 주소서
유월정에 어린양의 피를 우리 작자의 문설주에 발라 재앙이 지나가게 하소서
오늘도 매순간마다 우리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의 삶을 살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완강한 것은 융통성이 없는 상태이며 생각을 바꾸지 않으려는 강한 고집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쉽게 변하고 간사해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는 지금 그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잠언 26:11의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는 말씀처럼 바로는 참 미련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분명히 회개하고 돌이키기로 했는데, 여전히 죄 가운데 다시 빠져있는 완강한 모습들은 없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한 때는 하나님과 첫사랑의 기쁨을 가지고 참 열심히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았지만, 지금 나의 모습들은 어떠한지 돌아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나의 약함을 고백 드리는 새벽을 살아가며,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애굽 사람들이 숭배했던 개구리로 재앙을 내리신 것처럼 지금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숭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눈과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그 어떤 달콤한 것이라도 결코 영원하지 않은 것임을 분명히 깨닫고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며 섬길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때로는 실패하고 넘어질 때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들을 늘 강건하게 지켜주시옵소서. 전쟁과 재난으로 여전히 어려움 가운데 있는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이 땅 가운데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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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 바로왕은 마지막 남은 백성들의 모습과 같다
비록 목이 굳은 우리들이지만 반성하고 회개하면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다 애급 사람들에게 은혜의 기간은 바로 물을 건너기 전까지 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강을 지나자 마자 은혜의 기간은 끝났다
마찬가지로 나에계 있는 은혜의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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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훈의 글 "아멘" 입니다.
말씀 정리를 아주 잘 하시네요~ 그 바쁜 시간에도 놀랍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은혜의 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말씀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