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순례 - 8
보드가야Buddh Gaya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등재된
보드가야는 성도의 땅입니다.
위없는 깨달음을 이룬 곳.
붓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첫 일성이 울려 퍼진 곳입니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은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에
보리수 자리에 금강좌를 조성하였습니다.
그곳이 지금의 마하보디 대사원입니다.
성도하신 뒤에 교화하여 1,000명의 제자를 한꺼번에 두게 된 곳으로,
이곳은 가야에서 얼마 떨어진 곳이나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 하여
특별히 보드가야(혹은 붓다가야)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그냥 가야라고 하였지만
성도를 하신 곳이라고 보드가야, 붓다가야라고 부릅니다.
마하보디 대사원 Maha Boddhi Temple
한역漢譯으로는 대정사大精舍 또는 대보리사大普提寺라고 합니다.
아쇼카왕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곳에 세운
높이 52m의 9층 대탑입니다.
동쪽 입구로 들어가면 정면에 금박의 불상이 있는데,
오른쪽 끝을 땅에 대고 대오大悟의 수인手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탑의 주위에는 4개의 소탑이 있고,
주위에 높이 2,5미터 정도의 석주 92개가 서 있습니다.
기원전 1세기경에 세운 것으로,
본생담本生談과 연꽃 등이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250년 경 아쇼카왕에 의해
금강좌 위에 사원이 건립되어 5세기경
굽타왕조 때 현재의 모습으로 증축되어 집니다.
5세기 법현 스님과 7세기 현장 스님이 이곳을 순례하고
불국기와 대당서역기에 기록을 남겼습니다.
89년 다르마팔라왕이 이곳에 시바상을 세우면서
힌두교사원으로 변하였지만 1079년 미얀마의 잔시따왕의 요청으로
무너진 곳을 수리하며 불교사원으로 정비되었습니다.
1157년 스리랑카 왕에 의해 다시 중수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158년 이슬람의 침공으로 파괴되고,
홍수에 의해 흙에 묻혀 사람들 기억 속에 사라져가게 됩니다.
그 후 1811년 이곳을 방문한 미얀마의 보도우파야왕이
폐허로 묻힌 사원을 안타깝게 여겨
1847년에 복원해 달라는 국서를 보내고
많은 사람들과 돈을 지원하여 이곳을 중수하게 합니다.
1851년 스리랑카인 다르마팔라는 인도의 불교성지 재건을 위해
대각회(마하보디 소사이어티)를 구성하고 인도 정부에
성지복루를 위한 허가를 요청하지만,
인도의 영국 총독부는 대사원과 주변유적지를 모두
당시 이 지방의 ‘사이비테 마한타’라는 힌두교에게 소유권을 넘겨줍니다.
이후 60년간의 법정 소송 끝에
마하보디사원과 유적지가 불교고의 것이라는 것을 판결 받았지만,
현재 까지도 완전한 불교도의 것이 아닙니다.
보드가야 사원 운영회가
힌두교와 불교도 반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7.7 선정터
1) 보리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께서
7일을 머물면서 법열을 즐긴 장소입니다.
후에 아쇼카왕이 그 자리에 돌로 금강보좌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만들어진 금강보좌는 사원 내 불상 아래에 있고,
보리수 아래에 있는 것은 굽타왕조 때 다시 만든 것입니다.
2) 정안탑
‘움직이지 않고 지속해서 바라본다.’라는 뜻의 탑,
자신에게 깨달음의 장소를 제공한 보리수를 바라보며 지낸 장소입니다.
3) 경행처
부처님께서 동서로 경행을 하실 때,
땅에서 연꽃이 피어올라 부처님의 발을 받쳐드렸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형상화하여 연꽃 대좌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4) 색 광명을 나투신 곳(라트나그라하)
연기법을 순으로,
역으로 관하시며 보낸 장소,
이때 부처님의 몸에서 다섯 가지 광명이 솟아났다고 합니다.
이 다섯 가지 광명이 현재 불교기로 사용된 색입니다.
(파랑, 노랑, 빨강, 하양, 주황)
5) 아자빨라 느그로다나무(반얀나무)
부처님께서 나무 아래에서 선정을 드셨을 때
이도교인 바라문이 다가와
부처님께 질문하고 콧방귀를 뀌며 떠난 장소입니다.
6) 무칠란다 연못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선정에 드실 때
무칠란다 용왕이 부처님의 몸을 7번을 감고 머리를 펴서 비와 바람,
해충으로부터 부처님을 보호 해 드렸다는 장소입니다.
7) 라자야따나 숲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실 때,
타풋샤와 발리카라는 상인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곳으로
사천왕이 나타나 발우를 올린 장소입니다.
보드가야 주변의 유적
니련선하강 건너 수자탑 집터, 전정각산, 유영굴 등
부처님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여러 유적들이 있습니다.
가야를 향하는 길목에는
모양이 머리와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상두산도 있습니다.
이번 인도 순례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글 매일 법문을 올리면서 얄팍한 지식으로
불교를 더 깊이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따끈따끈한 글을 올렸던
내 자신을 더 탓 하면서 더 자각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 같습니다.
단순하게 인도는
너무 지저분하다, 시끄러운 도시다, 무질서하다 등의 표현은
눈으로 보이는 별것 아닌 것이고,
그런 풍경들은 애초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살아오던 생활습관이었고
그러던 중에 지금의 시대어서 보면
깨끗하게 살아 보자고 시대가 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안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치우면서 살지, 정리하고 살지 등등의 넋두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오면서 법으로 정하고,
질서를 바로 잡고 하는 그런 것들이 어쩌면 대수롭게 흘려버릴 것 같은
그 혼잡과 소음들조차도
어쩌면 지금 우리는 겉 치례 일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길에서도 누가 보든 말든 소변, 대변보는 것조차
남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게 닥친 위기 탈출인 거죠.
인도는 그렇게 모든 것들이 대수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내일은 영축산 등반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번 순례는 우리 일행들이 부처님의 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순례 길이었고 이번에는 북인도를 다녀왔지만
다음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남인도 순례를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