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사장 내외를 만나기로 한 날
엄영아
오늘이 D데이다.
정자역으로 전철을 타고 갔다.
박 사장 내외분은 보기 드문 젠틀맨 부부시다. 미국 유학을 다녀가신 후 미국 금융회사(Lehman Brothers) 한국 지사에서 외국인들과 사업을 하신 분으로 매너의 수준이 높고 아주 진실하신 분이다.
지금은 타계하신 차 집사님과 형, 아우로 부르며 지내셨다. 약 18년 전, 우리가 한국에 갔을 때 처음으로 소개를 받았다.
4년 전 미국 오셨을 때는 우리들 40년 지기들이 다 모여 집 앞 공원에서 아버지날 기념 갈비 파티를 할 때도 참석하였다.
그 후로 4번째 만남이지만 카톡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내온 터라 가깝게 여겼다.
남편보다 나이가 훨씬 아래지만 친구가 된 박 사장과 그의 아내 김 권사는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다. 곱다.
4년 전 차 권사님, 나, 또 다른 절친 셋이서 캐나다 크루즈를 갔다가 우연히 배 안에서 다시 만나 며칠을 같이 지나며 더욱 친근히 지낸다.
정자역 앞에서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준 우리 부부를 하남에 있는 ‘마방집’으로 데리고 갔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더덕 한정식과 불고기 한정식을 주문했다. 무엇을 잡숫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나물 잘하는 집에서 밥을 먹고 싶다는 우리를 위해 100년 전통의 나물 한정식 맛집으로 데리고 왔다. 나물을 고른다고 박 사장 내외가 촌스럽다고 해맑게 웃었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한국 나물을 꼭 먹어보고 싶었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남자 둘이서 큰 상에 가득히 음식을 들고 방으로 들어서는 모습도 대단하다.
남편은 방바닥에 앉을 수가 없다. 우리는 방석을 높여 남편을 앉히느라 모두가 애를 먹었다. 음식 맛이 소문대로 맛나고 정갈하다.
마방집은 오래전 마부들이 말을 맡기고 잠시 쉬어가면서 나물 반찬과 된장찌개를 먹는 곳으로 시작하여 식당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103년째 전통 한정식을 만들고 있어 나라에 '향토 지적재산'으로도 등록되어 있다. 100년 전통을 간직하고 3대째 대물림이 되고 있다. 1918년에 흙벽으로 건축되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움집처럼 따뜻한 식당이다.
점심을 나누고 양평 수수카페로 갔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조용한 곳. 하늘도, 나무도, 사람들도 아름다웠다. 치유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있어도 조용하다. 구름도 신비롭고 바람도 미풍이라 좋았다. 커피와 빵도 맛이 좋았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에 비친 하늘이 수채화 같다.
형님처럼 아껴주는 아름다운 두 분. 하루를 가슴에 담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정자역에서 헤어졌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5층 식당가에서 또 만났다.
맛난 점심을 나누며 돌아오는 나에게 김 권사님이 손수건과 김 가루를 주셨다. 떡국에도, 비빔밥에도, 주먹밥에도 넣어 먹으라고. 사랑의 손길과 눈길이 아름답다.
따뜻한 김 권사는 자식을 잃을 뻔한 경험 때문인지 긍휼의 마음도 깊다.
"박 사장님, 권사님. 남편이 오늘 먹은 된장국이 입에 꼭 맞고 황태구이도 아주 맛이 좋았대요. 저도 전골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늘도 귀한 대접 잘 받았습니다. 주신 손수건 등산 할 때마다 땀 닦을게요. 떡국도 끓여서 김 가루 넣고 비빔밥에도 김 가루 넣고 주먹밥에도 김 가루 넣어 먹겠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다시 미국에서 뵙겠습니다. 양수리의 하루 잊지 못할 겁니다. 그 사랑 기억할게요. 감사합니다."
밤에 카톡을 보냈다.
"굿모닝! 전도사님 내외분, 건강하게 한 여행 마무리를 축하드리고 감축합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여행하시면서 그동안 보내주신 사진들 자세히 보면서 표정 하나하나 잘 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부부의 미래의 모습이었습니다. 너무나 훌륭하시고 많이 애쓰셨습니다. 그동안 여행에서 느끼신 고국의 감동을 오래오래 간직하시길 바라옵고 또 오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박 사장님의 마지막 카톡을 받고 가슴이 뭉클함을 간직한 채 우리는 모국을 떠나왔다.
기적같이, 아무 일 없이, 즐겁게 지내다 떠나온 말할 수 없이 감사한 고국 여행이다.
(10/10/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