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날짜: 2024.4.14(일)~4.17(수) 3박 4일
- 참여한 친구들: 서울, 부산, 여수, 광양, 광주에서 모인 조각들 10명
어느새 예순이다.
세월의 흐름이 날아가는 화살같다더니 휘익 순식간에 흘렀다.
하지만 조각들의 모임에는 세월이 흐르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그 마음 그대로 삭이지 않은 채 머물러 있다.
얼굴에 드러난 주름살과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은 세월의 연륜을 말해 주지만,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와 서로가 느끼는 친밀감은 열여덟 소년 소녀 그대로다.
고등학교 2학년 계림교회 그늘 아래서 만났던 조각들이 야심차게 계획한 회갑여행.
2박 3일, 여인네들끼리 하루 더 3박 4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첫날,
제주 공항에서의 만남.
전국에서 모여드는 지라 기다림의 시간이 길다.
게다가 1시간 30분을 하늘에서 묶였다는 서울팀이 합류하기까지 늘어난 기다림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가고자 했던 맛집들은 브레이크 타임.
다행이 숙소 근처 현지인 맛집 참솔식당은 언제든 오란다.
시장은 맛깔난 반찬이 되고 제육볶음과 고등어 구이가 어우러진 산채비빔밥은 성찬이 된다. 흠, 시작이 좋은 걸~
숙소에 짐을 풀고 애월 한담해변으로 산책을 나선다.
늘 북적거리던 해변이 한적하다.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으며 이 친구 저 친구랑 묵힌 이야기를 나눈다.
바다가 잘 보이는 큰 바위에 올라 바다 멍 때리기.
그러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 까르르 웃고, 사진 찍겠다며 폼 잡으며 웃고~
순간순간이 그저 즐겁다.
제주에 왔는데 바다에 발담그기를 빼먹을 수 없지.
가까운 협제, 금능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변함없이 에메랄드 빛 파아란 바다가 펼쳐진다.
신발을 벗어 들고 모래 사장을 거닐기도 하고, 바지 걷어 붙이고 파도랑 줄다리기도 한다.
펄쩍 뛰어 오르며 사진 찍기.
여인네들의 무거운 엉덩이가 뛰기에 버거운데 날렵한 남친은 가볍게 펄쩍.
양쪽에서 잡아주는 남친들 덕에 공중부양한다.
짙은 구름이 내려 앉으며 붉은 석양을 감춰버렸지만 협제에서 금능 가는 길은 환상의 산책길이었다.
여행은 맛집 투어가 제 맛이지.
늦은 점심으로 속이 든든하지만 친구가 추천한 애월한상에서 해물탕과 막걸리를 먹는다. 무척이나 친절한 쥔장이 마음에 든다. 게다가 싱싱한 해물들이 가득 가득. 친구들 모두가 시원한 국물 맛에 감탄. 현지인들이 찾는 진정한 맛집이다.
자주 찾게 되리란 예감. 실제 그 날 이후 세 차례 더 방문했다는~^^
부른 배를 진정시켜야 한다.
단체여행의 감초. 노래방으로~
도대체 얼마만인지. 친구들도 나랑 비슷한가 보다.
언제 이리 음치들이 되었단 말인가.
소리만 꽥꽥, 목청껏 불러 대며 내기하듯 7080 노래 속으로 빠져든다.
다행이 그 와중에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부끄러움을 감춰주는 고마운 두 친구.
마이크는 그네들의 몫이어야 했다.
둘째날,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걷기를 포기할 순 없지.
계획했던 송악산 둘레길을 향하여~
비가 와서인지 사람들 발걸음이 뜸하다. 송악산을 마음껏 누린다.
산방산 머리 위로 걸쳐진 구름이 동화 속 세상을 펼치고, 하얗게 부서지며 밀려드는 커다란 파도가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 내린다.
송악산의 풍광이 우리들의 텐션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길을 걷는 내내 수직 수평의 절리를 만들어 내는 송악산은 주변 바닷가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선사한다.
여러 차례 왔음에도 오늘의 풍경이 더 아름다운 건 함께 하는친구들이 곁에 있음이겠지.
돌아 오는 길, 날이 개인다.
수많은 인파가 주차장에 밀려 들고 있다.
오호라, 고마운 보슬비. 그 덕에 느긋하고 여유로운 둘레길이었다.
점심은 제주 오겹살
급하게 검색해서 찾아 간 산방도감. 참으로 현명한 선택!!
맛도 끝내주지만 가격도 착하다. 쥔장의 이름이 친구랑 똑같다.
일부러 힘주어 친구의 이름을 부른다. 서비스는 최고일 수 밖에~^^
커피가 그리운 시간. 친구가 소개한 더 클리프로 향한다.
중문 퍼시픽랜드에 위치한 카페.
들어서는 입구의 모양새가 심상찮다. 미니 당구대며 놀이 기구가 몇 개 보이고 티셔츠를 팔고 있는 곳도 보인다. 여기가 카페?
물음표를 찍으며 야외로 나가 보니 반전이다.
뻥 뚫린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중문해수욕장이 눈 아래 자리잡고 하얏트 호텔이 건너다 보인다.
몇 겹의 파도가 연달아 몰려 든다.
석양 무렵이면 그저 숨죽이고 있을 수 밖에 없겠구나.
커피 한 잔 가격은 9000원, 사악함의 끝판왕이지만, 다시 찾을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곳이다.
올레를 맛보러 외돌개로 향한다.
7코스의 하이라이트.
문섬과 범섬을 바라보며 데크길 걷다 되돌아 오기.
자연을 사랑하는 나이에 접어든 건가. 관광지 여행보다 이렇게 자연과 함께 숨쉬는 시간이 훨씬 더 좋다.
쌍둥이 횟집에서 거하게 먹고 숙소로 돌아와 토크 타임.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토크타임은 속 이야기 끄집어 낼 수 있는 진솔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한 친구의 폭탄급 깜짝 고백.
넘치는 재치와 장난끼 어린 이야기들로 모임의 분위기 메이커인 친구의 고백은 정말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이었다.
6년의 긴 시간, 그 힘겨움을 어찌 그리 잘 견뎌 낸 건지..
다행이 새로운 만남으로 설레임 가득한 시간들을 엮어가고 있다니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럭키맨의 행복한 가정이야기도, 가장 가까운 이와 소통하고자 애쓰는 친구의 고백도 우리들의 소소한 살아가는 이야기들도 토크타임을 꽉 채우는 진주알들이었다.
셋째날,
새별오름을 오른다.
분화구가 없는 단순한 오름이지만 가파르게 올랐다 느긋하게 내려가는 인기만점 오름이다. 아침부터 오름길이 힘들었을텐데 모두 함박웃음이다.
정상에서 단체 사진.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것 만으로 힐링이 되고 에너지가 된다.
새빌카페에서 빵과 차 한 잔으로 대신하는 아침식사. 으악, 자그만치 16만원.
괜찮은 식당에서 괜찮은 한 상 차림한 값이다.
제주의 고물가는 이런 곳에서 주도하는 것 같다. 그러니 제주를 외면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 밖에.
다섯 친구와의 이별의 시간이다.
여수에서 온 두 친구를 보내고 한 시간의 짬이 난 서울 친구들과 용두암으로 향한다.
수학여행 때 내려와 보곤 지나쳤던 곳.
용두암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뒷통수에 내리쬐는 햇살이 따사롭다.
다섯 여인네들의 시간이다.
떠나보내는 아쉬움에 잠깐 분위기가 가라 앉았지만 다시 으쌰으쌰.
구엄리 바닷가, 성산일출봉을 닮은 커다란 바위에 올라 폼 잡으며 독사진 찍는 시간.
프레임에 나오게 생겼다며 엉덩이 쳐들고 고개 처박으며 피해주고 있건만 꿩새끼 닮은 모습에 서로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
10년치 웃음 다 웃었단다.
곽지해수욕장 모래사장을 향해~
제법 서늘하다.
옷차림이 가벼운 친구는 비옷을 걸쳐 입고 모래사장 달리기를 한다.
서로 앞장 서려 반칙쯤이야~
가장 압권, 멀리뛰기.
허리가 아픈 친구 호기롭게 기호 3번을 외치더니 차마 뛰지를 못하고 손을 번쩍 올려 한들한들 춤을 춘다.
한참을 그러다 고작 한 뼘.
그 모습이 너무 웃겨 구르듯 웃는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놀이가 세상 시름없는 여인들이 되어 어린시절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넷째날,
숙소 소나무숲을 걷는다.
느릿느릿, 느림의 미학 충분히 느끼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올드팝 가락에 고개도 까딱 까딱, 푹신한 소나무 잎들도 밟으며 흔들흔들.
흐르는 시간이 달콤하다.
오늘은 뭐든 느리게 느리게, 충분히 여유롭고 편안하게.
도립미술관 탐방이 이벤트관 준비 기간으로 반토막이 되어 버렸지만 느긋한 우리들의 시간에 한 몫 더해 주었다.
헤어짐의 시간은 늘 그렇듯 진한 아쉬움을 남기지만, 가벼운 욕설도 다정한 추임새가 되는 조각들의 끈끈한 우정은 삶의 에너지가 되고 쉼이 되어 주리라.
예순, 다들 참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꾸려들 왔구나.
신명나는 다음 만남을 위해 또 각자의 자리에서 재미나게 살자꾸나
첫댓글 와 대단합니다. 고2 때부터 환갑까지의 긴 인연,,,그것도 남녀가,,,부러워요.
그 중에 CC도 있나요.
그 때 맘이 갔던 남학생은 누구였나요.
대단하다
파노라마다. 예술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