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한 성품은 모든 사람이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열반이나 부처를 다른 데서 구하려 할 필요가 없고,
원래 저절로 자기에게 원만히 갖추어져 있음을 믿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
부처나 조사들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따로 법을 준 것이 없고, 다만 중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본성을 보게 한 것뿐이다 만일 참으로 의심 없는 경지에 이르면, 비유컨대
그것은 마치 탁 트인 허공과 같이 넓고 너그러우니 여기서 어찌 구태여 억지로 시비(是非)를 일으키는가.
진심(眞心)에 들기 위해서는 알고 모르는 것이 도리어 평상심을 방해한다고 했다.
도를 알려고 하면 무심(無心)이 되어야 한다 돌을 뚫는 물방울은 지속적으로 같은 장소에 떨어져 내린다.
분산되어서는 힘을 발휘할 수가 없듯.도 닦는것도 또한 같다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근심·걱정·괴로움이 없다.
진리는 단순한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착하거나 증오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행복의 결정적 요인은 결코 외부 조건이 아닌 내부 마음에 있다
<진심직설(眞心直說)>
무지라는것은 자기의 참본성을 기본적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마음과 수행 너머의 진리를 알려면 마음의 뿌리를 깨끗이 잘라버려야 한다
마음을 좇으면 좇을수록 더욱 멀어지지만,
좇지 않으면 바로 눈앞에 있다
만약 학인이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
확신을 얻지 못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낼 것이다.
< 임제선사 >
무엇보다도 그대는 모든 인연을 쉬고 만사를 그쳐라.
선과 악, 세간과 출세간, 일체 모든 법을
놓아 버리고 기억하거나 생각하지 말라.
몸과 마음을 놓아 버려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
마음을 목석같이 하여 입 놀릴 곳 없고
마음 갈 곳이 없어야 한다.
마음의 대지가 텅 비면,
구름장이 나오고 해가 나오듯
지혜의 햇살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백장 선사-
자성 (本心)이란 누구에게나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
다만 선악의 대상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누구라도 수도인 이라 할 만하다 .
애써 선을 좇아 악을 버리고.
공(空)을 관(觀)해 선정에 드는 것은 조작일 뿐이다.
밖을 행하여 어리석게 찾아 나서면,
애쓸수록 자성과는 멀어질 것이다. -
미혹하면 분별식이 따르고,
깨달으면 지혜가 따른다.
실상과 통하면 깨달음이고 사상(事相)을 좇으면 미혹이다.
미혹은 곧 스스로 본심을 모르는 것이고,
깨달음은 곧 스스로의 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마조 대사-
인간은 본연의 의식을 상실하고 마음의 차원으로 떨어졌다.
마음이란 잠든 상태, 시끄로움, 기계적인 움직임 등을 뜻한다.
인간의 의식을 잠들게 하는 것은 지식이다.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은 더 깊이 잠든다.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머리에 든 것은 온통 쓰레기와 무의미한 소음뿐이다.
맑은 의식은 없고 시끄러운 마음만 있다.
사람들의 눈은 밝지 않고 지각은 민감하지 않다.
깨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제대로 듣지도 못한다.
그대가 무의식 속에서 잠들어 있으면 또 다시 죽을 수밖에 없다.
끝없이 반복되는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완전하게 깨어나야 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깨어 있음뿐이다.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를 지켜보라.
마음속에 지나가는 사념을 지켜보라.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지켜보는 기회로 삼아라.
-오쇼-
이름만 ‘마음’이지 그 실체를 여러분은 못 봤다.
마음만 바로 알면 그것이 ‘견성’한 사람, 깨달은 사람이다.
우리들은 마음을 모르고 산다.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마음이 아니냐고 하는데, 아니다.
말하고 쓰고 하는 것은 육근의 의식, 중생의 의식이지 마음이 아니다.
(대원스님 조주록 에서)
모든 중생은 모양에 집착하여,밖에서 부처를 구하고자 한다.
따라서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더 잃는다.부처로 하여금 부처를 찿게 하거나,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붙잡고자 한다면,수많은 시간이 지나고 이 몸이 다할지라도
끝내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없다.중생들은 마음을 쉬고 생각을 놓아버리면
부처는 저절로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마음이 부처고, 부처가 곧 중생이다.
<황벽 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