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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7장
제 7 장 고르반
[대 지]
一, 유전과 하나님의 말씀(1-13)
二. 밖의 것과 속에서 나오는 것(14-23)
三,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14-30)
四, 귀먹은 벙어리를 고쳐 주심(31-37)
[본문강해]
一. 유전과 하나님의 말씀(1-13)
. 7: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몇이 예루살렘에서 북쪽 갈릴리로 먼길을 온 목적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시는 일을 엿보아 책잡으려는 것이었다.
. 7:2-4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예수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그들이 보았다. 제자들의 행위가 바리새인들의 유전에 맞지 않았으므로 걸림이 된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오래 전부터 성경에도 없는 장로들의 유전을 지켜왔다. 그 유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되 팔뚝까지 씻어야 된다.
② 시장에서 돌아오면 물을 부리거나 혹 목욕을 아니하면 음식을 먹지 않는다.
③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규례들은 본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항상 정결한 생활을 하게 하려고 정해 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후대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지나치게 중요시하여 종교 의식화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경을 제쳐놓고 그것만 지키는 경향으로 기울어졌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절대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해 놓은 정결케 하는 의식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켜도 좋고 지키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성경 말씀의 교훈은 영적인 문제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또 자기의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나 손을 씻고 깨끗이 하는 것은 육신의 위생에 관계 될 뿐이다.
바리새인들이 유전과 의식을 성경과 같이 중요시하거나 또는 성경보다 더 중요시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손을 씻지 않고 먹으면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여기고, 성경을 어긴 것보다 더 큰 죄로 여겼다. 그들은 크고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작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작은 것을 크게 여겨 세워 나아가려고 하다가 큰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우리는 성경과 유전, 영적인 것과 의식주의를 잘 분별하여 성경말씀과 신령한 것을 따라가야 한다. 그것을 잘 분별하지 못하면 진리에서 탈선된다. 죄에도 큰 죄가 있고, 작은 죄가 있으며, 지옥의 형벌에도 큰 형벌이 있고 작은 형벌이 있다. 마태복음 23:15에"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 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도다"라고 하였다. 또 마태복음11:22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절하여 중요한 것을 앞세워 나아가야 한다. 사람도 웃사람과 아랫사람이 있고, 배나 더 존경할 사람이 있다. 디모데전서 5:17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 7: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의식과 유전, 즉 육신적인 면에 치우쳤으므로 영적인 면과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예수님께 따져 물었다.
. 7:6-7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이사야의 책망은 다음과 같다.
①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하나 마음은 멀리 떠나 있다.
②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
③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또 제도와 의식 적으로만 섬기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형식과 제도가 아무리 훌륭하고 입술로 주여, 주여 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하나님께 바치고 정력을 기울여 심령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은밀한 교제를 하여야 한다.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성기고 의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겼다.
손이 깨끗한 것보다 마음이 청결해야 되고, 몸만 하나님 앞에 나가지 말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의식적으로만 예배를 드리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로 말미암는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헛되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의 참 뜻을 찾아 진리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오늘날에도 신자들이 목사나 장로들의 말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내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주일날 아침 일찍 일부(一部) 예배만 드리는 것을 주일 지킨 것으로 여기고 예배 후에는 놀러 가거나 세상일을 하여도 편찮은 것처럼 가르치는 교회가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아무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을 헛되이 공경하는 것이다.
. 7:8-13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 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페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고 반문하였다. 하나님의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고(출20:12 참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였다(출21:17 참조),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아비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여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치 아니하였다.
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기 위하여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고르반 사상이다.
이 사상은 ①하나님께만 바치고 사람에게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②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교훈을 더 크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사람의 교훈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라고 책망하셨다. 우리가 부모를 마땅히 공경하되, 부모가 잘하여 줄 때뿐만 아니라 잘하여 주지 못할 때에도 부모를 잘 공경하여야 된다. 또한 부모가 설사 악을 행한다고 하여도 악은 따라가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여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악한 죄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고르반 사상에 빠져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도 바로 하고, 사람에게 대해서도 바로 하도록 교훈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에 대해서나 스승에 대해서나 형제에 대해서 자기가 해야 할 본분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사람에게 대한 일을 무시하여 의리를 지키지 아니하고 도덕을 파괴하며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또 사람 앞에 바로 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성도로서 행위를 바로 하고, 형제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웃사람에게나 아랫사람에게, 그리고 동료에게 모든 것을 바로 해야 한다. 또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도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바로 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책임 가운데에는 복음을 전해 주는 것도 포함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어도 믿지 않고 망하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이 없으나, 전하여 주지 않아 믿지 않고 지옥에 가면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겔3:18-19 참조).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유전을 지키는데 치중하였으므로 의식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져 성경 말씀을 경히 여기고 말씀을 순종하지 못했다. 성경 말씀을 위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로들의 유전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하고 나아갔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二. 밖의 것과 속에서 나오는 것(14-23)
. 7: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시편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다. 호세아4:14에도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바로 순종할 수 있다.
. 7:15-20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사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밖에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즉,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속사람은 더러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을 때에 더러워진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속에 있는 부패성을 가리키며,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더럽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유전이나 의식을 지켰다고 해서 속사람이 깨끗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학개 선지는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학2:12). 이것은 거룩한 예식을 행했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그 사람의 인격이 거룩해지고 깨끗해진다.
.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은 옛사람 즉 부패성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다.
부패성에서 나오는 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음란은 이성간에 이루어지는 그릇된 관계를 말한다. 도적질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물질을 취하는 것이다. 살인은 남을 미워하는 것이다(요일3:15). 또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살인이다. 간음 정당한 배우자가 아닌 이성과 동침하는 것이다. 마태복음5:28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했다.
탐욕 사람 속에는 다 욕심이 있으나 그 욕심을 버려야 믿음에 바로 설 수 있다.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마귀의 유혹에 바지고 믿음에서 떠난다. 신자는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자족을 배우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디모데전서6:6-8에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다.
악독 누구에게나 속에 악독이 있으므로 그 악독을 이기기 위하여 극기(克己) 생활을 해야된다. 속임 사기, 거짓말, 거짓 증거 등을 말한다. 성도는 언제나 진실해야 한다. 진실하지 않으면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
음탕 이성적인 문란한 행동들이다. 훼방 남을 헐뜯고 방해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교만은 하나님과 남을 무시하는 것이며, 자기를 높이는 것과 자기가 하겠다는 것도 교만이다. 성도는 항상 교만하지 않도록 힘써야 된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벧전5:5). 우리 성도는 언제나 예수님을 본받아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마11:29).
광패는 난폭한 것을 가리킨다. 성도는 기도를 많이 하여 난폭한 성격을 다스리고,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을 소유하여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죄악이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하고 해독을 준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것들을 다 빼어 내버리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아름다운 신앙 인격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三.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24-30)
. 7:24-30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발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이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었다. 이 여자는 자기 딸이 귀신들렸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와서 부르짖었고, 그 믿음으로 자기 딸이 나음을 얻었다. 마태복음 15:22에는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였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뜻이다. 이 여자는 예수님을 메시야(그리스도)로 믿고 자기 딸이 흉악히 귀신 들린 것을 고쳐 달라고 호소하였으나 예수님은 한 말씀도 안 하시고 그냥 길을 가셨다(마15:23). 이 여자의 신앙은,
첫째, 예수님의 대답이 없어도 따라갔다. 예수님이 전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셨으나 가나안 여자는 계속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부르짖었다.
둘째, 상관이 없다고 하여도 따라갔다.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고 하셨다(마15:24). 이 말씀은 가나안 여인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므로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나안 여자는 여전히 예수님을 좇아와서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절히 구했다.
세째, 개라고 하여도 따라갔다. 예수님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셨다(27절). 유대인은 이방인을 개나 돼지처럼 여겼다. 에베소서 2:11-12에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언약 밖에서 사는 사람은 개나 다름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의 상태를 예수님이 그대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여자는 조금도 실망함이 없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며 다시 애원하였다. 가나안 여자는 참으로 겸손하였다. "개"라고 취급받아도 "옳소이다"하는 자리에까지 낮아져서 주님을 따라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자기를 부인하며 기어코 은혜를 받겠다는 심정으로 간절히 은혜를 사모하였다.
네째, 누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상주실 것을 믿었다(히11:6).
다섯째, 부스러기 하나라도 주시면 만족하겠다는 겸손한 믿음을 가졌다. 큰 것을 바라보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다.
예수님이 그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 라"고 하셨다. 마태복음15:28에는"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다.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다. 가나안 여자가 이렇게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온 것은 예수님을 자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예수님이 전능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셔서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마귀를 쫓아내어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깨달아 믿었다. 그러므로 어떤 비난과 멸시를 받더라도 예수님을 떠날 수가 없고 주님의 은혜에 참여하기 위하여 끝까지 따라갔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자의 신앙을 미리 다 아셨으나 그 신앙을 드러낸 후에 그 딸을 고쳐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상관이 없다"하시고 개와 같이 취급한 것은 가나안 여자로 하여금 믿음을 쓰도록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을 바로 깨닫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참된 신앙이 나을 수 없다. 진리를 바로 깨달은 다음에는 끝까지 진리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끝까지 따라가려면 참고 견디어야 한다. 멸시와 천대를 받고 개와 같이 취급을 당하더라도 불평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참고 끝까지 따라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고가 온다. 진리를 따라간다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권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함께 가시면서도 예수님은 자기를 나타내시지 않고 그냥 지나가시려고 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예수님이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고 개와 같은자리에 처해 있어도 계속 예수님을 따라가야 마침내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 이렇게 끝까지 따라가는 신앙이 큰 믿음이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구원과 큰복을 받게 된다.
四. 귀먹은 벙어리를 고쳐 주심(31-37)
. 7:31-35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사람들이 귀먹고 말이 어눌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안수 해 주시기를 구했다.
어눌한 자 말을 분명하게 못하는 말더듬이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갔다. 이것은 무리들이 많은 데서는 복잡하여 기도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고요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기도해 주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손가락을 그의 양귀에 넣고, 또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하시니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려서 말이 분명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특이한 방식으로 고치셨다. 창조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가락을 양 귀에 넣었다는 것은 재창조 역사의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창조의 능력이 있는 주님의 손가락을 귀에 넣은 것은 그 사람에게 감각을 주어 믿음을 일으키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또는 주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직접 역사하여 고쳐 주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침, 즉 진액이 오고 손을 전 것은 얼마나 큰 은혜요 역사인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것은 죄 값으로 이런 병들이 들린 것을 생각하시면서 탄식하였을 것이다. 보통은 병이 죄로 말미암아 온다. 그러나 요한복음 9:1-3의 소경은 죄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소경이 되었다고 했다.
. 7:36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 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계한 것은
① 아직 그리스도의 사역이 성취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부활, 승천으로라야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성된다. 그 때에 공적으로 선포하기 위함이다.
② 전도하는데 방해가 되겠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할수록 바리새인들은 더욱 시기하여 예수님에 대한 반대가 커졌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비유로 가르치시고 조용할 때에 제자들에게 그 뜻을 풀어 주시곤 하셨다(마13:10-11).
. 7: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 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며 믿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바리새교 지도자들은 더욱 더 시기하여 핍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