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시집『백지였으면 좋겠다』
'있음'과 '없음' 그리고 사랑
蔡 洙 永
(시인. 문학평론가. 신흥대 교수)
1.詩의 표정
한 편의 詩에서 느끼는 독자의 감정은 시인을 만나는 이미지와 유사하거나 겹치는 감정이 궁극적으로 일치되는 지점에 이른다. 詩는 시인의 총체적 흔적이고, 이 흔적은 시인의 정신지향으로 나타나는 발전적 계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권의 시집 속엔 시인이 살아왔고 살고 있는 詩 요소들이 살아 움직이는 유기적 생명체로 나타난다.
金松培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백지였으면 좋겠다』엔 金 시인의 표정이 가을 햇살 아래 드러나 있다. 시집의 제목에서 감지되는 것과 같이 백지 즉 '없음'에 대해 ‘있음’ 흑은 '있음'에 대한 '없음'이라는 두 측면을 왕래하면서 의식의 촉수들을 시화(詩化)하는 기법을 보이고 있다.
우선 그가 詩라는 절대적 모습 앞에 어떤 모양으로 생각하고 또 살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이 그의 詩를 바라보는 첫 매듭처럼 보인다.
서울
연희동 187-118 비탈진 한 구석에서
아지랑이 아른아른
아직도 미몽(迷夢)일때
살아가는 일들이 모두 분별없는 갈등일 때
원고지에 감춰둔 글자들이 와와 밀려나을 때
그렇게 끝나지 않는 모순일 때
사랑 또는 詩
꿈속 헤매다 엮은 달무리
아침이면 영혼을 관류하는
산번지 새들의 화음이 들리고
벙그는 꽃 작은 사랑
그리고 속삭임.
--「사랑 또는 詩」전문
詩는 시인의 정신질감들이 살아나는 이미지로 형상화될 때, 그 이미지들의 단단하고 치밀한 결합으로부터 - 단순한 언어의 구조라는 형태를 벗어나 살아있는 생명의 손짓으로 바꾸어질 때 의미를 만들어 낸다. 마치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고 행동함으로부터 인격과 개성의 진수가 보여 지듯이, 착의 경우에도 의미에서부터 착의 참된 표정(인격과 개성)이 만들어 질 수 있다.
金松培의「사랑 또는 詩」는 시집『백지였으면 좋겠다』를 가장 상징적으로 응축한 간판이다. 우선 그가 살고 있는 존재공간이 연희동 187-118이라는 현재성으로부터 삶의 양태가 '미몽', '갈등', '모순'이라는 현재성의 공허 (空虛) 혹은 허무한 표정이 드러나고 있다.
일찌기 공자도 「川上의 嘆」으로 삶의 허무를 말했고 예수도 Vanity를 설파한 것과 같이 살아가는 생명은 고해(苦海)의 늪을 건너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총칭하여 없음 혹은 허무라고 지칭한다면 金 詩人이 살고 있는 현실을 압축한 말들이 된다. 미몽과 갈등과 모순 속에 좌절과 실망으로 주저앉지 않고 희망과 기쁨의 세계를 인도하는 노래가 될 때 시인의 임무는 완성된다.
가령 한용운의 님이나 이육사의 청색, 신석정의 어머니 등은 좌절과 고통의 벽을 넘은 새로운 지향공간이었기에 감동의 연속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金松培의 경우엔 '사랑 또는 詩'라는 해답이 된다. 그의 시 기법은 '없음'(미몽, 갈등, 모순)에서 '있음'(사랑, 詩)이라는 매우 간명한 구조 속에 합리성을 획득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리하여 꿈 속 달무리와 아침 새들의 화음, 꽃과 사랑 그리고 속삭임이라는 평화와 사랑의 세계를 꿈꾸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있음'의 세계는 총체적으로 사랑의 세계이고, 이것이 시의 세계 속에 포괄될 때 金松培의 정신 추구점의 최종 지점을 이룩하려는 의도의 종착지가 되고 있다.
2. 없음의 세계와 변형
'없다'라는 세계는 궁극적으로 무엇일까? '있다'와 '없다'의 상대적 관념의 세계에서 있음이란 궁극적으로 없음에 이르고, 없음은 또 다시 순환되는 우주의 원리 속으로 들어갈 때, 원(圓)의 영원성에 이르면서 계기성의 철학에 이르게 된다.
詩또한 영원성의 노래일 때라야 창조라는 옷을 입게 된다. 金松培 詩의 '없음'은 결국 원점회귀라는 계기성으로의 특징처럼 보인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
비워진 마음으로
마알간 속살로 그냥 남고 싶다.
--「물의 말」 중에서
하늘까지 풀어버 린 어둠도
뜨겁게 사루려니
산동네를 휘감는 겨울 노래
아 아, 한줌 재로 사그라진 당신.
-- 「불의 말」 중에서
--하, 오늘은 꿀벌 한 마리 날지 않았다.
-- 「꽃의 말」 중에서
물이 흐르는 것은 어디로 가는가?
그 대답은 끝내 마련되지 않는다. 설혹 강, 바다로 간다 하지만 물은 결국 하늘로 오르고, 다시 구름이 되어 비로 또 다시 산천에 뿌려질 때 어디로의 의미는 이미 현상을 벗어난 질문이 되기 때문에 본질에서는 '없음' 즉 공허에 이르게 된다. 결국 '없음'은 '있음'을 예비하고 있고 이 잉태는 또다시 순환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오늘의 모습을 변치 않으려는 표정만 남게 될 뿐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에서나 '한 줌 재로 사그라진 당신'에서 만나는 최종 목적지는 단순성을 넘어 심오한 명상의 숲을 헤쳐야 그 정답을 만날 수 있다는데서 즐거운 사념(思念)이다. 또한 ' --하'에서 자각되는 시인의 발견은 꿀벌 한 마리 날지 않는 정적이 되어 '밤새도록 진통'이라는 새로운 '있음'을 위한 변화의 엄숙성이 내재되었을 때 金松培 詩의 창조문법(創造文法)은 영원회귀(永遠回歸)의 문법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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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있음. 고통의 잉태와 갈등
태어난다는 것과 태어난 것들은 고통이 마련된다. 존재라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물리학의 질량불변의 법칙이라는 한계의 일정량 속에 밀도를 상상할 때 -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신음을 토해낼 수밖에 없는 고해의 늪을 건너야 한다. 金松培의 '있음'은 이런 현상을 보여준다.
흔들림 없이 무슨 꽃을 피우랴
사랑함 없이 무엇을 노래하랴
겨우내 언 손 호호 허리춤에 감추고
봄 햇살 꿈꾸는 너와 나
양지쪽에서 숨죽인 우리들
견딤이 오랠수록 눈물이 많습너다.
꽃망을 큰 꿈일수록 눈물이 많습니다.
--「忍冬草」전문
'피우랴' '노래하랴'는 의문은 겨울(無)에서 봄(有)에 이르기 위한 시인의 의지를 담고 있는 시어이다. 아울러 겨울이라는 고통의 과정을 견디지 않으면 봄날의 화려한 꽃(시)을 피울 수 없게 된다. '눈물이 많습니다'와 '꽃망울'이 연관되어 큰 꿈이라는 세계에 이르기 위한 있음의 세계는 댓가를 감내하지 않으면 결코 이를 수 없다는 아포리즘에 이르게 된다.
詩는 감동의 최종 의미에 이를 때 아포리즘이 탄생된다. 詩가 감동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아포리즘은 오히려 詩를 압살하는 역할이지만 의미의 최종단계에서는 한 마리의 아포리즘으로 시인의 의도가 선명성을 획득하게 될 수 있다면 詩의 중간과정에 맞게 되는 소망의 단계가 가로 놓인다.
金松培의 경우엔 갈증 혹은 行人의 표정이다.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
희미하다. 마로니에-
--「대학료 片片⋅3」중에서
대학로에는
작은 신음 소리만 들리고
아아, 사랑의 노래는 없는 것인가
--「대학료 片片⋅1」중에서
목표에 도달하려는 마음은 행인(行人)으로 출발하고, 행인은 목적지를 위한 열망 즉 갈증의 생각을 갖는다. ‘날 부르는 소리’를 찾아가는 시인의 마음속엔 사랑이 있으리라고 믿는 신념의 방향이기에, ‘신음소리만’이라는 한정사 앞에 고달픈 구도자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결국 金松培의 詩는 ‘없음’에서 ‘있음(사랑)’을 획득하기 위한 중간간계로 갈증 혹은 행인의 과정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사랑의 시인이지만 사랑이 속스럽고 진부한 의미가 아니라 근원적이라는 점에서 보다 형이상학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詩가 아닌 詩가 흘러넘치고, 시집이 아닌 책들이 아우성치는 -오히려 詩가 그리워지는 목마른 오늘- 좋은 詩와 시집은 즐거움이고 기쁨이라면 金松培 시집은 그런 값에 합당하리라 믿는다.
(‘90.2.『心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