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일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감독, 2008년, 전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6년과 2000년에 이어 3연패를 노린 덴마크를 상대로 벌인 두 번에 걸친 연장전과 그 후에 이어진 승부 던지기는 경기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잘 말해준다. AP통신은 이 경기를 아테네 올림픽 명승부전으로 선정했을 정도였다. 경기가 끝난 뒤에 선수들끼리 얼싸안고 우는 장면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은 비록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왔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수고와 선전에 대해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국민들이 보여준 대대적인 환영을 임순례 감독은 인상 깊게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임순례 감독이 단순히 열렬한 환영의 물결에만 주목했던 것은 아니다. 영화는 그렇게 볼 만한 단서를 전혀 제공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독으로 하여금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경기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경험하게 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영화에 대한 감동을 넘어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포츠 영화라고는 하지만 영화는 화려한 스포츠 기술에 대해 전혀 주목하고 있지 않다. 3개월 동안의 합숙훈련과 매일 10시간 정도의 혹독한 훈련을 겪었다고 해도 스포츠 영화로부터 기대할 만한 화려한 기술이나 전술 연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있다. 다시 말해서 최고의 기록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핸드볼 선수들의 땀과 수고로 어우러진 결과를 최고의 순간으로 보고 싶어 했던 이유를 살펴보면 영화 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경기에서는 패배했지만 최고의 순간으로 감독이 보고 싶었던 이유는 여성, 그것도 아줌마 선수들의 억척스런 투지와 집념 때문이라 생각한다. 특히 세 아줌마 선수들은 신임 감독 안승필(엄태웅 분)이 자신들을 탈락시키기 위해 시행된 과학적인 체력관리에도 살아남았고,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아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며, 강적 덴마크 선수들과 두 번에 걸친 연장전에도 굽히지 않고 끝까지 뛰어주었다.
영화는 소속 실업팀의 해체와 더불어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소식을 접하는 선수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대형 마트의 직원으로 전업해야 하는 미숙(문소리 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획득한 금메달의 주역이었던 그녀였지만 해단 소식을 듣고 염려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그녀는 단지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될 수 있다면 괜찮다는 반응을 보인다. 핸드볼을 쥐고 던지는 그 손은 손님들의 주목을 끌기 위한 생계수단으로 바뀐다. 일본 실업팀 감독으로 있다가 감독 대행으로 임명된 혜경(김정은 분)이가 보는 미숙에게 핸드볼은 숙명이었지만, 정작 미숙에게는 빚을 갚아야 하고, 백수 남편을 뒷바라지 하고 어린 아들을 돌보는 생계유지 수단에 불과했다. 돈벌이로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핸드볼을 이미 포기한 그녀가 선수촌에 들어온 것도 우승하게 될 경우에 받게 될 연금을 미리 당겨 쓸 수 있게 친구 혜경이가 배려해주었기 때문이다. 정란(김지영 분)은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자신을 끔찍이도 아껴주는 남편과 아무런 염려 없이 살 수 있지만 더 이상 핸드볼을 던질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로 사사건건 말썽이다. 이런 그녀에게 태릉 선수촌 입촌은 천혜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훈련성적을 내어 대표단에 뽑힐 대단한 각오를 다진다. 영화에서 그녀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아줌마 이미지를 갖고 있다. 뽀글뽀글 파마하며 온갖 보약을 챙기는 모습은 물론이고. 같은 방을 쓰는 선수가 어떤 방해를 받든 아랑곳 하지 않고 태연자약하는 모습하며, 태릉선수촌에서 동료선수들을 괴롭히는 유도선수들을 억센 사투리 입담으로 제압하는 모습 역시 그렇다. 아줌마로서 어떻게 팀의 사기를 높여주고 분위기를 살려주는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캐릭터다. 혜경은 핸드볼 실력에서는 미숙에게 늘 뒤처지지만 일본 실업팀 감독을 맡으며 감독 대행으로 미숙 앞에 서게 된다. 그러나 협회의 성차별적인 인사 조치로 전격 교체되어 선수로서 경기에 임하게 된다. 이혼한 경력이 문제가 된 것이지만 그녀를 대신해서 온 신임 감독은 바로 전 남편 안승필이다. 이혼 자체가 문제라면 그 역시 결격 사유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버젓이 감독으로 임명된 것은 결국 혜경의 문제가 협회의 성차별로 인한 것임을 보여준다. 혜경은 성차별의 피해자로서,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선수로 출전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이렇게 다양한 사연을 가진 아줌마들이 자신들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겼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경기는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또 아줌마로서 겪어야 할 한계들을 극복했기 때문에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계를 극복하는 선수들의 땀과 수고를 재현해 보여줌으로써 올림픽 경기는 그들에게만의 최고가 아니라 비슷한 상황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과 공유될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스포츠 영화이긴 하지만 여성영화로서의 모습이 강한 형태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독해된다. 사실 스포츠는 결과를 중시한다. 아무리 땀을 흘려 노력했어도 패배하면 그늘 속에 묻힐 뿐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오직 승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그래서 승자만이 최고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말아톤’과 ‘맨발의 기봉이’에게서 삶의 깊은 감동을 경험했다. 자폐의 한계를 극복한 초원이나 심장의 한계를 마다하지 않고 엄마의 틀니를 위해 뛰어준 기봉 아저씨를 통해 우리는 인생에서 진정 무엇이 최고인지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렇게 큰 어려움 없이 국민적인 정서 속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또 아줌마로서 당하는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싸우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은 승자의 영광에만 집중하기보다 오히려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가를 더 중시하고 또 그것을 영상으로 연출해 보여줌으로써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최고의 순간은 무엇인가를 묻고 또 최고의 순간을 향해 매진할 것을 권고하는 것 같다. 사도 바울 역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도 좋겠다. 과거에 무엇이 있었든, 현재에 어떤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든 중요한 것은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해 중단하지 않고 달려갔다고 회고 하고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결코 승리에만 있지 않다. 비록 패배했을지라도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는 최고의 노력이 기울여졌다면, 목표를 향해 성실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많은 장애물과 난관이 있다 해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인내를 보여주었다면 그때가 바로 우리 생해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
출처: 기초신학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최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