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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감나무 / 교정 중
무서리 내린 것 같은데 아직 홍시 아니다. 한데 요놈 새들이 쪼기 시작한다. 세 개나 쪼았다. 아니 몇 개 더 있다. 밭에 자주 올 수도 없고…. 하루하루 사이에 단맛은 더 들어간다. 조금만 더 있음 미씨족의 농염한 홍단색이 되어 최고의 작품을 보여 줄 것인데. 저 새들이 너무 하다. 확 쫓아 보기도 하고 성질나 고함도 지른다. 잘 익혀서 같이 나누어 먹자고 억지도 부린다. 소통할 수 없는 저들에게 통할 리 만무다. 여섯 개만 달린 윗 감나무 감을 된통 다 쪼아 놓았다. 어느 것은 반 이미 이상이나 먹었다. 한 개는 벌써 검은 색조도 들고. 그래 이 나무는 너희들 밥상이다. 잘 챙겨 무라 한다. 감나무에게는 사전 의논도 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 날 잡고 마음먹고 땄다. 더 험다리 나기 전이다. 성한 감으로 옹심의 내 물건 확보 하기다. 서러운 감나무는 바람 따라 우는 소리로 들린다. 어찌 그 시기한 분위기 노래 가사 생각도 난다. 감 하나 딸 때마다 가지를 앙탈 부리듯 흔든다. 누 헤어질 때 손 수건 흔들 듯 잎시귀로 흔들어대 싼는다. 민망하게 시리. 아니 한 잎씩 홀 던지기도 한다. 말없는 울화 풀이인 거다. 나도 부모고 자식 두고 챙길 수 있는 만물 중 하나라고 하늘 향해 떠 드는 것 같다. 인간의 일에 그 무엇으로 당하리. 모두를 포기하고 힘 바랜 가지 흔들며 탈춤의 비무를 시작한다. 달랑 한 개만 남겨서 더 애달픈. 아직 덜 익은 감들이 데수구리에 담겨 있다. 발가스리 해야 할 색조가 누루스무리한 체다. 이 귀한 새끼를 감나무는 물끄러미 본다. 새들 소리마저도 자자 진다.
감을 다 땄다. 한 접하고 반접이나 된다. 6년 만에 처음 한 접 이상 수확했다. 창피한 소출이지만. 작년에는 삼십여 개로 가장 많이 땄다고 큰소리치며 좋아했는데. 올해는 대박~. 아직은 떫은 감이다. 벌써 외손주들의 입이 오물거림이 선하다. 옹기 단지에 담는다. 하필 감나무 옆 양지바른 소나무 밑이다. 겨울 추위에 잘 익어라 한다. 외손주들이 찾을 홍시, 맛난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한 사람 있다. 넘버하나는 무시로 단지 뚜껑 열고 꺼내 먹는다. 작년 감 홍시 들락날락하며 혼자 다 먹었다. 방학 때 외 손주들이 오지 못했으니. 그 먹는 모습에 그 감이 왜 엄니의 티밥 강정같이 보였을까? 장롱의 강정. 시간이 지나도 바싹하게 다려져 여름에도 그 맛을 품고 있던. 올 해는 꼭 외손주들에게 맛을 보여 주리라 해본다.
설날 엄니가 만드신 티 밥 강정. 항상 챙겨 두시다가 내가 가면 내어놓던 먹거리다. 좋아한다고. 그리움이 강정이 댄 된 기다림이다. 언젠가 일지 모를 아님 중복 때라도 가면 내어 놓으셨다. 푸른 제복 입을 때였다. 내 어릴 적에 감도 따셨다. 몇 개를 남겨 두면서 맛있게 잘 먹어라 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 인지 몰랐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 줄은 더 몰랐다. 그런 엄니의 마음이 저 나무에 있다. 외손주의 얼굴이다. 홍시 좋아하는 넘버하나의 입이다. 뭔가를 위한 기다림의 멋이 있다. 그 맛이 멋으로 즐거워진다. 나이보다 철로 세상사는 때 귀 한 거다 라며 먹었던 추억이 생생하다. 귀함의 희소성이 아니라 애달픔이다. 계절 지난 기다림이 깊숙이 배어 있음을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이런 게 까치밥의 마음인가 보다.
달랑 한 개만 남겼다. 퇴색 한 잎새 사이에서 누렇게 외롭다. 아직 설익은 체 대롱 거린다.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가을이 가실이 되어 지나가는 시기에 누가 이렇게 한 개라는 쓸쓸함을 만들었다. 다가오는 동짓달 맞이라 해 볼까?. 찾아 올 손 있어 남겼으니 이제부터라도 맛으로 익을 거야 해본다. 감나무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다. 덜 된 감 홀랑 삭 서리해 버렸으니. 홍시를 위해 그 아픈 시간 힘들게 견디었는데. 유아독존 인간에 팽 당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본다. 다음을 위해 퇴비거름과 낙엽 거름 듬북 받을 것이니. 그래도 갑질의 그 심통 한 자리에서 침묵 품고 웅크린다. 홀로 남겨진 감 철이 없을 거야. 이 시기에 한 땡감의 윤기를 내려 햇볕을 더 받으려 한다. 춤을 추려한다. 까치밥은 정 내기 나눔으로 외로움이 아닌데. 감나무는 이런 의미를 알까?
하나만 보고 찾아올까? 정나미 없게 너무 과했나? 과실 따면서 최소 몇 개를 남겨두는 걸 보았는데 달랑 한 개가 뭐야. 까치밥으로 남은 한 알의 감을 본다. 그래도 험다리 몇 개는 같이 있으니. 오히려 역으로 역지사지 꼴이 된 새들은 무슨 생각할까? 내 거 내가 남겨 놓고도 내가 약이 오를 지경이니 새들은 오죽하랴. 하다고 그들 장단 맞춰 줄 수는 없다. 허지레 질을 먼저 하지 않았다면 아직 따지도 않았다. 섣부른 과욕이 부른 잘못이다. 맛난 단 홍시를 수시로 맛볼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움은 지들의 몫 합리화 시킨다. 서로서로 상부상조 유지였다면. 볼그스레 익어가는 홍시의 미를 탐미할 수 있었을 텐데. 앞으로는 서로 잘해보자. 인간은 욕감으로 새대가리라고도 하는데 알아들을까? 그래도 너무 한 건 맞다. 정말 달랑 한 개가 뭐야. 감나무는 무슨 말을 해도 이미 삐쳐 버린 마음 먼 곳 보면서 잎사귀만 덜렁인다.
먼저 건들지만 않았다면 더 있다가 더 남겼을 텐데. 먹다 남은 것도 있으니 한 번은 요기하여라. 한겨울 지낼 식량 다 남겨 주지 못하니. 겨울나기 준비는 따로 가끔씩 해 준다. 잔밥과 과실 겁 떼기 밭이랑에 던져 놓는다.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허연 밥풀 떼기 며칠을 버티고 있다. 나름 곡기를 줌으로 따 버린 감의 실망감 달래기 한다. 도랑 돌입에 서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풍경소리처럼 풍경으로 반겨 준다.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있다. 새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그저 옆에 있다는 것으로 여기 있는 동안의 시간 즐겁고 재미있다. 이번에 달랑 한 개 남겼다고 삐지지는 말라. 내년을 기약 하자.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하지만 이 감나무는 어찌할꼬? 온 자식 잃은 설움을. 이미 단지 속으로 들어간 감. 타고난 운명을 어찌하랴. 잎새로 몸 가리며 소리 내어 운다. 바람이 말없이 안아 주고 있다. 이월에 퇴비거름 받을 잠을 잔다.
24. 03. 07.
까치밥 감나무 / 초고
달랑 한 개만 남겼다. 퇴색 한 잎새 사이에서 누렇게 외롭다. 아직은 설익어 대롱 거린다.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누가 이렇게 한 개라는 쓸쓸함을 만들었다. 가을이 가실이 되어 지나가는 시기에. 다가오는 동짓달 맞이라 해 볼까?. 찾아 올 손 있어 남겼으니 이제부터라도 맛으로 익을 거야 해본다. 감나무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다. 덜 된 감 홀랑 삭 서리해 버렸으니. 홍시를 위해 아픈 시간. 힘들게 싸웠는데. 유아독존 인간에 팽 당했으니 그나마 다행. 다음 예약 퇴비거름과 낙엽 거름 듬북 받을 것이니. 그래도 갑질의 그 고통 한 자리에서 침묵으로 품고 있다. 감색은 윤기를 내려 햇볕을 잘 받는다.
하나만 보고 찾아올까. 정나미 없게 너무 과했나. 과실 따면서 최소 몇 개를 남겨두는 걸 보았지만. 하다고 달랑 한 개가 뭐야.
내 거 내가 남겨 놓고도 내가 약이 오를 지경이니. 새들은 오죽하랴. 하다고 그들 장단 맞춰 줄 수는 없다. 허지레 질을 먼저 하지 않았다면 아직 따지도 않았다. 섣부른 과욕이 부른 저들 잘못이다. 맛난 단 홍시를 수시로 맛볼 수 있었을 텐데. 지들의 안타까움은 지들의 몫. 서로서로 상부상조 유지였다면. 앞으로는 잘해보자. 인간은 욕감으로 새대가리라고도 하는데 알아들을까? 그래도 너무 한 건 맞다. 정말 달랑 한 개가 뭐야. 감나무는 무슨 말을 해도 이미 삐쳐 버린 마음 먼 곳 보면서 잎사귀 덜렁인다.
감을 땄다. 한 접하고 반접이나 된다. 6년 만에 처음 한 접 이상 수확했다. 작년에는 삼십여 개로 가장 많이 땄다고 큰소리치며 좋아했는데. 대박~. 아직은 떫은 감이다. 외손주들의 입이 벌써 오물거린다. 옹기 단지에 담는다. 양지바른 소나무 밑이다. 겨울 추위에 잘 익어라 한다. 외손주들이 찾을 홍시,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한 사람 있다. 넘버하나는 무시로 먹는다. 작년 감 홍시 혼자 들락날락하며 다 먹었다. 방학 때 외 손주들이 오지 못했으니. 그 먹는 모습이 왜 엄니의 티밥 강정같이 보였을까? 장롱의 강정. 시간이 지나도 바싹하게 다려져 그 맛을 품고 있던. 올 해는 꼭 외손주들에게 맛을 보여 주리라 해본다.
무서리 내린 것 같은데 아직 홍시 아니다. 한데 요놈 새들이 쪼기 시작한다. 세 개나 쪼았다. 아니 몇 개 더 있다. 밭에 자주 올 수도 없고…. 하루하루 사이에 단맛은 더 들어간다. 조금만 더 있음 미씨족의 농염한 홍단색이 되어 최고의 작품을 만들 것인데. 저 새들이 너무 하다. 확 쫓아 보기도 하고 성질나 고함도 지른다. 잘 익혀서 같이 나누어 먹자고 억지도 부린다. 소통할 수 없는 저들에게 통할 리 만무다. 여섯 개만 달린 윗 감나무 감을 된통 다 쪼아 놓았다. 어느 것은 반 이상이나 먹었다. 한 개는 벌써 검은 색조도 들고. 그래 이 나무는 너희들 밥상이다. 잘 챙겨 무라 한다.
엄니가 항상 챙겨주시던 티 밥 강정이다. 항상 챙겨 두시다가 내가 가면 내어놓던 먹거리다. 좋아한다고. 그리움이 강정이 댄 된 기다림이다. 설날이 언젠가 일지 모를 아님 중복 때라도 가면 내어 넣으신다. 푸른 제복 입을 때였다. 어릴 적에 감도 따셨다. 몇 개를 남겨 두면서 맛있게 잘 먹어라 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 인지 몰랐다. 누구에게 하는 줄은 더 몰랐다. 그런 엄니의 마음이 저 나무에 있다. 외손주의 얼굴이다. 홍시 좋아하는 넘버하나의 입이다. 뭔가를 위한 기다림의 멋이 있다. 그 멋이 맛으로 즐거워진다. 나이보다 철로 세상사는 때 귀 한 거다 라며 먹었던 추억 생생하다. 귀함의 희소성이 아니라 애달프음이다. 계절 지난 기다림이 깊숙이 배어 있음을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오늘 하루 날 잡고 마음먹고 땄다. 더 험다리 나기 전이다. 성한 감으로 내 물건 확보 하기다. 서러운 감나무는 바람 따라 운다. 어찌 분위기 같은 노래 가사 생각도 나고. 감 하나 딸 때마다 가지 앙탈 부리듯 흔든다. 누 헤어질 때 손 수건 흔들 듯 잎시귀 흔들어대 낫는다. 아니 하나씩 홀 던지기도 한다. 말없는 울화풀이다. 나도 부모고 자식 두고 챙길 수 있는 미물이다라고 하늘 향해 떠 드는 것 같다. 인간의 일. 그 무엇으로 당하리. 모두를 포기하고 힘 바랜 가지를 흔들며 비무 하기 시작한다. 달랑 한 개만 남겨졌다. 아직 덜 익은 감 데수구리에 담겨 있다. 발가스리 해야 할 색조가 우루스무리한 체다. 이 귀한 새끼 감나무는 물끄러미 본다. 새들 소리 자자 지는 구다.
먼저 건들지만 않았다면 더 있다가 더 남겼을 텐데. 먹다 남은 것도 있으니 한 번은 요기하여라. 한겨울 지낼 식량 다 주지 못하니. 겨울나기 준비는 따로 가끔씩 해 준다. 잔밥과 과실 겁 떼기 밭이랑에 던져 놓는다.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허연 밥풀 떼기 며칠을 버티고 있다. 나름 곡기를 줌으로 따 버린 감의 실망감을 해소하는 달래기 다. 밭 새들은 돌입에 서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풍경소리처럼 풍경으로 반겨 주었다.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있다. 새들 지식에 대한 없다. 그저 옆에 있다는 것으로 여기 있는 동안의 시간 즐긴다. 이번에 달랑 한 개 남겼다고 삐지지는 말라. 내년을 기약 하자.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하지만 이 감나무는 어찌할꼬? 온 자식 잃은 설움을. 이제 단지 속으로 들어간 감. 잎새로 가리며 소리 내어 운다. 바람이 말없이 안아 주고 있다.
24. 02. 29.
까치밥 / 초고
달랑 한 개만 남겼다.
하나만 보고 찾아올까. 정나미 없게 너무 과했나. 과실 따면서 몇 개를 남겨두는 걸 보았지만. 하다고 달랑 한 개가 뭐야. 내 거 남겨 놓고도 약이 오를 지경이니.
감을 땄다. 한 접하고 반접이나 된다. 6년 만에 처음 한 접 이상 수확했다. 작년에는 삼십여 개로 가장 많이 땄다고 만족했는데. 대박~.
무서리 내린 것 같은데 아직 홍시가 아니다. 한데 요놈 새들이 쪼기 시작한다. 세 개나 쪼았다. 밭에 자주 올 수도 없고…. 그래서 오늘 마음먹고 땄다.
먼저 건들지만 않았다면 더 있다가 더 남겼을 텐데. 먹다 남은 것도 있으니 한번 요기하여라. 한겨울 지낼 식량 다 주지 못하니. 겨울나기 준비는 따로 해야지.
엄니가 항상 챙겨주시던 티 밥 강정이다. 항상 챙겨 두시다가 내가 가면 내어놓던 먹거리다. 내가 좋아한다고. 그리움이 이 놈의 강정의 되고 기다림이시다. 설날이 언젠가 일지 모를 아님 중복 때라도 내어 넣으신다. 푸른 제복 입을 때였지. 그런 엄니의 마음이 저 나무에 달려 있다.
나이보다 철로 세상사는 때라 귀 한 거다 라며 먹는다. 미소 띠는 얼굴 생생하다. 귀함도 희소성이 아니라 애 닳음이다. 계절이 지나 깊숙이 배어 있음을 이제 알다니.
까치밥 감이 하늘 보고 있다. 아직 설 익어도 똑바로 고개 던 체. 기대와 희망을 기다리면서. 한 번씩은 솟대로도 비견한다.
2018.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