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처가 행경(gocara, 고짜라)다’라고 하는 것은 ‘심(心, citta)의 행경(gocara, 고짜라)을 사념처(네 가지 사띠를 확립할 곳)로 삼아라’는 말이다.
'심과 사념처와의 관계'는 '의가 법을 고짜라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한 오근의 경계와 고짜라를 경험하는 구조'와 같다고 보면 된다.
바라문이여, 각각의(nānā~, 각자 자기의, 각각 나름대로의) 대경(對境, visaya, 경계)들과 각각의 행경(行境, gocara, 고유영역, 활동영역)들을 지닌 오근(五根)은 서로의(aññamaññassa, =자신의 對境과 行境이외에 다른 根의) 대경(visaya)과 행경(gocara)을 경험하지 못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이다. 바라문이여, 각각 다른 대경(visaya)들과 각각 다른 행경(gocara)들을 지니고 서로의 대경(visaya)과 행경(gocara)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러한 오근(五根)들에게 의(意, mano)는 의지처이며, 의(意, mano)가 그것들의 대경(visaya)과 행경(gocara)을 경험하는 것이다.
[SN. vol.5. p.218]
* 고짜라(gocara)에서 일어나는 3가지 사건
1. 意로 法을 viññāya(분별)하고서, ‘사랑스런 法(piyarūpe dhamme)’에 애착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法(appiyarūpe dhamme)’에 저항한다.[MN. vol.1. pp.266~267]
2. 意로 法을 viññāya하고서, 相(nimitta)을 취하지 않는 사람, 細相(anubyañjana)’을 취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MN. vol.1. p.269], [AN. vol.1. p.201]
3. 意로 法을 viññāya하고서, 法相을 쫓는 식(識)이 있다.[MN. vol.3,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