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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전 지역을 거쳐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 호산나 찬송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 하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은 군중의 모습이 목전에 펼쳐지는 듯 하다. 성안에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를 지시러 성안으로 입성하시는 모습이 바라 눈 앞에 벌어지는 것 같다. 일년에 절기 때나 예루살렘을 볼 수 있는 갈릴리 사람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일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소아시아에서, 멀리는 페르시아에서, 유럽에서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은 어렵게 절기 때나 예루살렘을 보았을 것이다. 거룩한 한 시온 성에 구원자가 나오사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몰랐던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아무런 독립의 역사도 이룰 수 없음을 보고 ‘율법과 선지자와 시가서에 오리라 한 메시야’인 그를 율법과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명으로 살인자보다 더한 형벌을 주는 십자가형으로 그를 나무에 메달아 버린다. 하지만 이 또한 그가 나무에 달려 우리를 구원하심을 구약은 예언하고 있었으니 이것도 예언의 성취이다. 그토록 그들이 증오하던 로마 제국에 빌붙어 그 힘을 의지하여 십자가 판결을 이끌어 낸다. 견원지간처럼 싸우던 헤롯과 빌라도가 의기투합하고, 한번도 악수를 하지 않고 부정한 이방인이라고 거들떠도 안보던 빌라도 총독에게 가야바 대제사장은 온갖 아양을 다 떠는 기상천외한 일이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것이다. 무흠무결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께 유대 종교를 모독했다고 있지도 않은 죄명을 주고, ‘바라바’는 풀어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은 사건이 바로 이곳 예루살렘에 벌어진다. 안토니아 요새에 있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시작된 Via Dolorosa 를 따라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 예루살렘에 일어나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찬송을 부르기까지 다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오신다고 부활하신 후에도 약속하셨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보는 날은 재림의 날이요, 영광의 날이요, 온 인류가 기뻐할 날일 것이다. 유대인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들의 메시야라고 고백할 것이며, 이방인도 예수만이 메시야라고 말하면서 동일한 유업으로 영원히 왕 노릇하게 될 것이다. 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주의 이름으로 다시 오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여!
1. 거룩한 성 예루살렘
내가 어릴 때 자주 부르던 성가가 있었다. 난 인천 송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때 YMCA 활동을 했었고, 6년 동안 학교 예배 사회와 기도 그리고 많은 순서를 도맡다시피 했다. 점심 시간에는 전도지를 돌리며 열심히 전도한 기억이 새롭다. 그래서 별명도 ‘김목사’였다. 감리교 목사님이시던 교목 김 경덕 목사님은 인천 장로 합창단을 구성해 전국을 다시시면 찬양 집회를 인도하셨다. 김 경덕 목사님은 깔끔하고 맑은 고음으로 “거룩한 성” 이라는 성가를 자주 부르셨다. 음치에 가까운 나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없었으나 늘 마음으로는 목청을 높여 따라 부르기도 하였다. 난 그래서 찬양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분들을 참으로 부러워한다. 이번에 함께 하신 낙원 장로 교회 황영진 목사님은 모교의 선배 목사님이 되신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말씀을 나누다가 김경덕 목사님에 대한 추억을 나누었다. 조금 곁길로 간 것 같지만 이번에 많은 분들이 대화를 나누다가 학교에 선후배 되는 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워 한 일들이 참 많았다. 우리 일행이 Via Dolorosa 와 통곡의 벽, 그리고 다시 다마스커스 문을 빠져 나와 예루살렘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바라볼 때, 예루살렘의 모습을 한마다로 표현하면 ‘아름답다’는 것이다. 도시를 놓고 난 ‘아름답다’고 느낀 곳은 많지 않았다. 예를 들면 뉴욕을 보고 ‘복잡하다’는 느낌이, LA를 보고는 도시가 ‘편편하게 퍼져있다’는 느낌이, 런던을 보고는 ‘고풍스럽다’고, 그리고 파리를 보고는 ‘운치가 있다’는 표현은 써도 ‘아! 아름답다’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았다. 예루살렘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성경의 표현은 달랐다. 예루살렘은 ‘거룩하다’는 것이다. 김경덕 교목 목사님이 지금 이 자리에 서서 거룩한 성을 부를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사실 상황이 되었다면 함께 하신 분들 중에 한 분이 ‘거룩한 성을 불렀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지영훈 목사님이 자리를 함께 했으면 분명이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청아한 테너의 고음으로 ‘거룩한 성’을 들었을 것이다. 아 그리고 이번에 오신 분들 중에 서울대 음대 출신들이 여러분 계셨는데 그분들께 부탁 드리는 것인데, 아 이 일을 어찌하랴, 기차는 떠나고, 비행기는 착륙했고, 순례객들은 집에 다 돌아 갔으니 누가 그 아름다운 ‘거룩한 성’을 들으리? 애통하도다!
거룩한 성
나 어젯밤에 잘 때 한 꿈을 꾸었네
그 옛날 예루살렘 성에 곁에 섰더니
허다한 아이들이 그 묘한 소리로
주 찬미하는 소리 참 청아하도다
천군과 천사들이 화답함과 같이
예루살렘 예루살렘 그 거룩한 성아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부르자
그 꿈이 다시 변하여 그 길은 고요코
호산나 찬미소리 들리지 않는다.
햇빛은 아주 어둡고 그 광경 참담해
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때의 일이라
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때의 일이라
예루살렘 예루살렘 그 거룩한 성아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부르자
그 꿈이 다시 변하여 이세상 다가고
그 땅을 내가 보니 저 유리바다와
그 후에 환한 영광이 다 창에 비치니
그 성에 들어가는자 참 영광이로다
낮이나 밤이 없으니 그 영광 뿐이라
그 영광 예루살렘성 영원한 곳이라
그 영광 예루살렘성 참 빛난 곳일세
예루살렘 예루살렘 그 거룩한 성아
호산나 노래하자 호산나 부르자
호산나 노래하자 호산나 호산나
Last night I lay a-sleeping
There came a dream so fair,
I stood in old Jerusalem
Beside the temple there.
I heard the children singing,
And ever as they sang
Me thought the voice of angels
From heaven in answer rang,
Me thought the voice of angels
From heaven in answer rang.
Jerusalem! Jerusalem!
Lift up your gates and sing,
Hosanna in the highest!
Hosanna to your King!
And then me thought my dream was changed,
The streets no longer rang.
Hushed were the glad Hosannas
The little children sang.
The sun grew dark with mystery,
The morn was cold and chill,
As the shadow of a cross arose
Upon a lonely hill,
As the shadow of a cross arose
Upon a lonely hill.
Jerusalem! Jerusalem!
Hark! How the angels sing,
Hosanna in the highest!
Hosanna to your King!
And once again the scene was changed,
New earth there seemed to be.
I saw the Holy City
Beside the tideless sea.
The light of God was on its streets,
The gates were open wide,
And all who would might enter,
And no one was denied.
No need of moon or stars by night,
Or sun to shine by day;
It was the new Jerusalem
That would not pass away,
It was the new Jerusalem
That would not pass away.
Jerusalem! Jerusalem!
Sing for the night is o'er!
Hosanna in the highest!
Hosanna forevermore!
거룩한 성을 듣기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성가 듣기 link를 아래에 첨부했다. 음질이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첫 번째 노래는 아주 오래 된 것이다. 1929년 테너 가수 안기영이 부른 것이다. 첫 번째 링크를 클릭하고 1번 안기영 거룩한 성을 눌러야 노래가 나온다. 두 번째는 최근의 것으로 소프라노 황지연의 성가이다.
테너 가수 안기영의 거룩한 성
<http://www.gayo114.com/musicbox/musicSearch.asp?sn=1267#mu_search>
http://www.gayo114.com/musicbox/musicSearch.asp?sn=1267#mu_search
소프라노 황지연의 동영상(여의도 순복음 교회)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ATGZ&articleno=12608796&cate
goryId=236593#ajax_history_0>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ATGZ&articleno=12608796&cat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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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통로,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세계 3대 종교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와 그리고 이슬람이다.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과 모세와 선지자들의 언약을 믿는다. 세 종교 예루살렘 특히 성전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분명히 다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부분이다. 여전히 유대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중 하나로만 인정하고 있으나 그가 메시아임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이런 근원적인 차이가 있음이 전세계의 역사를 가르는 격랑의 소용돌이로 몰아 넣었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은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 당한 뒤 2000년을 유리 방황하였다.
아브라함을 통해 한 민족을 이루시고, 그 민족을 통해 열방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발 앞에 무릎 꿇게 되시기를 원하신다. 그가 오리라 한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고 혈통적 관계에서만 민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는 편협한 이스라엘은 열방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도리어 저들은 주변의 이방 신들에게 절하고,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짐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북 왕국 이스라엘은 나라 자체가 송두리채 뽑혀서 사라져 버리고, 남 왕국 유다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갔으나 오직 남은 자 만이 돌아 올 수 있었다. 남은 자를 통해 메시야의 도래를 준비시켰지만 여전히 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은 오신 메시야를 십자가의 못박음으로 예루살렘은 훼파 되고 ‘오리라’한 메시야가 다시 오시기까지 이방인의 수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은 나라 없는 민족으로 방황하였다. 이제 지구 역사상 우리는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는 광경을 목도하는 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 예루살렘의 회복, 메시야의 도래, 열방의 구원이 목전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번 여정에서 이러한 역사를 돌아 보기에 충분한 행진을 했으며, 우리의 기도도 이러한 주의 역사를 준비하기 위해 부르짖는 간구로 그의 뜻을 구한 것이리라 믿는다.
이스라엘의 회복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 땅의 어떤 민족도 갖지 못하는 은총을 주셨다. 그것은 ‘율법,’
‘제사,’ ‘성막’, 그리고 ‘절기’이다. 이 모든 축복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이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을 통해 메시야가 유대인의 왕으로 이 땅에 오사 이스라엘과 맺은 모든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점이다. (골 1:27) 이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통로는 이스라엘이요, 그가 십자가의 대속 사역을 담당하신 곳도 예루살렘이며, 그가 다시 오시는 곳도 예루살렘이 된다. 그러므로 메시야의 오심은 초림과 재림으로 나뉘어지며, 당연히 언약의 성취도 초림과 재림으로 나뉘어 진다. 율법의 초림시의 성취와 재림시의 성취가 따로 있다. 제사에 있어서도 속죄적 사역의 초림과 중보적 사역의 재림 부분이 있다. 초림은 친히 성전되사 오신 주 예수님을 말씀한다면, 재림은 이 땅에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통치하시는 주님을 예표한다. 유월절부터, 초실절, 칠칠절, 오순절이 초림에 관계된다면, 나팔절, 장막절, 속죄일은 재림과 관계가 된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회복하심으로 초림으로 구원의 문을 여시고, 재림으로 구원의 완성을 이루신다. 이를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열방의 구원
언약은 이스라엘과 맺지만 언약의 유효성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된다. 이를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밖에 있는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무한한 하나님의 언약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언약하신 모든 약속을 이방인이 조금도 차별 없이 동일하게 받게 된다. (엡3:6)
예루살렘의 회복
메시야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를 배척한 이스라엘은 혹독한 고난의 시간을 갖게 된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돌아 올 것은 구원이 시온에서 나옴이요 만방이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시인함이 열방 뿐 아니라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일어남으로 그에게 영광과 존귀가 있게 하기위함이다. 이때 감람나무 원 뿌리가 접붙임 받은 열방도 축복을 주지만, 자신도 축복을 받게 되듯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을 돌이키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로마서 11:26 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게 되면, 이스라엘도 시기케 되고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바울도 말하기를 “이 비밀을 모르기를 원치” 않음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 전시장이 되어버린 예루살렘이 진정한 메시야를 받아 드리기까지 혼동과 분쟁과 영적 전쟁을 계속 일어날 것이나 진정 그리스도 예수가 주 되시고 이스라엘과 이방의 구원 되심을 선포할 날이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이번 유대광야중보기도 성회를 개최하였고, 완악한 이스라엘이 주께 돌아 오기를 위해 기도하고, 주변의 무슬림과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나라와 민족과 언어와 족속들을 위해 기도한 것이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의 회복과 열방의 구원 그리고 통치하시러 오시는 주님을 맞을 역사가 온 땅에 특히 예루살렘에 임하도록 기도하기를 원한다.
3. 예루살렘 입성까지
우리가 걸어 왔던 경로는 출애굽으로부터, 시내 반도, 그리고 가나안 입성,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과 남 왕국 유다 왕국의 과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 죽으심을 보여주는 한편의 파노라마 같은 것이다.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이스라엘의 회복’ 과 ‘열방의 구원’을 기도해야 하는 당위성을 앞에 두고 있다. 다음 아래의 지도를 보면 우리가 다녀 온 길들을 통해 이스라엘 전 역사의 흐름을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큰 민족인 이스라엘을 이루시고, 그 이스라엘을 이집트를 나올 때에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 “율법”과 “제사”와 “성막”과 “절기”를 주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을 구원하시는 제사장 국가 삼으사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을 통해 메시야의 오심을 알게 하셨다. 선지자들은 누누이 오시리라 한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설파하였고, 이스라엘은 열방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통로이자 시계침이었다. 아래의 사진은 선명하지는 않지만 Atlas of the Bible 이라는 Carta 출판사에 나온 자료를 scan 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Kadesh- barnea)를 거처, 에돔과 모압(지금의 요르단)을 지나, 요단강을 건너는 모습이 붉은 선으로 그려져 있다. 요단 동편에는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가 정착하고, 요단 서편에는 나머지 지파가 정착하는 광경을 붉은 선으로 표시하였고, 노란 부분을 제외한 붉은 지역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했던 지역들이다. 우리는 거의 이 모든 지역을 다녀 왔다. 사해 근처의 여리고부터 시작해서 지도의 제일 윗 부분에 위치한 단 지파의 땅까지 갈릴리 좌측의 납달리 지파의 땅도 다녀 왔다. 스블론과 잇사갈 지파의 땅 사이에 보이는 므깃도(Megiddo)가 지중해 가까운 지역에 작은 원형처럼 보인다. 그 지역 뿐 아니라 갈멜산, 이스르엘 평야까지, 신약 시대를 보여주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지중해 가이사랴까지 그리고 예루살렘에 들어 가기까지 아주 중요한 지역을 한번 돌아 보게 되었다. 아래 보이는 지도에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뿐 아니라 우측 하단에 출애굽 경로를 간단하게 보여 준다.
이제 아래의 사진은 예수님의 사역을 잘 말해 주는 지도이다. 그가 자란 곳인 나사렛에서 가나를 거쳐 가버나움으로, 그곳에서 멀리 두로와 시돈을 다녀 오시고,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듣게 되신 곳이다. 우리가 다녔던 요단 강으로부터 시작하여 가나와 갈릴리 전역과 특히 가버나움과 디베랴(우리가 묶었던 호텔)와 유대 광야,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전 지역을 우리는 다니며 기도한 것이다.
특별히 갈릴리 지역만을 상세히 말하면 아래의 지도에 잘 나와 있다. Carta 출판사에서 나온 Anson F. Rainey and R.
Steven Notley 가 쓴 The Sacred Bridge 라는 책 354 페이지 나온다. 매우 중요한 주님의 사역의 근거지는
가버나움으로 나온다.
아래의 사진은 선명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다섯 개의 선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의 탄생과 애굽으로의 도피에서 나사렛까지는 엷은 분홍색 선으로, 세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계심 까지는 붉은 선으로, 갈릴리 바다에서 가이사랴 빌립보까지 연한 회색 선으로, 두로와 시돈까지 다니신 것은 아주 연한 연두색 선으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장면은 파랑색 선으로 나타냈다. 이 작은 지도를 통해 우리가 다닌 경로가 더욱 분명해 지고 신구약 성경의 모든 지명과 지역을 좀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4. 예루살렘의 역사적 중요성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방황했으나 끝까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으시다. 성경의 이사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스가랴와 호세야는 이스라엘이 주께로 돌아 올 것을 예언하였다. 그 키는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이며 또한 예루살렘의 회복이다. 이 놀라운 사건이 우리 시대에 일어났다. 1948년 5월 14일의 이스라엘 건국 사건'은 구약 예언의 성취적 사건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1967년 6일 전쟁의 승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의 구체적 성취 사건이다. 이는 예루살렘이 구체적으로 회복되어 전 이스라엘과 열방을 구원하시는 추수 사역이 시작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스라엘의 전인구가 가운데 80%가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유대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30% 불과하다. 러시아 유대인과 세속화된 유대인 선교에 이처럼 황금기회가 없다. 이슬람 3대 성지의 하나가 예루살렘인 것은 마호메트가 알라의 계시를 받고 승천했다고 믿는 황금돔 사원이 솔로몬 성전 터에 세워졌다. 이슬람의 허구성과 거짓됨을 말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심을 증거할 기회를 이스라엘에게 허락해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 전 인구 가운데 아랍계가 14%에 달하는 것은 전 중동 이슬람 선교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기회를 줄 것이다.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 기도하고 이스라엘을 돌이킬 수 있는 3% 남짓한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회복과 열방의 구원 사역에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유대인이 주께 돌아 올수 있는 지구촌 최대의 기회가 이스라엘 땅에 들어 오고 있다. 이스라엘 전 인구에 거의 육박하는 순례자들이 이 나라를 찾고 있다.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이 땅에 오는 많은 순례객들이 이 땅을 밟으면서 우리처럼, “유대광야 중보 기도 성회”와 같은 기도의 역사를 감당하면서 먼저 어두운 영적 세력들이 무너지고 비로서 유대인에게, 아랍인에게 마음을 열고 주의 복음을 받을 황금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이중에서도 유대인들을 주께로 돌이키고자 하심은 주님의 깊은 섭리가 있다.
이스라엘을 통해 거짓된 신들과 우상 숭배의 허구성을 들어내시고자 했던 것처럼 구약의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다시 세워 주심으로 열방 가운데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고자 하심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나타내신 것보다 재림 시에 이스라엘을 통해 그가 더 큰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모는 민족과 족속과 나라와 언어를 친히 통치하러 오시기 때문이다. 2000년 십자가에 달리실 때 팻말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선명한 문구가 이제는 만왕의 왕이신 영광스러운 통치자가 되사 예루살렘으로 오실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영원토록 세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해 모든 사람 모든 민족에게 그리스도 복음이 증거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에베소서 1:910 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게 하셨으니...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나 자신 안에 있는 것들까지도,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함께 모으려는 것이니라. (엡 1:9-10)
사도 요한이 말한 바와 같이 새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함 같이 내려올 것이다.
나 요한은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같이 예비되었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그 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그 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계 21:2-3)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모든 것 특히 고토 즉 옛땅을 구속하시고 회복하시고 한다.(행 3:21, 홈 8:21)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통치하실 것이다. 다니엘은 말하기를
...하늘의 하나님께서 결코 멸망하지 않는 한 왕국을 세우시리니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넘겨지지 않을 것이요,
도리어 그 왕국이 이 모든 왕국들을 쳐부수고 멸하여 영원히 설 것이니이다. (단 2:44)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사 이 땅을 다스리게 된다. 그가 그런데 다위의 보좌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하신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의 정부와 화평의 증가함이 다윗의 보좌와 그의 왕국 위에 바르게 세워지고,
지금부터 영원까지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는 데 끝이 없으리라.
만군의 주의 열성이 이것을 실행하시리라. (사 9:7)
그는 위대하게 될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리울 것이요,
또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며
그는 야곱의 집안을 영원히 통치할 것이요 그의 왕국은 무궁하리라고 하니라. (눅 1:32-33)
그때에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의 보좌라 부를 것이며,
주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이 그곳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며, 사
람들은 더이상 그들의 악한 마음의 생각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리라. (렘 3:17)
주께서는 온 땅을 치리할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한 분 주께서 계실 것이며 그의 이름 하나만 있으리라. (슥 14:9)
우리가 다닌 이 길은 구원을 시작하신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모습까지 볼 수 있었던 곳들이다. 전기한 바와 같이 예루살렘은 종교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3대 종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성지가 다 예루살렘에 있다. 특히 예루살렘에는 기독교의 3대 성지가 있다.
성묘 교회, 비아 돌로로사, 그리고 만국교회이다. 우리는 이번 “유대 광야 중보 기도 성회”에서 이 세 곳을 다 다니면서 기도하고
순례하였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3대 성지가 모두 예루살렘에 있는데 이는 “성전산,” “통곡의 벽,” “겟세마네”인데 우리가 다
가보게 되었다. 성전산은 통곡의 벽에서 바라보기만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룰 수 없는 방문의 은총을 받았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것을 다니며 기도했다. 헤롯 당시의 성벽이 그대 남아 있는 통곡의 벽을 다녀왔다. 이른바 서쪽 성벽이라 하는 ‘통곡의 벽’으로 이는 유대인 최대의 성지이다. 그리고 바로 건너편 성전산에 솔로몬의 성전 지성소 자리, 이삭을 드리고자 했던 모리아 제간 위에 “황금돔 사원”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다. 출애굽에서 시내 광야로, 네게브에서, 여리고로, 그리고 갈릴리로, 이제는 예루살렘에서 온 민족을 구원하실 새로운 역사를 고대하며 기도할 중보 기도자들을 주님이 부르신다.
5. 예수님의 십자가 행로
이제 우리가 다룰 부분은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이시다. 인류 전체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성취된 놀라운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다. 아래의 지도는 The Sacred Bridge 364 페이지에 나오는 부분이다. 전체 448쪽에 달하는 이 책은
간결하면서도 아주 정확하게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의 사역을 말해 준다.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신 장면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야바의 관저에 가신 장면이 기드론 골짜기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일행이 전망대에서 예루살렘 전경을 다 내려다 볼 때 선명하게 보인 곳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이다. 예수님은 거기서 예루살렘 성 안의 가야바의 집에 들어 가시고, 성전으로 그곳에 있는 대제사장 앞에 서셨다. 그리고 본디오 빌라오 법정에 서시고 골고다로 오르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대속하셨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이 아래의 지도를 보면서도 절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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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유월절에 성만찬을 제정하시고 그 피와 살로 우리에게 새언약을 주신 마가의 다락방에서부터, 기드론 시내가의 겟세마네 동산까지 그리고 가야바의 뜰로 끌려 가신 모습이 선명하게 나온다. 예수님은 공회원들 앞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빌라도 총독에게 끌려가서 심한 문초를 겪으신다. 그리고 헤롯 안디바에 심문과 힐난을 받으신다. 그는 다시 빌라도의 법정에 서서 십자가의 사형 언도를 받으신다. 그리고 채찍을 맞으시고 모진 고초를 받으셨다. 그리고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금요일 오전 9시 경에 십자가에 달리게 된다. 그 후로 6시간이 지나 그는 운명하신다. 그날 오후 3시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시간에 운명하신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선명하게 예루살렘 성전 뒤편에 있는 안토니아 요새 즉 빌라도에게 선고 받으신 곳이 보인다.
http://www.kccs.pe.kr/map-temple.gif
바로 그 안토니아 요새는 가이사랴에 주둔해 있던 총독이 소요 방지를 위해 절기 때마다 올라와서 업무를 보던 곳이다. 당시 총독이던 빌라도가 이러한 연유로 유월절때 예루살렘에 올라 온 것이다. 로마군은 상시 이곳에 주둔해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소요를 대비한 곳이기도 하다. Court of the Gentiles 라고 써 있는 곳이 이방인들도 들어 갈 수 있는 뜰이다. 하지만 성전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 만이 들어 가는 문이 미문이다. 미문은 성년식을 마친 13세 이상의 유대인만이 들어 갈 수 잇다. 이 문을
Nicanor 문이라고 부른다. 아래의 사진은 가이사랴에서 발견된 빌라도의 글이 새겨져 있는 돌이다. 빌라도가 로마 황제에게 보내는 글도 발견되어 자신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글귀가 그 안에 있다. 지면상 그 부분을 다루고자 함이 아니기에 여기까지 언급하고자 한다.
본디오 빌라도의 글이 새긴 돌
본디오 빌라도의 글 Anson F. Rainey and R. Steven Notley, The Sacred Bridge, p 366
6. 예루살렘의 문들
예루살렘에는 모두 8개의 문이 있다. 이중 우리가 들어 간 문은 다마스커스(다메섹) 문이다. 아침에 Via Dolorosa 를 보어 들어
갔던 문이다. 총 8개의 문은 다마스커스의 문을 비롯해, 욥바 문, 헤롯문, 사자의 문, 시온의 문, 황금 문, 오물 문,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열린 새 문이 있다. 1887년에 세워진 새문을 빼면 original 은 7개의 문이다. 동예루살렘은 구도시이며 여기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출입구 역할을 하는 문들을 열어 논 것이다. 현재 볼 수 있는 성벽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슐레이만 대제가 과거의 성터를 복원하여 재건한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을 견고한 요새로 만들기 위해 1537년부터 1542년까지, 5년에 걸쳐 성벽을 완성했다. 예루살렘 성벽 둘레의 길이는 약 4.018km이다. 성벽을 따라 8개의 성문과 성 위에 34개의 탑과 24개의 망루가 있다. 성문중 욥바문, 다메섹문, 시온문은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나머지는 보수되거나 새로 만든 것들이다. 아래에는 8개의 문을 제목 별로 구분해 놓았다.
1. 욥바문(Jaffa Gate): 다윗의 문, 아브라함의 문, 헤브론 문
2. 시온문(Zion Gate): 다윗의 문
3. 오물문(Dung Gate): 배설물을 버리러 오고 가는 문
4. 스테반문(Stephen‘s Gate): 양의 문, 여호사밧 문, 사자 성문
5. 다메섹문(Damascus Gate): 세겜문
6. 헤롯 문(초소의 문): 꽃문
7. 새문 (New Gate)
8. 황금문(Golden Gate): 동문, 회개의문, 자비의문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들어 간 문은 하스모니안 황제에 의해 세워진 다마스커스 문이다. 황금 문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문으로 오신다고 해서 문을 아예 돌을 넣어 막아 버렸다. 우리 주님은 벽을 막 뚫고 다니시는데…. 겉에서 보아도 예루살렘의 성벽은 참으로 아름답다. 다윗 시대에, 솔로몬 시대에, 그리고 느헤미야와 헤롯 왕에 이르기까지 점차적으로 예루살렘 도시를 건설하면서 세워진 성벽은 열방이 부러워하는 거룩한 산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자료 정리를 위해 구입한 예루살렘 성벽의 역사에 관한 것들을 보면서 새삼 예루살렘 성의 아름다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성전이 함께 있었던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오죽했으면 갈릴리 사람으로서는 볼 수 없는 크고 웅장한 성전을 보고 제자들이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을까? 제사장들이 예수님 앞에서 그 성전을 보고 얼마나 자랑했던가? 하지만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그리하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세우리라”는 말씀으로 자신이 친히 성전 되심을 말씀하신다. 내가 누누이 말하고자 하는 Temple Prayer 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보 기도를 통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추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바로 아래에 올린 그림은 솔로몬 성전 당시를 보여 주는 모습이다. D. Bahat 와 S. Sabah 가 공저한 Jerusalem Stone and Spirit: History and Art of the Eternal City 라는 책인데 예루살렘에 관한 진귀한 자료들이 보물 쌓아 놓듯 가득하다. 독서 삼매경에 빠지면 세월 가는 줄 모르겠지만 요즈음은 시력만 나빠져서 문제가 된다. 그 책의 33 페이지에 나오는 한 장면을 scan 하였다.
위의 아름다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과연 하나님의 도성이다.
그 아름다운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 왕의 군대에 포위되어 함락되는 장면이 아래에 나온다. 상기 같은 책 44페이지에 나오는 것인데 예루살렘 전체 면적보다 서너 배에 달하는 군대가 에워싸서 멸망시키는 장면이 선명하게 나와 있어서 꼭 소개해 주고 싶어서이다. AD 70년에 예수님의 예언처럼 디도 장군에 의해 멸망 받는 모습은 이보다 더 처참한 모습이었다.
아래의 사진은 David Park 목사님이 전망대에 찍은 현 예루살렘의 모습이다. (용량을 줄이기 위해 화상도를 많이 줄였습니다.)
<xxxxjavascript:wiki_img_view_v2('8637280',%20'7643317')>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그리고 아래에 보이는 사진이 만약 솔로몬의 성전이 이슬람 황금돔사원을 치워 버리고 세워질 것을 가상했을 때 나온 사진이다.
위의 사진은 “Israel Then and Now” 라는 책의 13 페이지에서 Scan 한 것이다.
아래 사진은 예루살렘 황금 문을 닫은 것을 그린 삽화이다. 전망대에서 볼 때 뚜렷하게 문을 닫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Golden Gate, Dan Bahat and Chaim T. Rubinstein, The Illustrated Atlas of Jerusalem, p79.
이미 보내 드린 Via Dolorosa 에 관한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뉘어 Via Dolorosa 를 가기 전
다마스커스(다메섹)문을 지나 잠시 구 이스라엘 시가지를 지나가게 된다. 다메섹에서 Via Dolorosa 로 가는 길은 지금도 아랍지역에 속하는 곳이다.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아랍인들을 마주친다. 쓰레기 소거 차량을 경운기 소리 내듯 운전하면 지나가는 사람, 수레를 끌며 가는 평범한 아랍인들을 자주 마주친다. 아랍인을 일상적으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내가 지금 예루살렘의 중심에 와 있다는 느낌이었다. 동예루살렘 시는 6일 전쟁 이후 얻게 된 유대인 지역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유대인 회당과 학교가 몰려 있는 유대인 지역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성전산을 중심으로 한 모스크 일대는 여전히 아랍 지구이다. 안내해 주시는 박 목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아랍 지역에 있는 집이나 건물을 하나 하나 구입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팔려는 아랍인은 많지 않은가 보다! 그리고 캐톨릭 신자들이 거주하는 지역, 아르메니안 정교도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누어 있다고 한다. 이 성안에만 거하는 인구는 약 2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찬양과 기도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무척 자유롭다. 이는 이스라엘 정부에서 제정한 성지보호법 때문이다. 1967년에 공표된 성지 보호법(Protection of Holy Places Law)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성지들은 보호를 받는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나 신성한 장소로 알려진 곳에 그 회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이를 방해하는 어떤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7.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일들
이곳 예루살렘까지 오게 된 이유를 성경을 통해 상고하며 기도할 제목을 나누기를 원한다.
이사야 62장 6-7에 다음과 같이 주님은 말씀하신다.
오 예루살렘아, 내가 네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웠고
그들로 밤이나 낮이나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주를 말하는 너희는 잠잠하지 말며 또 그가 예루살렘을 세워
그것으로 땅에서 찬양이 되게 하시기 전에는 그로 쉬지도 못하게 하라.
이방인은 원뿌리인 감람나무 이스라엘에게 접붙임을 받아 그 수액으로 열매를 맺는다. 이제는 이방인이 이스라엘이 돌아 오도록 기도해야 한다.
(롬 11:16-24)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로마서 1장 1-2절에 다음과 같이 설파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시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주님은 시온을 위해 질투하신다고 말한다. 슥 1:14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여기에 이번 유대 광야 중보 기도 성회를 통해 누누이 말하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깊은 뜻이 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변개치 않으신다.
2. 예수님은 새언약을 세우신다. 그렇다고 옛 언약을 폐기 처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율법의 일점일획이라고 다 성취하신다.
히브리서 8장 13절에 보면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다시 말하면 나이가 들어가면 몸은 쇠약해진다. 하지만 죽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깊은 지혜가 있다. 옛언약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새 언약을 깊게 한다. 옛 언약을 알면 알수록 더욱 그러하다. ‘율법’과 ‘제사’와 ‘절기’와 ‘성막’을 보면 더 볼수록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루살렘의 구원이 더 보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기에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맺은 새 언약이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온 열방에게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에스겔 36장 22-23 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에 말하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오 이스라엘 집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간 이방 가운데서 너희가 더럽혔던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니라.
나는 이방 가운데서 더럽혀진, 즉 너희가 그들 가운데서 더럽힌
나의 위대한 이름을 거룩하게 하리니,
내가 그들의 눈 앞, 너희 안에서 거룩하게 될 때에
이방은 내가 주인 줄 알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3. 이럼으로 이스라엘에게 구원이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는 날 온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이사야 11:9절에 이렇게 말한다.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
4.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아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들어나게 된다. 만약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지 않으면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라고 끊임없이 속이려 할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보여 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5. 바울도 근심하여 이스라엘과 열방을 구원하기 위한 기도를 간절히 드렸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노니,
나의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를 증거함이라.
내 마음에는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슬픔이 있노라.
육신에 따른 내 형제들,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랐노라.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조상이며
육신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영원히 송축 받으실 하나님이시라. 아멘. (롬 9:1-5)
6. 지치지 말고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말세에 이스라엘 민족은 영토적으로 회복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회복되어 예수님을 인정하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26장 2절에 말한다.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서 진리를 지키는 의로운 민족이 들어오게 하라.
예레미야 31장 33~34절에 말한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그 날들 이후에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다시는 그들이 각각 자기 이웃이나 자기 형제를 가르쳐 말하기를, 너는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의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나를 알 것임이요, 또 내가 그들의 불법을 용서하고 다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
에스겔 11장 19~20에 말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한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그들의 육신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같이 연한 마음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내 법규 안에서 걷게 하고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제 나는 영광스러운 그날을 위해 이땅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합심하여 스가랴 12장 10절의 기도를 드리기를 원한다.
또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민들 위에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리라.
그러면 그들은 그들이 찔렀던 나를 쳐다볼 것이며, 그들이 그를 위하여 애통하리니,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통함같이 할 것이요,
그들이 그를 위하여 비통에 잠기리니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첫 아들을 위하여 비통에 잠기듯 하리라.
우리가 관광을 다녔다면 나는 손가락이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 이 글을 써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 수많은 여행 중 하나가 될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도처럼 밀치는 인파가 몰리는 곳에 나도 덩달아 휩쓸리는 그런 단순한 성지 순례를 했다면 난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구경하고, 많은 사람 만나고 맛있는 음식 먹기 위해서라면 난 아예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경 구구절절 이스라엘을 택하사 열방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이제 ‘이스라엘도 구원하고 열방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로 하여금 그 땅을 밟으며, 얼마나 아버지께서 그 땅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보여 주시기를 원하기에 이번 유대광야 중보 기도 성회를 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강력한 영적 진영을 앞두고 있다. 그들은 결코 쉬운 상대하기 쉽지않다. 유대인 가운데 많은 이들은 예수님을 못박은 사람들이요 그 결과로 2000년 동안 유리 방황하면서도 눈 하나 끄덕이지 않고 여전히 메시야이신 예수를 부인하는 대단한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쉽게 돌아 오겠는가? 이슬람은 어떠한가? 그들의 근본 사역은 기독교 진리 자체를 부인한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이제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강력한 영적 배후 세력과 견고한 진을 무너트리기 위한 진실한 중보 기도자들의 기도가 필요한 때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때를 위해 우리를 예루살렘으로 부르셨다.
오 예루살렘!
문명의 정기 내려 주고
온 나라 사모하는
기름지고 풍만하게 웃죽웃죽 솟은 언덕
청어름 노래 성소에서
제사 제물 번제단에
늦은비 앙근 소제 향기
수릇한 산들바람 열방 퍼날리고
흑암 비친 미노라의 등불로
어두움 밝히는 햇빛 오라기 내고
쉐키나의 임재 지성소로
그의 영광 기억하는 절기 속으로
영원을 약속하는 율법의 강령으로
온갖 수초 화원도 하롱하롱
만방 나라 관심 끄는 구원의 목소리로
열방의 중심에는 넘치는
새노래 풍악소리 청사초롱 걸어
춤을 추며 목청 높인 성전의 터울 속에
만인이 외치는 소리 거룩한 성
오 예루살렘아!
하늘 찌르듯
온갖 무예 출중한 장군들도
모든 신들에 시름시름 임금들도
수학과 기하학과 학문에 싫증 느낀 학자들도
별들과 우주를 관찰한 현자들도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하늘의 비밀
땅의 보화가 밀물처럼 넘쳐나는
단 하나의 도성 가기 사모하듯
발걸음 미치도록 유혹하는 아름다운 성
오 예루살렘
무엇이 그대를 그토록 아름답고
고운 자태와 우아한 몸매 자랑토록
그 무슨 매력 그리 많아
땅끝이라도 달려오고
하늘 끝이라도 내려 오고
땅 속이라도 기어 나오도록
누런 사막의 광풍 헤집고도
아청바다 지중해의 격랑 여울쳐도
아프리카 횡단하는 험로라도
생명마다 않고
해뜨는 동쪽 땅끝나라에서도
그대 품으로 달려 오는가
오 예루살렘!
휘황찬란 대로변에
개울길과 마르지 않는 샘물 들러
하늘 위에 수로 내어
구름턱마루 걸쳐내고
메소포타미아의 천상 공원이라도
나일 강 델타의 비옥함이라도
지중해의 온갖 보화 다 못 모아도
사막에 감춘 보배 다 소유해도
숨 멎도록 아리따운 처녀 되어
사무침과 사모함이 대양을 덮어도
애리고 그리워한 북두칠성 가리도록
사람의 애간장 도려내는
아름다운 여인이여
오 예루살렘
너의 기인 머리
여부스 산당 덮고
초롱한 치맛자락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 흘려 보내도
총총거릴 천지 기운 돋고
너의 가는 허리
유대 산맥 칭칭 감아
온 대지 위에 두르고 둘러도
그 자태 한번 보면
영혼까지 빼앗기나니
마알간 생수에
투명한 샘물 같은 눈빛 보면
세상 모든 사내 상사병에 몸서리칠
아름답고 곱기만 한 천지의 애인
오 예루살렘
너의 몸은 거룩하여
하늘 보좌 맞닿고
가늘게 딴 머리 옥좌에 핀 사닥다리
땅의 거민들도 올라가는 비밀의 하늘 계단
온 땅의 도성들도 사모하는 천상 도성이니
땅끝이라도 머언 바다 건너편이라도
존귀하고 보배로운 것 다 버려두고
수금과 비파 소리 들으며
하늘 길 열어 주고
물하늘의 보화 모으는 그대 품
아리땁고 순결한 처녀
오 예루살렘
그토록 고결하고 자애로운 아름다움
높고 깊은 정조 어디 갔노
온 땅 덮는 지아비 사랑 저버리고
몸달란 여인처럼
수치 모르고 더럽혀진 여인의 몸
이 사내 저 사내에
맡겨도 부끄럽지 않아
눈 멀고 귀멀어
내려오신 한 분 신랑
피 튕겨 수치 주며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해찰난 여인으로
지아비 피눈물 주는 여인이여
오 예루살렘
버림받은 그 비참함
눈 뽑히고
살갗 벗기고
벌거벗긴 수치와 치욕
2000년을 다하여도
맞이하는 사내 하나 없어
어찌 그대 후손까지
집오래 칠 수 없는 고아처럼
징글맞은 사생아로
밉쌀배기 사산아로
이리 찢기고 저리 죽음 당해
부정한 자녀라고 작신 맞고
모진 고문 욕설과 능멸로 지근거리고
수치로 범벅된 치욕의 이름으로
땅거죽도 밀어치는 떠돌이별 되어
빌어 먹던 아스란 여인이여
오 예루살렘
신랑 저버린 가련함이여
뒤틀리고 비틀어진 속썩은 떨군 꽃잎이여
속주름 그리 태워
피멍든 가슴 그리 태웠나
쑤성한 여인이여
변함없는 지아비 품으로
한이 없고 따뜻하고
천년 넘는 그의 사랑
바다를 덮고
사막에 꽃 피우고
광야에 수풀이루어
영광의 꽃가루 눈싸래기 날리는 날
희고 희인 순결한 면사포로
수치도 덮어주고
슬픔도 씻겨주고
또 다시 열방 불러
축하연을 베풀리니
오 거룩한 여인이여
어서 오라 어린양 보좌로
신랑의 거룩한 품으로
시온은 너의 신방
헤브론은 너의 처소
온 땅의 모든 민족
눈물 씻길 그 날로
영광과 존귀와 희락의 관 씌울
그날 속히 오게
달뜬 신부 청초함으로 오라
오 예루살렘
한번 씻은 거룩한 보혈
먹장가슴 눈물 없는 그곳으로
시온은 영광의 보좌
영원히 다스릴 만국의 중심이나니
온 나라와 족속과 민족과 언어들과
환호하며 소리칠
혼인 예식의 도성으로
찬양하며 소고치며
춤을 추며 기뻐할 그 날 보게
오 거룩한 여인되어 돌아 오라
단장한 신부되어 돌아 오라
오 거룩한 성 예루살렘
작고 작은 자 김 종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