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이튿날 주말을 여든 아홉번째 어머니 생신일로 잡고 형제 가족들이 내 집에 모이게 됬습니다.
해마다 12월 하순 어느 토요일에 맞는 이 날은 어여쁘게 물든 가을 단풍 같이 곱게 늙어가는 우리 아홉 남매와 조카들과 그들의 어린 아기들이 자리를 함께하는 우리 동기들만의 시한부 명절입니다.
어머니가 5년전부터 거처를 함께하는 형님댁은 모이기가 너무 좁습니다.
또한 어머니가 12년 가량 내 집에 계시며 손자 손녀를 날 때부터 길러 주시고, 어머니라는 말만 해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며느리만 아니라면 가장 마음 편하고 아무 허물없이 사랑하고 사랑 받으실 이 못난 자식의 집을 늘 그리워하시는지라 내 집에서 생신 잔치를 하기로 하고 미리 이틀을 앞당겨 성탄절 하루 전날 저녁에 모시고 왔습니다.
한 5년전부터 팔 다리와 엉치에 골절을 여러번 겪으며 육신이 다 망가져 이제는 침상에서만 온종일을 지내고 기저귀 하나도 혼자서는 바꾸지 못할 만큼 누구의 손길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아기같이 되버렸습니다. 늙음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가이없는지요.
예전에 주무시던, 이제는 중학생 손녀의 방에 몸을 눞히신 어머니가 도움이 필요해서 부르셔도 알아듣지 못할 나는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 어머니의 침상아래 이부자리를 깔았습니다.
밤이 깊어 전등을 끄고 누웠는데 어머니가 어둠 속에서 찬송을 부르십니다.
인공와우를 끄려다가 나는 가만히 경청을 하지요.
귀를 기울이니 2곡중 1곡꼴로는 무슨 찬송을 부르시는지를 알아듣습니다. 그러면 1절은 경청하고 2절은 함께 부르고 3절은 경청하고 4절은 또 같이 부릅니다.
어머니는 오래전 부터 기나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시는지라 평소 밤 10시 30분이면 잠자리에 드는 나도 자정이 넘도록 어머니의 찬송에 추임새를 계속 넣습니다. 작으마한 방 어둠속에서 침대에 누우신 아흔 다 된 어머니와 50대 중반이 된 귀먹은 아들의, 마음을 주께 노래하는 찬송소리가 끝을 모르고 이어집니다. 그 누가 알리요, 그 밤에 천사들이 내려와서 비파와 수금으로 화답하고 있었을지........
열 곡 넘게 이어지던 어머니의 찬송소리가 좀 멀어지는가 싶더니 나는 그만 까무룩히 잠결로 떨어지고 말았나봅니다. 귀에서 떨어진 어음처리기는 아침을 맞도록 수신처 없이 혼자서 작동중이군요.
첨단 전자 청각보조장치 인공와우는 지난 밤 그 역할을 너무도 훌륭히 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그리고 1991년에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지원해 주신 충현교회 구제위원회와 조00 장로님. 한국IBM,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의사회, 금년 5월 어음처리기 업그레이드할 때 지원해주신 건강보험공단과 한국장애인 부모회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