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먼저 흉년이 오면 크나큰 진통을 겪게 되는데 이를 반드시 극복해야만 빛을 볼 수 있다.
2) 흉년이 오면 이론으로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으며, 반드시 체험을 통해서만 극복하게 된다.
3) 험난한 과정을 거친 아브라함의 마음 하늘에서 징조로 드러난 별들을 보게 된 것이다.
4)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들렸는데 일곱 귀신은 무슨 뜻을 의미하는가?
나. 본론
1) 먼저 흉년이 오면 크나큰 진통을 겪게 되는데 이를 반드시 극복해야만 빛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일(메라헤페트)을 하시는 것이다(창 1:2)” 먼저 흉년이 들게 하신다. 흉년이 오면 큰 진통을 겪게 마련이다. 먹고 살아가는 그 기반이 통째로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임하게 된다. 각종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표면적인 것을 들어서 비유로 하나님의 영적 뜻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2) 흉년이 오면 이론으로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으며, 반드시 체험을 통해서만 극복하게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흉년은 각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어떤 이들은 정말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고 가볍게 오는 경우도 있다. 이는 반드시 자신 안에서 체험을 해야 한다. 이론으로는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문제다.
“광야와 메마른(찌아)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사 35:1)”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찌마온)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사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사 35:7)”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찌아) 땅(에레츠)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사 41;18)”
3) 험난한 과정을 거친 아브라함의 마음 하늘에서 징조로 드러난 별들을 보게 된 것이다.
험난한 훈련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마음 하늘에서 징조(오트)로 드러난 별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마른 땅으로 변해야 그 하늘에서 이 별들이 나타나 빛을 비춘다.
그러므로 불순물이 섞이면 안 되는 것이다. 외도를 경계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는 정조가 넘쳐흐른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이론을 받아들여 그 기준을 삼는 것을 보게 된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분별하는 능력이 없다.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려면 과정을 거쳐서 깨달음에 이르러야 한다. 먼저 이론 공부를 어느 수준까지는 해야겠지만 지식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이론 공부를 거쳐서 깨달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 16:9)”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눅 8:2)”
4)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들렸는데 일곱 귀신은 무슨 뜻을 의미하는가?
바로 다른 복음이다. 하나님 말씀이 아닌 다른 견해들이 하나님 말씀과 섞여 있어서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 귀신이다. 정확히 하나님 말씀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귀신이다. 이것이 일곱이다. 대단한 지식이다. 그 당시 헬라 철학이나 문학들 사상으로 채워진 것이다. 아마도 그 당시 지식을 겸비한 천재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상들이 예수를 대적하고 있었으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그 생명의 그 빛의 세계를 바로 보고 깨달음에 이른 것이다. 제자들 중에 으뜸이 된 것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
6) ‘삼 헤메라’에 예수께서 부활하시므로 돌 성전이 무너지고 몸 된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트레이스 헤메라스)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마 8:31)”
‘사흘’로 번역한 ‘삼일’이 ‘트레이스 헤메라스’다. 곧 삼(헤메라)이다. ‘트레이스 헤메라’가 창 1장에 나오는 곧 ‘셋째 날’로 번역이 된 ‘욤 쉐리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욤’이 새 언약에서는 ‘헤메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생명의 빛이다. 그러므로 ‘헤메라’는 시간 개념이 전혀 없으며 ‘날’이 아니다. 이 빛은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다. 사흘로 번역한 ‘삼 헤메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하는 때에 내 안에서 나타나는 생명의 빛이다.
사흘로 번역한 삼일은 24시간 개념이 아니다. 깨달음의 세 번째 단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빛이다.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금요일 오후에 죽으셨고 안식일 이후 새벽에 부활하였다.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는 한나절 반이다. 그러면 이틀인 것이다. 여기 ‘삼일(트레이스 헤메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함을 나타내고 있는 빛을 의미한다. 세상 개념의 삼일이 아니다.
‘삼 헤메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다. 돌 성전이 무너지고 몸 된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휘장이 찢어진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