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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4:43~54 두 번째 표적
고전1:22~23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베풀어 주신 표적과 기사는 엄청난데,
아브라함 때는 100세에 이삭을, 모세 때는 홍해를 가르시고 10가지 재앙을, 여호수아 때는 요단강을 가르시고, 사무엘 삼손 때는 우뢰와 힘을, 엘리야 엘리사 때는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고, 히스기야 이사야 때는 한 천사를 내려보내셔서 앗수르를 궤멸시키시고, 병이 낫게 하시고, 포로기 다니엘 때는 꿈을 맞추시고, 사자굴에 들어갔을 때 사자입을 봉하셨는데, 더 찾아보면, 무수히 많겠지만,
그런데 표적신앙은 하나님이 내게 이런 표적을 보이시면 믿겠습니다라는 것인데, 말씀을 믿는 신앙보다 약한 신앙입니다. 그런데 초신자 때는 표적을 많이 보여주십니다. 예수께서 가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셨는데, 이런 표적에 놀라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아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이러한 표적신앙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약속, 곧 말씀을 표적이 없어도 단순하게 믿는 것입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걸어 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버리고
걸어 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545)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 예배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그곳에서 이틀을 머물고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를 거쳐서 갈릴리로 오셨는데, 고향인 나사렛으로 오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존경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나사렛 회당에서 글을 읽으셨으나 쫓겨나시고 말았는데, 그 때 말씀하시기를 엘리야와 엘리사가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다고 하셨는데,
눅4:25~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그러나 갈릴리의 다른 마을에 가니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왜냐하면 고향을 너머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의 하신 위대하신 일을 예루살렘 순례 중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환영하며 영접하였습니다.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또한 예수님은 다시 가나로 오셨습니다. 여기서 물이 포도주로 되게 하신 사건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그러므로 왕의 신하가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 그는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알고 온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여종에게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왔는데, 나아만은 자기 지식으로 당연히 엘리사가 마중나와 자신을 영접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에게 안수하며 병을 고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아만을 영접하지도 않고, 다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고 지시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아니 내가 이래뵈도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인데 나를 영접하지도 않고, 중랑천 같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는 거냐. 우리 아람 나라에는 그보다 더 맑고 깊은 강이 훨씬 많은데, 다메섹 강 아바나 바르발에서 차라리 몸을 담그는 것이 낫겠다! 버럭 화를 내며 그냥 돌아가려고 하였는데, 그의 현명한 사환이 주인님. 이보다 더 한 요구라도 병이 낫는다면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순종하십시오 주인님 그랬더니, 그는 사환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가서 몸을 7번 담궜는데, 그랬더니, 나병이 나아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병이 나은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왕의 신하는 자기 지식을 가지고 구약의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와 자기 지식대로 해주길 원하였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그렇게 행해주시기를 바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때론 자기지식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의 손에 잡히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점을 만지신 것입니다.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표적신앙은 자칫 우상이 될 수 있는데, 모세의 지팡이는 얼마나 엄청난 유물입니까.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표적이었던 기적의 유물인 모세의 놋뱀 지팡이를 부셔버렸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놋뱀 지팡이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이 왕의 신하의 고인물 곧 자기틀을 부셔버려야 할 필요를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예수께서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움을 요청할 때 함께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 속에는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하셔야만 한다는 누구라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고정된 틀이 있는데, 이것이 자기 지식이 되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렇게 된 잘못된 틀이 있는데, 장로의 전통이라던지, 성경보다 고정된 자기 지식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것을 깨신 것입니다. 도마도 그러했는데,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 현장에 없던 도마는 내가 반드시 그의 십자가의 못박힌 자국과 상처자국을 만져보지 않고는 부활을 믿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그때 예수님은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와서 만져보고 믿으라 그러나 도마 너는 보고 믿었지 그러나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도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기적과 표적도 중요하지만, 신앙은 말씀을 단순하게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눅11:9~13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므로 종종 경험하는 것인데, 중보기도팀에 기도를 부탁하면, 더 큰 도움을 얻습니다. 나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중보기도 팀이 기도해줄 때, 큰 능력이 임하는데, 혼자 총을 쏘는 것보다 많이 총을 쏘면 화력이 집중되듯이, 함께 기도하면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상달되고, 응답도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죽을 병에 걸려 복수가 차서 배가 남산만큼 올라왔는데, 그때 교회 중보기도 팀이 기도하였더니, 복수가 빠지고 거짓말같이 병이 나은 것입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또 표적신앙을 무시해도 안됩니다. 옛날에 길선주라는 도사가 있었는데, 아는 친구의 전도로 천로역정을 읽고 신앙이 생겼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정말인가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 세 번 부르셨는데, 그는 기도하면서 방성대곡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일 생에 한 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표적은 대개 개인적으로 일생에 한 번 또는 몇 번 있으니, 이것만 추구하는 것은 감나무에서 감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튼 이후 그는 교회에서 집사 장로가 되고 나중에는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큰 종 목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막11:22~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말씀만으로 백부장의 종을 고치신 분이십니다. 또한 말씀만으로 군대귀신 6000마리를 쫓아내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사람의 고정된 생각을 깨뜨리셨는데, 그냥,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셨는데, 이 때 이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갔습니다. 표적신앙 자기틀 신앙을 벗어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백부장과는 조금 다른데, 백부장은 주여 저의 집에 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오시지 마시고 다만 한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낫겠나이다 하였는데, 그때, 예수님은 주위를 돌아보시면서 이같은 믿음을 이스라엘에서 본 적이 없다고 칭찬하시고 병을 낫게 하셨는데, 비슷한 상황에서 왕의 신하는 반드시 꼭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기적을 베푸셔야만 합니다 라는 자기 틀이 있었습니다. 물론 당연한 요구라고 보이지만, 예수님은 내려가지 않으신 이유는, 이 사람 속에 있던 자기틀 또는 표적 신앙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그런데 왕의 신하는 정확하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가 믿음의 순간에 아들이 나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땅에 계실 때는 그분의 한 마디가 모든 것을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표적신앙의 끝판왕은, 바리새인 서기관들인데,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예수께 자주 와서 표적을 보이면 믿겠다고 표적을 보이라 표적을 보이라 그러면 믿겠다 자주 그랬는데, 헤롯도 예수님이 표적 보이기를 원하여 그를 시험하였으나, 예수께서 보이지 않으시자, 그를 광대처럼 만들어서 돌려보냈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마술사 광대처럼 여기는 자들에는 기적을 보이지 않으시고, 믿는 자들에게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는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들은 심지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조롱하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며 내려와 봐라. 조롱하고 예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실 때, 엘리 엘리? 저가 엘리야를 부르나 보자 하였는데, 표적신앙이 화석화되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신앙은 때론 표적을 구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 그랬지요. 그러나 과정으로 봐야지 항상 표적만 구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며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는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나타나신 이유도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병이 낫고, 믿음으로 부활신앙을 얻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습니다.
신앙은 표적이 없어도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도마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내 눈으로 보고 만져 보아야 믿겠다 하였는데, 이 때 예수님은 도마에게 나를 만져보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시고 그러나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셨는데, 지금 성도들은 예수님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2천년 전 하나님의 아들의 영원하신 보혈의 죄사함과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것을 믿는 자들은 복됩니다.
요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