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 석자를 적어내릴때 전하에 대한 마음도 온전히 담아 적어내렸나봅니다.
마지막 글자의 한 획이 그어질 때마다 정도 내주었나봐요.
그때부터였을지 모르겠습니다.
한자도 모르던 제가 전하 이름 석자적힌 종이를 품에 지니고
한자를 알고서는 잊어버릴까 매일을 되 뇌이던 때가.
제 서체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나요?
아직은 애같아야 해가 저물 때마다 전하의 방을 찾아가 붓을 쥘 텐데
제가 보기에도 이제는 무릇 전하의 서체를 닮아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고운 서체를 위해 밤낮을 지새웠으면서도 말이에요.
이게 가지지 말라던 미련인가봅니다.
정도 미련도 가지지말라던 한 아이의 말을 무시해서인지.
오려는 헤어짐도 너무 아픕니다.
아이들의 울음도 멈췄고 덕분에 모든 이들이 웃고 있으니 어쩌면 제가 할 일이 끝났을지도 모르겠어요.
전하는 이 곳에서 여전히 해야할 일들이 많으십니다.
지금처럼 어렵고 약한 사람들은 위하고 꾸준히 물어가며 성군으로 남아주세요.
점점 잠이 많아집니다.
이번 꿈이 깨려나 봐요.
전하의 꿈도 어디든 만날 수 있는 그곳에서 깨기를 바랍니다.
이 곳에서 전하를 만났듯이 그 곳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제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말이 같아 다행이예요.
나의 혼인해줘서 고마워요.
다시만나요. 서지환씨
그 언젠가 지환이 은하에게 선물한 가락지와 비슷한 모양의 가락지가 편지와 함께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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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에게 꿈 얘기를 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찾아오라 했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나를 찾아올 때마다 그곳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오지 말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에 부인을 잡아두고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할 바에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찾는 것에 또 미운 그곳의 얘기를 하면서도 웃는 모습을 보는 게 더 낫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조금 이기적으로 굴었다면 부인을 조금 더 곁에 둘 수 있었을까 싶어
그러질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나를 미워하세요.
부인의 잠이 늘었습니다.
부인의 잠이 해를 넘고 달을 넘기는 순간
어쩌면 부인이 꿈이라 말했던 그곳에서 다시 잠이 깨려나보구나라고 어림짐작했는지
유독 부인을 재우는 것에 인색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해서 미안합니다.
다시는 이런 꿈을 꾸지 마세요.
부디 잠에서 깨면 내 이름 석 자도 기억하지 마세요.
그곳에서조차 나때문에 울까 걱정입니다.
이제 누구의 머리를 올려줘야 할까 허망하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부인의 비녀 하나뿐이라
뺏어가 미안합니다.
언젠가 해줬던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이야기처럼 부인의 무언가 하나쯤 뺏어두고 그리워만 하겠습니다.
그곳에서는 비녀가 아닌 더 고운 장신구를 다세요.
다실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나도 만약 길고 길었던 꿈이 언젠가 깨서 그쪽에 닿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나의 꿈이 깬다면 그곳에서 꼭 데리러 갈게 은하야.
더 많이 불러주겠다 했는데 그러질 못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