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심사평>
조영두 시인의 「처서의 농심」
조영두 시인님은 시인 중의 시인이다. 지긋하신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춘심(春心)과 중후한 신선감이 독자들의 정서에 물빛 감동을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인생 역정에서 겪어낸 사랑 체험을 차원 높은 피안 세계의 꿈의 경지로 승화시켜 성숙한 깨달음의 미학으로 제공해 주니, 그 독특한 사랑 감성과 인간미가 매우 인상적이다.
이번에 당선작으로 선정된 「처서의 농심」은 환절기에 이른 계절의 감각을 세미한 시적 감성으로 아주 잘 묘사해 낸 명작품이다. 처서(處暑)는 "더위를 처분한다"라는 뜻으로 여름이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 기운이 자리 잡는 때이다. 24절기 가운데 열넷째 절기로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단다.
이러한 계절의 감각을 결실의 수확을 앞둔 흐뭇한 농부의 입장에서 멋지게 묘사해 내고 있다. 귀뚜라미가 노을빛을 업고 오고 쾌청한 들녘에선 어미소가 어정거릴 때, 논배미 벼이삭은 익어 참새도 춤을 추니, 농심은 청산의 맑은 바람에 가슴이 저절로 열린단다. 그리고 하늘엔 솜털구름 이마엔 땀이 송송, 비록 주름진 농부의 얼굴이지만
농작의 풍성한 결실을 하늘에 감사하며 ‘가슴 펴 홀로 웃으니 메뚜기도 튀는구려’ 하는 표현이 매우 절창이다.
작품 성향의 시적 분위기와 세미한 감성적 표현, 그리고 은근히 이상향을 추구하는 정서, 적절한 시어들의 선택과 배합이 아주 절묘하게 구성되어 있어 대상작으로 손색이 없다.
- 심사평 : 김부배, 황의수, 이광녕(집필)
<대상 작품>
처서의 농심
은곡 조영두
서산을 넘으려는 그림자 길어지고
발밑을 내려 보니 시절을 걷고 있다
눈치챈 귀뚜라미가 노을빛을 업고 오네.
쾌청한 들녘에서 어미 소가 어정어정
벼 이삭 고개 숙여 참새는 건들 춤을
청산에 맑은 바람은 내 가슴을 여는구나
하늘엔 솜털 구름 이마엔 땀이 송송
주름살 새겨놓은 농심이 하늘 보고
가슴 펴 홀로 웃으니 메뚜기도 튀는구려.
<본상 심사평>
구본일 시인의 「발바닥의 꽃향기」
보천(甫泉) 구본일 시인은 언제 뵈어도 진솔 담백하시고 순수하시다. 내면의 본모습을 우회적으로라도 감추지 않으시고 늘 순박하시고 솔직하시니 오랫동안 교유한 뒤에는 오히려 더 인간미에 끌려 정(情)이 깊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보천 시인님의 글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서 시심을 그려낸 것들이 많으며, 솔직 담백한 고백적인 내용이 많다.
이번에 청안문학상 본상으로 선정된 「발바닥의 꽃향기」는 그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발바닥의 꽃향기’라니, 운명적으로 음습한 환경에서 지내야만 하는 발바닥이 아닌가? 거기서는 흔히 악취가 나기 쉬운데 꽃향기라니 추(醜)를 미(美)로 인식하려는 작가의 심미안이 매우 신선하고 곱기만 하다. 발로 걸을 수 있으니까 사철 꽃을 볼 수 있고, 꽃구경을 하니 발품 팔아 행복하단다. 발은 신체의 가장 아래쪽 후미진 곳에서 늘 육중한 짐이나 육신의 무게에 짓눌리고 원족(遠足)을 할 경우에도 다 견뎌내야 하니 늘 힘겨운 팔자다. 그래서 작가는 “미안해 버팀목아”하며 ‘발바닥의 꽃향기’라고 칭송하면서 등 굽혀 입맞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구름 위의 햇살을 인식하고 있는 작가의 인생관이 매우 소망적으로 나타나서 매우 큰 감동을 준다. 생활 주변의 어둡고 소외된 곳에 햇볕을 쪼여 밝게 이끌어가고자 하는 작가의 아름다운 혜안이 반짝반짝 빛나는 좋은 시조이다 - 심사평 : 김부배, 황의수, 이광녕(집필)
<본상 작품>
발바닥의 꽃향기
보천 구본일
사람이 걸으니까 아름다운 꽃을 본다
봄 벚꽃 여름 연꽃 가을 국화 겨울 눈꽃
사철을 꽃구경하니 발품 팔아 행복하다
동장군 횡포 속에 모진 풍파 몰아쳐도
앞으로 나아가는 뼈마디의 아픔 호소
칼바람 휘둘렸어도 누비었네 온 천하를
미안해 버팀목아 내 생명의 두 발이여
내 인생 너와 함께 여기까지 동행하니
등굽혀 입맞춤하네 발바닥이 꽃향기다
<작품상 심사평>
김광식 시인의 「정도전의 꿈」
김광식 시인은 인품이 과묵하고 온유 겸손하며 문단생활에도 열정으로 임해, 후학들에게 늘 모범을 보이는 작가다. 선대로부터 굴곡진 역사의 참상을 몸소 겪어온 작가이기에 그의 글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적인 내용이 많다.
이번에 작품상으로 선정된 김 시인의 글은 연시조 「정도전의 꿈」이다. 이 작품은 조선초 이상국가를 꿈꿨던 삼봉 정도전의 애국관을 빌어 현대인들의 희미해진 애국심을 은근히 비판하고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의도가 깔린 작품이다.
우리의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끊임없는 당쟁으로 나라의 운명은 기울대로 기울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고, 해방도 두 쪽이 나서 남북이 분단된 후, 6.25의 비극까지 맞이하게 되었으나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었는가? 그런데 지금도 유비무환의 대도를 지켜내지 못하고 당쟁은 거듭되고 있으니, 그 위태로운 현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작품 속에 그려낸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不愛君憂國非詩也)”라고 아들에게 훈계하였다. 시대의 흔들림을 아파하고 불의에 분개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물질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는 충효예 정신이 메말라가고 애국심도 희미하다.
이 글은 이상향을 추구하려는 소망 의지가 강하게 나타난 작품이다. 역사적인 인물을 모델로 삼아 현대인들에게 큰 가르침을 제공해 주는 효용론적 가치가 큰 작품이어서 눈길을 끈다.
- 심사평 : 김부배, 황의수, 이광녕(집필)
<작품상 작품>
정도전의 꿈
문봉 김광식
뜬구름 잡으려고 나라를 뒤엎고도
왕자들 자리다툼 삼봉(三峯)만 희생양 돼
높은 뜻 개혁의 꿈은 펴보지도 못하였네.
안타까운 조선 역사 한오백년 돌아보면
사색당파 싸움질로 핏빛으로 물들이다
일제에 나라 빼앗겨 민초들만 서러웠네.
해방도 두 쪽 나서 남북이 살벌한데
유비무환 외면하고 눈만 뜨면 당쟁이니
나라는 풍전등화요 삼봉의 꿈 어디 갔나.